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대신 매일 병원
2차 항암 퇴원 이후 거의 매일 병원을 다니고 있다. 이번주만 해도 화요일 하루 빼고 매일 병원행이다. 지정의 교수님이 계시는 월수금 포함, 오늘 목요일은 방사선종양학과 첫 외래도 잡혀 있다. 임시 거주 중인 인천에서 서울까지 녹록지 않은 왕복 거리에도 정음은 잘 견뎌주고 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숱한 마음고생 몸고생은 점점 쌓여가고 있지만...
나도 이젠 제법 익숙해지고 있는 걸까. 천 단위에서 백 단위 그리고 거의 바닥을 찍어가는 '수치'에 이젠 별로 놀랍진 않다. 수치 주사인 그라신을 외래 후 투여받는 순간. 그리고 소아통원치료실에 접수를 하고 대기하면서 정음과 비슷한 수술을 한 민머리 아이들과 마주할 때. 급속도로 두근거리는 심박수는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크게 놀라진 않고 있는 중이다. 그저 다만 그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간병하고 계실지. 내가 모르는 지혜나 노하우는 무엇일지. 나는 간병인으로서 다만 그게 궁금해질 뿐이다... 여전히 나는 너무나도 서툴러서 정음이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지 못한 채 나로 인해 정음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급기야 감염에 더 취약해지면 어쩌나 늘 노심초사 긴장하며 살고 있기에.
이번주는 계속 수혈을 받고 있다. 오늘도 수혈 예정이다. 그리고 처음 뵙는 교수님 외래까지. 양성자 방사선은 다른 항암 치료와는 조금 달리 좀 더 혹독(?) 하다고 들었다... 다른 게 혹독한 게 아니라 '매일' 거의 한 달 여 간 이상을 그 방사선을 위해 병원에 들락날락해야 한다는 것. 정음은 병원을 싫어한다. 너무 살이 빠져서 그런지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대기하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곤욕스러운지 자주 힘들어한다. 그나마 수혈을 받기 위해 몇 시간 정도 오래 누워있는 침상에서의 순간은 좀 낫다. 그런 정음이 곧 다가올 방사선 치료를 잘 견뎌줄 수 있을까. 매일 궁리한다. 어떻게 하면 정음이의 마음을 편하게 달래면서 매일 병원 가는 길을 불안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그곳에서의 순간을 잘 받아들이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를. 물론 답은 없고 늘 실패하며 짜증을 내는 정음에게 나 또한 짜증을 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연속이지만.
오전 외라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아침은 속에서 받지 않기에 거의 먹지 못한 채 눈을 뜨면 옷만 입고 병원으로 출근을 해야 하는 정음. 그 상태로 내내 무언가 먹지 않은 채 집으로 귀가하기 전까지 빈 속인 아이를 두고 나는 매 순간 전전긍긍한다. 그렇다고 먹는 순간엔 전전긍긍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실 먹는 순간의 정음을 보면 그땐 더 심박수가 올라간다. 또 토할 것 같아서... 그게 일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가끔 뭔가 먹고 싶다 해서 먹고 싶은 걸 챙겨주며 아주 극소량임에도 그 먹은 것 마저 다 토해버리고 마는 정음을 돌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피눈물이 절로 흐르지만 내게 울 자격은 없기에. 웃으며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원래 잘 먹어지는 게 이상한 거야. 괜찮아 토해도 돼. 괜찮아. 별 일 아니야
사실은 아이도 나도 알고 있다. 이건 별 일 아닌 게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별 거 아니게 우리가 애써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정음은 철이 일찍 든 아이다... 그래서 늘 엄마와 외할머니 걱정을 한다. 자신을 돌보는 두 여자의 노고를 알아준다. 그래서 정음의 문장들이 더욱 폐부를 찌르고 심장을 파고든다. 예민하고도 기억과 관찰력이 더 좋아진 정음은 자신이 언제 토할 것 같은지를 늘 안다. 그래서 미리 예고(?)를 보내준다...
엄마, 근데 차에서 토하면 힘들겠지?
할머니, 맛있긴 한데 그만 먹어도 될까.
언제 익숙해질까..........
매일 왕복하는 병원 길. 지하 주차장에서 본관 이동을 위해 휠체어를 겨우 타고 올라가는 순간
오른쪽 가슴의 중심정맥관 부분의 히크만 카테터로 피를 몇 번이나 빼고 여러 주사가 놓일 때
먹고 물을 마셨을 때 바로 오른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기 시작하자마자 토해버리는 순간
가슴에 달린 히크만 카테터에 방수 테이프 연신 붙이고 거동이 힘든 너를 샤워시키는 순간.
포비돈요오드를 바르고, 테가덤을 붙이며 제대로 됬는지 감염은 안 됬는지 떨리고 불안한 마음...
시신경에 문제가 생긴 건지 요즘 따라 절로 흐르는 너의 눈물...(감정으로 인함은 아니라지만)
아이의 들숨과 날숨에도 늘 노심초사 전전긍긍 불안함이 식지 않은 마음
그리고 하루 끝에서 늘 흘려버리고 마는 조용한 나의 눈물.
암 투병 하나 만으로도. 암환우가 된 아이 간병 하나만으로도 벅찬 매일인 와중에 오늘은 '급 이사'까지 겹쳤다. 딸 가진 죄인인 친정부모님은 당신들의 건강을 뒤로 미룬 채 물심양면 돕고 계신다. 이 모든 것.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큰 도움이 별로 되지 못하고 있는 남편과는 자주 충돌하고 일방적인 분함을 토해내지만. 화내봤자 소용없다. 이젠 그에게 기대하는 게 별로 없어지고도 있다. 그저 돈을 벌어오고 아이 병원비와 살림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이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사실은 이 모든 상황들에 나는 익숙해지고 있는 것일 테다. 익숙해져야 할 수 있으니까. 이미 인생의 지각변동은 일어날 데로 일어나고 있으며 삶은 확연히 바뀐 채 그저 변화에 적응하려 각자의 위치에서 애쓰고 있다는 걸 안다. 정음이와 나. 그리고 몇 달째 엄마 손 없이 혼자 씩씩하게 생활을 잘 지내주고 있는 쌍둥이 첫째까지도... 아이들이 가끔 바라던, 엘리베이터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고 싶다던 그 바람을. 이런 식으로 들어주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정음이는 휠체어를 타기 위해 아파트에 살게 될 줄은. 너도 나도 정말 우리들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로 몰랐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리고 만다. 언제쯤 익숙해질까...라고.
그러다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한다.
익숙해지든 말든. 상관없다.
정음이 네가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네 머릿속의 그 종양들이 작아지고 없어질 수만 있다면.
우리가 다시 손을 꼭 잡고 산책을 갈 수만 있다면
네가 그토록 바랐던 그 산책 한 번을 내가 같이 많이 가 준 적이 없어서 한이 되어 버린 못난 어미는....
오늘도 잠든 널 보다가. 오늘 하루 일정을 체크하고 머릿속으로 일과와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면서
눈물을 삼키며..... 하루를 시작한다.
익숙해지면 좋겠지만 내내 익숙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부디 너만 좋아진다면.... 매일 가는 병원 길. 매일 치우는 토. 매일 받아들이는 사사로운 짜증과 화와 눈물
다.... 받아들일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삶이라지만, 그럼에도 네게 해주지 못했던 게 너무 많으니까....
다시 사는 기분으로. 다 받아들일 것이다....
오늘도 잘 다녀오자. 학교 대신 병원.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정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