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크록스를 신지 않아도 돼

by 헤븐

뜨겁고 따가웠던 올해의 여름도 이제 끝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그리고, 크록스의 계절도 이제 슬슬 안녕이다.



아이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할 때부터, 여름이 올 때마다 아이들이 크록스를 신고 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아이는 두 발의 크기도 다리의 길이도 달랐기 때문에 늘 깔창 낀 긴 목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깔창에 맞는 운동화 종류가 많지도 않았지만, 그중에 한껏 발랄한 운동화를 신겨봐도 한여름에 긴 목 운동화는 늘 무거워 보였다.

너나없이 가볍고 시원한 신발들로 꽉 차 있는 어린이집 신발장을 볼 때면 내 마음도 더 무거워지곤 했다.

크록스를 너무 사랑해서 한겨울에도 크록스만 신는다는 어린이집 친구 엄마의 투정 어린 말이 나는 참 부러웠다.


물론, 크록스 스타일의 신발을 전혀 안 신어본 것은 아니다.

아이의 다리 길이 차이가 아직은 크지 않고, 양 발 크기에 각각 맞는 사이즈의 신발을 두 켤레 사면 되기 때문에 몇 번 크록스 스타일의 EVA 신발을 사준 적이 있다. (신발을 두 켤레씩 사야 해서 슬프게도 비싼 크록스 정품은 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신발을 신을 때면 유독 자주 넘어져서 물놀이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신기지 않았다. 아이도 그래서인지 크록스 스타일의 신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의 다리 길이와 발 크기가 자라면서 더 차이가 난다면, 지금보다 더 신발에 대한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다.

지금보다 더 긴 목 운동화만을 신어야 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도 실내화 대신 혼자 다른 특수한 신발을 신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또래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게, 그저 비슷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자꾸만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깟 신발.


아이가 걷기 전, 두 다리로 잘 걷게만 해달라던 간절함이 어느새 신발 투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역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가보다.


아이는 걷기는 물론 엄마와 술래잡기를 즐기는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자라고 있다.

저녁이 되면 살짝 부어오르는 다리를 이제 스스로 베개 위에 올리고 자는 기특한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어린이집 친구가 “너는 다리가 왜 보라색이야?” 하고 묻는 말에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 멋지지?” 하고 대답할 줄 아는 자존감 높은 아이로 커가고 있다.




아이가 언젠가 신발에 대해 물어본다면,

크록스를 신지 못한다고 해도, 아니, 세상에 수많은 예쁜 신발들을 신지 못한다고 해도,

그런 것들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신,

그 어떤 둔탁한 신발을 신더라도 너는 네가 원하는 곳 어디로든 뛰어오를 수 있다고.

그 어떤 투박한 신발을 신더라도 너는 네가 가고자 하는 길 어디로든 날아오를 수 있다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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