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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10. 2021

기분에 지던 날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




일어나 보니 자정이 지나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그대로 식탁 위에 둔 읽다 만 책을 들어 소파에 앉자 그 위로 덩그러니 누워 있는 리모컨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대로 책을 잠시 덮어 TV를 켰다. 웬일인지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멀리서 엿보듯 지켜보고 싶을 때. 그러면서 동시에 나의 사는 모습을 반대로 생각해버리고 말 때.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어떤 심정적 물증적 확신을 기어코 눈으로 보고 싶을 때. 그냥 그럴 때.



다자이 오사무의 원제와 같은 제목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인물의 대사가 흡사 책 작품을 읽는 것 같아서 처음부터 애정을 담아 지켜 보던 그 드라마는 모든 걸 잃은 여자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어서, 세상이 마냥 창피하고 속상해서 죽을 생각을 무의식 중에 자주 한다. 남자는 잿빛에 가까운 삶을 버티듯 지내며 외로운 줄도, 아픈 줄도, 젊은 줄도 모른 채 그렇게 지낸다. 대중적이지 않고 꽤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 전개이지만 나로서는 그들의 독백이나 문장들이 내내 마음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어제와 같이 기분에 제대로 지고 만 날에는. 대화의 템포와 박자가 본심과는 다르게 어긋날 데로 어긋나고 말아서 기어코 소중한 이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만 장본인이라고 자책하고 말 때는 더더군다나.



그날은 저도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마음을 괜히 즐거웠습니다.   (JTBC, 인간실격 5화, 이름 없는 고통 中 강재의 메시지)


나는 뭐라고 저장되어 있어요. 나는 뭐였어요   (11화, 금지된 마음 中 부정의 대사)



@JTBC 인간실격 中, 파출소 안의 부정



토요일 정오, 러닝 머신 위에서 친정 엄마의 방문 소식을 전화로 접했다. 부랴부랴 하던 운동을 끊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 왔다. 물론 오후에 취재 일정이 겹치는 터라 점심은 함께 하지 못하고 바로 나가봐야 하며 그이는 아이와 산책중인 탓에 모두 부재중인 상황이 그녀로서는 못마땅하실 것임을 은근히 각오하고서. 두 여자의 예상되는 풍경과 바라는 시간 대역은 결국 어긋났다.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는 매끄럽지 못했다. 기어코 서운함과 속상함이라는 감정을 지닌 채 그대로 돌연 차를 가지고 귀가해버린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고 마침 그 이후에 그이가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대수롭지 않은 듯 캔 맥주와 군만두를 먹는 그의 행위는 뭐랄까, 어떤 기분에 휩싸이는 중인 내게 당도하기에 그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피드백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기분은 어긋나기 시작했던 걸까.



취재 장소까지 약 9km가 되는 장소를 왕복하여 걸어 다녀왔다. 요즘은 걷기에 미친 사람이 된 것 마냥 틈만 나면 웬만해서는 걸으려고 하는 나를 발견해서 스스로도 가끔 놀랍다. 왜 그렇게 걸으려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채. 걷고 있으면 단순해지고 무엇보다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는 무의식적 희망이 현실에서의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끄는 것인지. 아무튼 오전에 이미 러닝머신에서 13km를 빠른 속도로 걸으며 왕성하게 시간과 체력을 소비하고도 모자라 그렇게까지 길가를 걷고 나니 아무리 정신력으로 버틴다 해도 한 인간의 체력은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을 테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널브러진 거실이 보였다. 조금 화가 났지만 일상다반사라 조용히 아이들의 장난감을 대충 치우고 바로 가족들과 마트로 향했다. 미리 적어 간 식재료 리스트를 사면서도 뭔가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너지도 고갈된 상태에 오전에 친정 엄마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고 달달한 간식 구매에 대한 아이들의 강렬한 호응에 꾸역꾸역 대응하면서도 여러모로 짜증과 힘듦이 동시에 밀려오기 시작했을 터. 티를 안 내려고 말을 안 하고 있었을 뿐. 나름 인내하고 있다는 의식적 생각에 스스로 기특해하면서도 어서 이 하루가 그저 저물어 밤이 되기를 바랐을 뿐.



부정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남의 집 가정부로 가사일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싶었다



기어코 귀가하던 차 안에서 그이와 나는 날 선 대화를 주고받았다. 요는 빼빼로와 쥬시쿨'따위'를 사 주는 데 익숙한, 너무 단 것들을 자주 먹이는 불량한 엄마로 기어코 몰아가고마는 그이의 은근한 지적에 대한 나의 분노와 억울함이라는 감정 때문이었으리라. 다가오는 그이의 문장들이 모두 서운하게 들렸다. 무언가 해명이라는 것을 하기 이전에 결국 나는 내 기분에 지고 말았다. 큰 소리를 내었고 그대로 눈물을 흘렸다. 오랜만에. 버럭 그리고 주륵.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당신은 내가 어떻게 사는 사람으로 보이느냐고. 퇴사하고 더 게으르거나 방만해지지 않으려고 나름 열심히 살려고 애를 써도 왜 가족들은 모두 나를 탓하지 못해서 안달이냐고. 그때부터였을까. 외벌이 가장을 향한 전업주부의 묘한 부채의식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그이에게 엉뚱한 것들 마저도 퍼부어 버리고 마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어떤 기분의 늪에 빠져버리고 만 것은. 아이들의 영향과 건강을 챙기지 않는 게 아닌데. 돈을 펑펑 낭비하듯 써 대 버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그런데도 집을 잘 지켜줘서 고맙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 내외의 수고스러움을 도맡음에 대한 칭찬보다는 언제나 '못한 점'만 왜 들추는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비로소 잘 사는 건지. 기타 등등. 그러다가 계속 흐르는 눈물에 대화는 결국 중지되었다. 차 안에서의 짧고 굵은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이와 나, 우리 각자의 기분은 사라지지 않은 채 각자의 마음에 남겨진 채로. 아이들이 마침 차에서 잠든 상태라 다행이라는 역설적 안도와 함께.



내게는 서로 속이면서도 밝고 맑고 명랑하게 살고 있는, 혹은 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난해합니다. 인간은 끝내 내게, 그 묘책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알았더라면 인간을 이토록 두려워하지도, 또 필사적인 서비스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인간의 삶과 대립한 채, 밤마다 이런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 24, 첫 번째 수기 中 -



@Anna Ancher, The maid in the kitchen.  '부엌의 가정부' 는 무슨 생각을 하나. 베인 손은 아물지만 베인 마음은 어찌할까.



어제는 그이도 친정 엄마도 아이'엄마'에 대한 몇 가지의 조언들과 의견들을 주려 했을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세 끼 제대로 된 밥을 제때 먹이고 - 그런데 '제대로' 라는 그 기준은 누가 만들어 지키는 것인지 - 군것질은 되도록 줄이라는 그런 식의 조언들. 틀린 말 하나 없고 다 맞는 그런 목소리들. 그러나 웬일인지 '엄마' 이자 '아내' 인 나로서는 자책이나 자괴감이라는 기분을 불러 일으키고 말아 상당수 묘하게 하루라는 시간을 망가지게 만들고 마는, 가족이지만 내가 아닌 타자들의 목소리. 그들의 본심과 선한 의도를 모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휩싸이는 기분에 결국 지고 말았다. 속상함이라는, 억울함이라는, 무언가 열심히 살려 애를 써도 빚 진 기분이 되고 마는 것만 같은,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탈출해서 살아보고자 이러저러 소일거리들을 명랑하게 해내려 노력하면서도 끝내 지치고 마는, 그런 모든 기분들로부터. 도망치지 못했다. 그리고 문득. 그 드라마가 생각이 난 것이었다. '인간 실격'에서 주인공이 울먹이며 그녀의 아버지에게 건넸던 그 문장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그래서 어제는 귀가하던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속상해서 눈물이 났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며 아버지 앞에서 펑펑 우는 그녀의 말이. '내가 너무 싫어서 그냥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던, '해가 지고 배가 고픈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서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그대로 어딘가 떠내려가는 것처럼 죽고 싶다던 그녀의 말이. 무엇보다 '집이 아닌 데서 내 가족이 아닌 누구하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서 가만히 있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말이. '아무 말도 안 해도 되고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되고 아무 걱정도 할 필요 없는 그런, 그런 아무 의심도 기대도 없는 그런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다, 같이. 가만히 있고 싶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냥 누워 있고 싶다' 그런 생각을.



사실은 나도 하니까. 어제는 좀 더 많이 한 것 같았던 기분에 지고 만 날. 그래도 안다. 내내 기분에 지면서 살지 않는다는 것을. 기분이란 없다가도 생기고 가라앉다가도 다시 살아 샘솟는 것. 받아들이고 생각하기에 따라. 게다가 또한 나는 안다. 내가 가진 게 꽤 많은 복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 생각을 하면 미안해서. 괜히 상처 준 이들에게 미안해서 아무 말하지 못하게 되고 만 채. 그렇게 기분에 지고 만 자신을 반성하다가.



혼자서 조용히 입술을 깨무는 여자가 되었다는 것 또한. 나는 안다. 알고 있다...



아무 것도 되지 못했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싶다던, 기다려서 지켜보고 싶다던 그녀를 보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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