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생각, 첫 번째
아픈 기억은 여전히 종종 나를 찾아오곤 한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쌍둥이가 신생아였던 그 시절. 그들의 울음소리가 매일밤 집안 곳곳을 온통 채웠던 때. 작은 사람의 몸집에서 이토록 찢어지게 커다랗고 견디기 힘든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에서 나는 매일을 놀라야 했었다. 집의 벽면으로 흡수하기에는 너무나 우렁찼던 아기들의 울음소리. 이제 막 태어난, 작은 아이를 침대 위로 던져버리고 싶었던 잔혹한 순간. 그럴 수 없기에 입술을 꽉 깨물다 피가 나기 일쑤였던.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면서라도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유일한 사명이자 존재의 이유였다. '한 명도 아닌 왜 둘씩이나'라는 말을 마음속에 달고 살았었던 그 시절, 그리고 내 곁엔 친정부모님이 계셨다. 혼자는 아니어서 감사하고 또 다행이었지만 한편 철저하게 혼자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건 '부모'의 역할을 온전히 통감하는 존재는 혼자였기 때문이었겠다. 그이는 없었으니까. 당신은 곁에 없었으니까. 그 덕에 생겨버린 절대 잊을 수 없는 몇 가지의 기억들... 나만 아는 그런 기억들이 존재한다.
심한 수면 부족 상태의 연속과 견디기 힘든 나날들 속에서 나는 새로운 '나' 로서 제 역할을 해야 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것일까. 한편으로는 묘하게 분하고 또 억울했지만. 처음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고 아픈 경험인지도 덩달아 알게 되었으니까. 한 시간을 연속으로 잘 수 없었던 때. 정말이지 죽는 게 이 보다 낫겠다 싶을 정도의 극한의 수면 고문에 시달리는 나날이 거의 9개월에 다다르고 있었을 때. 나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되기 일쑤였고 그런 딸을 지켜보며 친정 부모님은 마음 아파하시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셨다. 다만 매일의 일과를 꿋꿋하게 함께 수행해 주셨던 두 분은 그 시절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하고 계셨다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그리하여 마음 깊이 한 사람을 저주했었다. 사랑의 양가감정을 선명하게 각인시켜 준, 애정하지만 동시에 절절하게 증오하게 되어 버린. 아빠가 되었지만 주말에만 잠깐 와서 아이들을 '보다가' 재빨리 귀가하려던, 그 시절 당신이라는 한 사람을.
내 곁에 친정 식구가 있었을 뿐이었던, 그이는 부재였던 그 시절.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들을 겨우 순서대로 재우고 숨죽이며 엉엉 울었던 순간들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대면서도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던 눈물. 그 이후에도 나의 눈물은 몇 해간 지속적으로 연속되어야 했었다. 한 사람에게 절대 이해받지 못했기에. 응답받지 못한 눈물은 쉴 틈 없이 계속 흐르고 또 흘러야 했었지. 어쨌든 생존을 전적으로 보호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아이들은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고 또 버텼던 나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이것이 사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나의 진심이자 진실에 가까운 마음이라 볼 수 있겠다만. 절대 한 사람만큼은 앞으로는 쉽게 사랑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이 되어 버린 채 삭막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나만 아는 우리의 진실에 가까운 것임을. 나는 이 생각에 변함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쌍둥이 아이들을 '혼자'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돌이 겨우 지나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겨우 벗어난 나는 아이들을 기관에 보냈다. 그러나 다시 회사를 다니면서도 다만 내내 소아과를 전전했던 시절. 가사 살림 육아 그리고 직장. 병적인 성격 탓에 누군가에게 '외주'를 주어서 맡기지도 못한 채 혼자 그 모든 것들을 해내며 - 버티며 - '겨우' 살아내던 벅찬 시절. 퇴근 후 아이들을 돌보며 그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밤까지 이어지는 청소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괜찮았을까. 세면대가 새것처럼 빛나거나, 아이들과 당신의 옷을 개켜 치워 두는 행위나, 거실 바닥에 먼지 한 톨 없이 늘 깨끗하게 치우는 행동들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더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나로선 몸을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밀려오는 어떤 생각을 덮어야 했었다. '기대'라는 생각을. 진흙탕에 빠져 버린 감정을 당신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하여 어떤 위로를 건네받을 수도 있겠다는, 그런 나만의 어설픈 어떤 기대를.
십 년이 흘렀고 나는 자연스럽게 기대라는 걸 접은 지 오래다. 물론 완벽히 없어지진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그는 내가 아니기에. 나 조차도 나를 내 생각대로, 좋게 변화시키는 게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그리고 나는 역설적으로 깨달았다. 노력이라는 것을 해도 절대 될 수 없는 것,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세상엔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양육을 하면서 알았고 앞으로도 절절히 알게 되겠지... 처음엔 당신을 통해서, 그 이후엔 조금씩 내 보호 영역 밖으로 벗어나기 시작한, 의식이 성장하고 자라고 있고 자아가 비대해져 가는 아이들을 통해서.
다만 이런 글들을 이어나감에 있어서 나는 어떤 기대를 하고 만다. 그 기대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한 기대겠다. 그것은 원치 않았지만 원하게 되기도 하고 마는. 나에 대한 그런 이상한 기대에 가깝다. 안전하게 횡설수설과 악다구니를 쏟아낼 수 있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존재하고 또 말할 수 있는 곳이 세상에 단 한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글' 안에서 뿐이니까.
내게는 이제 여기뿐이니까...
백지. 화면.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곳에 열 손가락으로 온 마음을 누르다 보면 어느새 300자 600자 1천 자에 가까운 글들이 모인다. 단어와 문장. 단락과 글이 어느새 만들어져 '나' 에게 다가오면 그제야 숨통이 트는 듯한 기분이 느껴지니까. 나의 작은 실수들을 떠올리는 또 하나의 장소. 그리하여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곳. 잃어버린 그리움을, 숨죽였던 마음을 드러내게 만드는 시간.
생각을 덮어버리기 위해 잠시 마련한, 간주곡의 역할을 해 내 주기를 바라는 나만의 Interlude
그러나 나는 실패했다는 걸 감지한다. 어떤 생각들은 글로서도 덮을 수가 없기에. 좋은 엄마와 좋은 아내가 되는 법을 천천히 배우고 있고 또 실현시키고 있다는 확실한 생각과 믿음. 그것이 사실은 나를 향한 완벽한 기만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음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은 중지될 수 없고 나는 지켜야 할 것이 생겼고, 나는 당신을, 너희들을, 나를, 우리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 그리하기에 더더욱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마음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인생이 원래 그렇게 잔혹한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음을.
Interlude...
잠시 쉬어 가려했는데, 어느새 장황하게 늘어졌다. 생각의 흐름은 여전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