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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6. 2017

#43. 글쓰기의 맛

삶이 기록에선 연출, 감독, 시나리오 작가, 여주 모두 '나'다. 

11월은 내게 있어서 특별한 달이다. 

 겨울 태생인 덕분에 태어난 달이라는 억지스러운 이유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좋아하는 계절인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한 달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수족냉증이 있는 탓에 손과 발 그리고 온몸의 체온이 간혹 급속도로 떨어지곤 하는데, 특히 겨울이면 금세 차가워진 몸이, 좋아하는 실내의 어떤 공간에 들어가게 됐을 때 온몸에 퍼지는 그 따뜻한 기운을 느끼기엔 역시 내겐 11월 만한 달이 없다. 물론 첫 번째 경제 에세이를 출간해내어 어깨 으쓱해진 3년 전의 11월이기도 하고.(흠흠)


 아니 그보다 사실은 말이다. 살짝 추운 상태에서 글이 잘 써지는 편이다. 

 그래서 요즘은 더욱 11월에 애착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약간 음습하고 어둠이 금방 찾아오는 계절이 요즘은 이상하게 좋아진다. 하늘은 금세 어두워지면서 특히 맑은 날의 밤이면 초승달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럴 때면 어떤 기억의 장면들이 금세 마음에서 튀어나와서 때론 퇴폐적이고 기묘한 상상을 괘씸하게도 잘 하는 편이다. 


 나만의 마음속 착각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그 상상의 끄트머리를 순간 캡처해서 현실 속의 단어와 문장으로 얼른 가져오는 일종의 나만의 글쓰기 작업(?)은 특히나 이렇게 추운 겨울 어둠이 금세 찾아오는 시간, 약간 싸늘한 순간에 잘 해내곤 하는데, 그런 '글의 맛'을 어느새 즐기고 있는 나로선 꽤 기쁜 요즘이다.  

 

 물론 좋아하는 걸 의지와는 반대로 포기하며 읽고 쓰지 못한 채 그렇게 상처로 얼룩덜룩 너덜너덜해졌던 그 이후의 몇 해들의 겨울 덕분일지도 모른다. 


상실에서 깨닫는 간절함의 크기는 더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결핍이 풀렸을 때 반대로 나의 쾌락은 더욱 증가된다.



 나만의 기묘한 글쓰기 철칙이 하나 있는데, 역시 그 행동도 사계절 중 조용하고 차가운 겨울에 더 빛을 발한다. 

 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일단은 무조건 제일 글이 잘 써질 것 같은 공간에 가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노트북을 켠다. 손발이 차가운 상태에서 약간 입김을 불어가는데 또 그 느낌이 꽤 '있어빌리티'하다. 뭔가 힘든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해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할 때의 필수 지참품은 하얀 종이와 펜이다. 노트북이 올려져 있는 테이블 옆에 놓아두고 떠오르는 단어나 장면을 아무 말 대잔치를 휘갈겨내듯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어댄다. 그리고 그 단어와 짧은 문장의 조합들은 손가락의 키보드를 치는 순간부터, 나의 좌뇌와 우뇌가 가동하기 시작하며 이 단어와 이 문장을 이런 식으로 맞춰 보자고 조악스럽게 내게 말을 걸면서 그렇게 한 글자 한 문장 써 내려간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백지를 바라보다 항상 '첫문장'을 고민한다.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내게 커다란 의미다 그래서 더더욱...


 가령 이런 것. 오두방정 의식의 흐름을 거침없이 가감 없이 자유롭게 그냥 일단 다 적어내 보는 거다. 

 어젯밤 꿈에 그 새끼가 나타났지 뭐야. 근데 오늘 출근길에 자꾸 없어질 듯한 꿈이 생각이 나네. 젠장 망했다 싶었지. 그러다가 이어폰을 타고 귀에서 들리는 음악이 한 턴을 바꾸며 정말 좋아하는 그 노래가 또 흘러나오는 거야. 야호. 망하라는 법은 없구나. 난 역시 운빨이 좀 있는 년이라고 속으로 키득대면서 출근길 버스를 부랴부랴 뛰어서 겨우 탔다. 아이들은 잘 등원했으려나. 마음은 이미 성급하게 다른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머리와는 달리 마음이 항상 다르게 움직인다. 추운 날이면 더욱더. 


 이런 추잡한 문장(?) 도 일단 다 적어두는 편이다.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에. 

 그리고 그걸 몹시 순화한 문장들을 적어댄다. 19금과 퇴폐미가 적절히 섞인 B급의 문장은 어느새 청소년 관람 문장으로 탄생되는데 또 그 작업에서 작고 큰 나만의 상상과 영감을 얻어낼 때도 있다. 언젠가 퇴폐미가 흘러넘치다 못해서 눈뜨고 읽기 도저히 힘든 글들만 모아 보는 것도 꽤 재밌을 법 싶다. 오히려 더 잘 팔리는 글이 되려나. (훗) 


 현실 속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어떤 장면들을 먼저 소재로 삼곤 한다. 

 그렇게 단어들과 조합이 된다. 처음에 휘갈기다 못해 아무렇게나 끄집어낸 문장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고 몇 번 고치다 보면 짧지만 담백한 울림이 깃들여진 문장이 되기도 한다. 30번 쓰면 1번 정도 건져낼 법한 괜찮은 문장에 그제야 스스로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글쓰기'가 이제는 단순한 글쓰기에서 벗어나버리는 느낌이다. 

 삶이라는 무대에 특별한 사건사고 이야기가 존재하는 한편의 나라는 인간의 시나리오로 만들어 주는 듯한 느낌마저도 든다. 연출과 감독, 시나리오 작가는 모두 나다. 여주 또한 나다. 그렇게 삶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으로 올라선다. 나라는 사람책의 주인공이 된다. 글을 쓰고 있다 보면 때론 이런 무언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왜 쓰고 있을까를 언젠가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글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좋아서 하는 거라고.
마치 사랑이 좋은 게 아니라, 그 사랑을 하고 있는 내가 좋은 것처럼.



 이유는 모르지만 가끔 일상의 흐름을 기록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팅 소리를 내며 튕겨나가는 느낌의 문장이 있다. 그 이유는 나만 알 수 있을 듯. 그 감정선도, 마음도 기억도 모두 나의 것이기에 말이다. 


좀 더 글쓰기와 사고의, 삶의 내공이 붙는다면 사랑과 사람에 대해서 좀 더 거침없고 자유롭게 써보고 싶은 요즘이다. 


 그러니 결국 글을 써 냄으로 인해서 내 생각은 내 것이 된다. 


 글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여전히 품으며 살고 있다. 

가끔 나도 모르게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그 가슴속의 진동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 그리고 되뇐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다라고.  


 내가 생각해 내는 과거의 기억, 현재의 시간, 그리고 바라는 미래의 모든 것들은 모두 나의 자유의지를 가졌다. 그래서 나는 그것 또한 글로 적어 내리기로 결심한다. 순서를 바꾸고 바라는 상상의 장면들을 그려가며 덧칠을 하기도 하고 가끔 견딜 수 없는 것들도 글로 적어 내리면서 또 다른 망각 속으로 보내버리기도 한다. 내가 경험 중인 '글의 맛'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하나의 상황을 놓고도 나와 '당신'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오늘 나의 한 문장들도 읽어주는 '당신'의 현재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여전히 서투르고 보잘것없는 미완의 글이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이고 원동력이고 메말랐을 때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쉼표의 문장들이기를. 


 11월, 겨울의 기록들은 고집스럽게도 글을 통해 성장하고 있으니. 글쓰기의 맛을 더욱 진한 농도로 느끼고 싶은 이 겨울, 매혹적이면서 이기적인 나의 기억하고 싶은 이 추운 날들의 기억들을 가득 써 내려가기로 한다. 


그때 처럼, 지금처럼. 되도록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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