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단정 짓지 않을 것

Rene Magritte

by 헤븐

우리는 행복하면서도 불행하다. 기쁜 와중에도 슬플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그 속에서 공허함과 고독감을 느끼고 마는 것처럼. 죽고 싶은 순간에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리며 우리는 생각할지 모른다. 결국 살고 싶기도 하다고. 사실은 죽고 싶지 않다고. 익숙한 떡볶이가 죽음과 동시에 그립다던가 나의 경우엔 기가 막히게 우울한 순간이지만 동시에 케이크 한 조각을 입 안에 넣고 크림의 달콤함을 혀 끝에서 느끼면 어느새 좀 전까지 흠뻑 젖어 있던 그 감정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게 되는 것처럼. 슈크림빵이나 캐러멜 브리오슈, 초콜릿 케이크나 투게더 바닐라맛이 커다란 우울감과 공허함을 재빠르게 없애주고 말다니. 그러니 인생이란 정말이지 어느 소설가의 작품 제목 그대로 '모순'의 집합체 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정의롭고 훌륭한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졸렬할 수 있는 인간, 다 가졌어도 결국 가졌다고도 말하지 못하는 인간의 인생이란 결국 모순덩어리라고.



아이들을 혼자 돌보다 그런 모순적 감정과 자주 충돌하고 만다. 그들이 무탈하고 건강히 자라주고 있음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과 삶의 소명이나 방향성 같은 것들을 선명히 깨닫고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동시에 지독하게 불행한 기분과 맞닥뜨리고 말다니.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와 서로 앉고 앉길 때 서로의 살갗에 닿는 피부의 보드라운 다정함. 그야말로 '행복하다'는 형용사가 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다가도 어느새 우렁찬 다툼 소리와 끊김 없는 칭얼거림과 해도 해도 또 해야만 하는 가사와 양육과 생활지도와 훈육이 연속되어야 하는 시간은 기어코 사적인 인간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서서히 밀어 넣고 만다. 어디 이 뿐인가. 일을 하고 싶다가도 막상 일이 다가오면 은근히 도망치려 하며 고민하고 마는 형국이라니. 미래로 나아가려 도전이라는 걸 늘 하면서도 한편 어제와 오늘의 평온과 무탈함에 그대로 안주하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지는 마음이라니. 그리하여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그들을 사랑한다고 확실히 단정 짓기에는 아직 너무 가난하고 연약한 마음인 것 같아서.



@Rene Magritte, The Empire of Light, 1954



'모순'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콕콕 박힐 때마다 동시에 떠올리는 화가와 그림이 있다.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초현실주의 미술가인 르네 마그리트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그의 작품 중 단연코 두 가지 시리즈물이 생각나고 마는데 바로 '빛의 제국 (The Empire of Light)'과 연인들 (The Lovers)이다. 물론 가장 유명하면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유독 그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함부로 단정 짓지 않을 것을. 무엇이 빛이고 무엇이 어둠인지를.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조차 우리는 모르고 사는 걸지도 모를 테니까.



'빛의 제국' 은 낮이지만 밤이고 밤이지만 낮이 보이는 풍경을 보여준다. 낮의 야경이라니. 이와 같은 모순이 또 어디 있을까. 밤의 집은 전등이 켜져 있고 가로등의 불빛은 호수에 반사되어 밝게 빛난다. 그러나 하늘은 빛나고 화창한 구름은 낮의 선명함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낮이라고도 할 수 없고 밤이라고도 하기 머쓱하지만 한편 밤이면서도 낮인 세계. 어쩌면 인생이 모순이라는 걸 너무 일찍이 깨달은 그는 작품을 통해 해소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지. 어쩌면 그야말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정직한 화가는 아니었을까. 세계는 확실히 비틀어졌다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을지 모르는 그가 말한 그대로.


나에게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The Empire of Light 2 (1950).JPG @Rene Magritte, The empire of lights. II 1953



그가 구사했다던 미술 기법인 '데페이즈망'은 전혀 조화롭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을 연결시키면서 기묘하고도 신박한 관계를 뒤틀어 보여준다. 보는 이들은 그 기괴한 연결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른다. 어쩌면 모순을 느끼고 마는 인간이기 때문은 아닐지. 그가 그리는 작품 속 일상은 상식이 존재할 수 없다.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낮이라고 밤이 아니며 밤이라고 낮이 아님에 대해서.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될 수도 없는 것처럼. 세계의 기준은 무너지고 그렇게 새로운 상식은 탄생된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합리적 기준이라는 일상을 과감히 추방한다. 우리가 알던 현실은 예술가로 하여금 그 현실 너머의 또 다른 세계로 이동시킨다. 일상이 모순이라면 그는 우리가 지닌 그 삶이라는 모순을 해방시키는 시도를 열렬히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11.JPG @Rene Magritte, The Lovers II , 1928


여기 연인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보인다. 남자와 여자의 얼굴엔 흰 천이 덮혀져 있다. 베일에 가려진 서로의 얼굴은 알지 못한 채 다만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는 포즈의 두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이 '연인들' 은 나로 하여금 확실한 사랑의 양가성을 보여주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이라던 (양귀자, 모순, p. 232) 그 문장에 적합한 그림이 바로 이 '연인들'의 모습은 아닐지.



인생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니야. 잘못 찍었다 싶으면 인화하지 않고 버리면 되는 사진 하고는 달라. 그럴 수는 없어. 하긴 그랬다. 사진은 정지된 하나의 순간이고, 인생은 끝없이 흘러가는 순간순간들의 집합체인 것을. 멈춰 놓고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 양귀자, 모순, p. 106, 217 -




22.JPG @Rene Magritte, The Lovers, 1928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그 상대를 알지도 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가리고서라도 선택한 사랑을 유지하고 싶은 그 마음. 바로 양가성이 담긴 사랑. 주고받는 다정함과 뜨거운 감정에서부터 더없는 행복을 느끼면서도 상대방으로부터 느껴지는 어떤 냉랭함과 서서히 식어가는 감정으로 인해 충분히 불행을 앉겨줄 수도 있는 것. 자신의 부분마저 없애버리면서까지 맹목적인 열렬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 없애야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가 생기고 마는 모순. 나의 일정 부분을 없애고 누그러뜨려야 누군가들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에로스를 지닌 사적인 그와 그녀는 어느새 멀어진 채 대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우리' 에게는 새로운 아가페적 사랑이 탄생되는 것처럼. 사랑하며 살기 위해 돈이라는 걸 벌고 모으지만, 어느새 때때로 우리를 움직이게 되는 것이 그 사랑이 아니라 돈이 되고 마는 기상천외한 모순.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한 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베일에 싸인 채 맹목적으로 그저 같은 곳을 본다고 그곳을 향한다고 믿어 버리고 단정짓는 것은 아닌지. 참인지 거짓인지 알려 하지 않은 채로.



르네가 14세일 때 그의 어머니가 익사하여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한다. 천이 덮여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그의 작품에 무의식적으로 반영되어 고스란히 투사되었다는 설도 근거가 없지는 않을 테지만, 아무튼 삶이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시나리오로 전개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쩌면 그 무엇도 함부로 단정 짓지 않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모순의 집합체라던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낮은 밤이 되고 밤은 낮이 되며, 누군가들에게는 순정한 시작이든 불순한 계약이 될 수밖에 없든 이 세계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이 공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마그리트의 그림은 신실하다. 인생을 단정 짓지 않은 채 보이지 않은 단면을 뒤틀어 보여주며 보는 이의 심연 어딘가로부터 그 혹은 그녀의 무의식은 어쩌면 어느 한순간 각성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었던 그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반면 만약 그것이 슬픔이나 불행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하더라도 부디 잊지 말자. 영원을 단정할 수 있는 건 영겁의 시간 중 일부를 유한히 사는 인간에게는 허락될 수 없는 것임을. 그 고통도 언젠가 끝이라는 게 있음을. 그러니 함부로 단정 짓지 않을 것을. 모순의 집합체인 인생 앞에서는 그 무엇도 더더욱.



#Source : #Rene magritte, The Empire of light, The lovers


https://en.wikipedia.org/wiki/The_Empire_of_Light

https://www.wikiart.org/en/rene-magritte/the-lovers-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