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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10. 2023

대화의 발견

부끄럽지만 나는 가끔 일방적으로 '종알' 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런 내가 되어 버릴 때는 아마도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게 되는 마음이 샘솟는 순간이겠다. 그리고 그것이 나로서는 '사랑' 하는 마음, 호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에 가까운 무의식적 행동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별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대상에게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는 것. 물론 이것은 귀를 열어두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지만 아무튼 대화를 오래 지속할 수 없는 대상이라 느껴지면 어느새 말을 하지 않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이야기란 진정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전달되고 마음이 연결될 수 없는 대상에게는 절대 나의 이야기를 건네지 않는 것. 그것이 일종의 삶의 규칙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그이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주고 싶었던 서로의 대상이었겠다.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어느새 우리 두 사람은 여러 대화들을 주고받았으니까.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인생의 가치관이나 생활철학 같은 것들에 이르기까지. 돌발적으로 대화를 갑자기 건네곤 했던 나의 말투나 발화법에도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보다는 다감하게 듣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 주던 그의 차분한 성정이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고 어느새 푹 빠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이와 나는 대화가 보편적으로 즐거운 커플에 속했고 생각해 보면 결혼 전에도 대화를 꽤 많이 나누며 짧은 시간에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 가려했던 것이겠다. 물론 우리의 대화가 그리 순탄하게만 흘렀던 건 아니지만. 절대 서로의 모든 걸 이해한다고도 말할 수는 없겠지만. 



- 여보 우리 좀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아. 

갑자기 뭐가?

- 그냥. 우리 예전보다 더 여러모로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 생각. 생활. 대화. 여러 면에서 성숙해졌달까 

- 난 또 뭐라고. 그러심. 헤븐이 많이 어른 되셨지 

- 그렇지. 자기보단 내가 더 어리긴 해 여러모로. 문득 느끼는 건데 이제 어린 건 뭐든 좀 싫어지는 거 같아. 잘 나이 든 것들이 좋아져. 사람이든 사물이든...

- 나이 드셨네. 

- 그래서 자기랑 결혼한 거야.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나이 있는 분. 존대하는 멋진 어른. 유일했어 자기가. 

- 결혼 잘하셨다. 

- 근데 내가 갑자기 말 걸면 긴장되?ㅋ

- 엉뚱하시니까. 근데 이제 익숙하다 



벤치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건네기 좋은 공간이라면-  




'우리'라는 관계로 묶인 사람들만이 아는 서사와 말투,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문체와 대화의 농도. 서로 주고받는 문장 속 어떤 경쾌한 라임과 추임새랄까. 생각해 보면 이런 대화들이야말로 상대의 매력을 확인하거나 반대로 매력을 감소시키게도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자 독약으로서도 작용되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흔히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대화를 나눌수록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상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 사랑이 증폭되는 순간엔 언제나 '대화'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언어로 발화되는 대화이든, 아니면 언어로 전달되지 않아도 눈빛이나 몸의 촉감을 통해 교감하는 비발화적 대화를 통해서든. 결국 대화는 '통함'과 연결되는 것이겠다. 사랑의 세계 안에서는 특히 그 '통했다'는 느낌에 강력한 자극을 받게 되면 비로소 '내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일지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함께 데이트랄 것을 하고 그런 여타의 과정들을 통해 상대방의 매력을 선명히 확인했을 때에야 비로소 교제라는 것은 계속 유지될 수 있겠다.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사랑을 만들려는 호감 단계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달리 말해 그만큼 그 시간의 감정은 두 사람이 서로 익히 알아챌 수 있는 대화적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그 가운데 각자 상대와 시간을 쌓아가며 나름의 주도면밀한 관찰을 통해 비로소 사랑의 지속 여부가 결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화란 얼마나 중요하던가. 결국 사랑의 세계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라는 것은 나를 포함하여 상대의 행동과 언변에 따라 빚어지는 결과일지니. 사실 나로서는 특히 더 '대화'는 중요한 요소였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게 만드는. 당신의 여자가 되어 버리고 싶게 만드는. 그러기에 대화를 통해 발견되는 상대의 모습이 나에겐 무척이나 중요한 기준이었다. 마치 그건 남들에게 추남이어도 나에게 완벽한 미남으로 보이게 만드는 아주 탁월하고 완벽한 무기나 다름없는 요소인 걸. 물론 감사하게도 그는 추남도 미남도 아닌 확실한 동안이자 대화가 통하는 완벽한 대상이었다. 나의 에로스를 모조리 건네버리고 싶었을만큼.



@François Gérard, Daphnis and Chloe



그러나 모든 건 변한다. 사랑이 변해가는 것처럼. 대화도 마찬가지로. 내 사랑의 무게중심이 이동할수록 대화도 변해가는 것이겠다.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그리고 우리라는 두 사람에게 우리들인 네 사람으로. 사랑의 이동은 대화의 변화를 이끌었고 생각해 보면 대화의 소재가 이동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신과 나.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심신 건강과 낭만적 에로스, 건설적 미래를 챙기고 위하던 우리'만'의 사랑은 어느새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 가족이라는 집단 내 화평과 생활적 경제적 안정을 최우선이 되어 우리의 사랑은 더욱 생활적으로 치밀해졌다고도 볼 수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면서 대화의 발화 주체는 주로 '나'에서 당신에게로 흘러 들어감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작게는 시시콜콜 달고 살았던 동네 병원과 소아과에 대한 오늘의 대화에서 아이들의 정규교육과정 돌입 직전의 한글 떼기라든지 교육관에 대한 그이와 나의 생각의 공유. 사교육의 시점과 관련 예산에 대한 현실적 단상들. 기타 아이들의 신체적 성장 발육도라든지 그 외 현재라는 시점 기준의 댁 내 자산 흐름과 가계부의 건강성, 조금 더 멀리는 우리 집의 넥스트 계획이라든지. 이러한 현실 집약적으로 한층 고도화된 우리의 일상 대화는 한편으로 가끔 애석하게 느껴지지만 어쩔 도리 없이 인정하고 깨닫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비로소 결혼을 했고 가족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 에로스를 말하기보다 애씀에 대한 독려를 서로 주고받으며 파이팅 해야 비로소 네 사람의 생존과 생활이 윤택해지는, 그렇게 어느새 완전한 동지가 되어 이성애가 아닌 가족애를 통해 더욱 서로의 매듭을 견고하게 만드는 대화. 가끔은 '휴' 하는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 약속할 수 있니

- 무슨

- 내 서른 살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위에서 만나기로, 어때. 

- 모르잖니 미래 일은. 그러니까, 오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약속해 줘. 오늘의 이 마음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고 싶으니까 약속하는 거야. 내 서른 살 생일날, 쿠폴라에서 기다려 주는 거야. 

-네가 먼저 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 아니 영원히 날 마음에 간직한다면 자기가 먼저 가서 기다려 줘야 해 

- 서른 살, 앞으로 10년 후의 일인데. 

내 서른 살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위에서 만나. 


 [ 냉정과 열정사이, Blue, p. 98-99 ]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오는 아오이와 쥰세이의 대화. 그들의 쓸쓸하고도 애틋한 낭만적 대화와 같은 것은 유자녀 기혼부부로 십수 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그이와 나 사이에선 절대 쉽게 존재하지 못하는 대화의 성역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아서 가끔은 묘한 분함으로 인해 입술을 깨무는 순간이 생기지만. 한편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마음과 사랑을 잘 지키려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대화 속에서 구하려 애쓰는 우리였다고 감히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 '우리'가 된 사람들이 함께 채워 나간 숱한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주고받은 여러 대화들이 결국 지금의 보다 성숙한 우리를 만들었음을. 



아주 오래전. 나는 서른 살의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에 있진 않았지만. 대신 계류 유산 수술을 해야 했던 그 해의 어느 날. 돌연 당신 곁에서, 아니 그 해의 우울하고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던 내가 나를 떠나고 싶어서. 돌연 미국으로 향하는 티켓을 갑자기 사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JFK 공항을 향한 비행기를 타려는 나를. 그럼에도 너그러이 공항까지 배웅해 준 그 시절의 당신의 그 넓고 깊은 성숙한 마음을 내가 여전히 앞으로도 기억하기에. 당신의 목소리와 대화가 결국 여전히 너무 좋다는 것을, 나는 당신과 떨어지면서 반대로 역설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노라고. 헤어지면서 했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이 사람과는 절대 헤어질 수 없겠구나 라는 걸 도리어 알게 되어 버리게 만들었음을. 



- 갈게.

- 잘 쉬고 와. 가고 싶었던 미술관, 먹고 싶은 음식. 뭐든 다 즐기고 오시라 

- 자기는 내가 돌아오면 좋겠어?

- 무슨 말을. 당연히 돌아와야지. 

- 그렇구나.... 미안해 혼자 가서. 그리고 갑자기 이래서...

- 말 안 해도 괜찮아. 살다 보면 지칠 때가 있지. 너무 열심히 살아와서 그래. 푹 쉬고 와. 

- 자기답다... 고마워. 다녀와서 더 나아질게... 더 잘할 거야.. 뭐든...

- 잘 다녀오시라. 울지 마시고.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中




대화는 사랑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한편 모조리 박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상대가 들었을 때 뾰족한 말 한마디나 한없이 상대를 무안하게 만드는 때와 상황을 가리지 못한 후안무치한 문장의 발화자들이 사랑의 세계에서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건 아마 그 이유겠다. 타인에 대한 상상력과 공감력이 부족한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자신의 목소리와 언변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일 테니까. 반대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있던 호감은 더욱 증폭되고 지속해서 대화하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의 주고받음이 끊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결국 사랑의 매듭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나는 운이 참 좋았겠다. 차분하고 침착했고 다감했던, 나보다 더 대화를 잘 나누는 귀와 입을 가진. 무해하고 다감한 사람. 그랬기에 연결 됐으리라. 나와 너. 결국 우리로. 



어제도 우리는 대화를 했다. 아이들이 잠시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둘이 남겨진 우리가 했던 대화는 예전에 비해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몸의 대화를 나누려 했겠지만 십 수년을 한 침대를 공유할 법적 자격이 주어진 부부로 살면서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에로스에 가깝기는커녕 지극한 생활밀착형으로서 건설적인 우리의 넥스트를 열렬히 고민하며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은 확실한 대화. 그이에게는 드러내지 않은 묘한 애석함을 숨겨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사랑의 다른 형태라는 것을. 우리가 서로의 든든한 가족구성원으로서 더 많이 이해하고 아끼는 사이라는 반증은 오늘 내가 그와 주고받았던 대화 속에 담겨 있음을. 사랑한다는 말은 서로 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우리가 우리들로서 오늘이라는 시간을 무척 지키려 하는 마음 자체가 온전히 담겨 있는 문장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발견들은 대화 속에 조용히 숨겨져 있다는 것 또한.  



나는 매번 당신과의 대화를 통해 발견한다. 우리의 사랑이 어디로 흐르는지.

다감한 당신의 목소리는 오늘도 세 사람을 향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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