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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30. 2024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 1, 결혼

당신이란 남자와 그 집에 가족 아닌 가족이 된 것

나는 현실을 미화할 생각이 없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속으론 생각했다. 남보다 더 못한 존재가 가족일 수 있다고. 여기서 말하는 가족은 태어난 원가족이 아니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 날 도와주고 날 생각해 주는 건 이 세상에서 나의 '부모' 뿐이라는 걸 이제 절절히 깨닫고 산다... 물론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나의 부모님은 사랑이 많고 정이 많고 결국 당신 자식들을 너무나도 애지중지하는 부모이기에. 또한 나의 형제도 마찬가지. 그런 부모 그런 동생 그런 가족을 현생에서 만나 인연을 맺는 것도 큰 복이라는 것을 안다.



다만. 신이 내게 후회하는 것 하나를 말하라 한다면 단연코 그와 결혼한 것이라고 나는 지금 말하고 싶다... 솔직히 언제나 그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살았지만. 졸지에 어느 날 갑자기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 암환자가 되어 버린 나의 쌍둥이 중 둘째 정음이를 다시금 케어하면서. 이 엄청난 위기상황 속에서. 위기대처극복력 뿐 아니라 현실을 대하는 그 모든 시댁의 만행을 떠올리자니....



1. 당신


- 위기 상황에서 행동이 너무 느린 것. 느려도 느려도 너무 느린 것. 고지식 무융통성 가부장제 시그니처

- 당신 말이 늘 맞고 내 말은 '다르고 틀리다'라는 식의 주장. 나를 가족이 아니라 '팀원'으로 매니징 하려 했던 것. 맨스플레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당신을 통해 알게 됐지.

- 언제나 결혼 처음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 단 한 번도 당신 원 가족이 늘 먼저였던 것. 그렇게 아끼는 가족이면 생판 남인 나와 왜 결혼했는지. 하긴. 늦장가 가서 효도하려고 했겠지. 내가 처음 유산하고 수술하러 급하게 들어갔던 그날도 회의하러 다시 회사로 갔던 당신이었으니까. 두 번째 유산을 했을 때도. 처음이든 둘이든 언제나 시댁에서는 전화 한 통 없었다. 첫 유산 하고 일주일이 지나서 제사 지내러 가서 설거지를 서서 했던 게 나였다.

- 손 귀한 집에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낳고 키우는 것은 모두 내 몫이었다. 그게 당연한 사람이고 그게 당연한 '집안'이었다.

- 귀한 두 아이를 '말'로 키운 것. 그저 자기가 보고 배우고 자랐던 그 환경 그 후진 옛날 식으로 키우려 했던 것....

- 기타 등등....... 말해 뭐 할까 싶지만.  




2. 시댁


- 다른 모든 과거들을 말해 뭐 할까 싶다. 유산했을 때도. 심지어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나든 우리 친정 부모님 께든 '말 한마디' 먼저 건네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걸 더 알게 되고 마니까.


- 어머니. 근데 암환자가 되어 버린 당신 귀한 손주, 걱정도 안 되시나 봅니다. 말은 고사하고 며느리 얼굴 봤을 때 제 인사 그렇게 받기 싫으셨습니까. '어머니 저 왔어요' 이 말에 눈 한번 마주치지 않다가 제가 말 건네려 하니 '애쓴다' 한마디 하면서 저를 눈 크게 뜨고 쳐다보시면서 뭘 바라시는지요. 이 와중에도 제게 대접받고 체면 살려 주기를 바라시는 건가요?


- 형님, 아주버님. 해도 해도 '남' 보다 더 남인 사람들이라는 건 살면서 더욱 알았지만. 정음이 처음 개두술 하기 전날 기어코 당신들 시간에 맞춰서 갑자기 황당하게 연락도 없이 쳐들어오더니. 기어코 애를 울리고 가셨지요. 당신들 빈손으로 정음이 보러 오며 했던 행동 때문에 그날 정음이는 계속 울면서 제게 말했네요. 엄마 나 죽을병 걸렸어? 왜 큰아빠 큰 엄마는 명절날만 조금 보다가 왜 지금 나 저렇게 쳐다봐' 라 했습니다. ...... 9살 아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걸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부끄럽지도 않나 봅니다. 평소에는 거지 취급 했으면서.


- 내 새끼 눈에서 수술 전날 피눈물 흘리게 한 것..... 그 때 생각하면 아직도 손이 떨리고 심장이 터집니다. 빈 손으로 와서 했던 말들. 행동. 그 난리 그 와중에 제게 뭘 바라셨습니까. 배웅이라도 하길 바랐나요?  언제나 당신들은 내가 그리도 미웠는지 우리 애들에게 한 푼 쓰기를 따뜻한 말 하는 것 모두 아까워하셨지요. 하긴. 시댁 언제나 그랬지요. 특히 형님. 아주버님. 우리 쌍둥이 애들 돌잔치 날 꼬깃한 상품권 봉투에 꼬깃한 7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아직도 생각이 나면 어이가 없네요. 그러다 시간 좀 지나서 데면데면해도 얼굴 보며 살 때는, 우리 애들한테 먹으라고 그 싼 이마트 과자 몇 봉지 쥐어 주셨죠. 우리 애들 거지 취급 잘도 하셨어요...


- 수술 전날 빈 손으로 와서 우리 애 울린 것. 우리 정음이에게 한 당신들의 말

"애가 우리가 좀 싫은가? 표정이 왜 이런가?"


-................ 암 환자 된, 수술 전 날 그것도 사태파악 모르는 아이 앞에 두고 그 상황에서 눈물 흘리는 제게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정녕 사람입니까...............


-결론)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말' 로만 걱정하고 '말'로 사람을 희롱하고 그러다 자기들 편하게 무관심 노터치 하고 말면 그만인, 그냥 '남' 인 사람들...............차라리 남이었으면 좋았을 인간들............천박하고 뻔뻔한..... 소름돋는 사람들...







나는 오늘. 잠시 한껏 심하게 오열했다. 친정집에 있는 아주 오래된 피아노가 있는 그 옛날 내 방에 들어가서. 웅크리고 앉아서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이제 곧 이사를 한다. 모든 이삿짐 정리, 이사 업체 수배, 입주 청소 수배 및 입주 청소, 기타 등등 등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가 관리하고 친정어머니 도움 받아서 두 여자가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시댁과 남편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다. 간병? 어머니와 나와 친정아버지가 하고 있다..............







이삿짐 정리 전에 버릴 물건 정리를 위해 급히 친정어머니꼐 정음이를 맡기고 분당집에 갔었다. 핸드폰을 하고 있는 첫째를 보자마자 껴앉고 괜히 울컥했다. 거의 두 달만의 만남이니까. 그리고 시모가 있었다. 시모는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같이 간 친정아버지는 그런 시모에게 인사를 건네셨다..... 시모는 그 와중에도 웃으며 친정아버지의 인사는 받았다. 체면차림과 자기 대접이 우선인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버릴 물건을 정리하고 나가기 전. 친정아버지와 나에게 시모와 남편은 그 어떤 말도 먼저 건네지 않았다. 그건 '가족'이라고 볼 수 없다. 가족으로 묶여 있지만 '남'이나 마찬가지인 이상한 관계....



나는 순간 화가 났다. 나가기 전 시모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폭파했다.


- 어머니. 제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 아세요?

- 그게 뭐 어쨌냐?

-........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 넌 뭐가 그리 불만이니?

-........... 지금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저희 정음이 걱정도 안 되세요?

- 이제 와서 뭘 어쩌냐? 그래. 너 불만 한번 말 나온 김에 말해 봐라.

-......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지금....




시모는 날 노려봤다.

나는 소름이 끼쳤다



참고 참고 또 참아도 참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참고 참고 또 참으려 애써도 도저히 미운 사람들이 있다..............





'이런 글' 이라도 써야 감정을 휘발시킬 수 있었기에.

당시의 옹졸하고 나약한 마음 상태였던 제 자신을... 낮뜨겁게 되돌아볼 수 있게 되는 건 결국 '글' 이다. 


그럼에도 '가족' 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고 조금 더 지혜롭고 조용하게 현실을 대처하려 한다. 

생각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이젠 앞만 향해 나아가도 모자라는 오늘들이라는 걸 알기에


당신도 애쓰고 있다는걸 모르진 않는다. 

모르진 않지만 여전히 생각의 간극이 너무 커서 그 격차를 좁히며 나아가는 데 에너지가 들지만

일단 나아간다... 아이만을 위해서. 


뒤늦은 생각...... 

언제나 나는 모자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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