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그래서 아름다운

John Collier

by 헤븐

가끔 스스로 형편없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말 때가 있다. 그이 이외의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대놓고 울어 버리거나 침묵하고 참아내던 문장들을 한껏 발화하거나 아니면 원하는 것을 무턱대고 말해버리고 싶을 때. 당혹스러운 상상은 스스로 자연스럽게 무언의 반성을 하게 만든다. 형편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지진 말자고. 한편 그러면서도 가끔 생각하게 되고 마는 어떤 상상들은 스스로 약해빠진 인간이라 느껴지기 쉽게 만든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초콜릿이나 달콤한 무언가에 손을 대게 만든다. 그러면서 괜한 상상을 자연스럽게 흩날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곤 현실적인 에너지를 체득하려 노력하는 것. 왜냐하면 마음의 흔들림이란 모두 어떤 면에서든 약해진 내면에서 나오는 것일지 모르니까. 예컨대 온몸의 에너지가 자체증발되어 도무지 힘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 키보드 위의 손가락을 올려 놓았음에도 한 문장 조차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할 때. 무언가에 한껏 기대고만 싶어질 때. 열심히 무엇들에게 도망치고 싶을 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달콤한 무언가를 혀 끝에 닿게 하고만 싶어지는 것이다. 주방의 찬장을 기웃거리다 이내 아이들이 먹다 만 킨더 조이에 손을 대고 마는 한 여자는 입술 안에 퍼지는 그 달콤함을 느끼며 생각하게 되고 만다. 겨울이라서 그렇다고. 유난히 외롭고 차갑고 추운 계절이어서 쓸데없는 상상이 도를 지나치는 것이라고.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며 김 서린 거울 앞에 비치는 몸을 보며 생각하고 말았다. 꽤나 앙상해졌다고. 점점 메말라가는 어깻죽지를 웅크리며 또한 잠깐의 욕망을 떠올린다. 불현듯 초콜릿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아니 혹은 꾸덕한 크림치즈가 풍성히 들어간 당근케이크 혹은 필라델피아 크림치즈가 가득 담긴 베이글을 베어 물고 싶어 진다고. 그러면 메마른 몸과 마음의 기분이 조금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또한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마른 일상이어도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케이크 한 조각 혹은 밀크티 한 잔에 그야말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에 닿을 수 있는,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어이없게 불행하다가도 예상치 못하게 행복해지는 것이라고도. 비록 여전히 유약한 자신에게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하더라도.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녀가 누구보다도 나약한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다." 고 했던 그녀는 스스로 나약함을 겪었기에 알 수 있다 했었다. "몸소 겪어 아는 것이었기에 인간의 나약함을 얕보기보다는 인간이 본디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라고. (사강의 말, p. 23) 국내 모 소설가의 작품 제목으로 더 유명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고 한 그 문장의 원천은 사실 그녀가 마약 소지로 체포되었을 때 한 말이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면서 이 그림도 멍하니 넋놓고 바라보았었다. 레이디 고디바. 사적으로 연약한 자신의 현재라 할지언정, 게다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 하여도 그녀의 내면에 깃든, 그녀만이 해낼 수 있는 숭고함, 진실, 그야말로 표현 조차 쉽지 않을 그 순정한 진심은 절대 파괴되지 않은 강인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John Collier, Lady Godiva, 1897



영국의 코번트리(Coventry) 지방을 다스리던 레오프릭(Leofric) 백작의 부인이었던 고디바 부인은 시민들에게는 점점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마는 악명 높은 배우자의 악덕에 반해 꽤나 심성이 고운 여성이었다. 오죽하면 자신의 배우자로부터 "벌거벗은 채로 마을을 돌아다니면 세금을 내려주겠소"라는 말 한마디에도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던 그녀였으니. '레이디 고디바'를 담은 그림은 그 구전처럼 전해지는 설화로 인해 꽤나 유명해진 것일까. 특히 존 콜리아 버전의 그녀를 접한 이들이라면 최소한 아름다운 피지컬의 여성을 담은 화폭 속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이미지 탓에 꽤 오랫동안 그 이미지 자체에 강렬하게 끌리게 되고 말 지 모른다. 풍경의 배경색과 인물의 피부색, 그 확실하고도 선명히 나뉘는 색감의 아름다운 조화. 얇은 종잇장 같은 여린 몸의 곡선과 투명한 피부, 금세 더럽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상당히 나약한 신체 조건을 지닌 한 여성. 그림은 무언의 연약한 튼튼함을 역설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만 같다.



나체를 한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화 속 여신에 대적할만한 물리적 아름다움을 보이고 말지만 한편 긴 머리카락으로 겨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에 의지한 채 흰 말을 타고 마을을 돌아다닐 결심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무언의 나약함과 동시에 깨지지 않은 어떤 숭고한 겸허함을 느끼게 되고 만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던가. 한편 무엇으로 인해 그녀는 그 대단한 결심 끝에도 결국 스스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마는 것인가. 몸의 주인인 자신 스스로의 결심이었어도. 벌거벗은 한 여성의 몸은 그녀의 분투를 제대로 세계에 인식시킬 수 있을까. 그녀를 바라보는 누군가들의 시선은 여전히 그리 순수하게만 아름답게만 바라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어코 음습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인간 본성적인 관음을 자극하게 되고 마니까. 다만 인간적으로 너무 아름다워서. 자신도 모르는 새 그저 홀릴 만큼의 어떤 아우라로 인해.



그렇지만 확실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건 그녀의 고개를 푹 숙인 모습에서 그야말로 나약하게 되고 마는, 약해지는 자신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니체의 말을 빌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해 반대로 아름다운,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운 그녀가 보이고 마는 것이다. 약한 자신일지언정 무언가에 맞서려는 그 모습에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나약함과 동시에 강인함이 동시에 보였으니까. 인간은 그저 여리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진정한 지성의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자신도 나약하지만 자신보다 더욱 나약한 타인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생의 예의라 할 수 있는 것이고 무릇 인간이란 그런 고달픈 생을 살아가는 원래가 나약한 존재. 그리하여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어렴풋한 배려는 다름 아닌 자신이 유약함을 파괴시킬 줄 아는 어떤 용기일 테니 말이다. 스스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어쩔 수 없음을 지닐지라도.




@George Jones, Godiva Preparing to Ride through Coventry, 1833



어느 한 시절을 같이 보내는 관계로 엮이기 마련인 우리는 과연 서로를 얼마나 잘 지켜주며 살고 있을까. 누군가 누군가를 견디며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하지 않은 채. 서스름 없이 빚어낸 한 마디의 말로 만들어 내는 서로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인해 누군가는 처절히 고개 숙이게 되고 만다는 걸 우리는 얼마나 인지하며 살고 있던가. 그러니 레오프릭 백작은 확실히 틀렸다. 오만방자했던 그의 말은 비록 고디바 부인을 고개 숙이게 만들고 발가벗기게 만들어 기어코 희대의 장난에 불과한 조롱거리로 삼아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려 했겠지만. 반대로 그는 처절한 후회를 맛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고디바 부인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꽤나 담대한 마음을 지닌 여성이었을지 모르니까. 비록 발가벗은 몸을 마을 곳곳에 드러내어 한 줌의 머리카락에 기대 숨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고개 숙인 연약한 인간의 면을 보이면서도. 멈추지 않은 그녀의 행위로 인해 누군가들의 세계는 구원받고 한편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반대로 그녀를 기어코 원하게 만들 수도 있게 될 지니.



Edmund Blair Leighton, Lady Godiva, 1892



고디바 부인을 넋 놓고 바라보았던 한 때의 나는 약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강인한. 그야말로 인간적인 그래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의 품위를 닮고 싶었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기에 그리하여 오늘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다시금 무엇들과 분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내 읽히지 않아도 기어코 쓰려하고,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남몰래 주워 보며, 모르는 아이와 눈이 마주했을 때 씽긋 미소를 건넬 줄 아는, 무엇보다 지금 곁의 사랑하는 대상들에게 최선의 사랑을 주려는,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되려 무엇을 줄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가끔은 속상한 기분에 봉착하고 마는 인간이 되어 버렸을지언정. 그럼에도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체면과 위신보다는 자기 스스로의 아름다운 기준에 얼마나 최선의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생각하는 그런 인간.



고디바의 퀄리티가 내내 회자되는 건 어쩌면 고디바 부인 그녀의 손색없는 무언의 고귀한 훌륭함으로 인함일 테다. 이 시대가 자꾸만 놓치기 쉬운 그것. 인간적인 그리하여 너무나도 아름다운 무엇. 비록 스스로 파괴적인 유약함이 있었을지언정 그녀가 그 누구와도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그녀만이 지닌 품위와 우아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불행이란 본디 품위가 떨어진 상태라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을 떠올리면서. 그리하여 나는 오늘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다. 품위 있게. 그녀, 고디바 부인처럼.




#Source: Lady Godiva

https://en.wikipedia.org/wiki/Lady_Godi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