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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31. 2023

결혼하면 사랑일까 1

첫번째 이야기 

결혼하면 사랑일까. 어쩌면 이 질문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일 수 있겠다. 이분법적으로 그렇다 아니다를 말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야말로 '제각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법한 아찔한 화두. 사랑한다고 결혼까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혼하지 못하는 것도 아닐 테니. 각자의 서사는 여러 형태를 지닌다. 자유연애든 중매결혼이든. 사랑이 없다고도 할 수 없지만 너무 뜨거워서 결혼했다라고 확언하기 쉽지 않은 것. 특히 기혼 이후에도 상대 배우자를 솔직히 온전히 확실히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라고. 자신을 기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커플은 과연 몇 이나 될까. 



도저히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좋을까 싶고 한편 명쾌하게 설명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생각의 지층을 약간 비틀게 만드는 질문. 결혼하면 사랑일까...라는 이 단순한 문장 앞에서 나는 가끔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버린다. 어느 날은 그렇다고 자신 있게 자부심을 가지고 말하는 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그럴까 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과 마주한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또 어느 날은 좌절하며 속으로 외친다. 이건 내가 원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의 경계 속에서 갈팡질팡해버리고 마는 나. 결혼의 전과 후가 완벽히 같은 감정의 고개를 건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어떤 느낌'에 의지한 채 눈을 질끈 감는 순간. 생각의 스위치를 닫아 버린다. 그렇게 하루 한 달 한해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는 진화적 인간...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비즈니스라는 약간 웃픈 농담조의 말들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딘가 개운하지 않고 탐탁지 않은 감정을 낳게 되고 마는 생각이라서. 누구들은 말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소위 상대의 '스펙'을 보고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 '구분' 짓고 서로 비슷한 '수준'을 따져야 된다고.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얼추 현실적으로 끄덕이게 되는 포인트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싶어질 뿐이다. 사랑이라는 가치를 그저 비즈니스적인 시선에서 자본주의 영역 안에 끌고 들어오게 만드는 그 문장. 비즈니스로 결합된 사랑이 결혼이라는 생각의 출발 자체가 무척 아쉽고 섭섭하다고. 최소한 사랑의 가치를 높게 산다면. 사랑이라는 신비하고도 파괴적인 매혹적 에너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어떤 완전무결한 고결성을 우리는 지킬 줄 아는 품위와 안목을 지니면 좋을 텐데 라는 일종의 아쉬움을 느끼게 되고 만다. 




@Robert Doisneau, The kiss at city hall



신혼의 달콤함은 아쉽게도 나로서는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만 아는 특별한 사건 사고들이 불행하게도 참 많이 터졌었고 그와 나. 우리는 모두 미성숙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한 걸음 떨어져 양보하기에. 나이만 먹었지 생각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는, 그리하여 사랑으로 확실히 결합되는 '기혼제'에 뛰어들기에 너무 서툰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초반엔 참 많이 다투었다. 물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금도 종종 실랑이를 벌인다. 다만 경중의 차이와 다툼의 사유에 변화가 일어날 뿐. 다만 나는 이제야 조금씩 상대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최소한 '결혼' 이후 '가족'이 되어 버린 두 사람과 두 사람이 만든 또 하나의 사회적 집단이 어떻게 해야 보다 건강하고 화평하게. 견고하고 온화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이의 존재는 특히 더 결혼 후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확실한 결정적 계기가 되어 주었다. 두 번의 유산과 한 번의 초산이 다둥이였던 나. 세계의 지층은 완벽히 무너졌고 나의 시간은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리고 그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두 아이를 다루는 법을 전혀 모른 채 그야말로 생활 전선을 이어가며 경험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던. 1시간 이상 연속으로  잘 수 없이 수면고문이 반년 이상 이어지며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우렁찬 두 아이와의 사투가 진했던 시절. 처절한 육아기 덕분에 아직도 종종 환청과 불면증과 미세한 우울을 마음에 품은 채 조용히 내 감정을 감추며 살게 되고 마는. 그 시간이 있었기에 도리어 이런 생각에 더 천착할 수 있게 되고 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사실 결혼 이후의 사랑의 정의와 형태가 그 덕분에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정말 확실히 변해갔으니까. 생활적으로든 심정적으로든. 당신과 나. 결혼으로 매듭지어진 남자와 여자. 우리의 사랑은 처음의 에로스에서 아내와 남편에 이어 엄마와 아빠의 형태를 띠어 가며 확고한 아가페로 진화해 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 자신을 송두리쨰 죽이고서라도 네가 더 좋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던져버릴 수 있는 것..... 어쩌면 부모가 된 이벤트 덕분에 깨닫게 된 엄청난 경험이고 또 다른 사랑의 형태일까. 확실히 아이로 인해 주고받게 되는 그이와 나의 사랑의 교감이 생기고 마니까. 생물학적인 신체적 남녀로서 나눌 수 있는 체감적 유대감이 아닌, 정서적이고도 현실적이면서 확고한 책무와 의지로 인해 탄생되는 또 다른 형태의 귀한 사랑... 물론 그럼에도 누군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 한다면 차라리 독약을 마실 것이라고 단언할테지만.  



@ Christian Krohg, Sovende mor med barn (Sleeping mother with child. 1883)





나는 이제 알 것만 같다. 우리의 다툼의 이유는 모두 '나 자신들' 때문이었노라고. 사랑하지만 자신의 자율성이나 독립성까지 포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향해 뾰족한 화살시위를 호시탐탐 겨냥하려고 했노라고. 만약 사랑이 빠지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선택의 영역이 '결혼'이라면, 어쩌면 결혼이란  감정이나 느낌에 이끌린 본능과 욕망의 영역이 아닌, 생활적 의지와 함께 생을 이루어 성장해 나간다는 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확실히 동반해야 하는 의지적 선택이겠다. 



의지...

그리하여 나에게 결혼하면 사랑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을 감히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의 '의지'라고. 당신과 결혼생활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사랑하지만 동시에 사랑하지 않게 되는 순간과 여러 양가적 감정에 둘러 싸이는 생의 고된 에피소드들이 우리 사이를 확연히 갈라놓고 틈과 균열이 벌어져 그 안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는 경지에 이른다 하여도. 



당신을 선택한 내 사랑의 예의는. 그리하여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을 하겠노라는. 아무 이유 없이. 그 어떤 대가가 없어도. 주고받고의 관계로 성립되는 것이 진짜 가족이 아니라, 상대가 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랑... 도리어 내가 무엇을 더 이들에게 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아픔을, 그들의 비꺽 거리는 오늘을 열렬히 앉으며 보듬고 응원을 하고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라는 마음. 바로 의지다. 결혼이라는 선택과 그 이후의 가족애라는 또 다른 사랑의 세계로 과감히 들어가는 중인 나로서는 알게 되고 마니까. 



뜨거운 의지 없이 그저 역할과 책임에 의해서만 시간을 흘러가는 관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리하여 나는 위태롭게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는. 단 하나의 의지에 기대어 오늘도 나아가볼 뿐이다. 물론 여전히 자주 찬물이 끼얹히고 마는 생활적 부침과 감정적 질곡으로 인해. 여전히 휘청거려서 아슬아슬하지만...



@Peter Ilsted, In the Bedroom, 1901






2023년의 마지막 글을 이 화두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더 큰 의미와 감사함만을 기억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글이고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읽어 주시고 계시는 독자분께. 진정 감읍하다는 말씀 올리며... 


해묵은 해를 딛고, 새해 다시 좋은 시작 하시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그러려 노력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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