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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27. 2021

속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 속죄, 이언 매큐언 -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는 소위 작가라는 이들은 여러 종류의 글을 쓰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누군가에게 용인되기 쉽지 않은 내용의 글이었을 때. 과연 자신 이외의 타자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는 영역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또한 만약 글이라는 것이 허구이든 진실이든 누군가의 기억을 해체시키고 비틀어서 새롭게 탄생되는 것이라면 분명 같은 기억이라도, 같은 글이라도 그 기억은, 그 글은 동일선상에서 해석되지 못한다. 시선의 간극이 존재하기에. 너와 내가 다르기에. 그리고 같은 시간을 경험했어도 달리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인간' 이기에.



여기 세 사람이 있다. 글쓰기에 자신의 에너지를 불태우고 마는 열세 살의 '철없는' 소녀 브리오니. 정리정돈을 좋아하고 그녀의 글 안에서는 "통제할 길 없는 혼란한 세상도 정돈된 세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p.19) 그녀는 소설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줄 아는 영특한 소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언니인 아름답고 매혹적인 세실리아와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문학과 심리학에 능통한 데다가 이제는 의학까지 공부하고자 하는 완벽한 남자 로비.



글에 진심이었던 브리오니... 그녀의 글을 향한 열정 하나만은 분명 사랑스러웠다. 내겐 분명 그랬다.. 



시작은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세실리아와 로비의 '그 일' 이 정원에서 벌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일' 이 고작 둘의 심리전이었다는 걸 어린 브리오니가 알았다면. 아니, 차라리 글을 쓰는 브리오니가 아니었다면 '상상' 하고 '오해'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원천은 결국 '글'을 쓰는 인간이기에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무릇 글을 쓰는 이들의 자의적 해석은 도를 지나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이해하기에...



그 일에 대한 정의는 앞으로 많은 세월을 두고 차츰 다듬어질 것이다. 그때 가서는 그 일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고 추측했던 것은 자신이 열세 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너무 어려서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마음만 다급해졌던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p.66



아름다운 두 사람. 연인의 모습은 그렇게 빛난다. 그것이 비록 한 시절에 불과해도. 한 철만 사랑했어도.... 



연인들은 언제 불행에 빠질까. 상대방의 세계에서 결국 제외되고 말 때. 그리운 그 혹은 그녀가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둘 사이를 갈라놓을 때. 진심이 아닌 오해가 쌓이는 시간이 반복될 때. 그리고 그 오해가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들어 기어코 이별과 조우해야 할 때. 어린 브리오니는 몰랐을 것이다. 사랑을 해 보지 않았을 테니까.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시리듯 아파보지 못했을 테니까. 다만 글과 사랑에 빠지기 바빴을 테니까.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라는 것을.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 는 것을 (p.66) 브리오니는 알지 못했겠다. 그러니 로비가 건네려 했던 - 비록 잘못 전해지긴 했지만 - 연정의 편지마저도 뜯어보려 했었겠지. 




편지에는 절대적이고도 잔혹하며 심지어 범죄의 느낌을 주는 어떤 것이, 어떤 어둠의 원칙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흥분하면서도 언니가 어떤 식으로든 위협을 받고 있으며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p.164


그의 어리석은 편지는 그녀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마음의 빗장을 풀게 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후회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그들은 이제 곧 즐거움과 관능, 열망과 자신들의 무모함에 대한 두려움, 주저함과 조급함이 빚어내는 갈등을 겪으며 단둘이 있게 될 것이다. p.188



마음은 들켜버리고 만다. 엉뚱한 장면이어도 숨겨지지 않는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란 그렇지 않을까.... 



세실리아와 로비는 결국 사랑하게 된 인연이었다. "그녀의 한숨 소리에는 욕망이 담겨 있었고, 그 소리는 그에게도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p. 195) 서로의 몸과 마음을 열렬히 탐색하고 열정을 주고받았던 그날,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변수가 있었다. 다름 아닌 언니를 지켜야 한다는 엉뚱한 사명감에 불타 올라 있었으며 소위 '어른의 세계'를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도 강했던 브리오니. 급기야 그들의 뜨거웠던 시간을 자의적으로 해체하고 해석해서 그야말로 '작가답게' 이야기는 다시 탄생이 된다. 사랑에 순정했던 로비가 어느새 강간범이 되어 버리고 마는 비극의 탄생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 헤어지게 만든 또 한 사람. 연약함은 한편으로는 무서운 무기가 되고 만다. 아이라는 존재가 마냥 사랑스러울 수만은 없는 이유가 어쩌면 그것에 있지 않을까. 약하고 철없고 뭘 모른다는 것을 무기 삼아 자신을 보호하고 모두가 믿게 만들어 버리는 간사한 마법...




- 내가 네 사촌을 강간했다고 생각해?

- 아니요

-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니

- 반반이었어요. 확신은 못했어요

-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지

- 철이 들고 있으니까요.


p.480. 철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의 꾀와 이간질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의도에서든...




두 사람의 한 때. 그 짧은 시절만이라도 기억이 충분히 남겨질 수만 있다면... 



잠시, 나로서는 이 소설이 상당수 매혹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건 '편지'라는 도구가 여러 장치로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로비와 세실리아는 지난 수년 동안 사랑을 나눠왔다. 편지로. 암호를 교환하며 서로 더욱더 가까워졌" 다. (p.290) 편지는 나로서는 사랑의 표식이었다. 언제나 그랬었다. 이뤄지지 못한 짝사랑의 첫사랑에게도. 만나던 인연들에게도. 언제나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은 다름 아닌 시간과 편지. 그 두 가지였었다. 언제나 주는 쪽이었다. 써도 써도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고, 드러낼 수 없는 모자란 시간의 마음은 편지를 통해 전하기 일쑤였다. 그러했기에 편지를 통해 주고받는 서사들은 뭐랄까 애달프게 기억을 그립게 하고 만다. '속죄'를 읽으면서 내내 그랬었다. 편지에서는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것들을 고백해낼 수 있기에. 만약 브리오니가 진심을 다해 속죄하고 싶었다면 편지를 건넬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의 죄의식을 씻기기 위해 결국 자신의 마음이 편하고자 개편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다해 단 두 명의 독자를 향한 글을 썼더라면. 편지를 통해서. 그랬다면 조금은 더 자신도 편안해지지 않았을까...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p.521







전쟁터에서의 로비를 통해 이언 매큐언은 조금 더 커다란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듯싶었다. 우리가 과연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 가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속죄해야 하는 인간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누가 누구의 탓을 한다기보다 모든 인간은 객체이자 주체로서 서로 다르고, 다르기에 같은 장면 같은 기억이 흐른다 한들 절대 같아질 수 없는 그저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완벽할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브리오니가 증언을 번복할 것이고 과거를 다시 쓸 것이다. 유죄인 사람이 무죄가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요즘 같은 때에 죄란 과연 무엇일까. 별 의미가 없었다. 누구나 다 유죄이기도 하고 무죄이기도 했다. (중략)


증인들도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죽게 내버려 둔 적도 없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두었나? p.368-9




나름의 회개로 간호사가 되고자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글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글에 진심이었던 브리오니. 사랑과 자신의 인생에 진심이었던 세실리아와 로비. 작은 오해 하나로 벌어진 어긋나고 마는 삶의 흐름. 그리고 자신의 인생 앞에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 망각과 절망을 반복해 나가는 인간. 그런 인간의 삶은 결국 행복과 불행과 슬픔과 기쁨을 우연이든 필연이든 차곡차곡 쌓아가다 죽음과 조우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



소설 한 편이었지만, 그 소설의 연장선에서 보았던 영화 한 편이었지만,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한 화두를 뇌리에 강하게 박히게 만들고 만다. 서평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건, 아마도 그만큼 내가 이 소설을 꽤 사랑했다는 증거일 테다.




덧) 세실리아의 등이 시원하게 파인 드레스를, 나도 입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날. 격정적인 사랑을 나눠보고.. 싶었다는. 속물적인 생각은 별책부록-



아름다운 그녀는 사랑할 때 더 아름다웠을지 모른다. 외로웠겠지만. 분했겠지만. 그럼에도 사랑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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