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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28. 2024

소원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2024년 5월부터 '소아암 환우' 가 되어 버린 정음이는 잠들기 전, 늘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불안해한다. 그 초조함과 긴장감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매일 대화를 나눈다. 매일 먹었던 것, 힘들었던 일, 미안했던 것 (주로 내가 하는 자기 고백들), 재밌게 본 유튜브, 걱정되는 것, 일정, 기타 등등. 어제도 그랬다. 늘 먼저 문장을 건네는 정음의 말은 늘 나를 머무게 만든다... 



- 엄마, 할머니 그거 알아? 슈퍼 블루문이라는 게 있대. 

- 응 맞아. 몇 십 년에 한 번씩 뜬다는 그거 

- 근데 나 이제 그거 못 보겠지?

- 정음아... 왜 그런 말을 해 보지 왜 못 봐 볼 수 있어 

- 저번에 그거 보러 나갔는데 안 보였어. 이번에도 못 보는 거 아냐 

- 아니야. 작년 말하는구나.. 맞아 집 밖으로 보러 나갔는데 잘 안 보였지

- 응... 

- 정음아! 그거 볼 수 있어! 다음에 뜨면 보러 가자! 

- 그때가 나 스무 살 지나서라고 엄마가 그랬잖아

- 그러니까! 그거 뜨면 정말 경치 좋은 레스토랑 예약해서 같이 보러 가자 엄마가 다 준비해 둘 거야! 

-... 응. 자자 

- 정음아! 할머니랑 같이 보러 가면 되지. 우리 정음이랑 슈퍼 블루문 보러 가야지 그러니까 치료 힘내자

- 그땐 나 걸을 수 있어?

- 물론이지! 못 걸어도 걸어도 다 상관없어! 무조건 보러 갈 거야. 보게 될 거야. 정음아! 

- 응 



간절히 기도하는 법을 연습 중이다.. 울지 않고 제대로 기도하는 법을... 아직 너무 서툴다. 




사실 나는... 참지 못했었다. 정음이 옆에서 그냥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겨우 대화를 이어 나가고 마무리 지었다. 무드등만 틀어 두었기 때문에 얼굴을 들키지 않았고 누워서 천장을 보며 대화를 나눈 정음이었기에 다행이지 싶었다. 목소리는 이미 잠겨 있어서 아이는 알아챘을지 모르겠지만. 



정음은 여전히 불안해한다. 어떤 것이 아이를 불안하게 하는지 알 것도 같지만 아마도 스스로 예전에 비해 확실히 달라진 일상과 불편해진 몸.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왼발과 왼손가락. 그럼에도 낑낑 천천히 걸으려고 애쓰는 마음. 마음만큼 따라오지 않는 몸. 몸과 마음의 분리. 거기에서 느끼는 괴리감과 환멸. 아마도 정음은 '아이' 로서 '현존'에 대한 사투적 감정을 '불안'이나 '분노'로 표출하고 있는 것일 테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느낀다. 때때로의 눈물, 정음의 분노, 조용한 침묵, 뜬금없이 건네는 문장들. 여전히 '환생'을 궁금해하는 아이.... 현생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서 자꾸 다시 태어나고 싶은 걸까...



나는 정음의 문장이 모두 애처롭다. 너무나도 마음이 미어져서..... 어젯밤엔 한없이 울다가 그렇게 새벽을 맞이했고 이른 아침 외래를 위해 다시 분주하게 일상을 지냈다. 무사히(?) 외래를 보았지만 사실 이제 나와 정음에게 '무사하다'는 것은 그 조차 큰 바람과 염원이 되어간다. 아니 최소한 아이를 지키고 바라보는 나는 그렇게 되어감을 무의식적을 느낀다. 매시간 매 분 매 초를 긴장 속에서 지내며 정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열 그래프의 이상현상의 유무 등등. 모든 것들을 예의주시하면서 살게 되다 보니.... 무사한 하루가 이젠 매일의 소원이 되었다. 무사한 너. 무사한 마음상태와 무사한 몸 상태. 무사히 마친 항암 주사. 




살이 너무 빠져서.휠체어에 앉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는 너라는 걸 알아... 그래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



귀가 후, 나도 모르게 정음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슈퍼 블루문 꼭 보러 가자! 



외래 다녀온 후 뭔가 먹이고 싶어서 잔뜩 준비해 갔지만 결국 먹지 못하고 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냈음에도. 물 한잔과 감자핫도그 하나를 겨우 먹고 난 이후, 유튜브를 조금 보다가 조금 짜증을 내다가 몸이 지쳤는지 잠든 내 곁의 아이...



내 소원은 바로 너. 네 존재 그 자체 



소원은 이제 선명해졌다. 그 어떤 부귀영화 따위 바라지 않는다. 속세의 욕심이 않아던 예전의 어리석은 나의 모든 지나온 인생에 대해. 나는 이미 지난 5월부터 절절하게 모든 내 살아온 시간들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중이니까... 너무 늦은 반성일지 모르지만 늦은 게 늦은 게 아님을 바라면서. 



슈퍼 블루문을 웃으며 바라보는 일 

둘이 손 꼭 붙잡고 여름밤 산책을 나누는 시간 

스무 살 성년의 날 때 네게 근사한 선물을 해 주는 순간 

너의 여자친구, 너의 결혼식, 너의 자식까지 내가 모두 돌볼 수 있는, 할머니가 되는 일.... 



내 소원은 정음이 그 자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저 평범하게 다른 가정집처럼, 너를 계속 내가 볼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이면 이제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니까. 그러니까 부디. 어리석은 엄마가 수모세포종으로 검색하다가 어젯밤에 우연히 보게 된 몇몇 인스타 속 피드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마음이 찢어지고..... 무너져버렸지만......... 우리는 다를 것임을... 우리는 나아갈 것임을. 정음이 너는 꼭 이겨낼 것임을. 네 종양들은 지금 조금씩 뇌간에서부터 사라지고 작아지고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서 작아지고 있음을..... 



나는 여전히 너무 나약하고 바보 같아서.... 정말이지 요즘 걱정이지만........... 

정음에게만큼은, 큰 나무 같은 엄마로 앞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지금 이 순간.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이미 노트북의 키보드 위가 눈물 바다가 되어 연신 닦아내면서. 동시에 잠든 정음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쿵쾅 질 하는 심박수를 다스리며.... 급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오늘 저녁은 네가 많이 먹고 싶어 했던 크림소스 파스타를... 만들 생각을 하면서. 슈퍼 블루문을 보는 몇십 년의 날에도, 맛있는 크림소스파스타를 먹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정음아.... 다음 외래도. 다음 치료도. 우리 계속 힘내자. 

사랑한다.......... 너무 미안한 만큼. 너무 감사한 만큼............



내내 핸드폰만 보고 있어도 괜찮아! 부디  씩씩함.. 계속 간직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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