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제법 익숙해졌다고, 이제는 무던히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걸 보니 아직은 나도 갈 길이 멀었나 보다.
아이는 나의 복직이 마치 신호탄이 된 양, 8월 내내 비염, 열감기, 수족구를 차례로 겪어내었다. 특히 마지막에 앓은 수족구는 의사 선생님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정도가 심했고 아이는 며칠을 망고주스로 겨우 연명하며 지냈다. 아이는 손발은 물론 몸 전체에 퍼진 빨간 수포 때문에 얼음팩을 감싸 안으며 무기력하게 누워있었고 나는 그런 아이 옆에서 그저 이번만큼은 제발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내가 진짜 두려웠던 건 일주일이면 나을 것이 확실한 수족구가 아니라, 면역이 떨어진 아이의 몸에서 언제 다시 똬리를 틀고 나올지 모르는 다리의 염증반응이었다.
명절의 시작과 함께 아이는 밤마다 투정했다. 가래가 목에 딱 붙어있다고. 누우면 자꾸만 기침이 난다고.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나의 빅데이터에 따르면 가래, 기침을 동반하는 감기는 열에 아홉 다리의 통증을 유발한다. 엄마가 되면 아이가 아플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신성한 능력이라도 생기는 걸까. 수족구의 흔적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아이는 또 기침을 하고 다리가 아프다고 투정한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복직 때문일까.
휴직기간 동안 나는 매 끼니 탄단지 비율은 물론 소스에 들어가는 성분 하나까지 신경 썼다. 건강한 식재료에 대해 공부하면서 유기농, 무항생제, 자연방목과 같은 키워드에 익숙해졌고, 시판 소스 뒷면에 적혀있는 복잡한 이름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음식과 건강에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렇다 할 약도 치료법도 없는 병을 안고 있는 아이에게, 음식은 내가 힘써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자 안식이었다. 매일 차려내는 밥상과 함께 올려지는 나의 간절한 기도였다.
나의 복직에 앞서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둘째를 위해 남편이 먼저 휴직에 들어갔다. 풀타임 육아에 익숙하지 않은 남편에게 손에 익지 않은 요리까지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퇴근 후 내가 요리를 시작하기에는 아이들의 저녁이 너무 늦어졌다. 당분간은 반찬가게에서 도움을 받아서 끼니를 해결해 나갈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두 달 정도를 지냈다. 아직 전업 육아가 어색하고 힘들 남편에게 괜히 잔소리 보태기가 싫어서 그가 아이들에게 주는 음식에 대해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이 아침에 단 빵과 시리얼을 먹을 때면 짠한 마음에 슬그머니 치즈와 브로콜리를 넣은 주먹밥을 후다닥 해주곤 했다. 그렇게 식탁에 엄마의 손이 닿는 날들이 부쩍 적어진 지 두 달, 아이들은 그 어느 여름보다도 자주 아팠고 힘들어했다.
오랜만에 세컨드 유모차를 꺼냈다. 벌써 네 돌 반이나 된 아이지만, 유모차를 버리지 못했다. 다리가 아픈 날 꼭 걸어야 할 일이 생기면 아직 유모차만 한 이동수단이 없다. 가끔 오지랖 넓은 동네 할머니들이 '큰 아이가 유모차를 타고 다닌다'라고 수군거리지만,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내 상상 속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이가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이었다. 아이는 아프지 않을 때 대부분 걷고 뛰는데 문제가 없으니 가끔 유모차를 타는 일상에 찾아오는 시
선은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아파트 바로 옆동인 시댁으로 걸어가며 괜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나의 복직과 함께 아이가 쉬지 않고 아픈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엄마가 꾸려내는 정성 어린 식탁의 부재 때문일까. 음식을 준비하며 마음 한편에서 간절히 드렸던 기도의 부재 때문일까. 아니면, 복직과 함께 엄마의 부재를 온몸으로 느꼈던 아이의 헛헛한 마음 때문일까.
둥그렇게 부어 한껏 무겁게 보이는 아이의 다리만큼,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오늘은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