떨리는 마음으로 업체에 방문해서 예정된 오프닝 미팅에 참석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텄어요.
저희가 일할 수 있는 사무실도 배정을 받았고 카페테리아와 화장실이 어딘지, 그리고 어디가 누구의 방인지를 다 안내받고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방문했던 업체의 카페테리아 채광! 너무 예뻤어요
한국에서 정리해서 가져온 확인 필요한 사항들 체크리스트를 미국 담당자와 나란히 옆에 앉아 하나씩 확인을 하니 확실히 원격으로 이메일만 주고받으며 일할 때보다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출장 오기 전에는 세상 제일 투덜대다가 막상 도착해서 업무 시작하고 나니 막혔던 명치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 내가 너무 시작도 전에 지레 겁만 먹었나 싶은 마음도 들더라고요. 확인되는 내용이나 처리 완료된 건들을 정리하여 한국에 계신 담당자님께 실시간으로 송부하는데, 예를 들어 처리할 일이 10가지면 순차적으로 잔여 9개, 잔여 8개, 잔여 7개.. 이렇게 하나씩 없애 가는 느낌으로 신나게 일했습니다.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미국 시간으로 낮 정규 근무 시간 동안에는 사무실 출근, 퇴근하고 나서는 호텔방에서 한국 시간에 맞게 또 업무해야 하는 버든은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육신이 한국의 사무실에서 멀어진 것, 한국에서 아무도 나에게 전화를 걸 수 없는 것, 한국에서 루틴 하게 하던 원래 일을 잠시 놓고 아예 새로운 일을 하는 것 - 이 세 가지가 너무 리프레쉬가 되어 근무 시간이 길어진 것과는 무관하게 출장 내내 좋은 마음도 컸던 것 같아요.
며칠이나마 같이 일을 해 보니, 한국과 비슷한 듯 또 다른 점들을 몇 가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그들의 기본 태도는 항상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저희에게 맞추고자 노력하겠다는 서포트에 대한 욕구와 뭐랄까, 겸손함이 느껴졌어요. 뭘 반복해서 물어봐도 항상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고 하면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하고, 고맙다고 하면 "No problem, I'm always here for you!"라는 말이 의지할 데 없는 타지라 그런지 더 힘이 됐습니다. 본인이 맡은 분야에 대한 질문을 하면 세상 그렇게 프로페셔널하게 설명해 주면서도 잘난 척이라던가 하는 건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가끔 회사일 할 때, 특히나 유관 부서 사람에게 뭔가 물어봐야 할 때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이 정도는 내가 이미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왠지 모르게 움츠러드는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귀찮아하거나 불친절한 사람들도 가끔 만나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제가 미국인도, 이 회사 소속도 아닌 완전 이방인이라 그런지 더 편한 마음으로 업무 관련한 어떤 이야기든 담당자들과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던 점이 가장 편하고 좋았습니다. 능률도 두 배 이상은 오르는 느낌이었어요. 우리 모두는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는 직장 동료니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사람들과 협업해야지 - 하는 다짐도 새롭게 했고요!
한 편, 한국보다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저희 회사에서 제가 겪어본 분들은, 예를 들어 아직 공유해주기 어려운 내용을 제가 요청했다거나 혹은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하더라도 딱 잘라 거절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거절을 하더라도 서로의 기분을 살펴서 좋은 말로 표현하고, 거절의 표시가 그다지 강하지 않아 급할 때는 저도 더 매달린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업체에서는 한 번 안되면 끝까지 안되고, 딱 잘라 거절을 표했어요. 뭔가 두부를 자르듯 딱 잘라진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뿐만이 아니라 그들 서로 간에도 그런 것 같았고, 그 부분에 대해 누구 하나 기분 나빠하지 않고 한마디로 의사 표현과 공사 구분이 확실한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피 튀기며 미팅을 하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다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얼굴로 식사를 하더라고요. 이런 점이 적응이 잘 안 되기도 했지만 많이 느끼고 배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고 가끔은 뚝딱거리는 입사 N년차 대리의 일주일간의 짧은 출장이 저물고, 귀국 날을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