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Van Gogh
저녁 8시. 제법 일찍 퇴근한 그이에게 잠시간 저녁 돌봄을 맡긴 채 바닥에 엎드려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와 덕지덕지 묻은 크레파스 찌꺼기를 물티슈로 닦는 등 잔여 가사를 하던 중이었다. 순식간에 들리는 '앗' 하는 소리와 둘째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홍조가 된 두 볼이 선명히 시야에 포착되었다. 동시에 귓속을 파고드는 연이은 그이의 문장은 설마를 방불케 하는 의심을 자아냈다. 티비 액정이 깨지고 말았다는, 고장 났다는 그 목소리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건 쉬웠다. 금이 가 버린 액정과 여러 선들이 물결치는 너저분한 화면이 보이자 결국 내 입에서도 순식간에 화력이 센 문장은 기어코 내뱉어지고 말았다. 뒤늦게 아이가 안전하다는 것에 내심 감사했지만 그럼에도 어쩔 줄 모르고 발화된 날이 선 감정과 분노는 사라지지 못한 채 그렇게 거실을 꽉 채워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제법 연습이 되어 있는 것이었을까. 아이에게 안 다쳐 주었음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동시에 단호한 주의를 심어 주었다. 확실한 레슨런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비릿하고 찌릿한 하루의 고단함을 그들에게는 숨긴 채로.
인생이 만약 어떤 감정의 근사치에 가까운 것인지를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만 같았다. 그것은 행복이나 기쁨보다 불행이나 슬픔 혹은 절망에 가까운 환경설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애석하지만 한 해씩 나이라는 것을 먹어가고 인간관계의 층위도 조금씩 두텁게 쌓아가며 동시에 여러 사회적 역할과 책무라는 것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인간이란 원래 불행과 슬픔과 고통에 최적화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 그리고 그런 인간의 인생이란 본디 행복보다는 절망이나 슬픔 그리고 불행에 가까운, 그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확실히 고통스러운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야말로 삶을 기만하지 않은 온전한 날 것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그리하여 오늘도 때때로 슬펐고 종종 분노했으나 그 온갖 감정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는 듯 담담히 하루를 지내는 것. 어쩌면 편한 경험보다 궂고 쓰린 경험을 더 많이 하는 인간들이야말로 일종의 무심한 담대함이 생기고 마는 것은 아닐지. 그것이 비록 체념에 가까운 무엇이라 할지언정.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가 되어 버린 건 그 때문이었다. 절망과 고통, 실패와 슬픔의 대명사라 볼 수 있는 그의 삶은 자살기도, 환각 증상, 과대망상, 심각한 우울증, 소외된 처절한 고통 속에 몸 부쳤겠으나 그럼에도 그는 그림을 그리며 비로소 유일하게 행복한 안위를 느꼈을 것이기에. 그림이야말로 그에게는 일종의 구원이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더 비참해졌을 것처럼. 나 또한 오늘처럼 슬픔과 절망이 은은하게 도사리는 일상을 돌파해낼 수 있는 건 이렇듯 그림 한 점을 보면서 감정을 잠재우듯 기어코 문장을 써 나가 보는 것이다. 삶에 지치고 사랑에 굶주리는 그의 그림과, 나의 모자란 생각과 감정이 맞닿아 탄생된 문장들은 어쩌면 닮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슬퍼서 고개를 떨구어내는 순간 문득 그의 슬픔이 온전히 닿아 있는 한 여인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슬픔'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가 1882년 헤이그에서 시엔이라는 이름의 한 여인을 만나며 비로소 탄생된 그림이다. 당시 그녀는 매춘부였고 알코올 중독자에 매독 질환자였단다. 게다가 이미 다섯 살 난 딸이 있었고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한 상태. 그림을 자세히 보면 늘어진 가슴 밑으로 뱃살이라고 보기엔 어색한, 무언가가 확실히 담겨 있는 볼록 튀어나온 배가 선명히 시야에 들어온다. 잔뜩 웅크린 채 얼굴을 파묻고 비탄에 잠겨 있는 이 그림의 주인공인 시엔이라는 이름의 여성의 모습에서 고흐는 인간이 지닌 날 것의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발가벗은 나체로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모습 그 자체야말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과 고통이 처절하게 느껴짐은 분명할 테니.
지난겨울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한테서 버림받은 여자지, 겨울에 길을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그녀는 빵을 먹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얻었는지는 상상할 수 있겠지.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주어 그녀와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그가 시엔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의 심정을 고백한 이 기록을 보자면 확실히 그는 그녀에게서 인간적인 애달픈 연민과 동정과 동시에 묘하게 자신의 생, 그 고통과 닮아 있는 그녀의 슬픔에 이끌린 듯 보인다.
그녀는 철저히 혼자였고 처절히 버림받았기에 주저 없이 나는 그녀를 도왔네.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세. 나는 여전히 어머니이자 버려진 여인을 그대로 모른 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p.136 -
그의 작품들 속의 시엔은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다만 그저 철저히 생활의 고달픈 민낯이 선명히 그려진 현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빛바랜 듯 창백하거나 흑백으로 그려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모르게 나의 어느 날, 한 여성의 어느 순간, 돌봄을 해야 하는 누군가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투사되고 만다.
가난과 병마에 싸우던 두 사람의 삶은 확실히 고단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의지와 애정과 배려는 더욱 깊어졌을 터. 기록을 빌리자면 고흐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작품 속 뮤즈임에 확실했던 그녀 시엔과 반드시 결혼할 생각이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는 시엔과 그녀의 딸을 모델로 한 수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우리는 오래전부터 가정을 원했고, 서로 의지하는 삶을 꿈꿔왔단다. 우리는 작업을 할 때 서로를 필요로 하고 매일 함께 지낸단다.'라고 했을 정도니까.
그러나 고흐는 시엔 곁을 떠났다. 1883년 9월 고흐는 헤이그 생활을 청산하고 시엔과 두 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드렌테로 떠났다고 하며 이후 소지품들을 챙기기 위해 딱 한번 돌아왔다고 한다. 고흐가 그녀 곁을 떠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확실한 건 그 둘의 처절한 생과 둘 사이의 짧고도 강렬했던 연정은 고흐가 생전 가장 아꼈다던 뮤즈 시엔을 모델로 한 작품 '슬픔'의 제목만큼이나 선명한 슬픔으로 남겨진다.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의 슬픔을 숨기지도 숨으려 하지도 않았기에 이어진 관계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반 고흐와 시엔은 인생이라는 슬픔을, 생존이라는 외로운 사투를 올곧이 떠 앉고 그렇게 버티다 서로의 진실된 날 면을 발견하고 닿아진 인연은 아니었을지. 비록 짧았던 한 철의 시절을 같이 한 그들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날 것의 순정한 마음을 주고받았던 건 아니었을지. 대부분 흑백으로 표현된 잿빛의 그녀였을지언정. 그림으로 일생을 끝까지 버티려 했던 처절한 예술가였던 고흐에게는 그녀의 절대 순탄하지 않았던 인생 그 비릿하고 텁텁한 시간들을 함께 확실히 직시하고 돌파해나가면서 비로소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생의 격렬한 뜨거움을 느꼈던 건 아니었을지. 다만 한가지 그들에게 묻고 싶을 뿐이다. 시엔과 고흐는 죽음으로서 진정한 해방을 맞이했을지. 살고 살고 또 살고,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며 그렇게 나아가다가 생을 마감한 그들은 죽음 직전에 비로소 편한 해방을 맞이했느냐고. 죽음이라는 선물에 기어코 도달하기를 갈망하며 삶을 나아갔던 것은 혹시 아니었을지.
아픔과 고통 그리고 절망이 반대로 누군가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할 수밖에 없는 강한 원력이 되고 마는 것처럼. 오늘도 덤덤한 일상의 슬픔을 기어코 문장으로 발현해보는 나는 텁텁한 슬픔에 가까운 일상에서 찰나의 시원한 해방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나약하고 못난 생의 단면들도 그대로 화폭에 문장에 담아내는 누군가들은 기어코 나아가는 것이다. 처절해도 성실하게. 끝까지 나아가려는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환경을 탓하고 감정을 기만하며 자기변명을 하며 뒤로 물러나는 것보다는 그럼에도 나아가 보는 것이. 현실을 직시하고 그대로 담대히 나아가며 흘러가 보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을 아는, 진정한 인생의 주인으로서의 자격을 지닌 자기 자신일 테니까.
#Source : Vincent Van Gogh, Sien Hoornik https://es.wikipedia.org/wiki/Sien_Hoorn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