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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09. 2024

암병동의 아테나

조혈모채집기간의 간병 기록....

조혈모 채집을 위한 입원이 이제 3일 차가 지나가고 있다. 주말 내내 밤새 쉬지 않고 이삿짐을 정리하고 일요일 오후에 입원실 입성. 마음이 한결 가벼웠던 이유는 아마도 제 살림을 조금은 정리하고 첫째와 만나고 네 식구가 다시금 주말 식탁을 누렸기에. 물론 단 두 번뿐이었지만.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 암환우가 된 상태의 정음이가 마주하는 새로운 치료들과 마주하면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리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정음은 자신의 건강한 조혈모를 채집한 이후, 추후 해당 조혈모를 다시 자가 이식 해야 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조혈모세포는 정음 몸의 혈액 성분을 만드는 일종의 어머니세포로 뼛 속의 골수에 많이 존재, 조혈모세포이식은 결국 항암 및 방사능 등으로 후속 치료를 하면서도 모순적으로 좋은 세포마저도 죽이는 항암 치료를 하는 정음과 같은 환자들로 하여금 망가진 골수를 위해 추후 다시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넣어주어 회복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흔히 알고 있는 골수이식을 포함한다. 



정음은 수치가 좋았을 건강한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채집' 해야 한다. 소위 '자가 헌혈' 하듯 자신의 몸에서 상당량의 피를 빼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 사실 이번에 조혈모 채집 과정을 거치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연신 피를 뽑아대야 한다는 것을. 여전히 새로운 공간, 새로운 기계, 새로운 치료 과정들과 만나게 되면 뛰는 심박수를 감추는 데 애를 써야 한다. 



일종의 '헌혈' 과도 같은 혈액세포채집실에서의 이 틀 



정음은 일어나자마자 지하 2층 혈액세포채집실로 내려가야 했다. 갈 땐 이송원 님 도움으로 휠체어를 타고 내려갔지만 늘 올 때는 그냥 우리끼리 편히(?) 올라와서 이동의 동선은 최적화된 나름 편했던 이번 입원기... 무엇보다 입원 기간이 짧아서 정음도 나도 한 시름 놓았다. 모두 정음 덕분이리라. 다행히 세포 채집이 최소량 기준으로 잘 모아졌고 하루에 약 4시간 정도의 피를 빼기 위해 내내 누워있으며 지루한 그 시간을 견뎌준 정음 덕분. 



엄마도 헌혈을 해 봤지만 널 따라가진 못할테지... 4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고맙다..



처음엔 오한이 느껴져 이불을 덮고 눈을 깜빡이며 정음은 내내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린 몇 가지 대화를 주고받고 그러다 점심엔 뭘 먹지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튀김이 먹고 싶다길래 우선 뭐라도 먹여야 한다는 일념 하에 정말이지 먹이고 싶지 않았지만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먹어봤자 소량에 불과하지만 치즈볼 2알과 고구마튀김 1/4 조각을 먹은 후. 물 한 모금 마시더니 갑자기 정음은 구토가 나오려는 듯 손으로 입을 막기 시작했다. 



나름의 '패턴'에 익숙한 간병인인 나로서는 재빨리 봉지를 대어 이번엔 토 치우기가 한결 수월하긴 했다. 토 치우기가 이젠 수월해지는 지경이라니. 새삼 이것도 내공이라면 내공일까 싶지만 이런 내공 따위 정말 원치 않았는데.... 점심으로 먹은 것들을 애써 먹고 모두 게워내며 자꾸 체중이 조금씩 줄어드는 정음을 지켜보며 여전히 속이 새까맣게 타 버리고 애타는 시간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네가 먹는 모습은 정말 귀하고 감사하다. 


조혈모 채집을 잘 버텨 주었다. 매번 피검사 이후 앱을 통해 정음의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호중구 수치를 확인한다. 매 시간 열 체크를 한다. 소변 양과 색깔을 체크한다. 그럼에도 아직 초보 간병인이기에 무엇보다 정음의 몸 씻기는 병원에서는 여간 할 수가 없어서 내내 매 순간 궁리를 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나는 암병동의 아테나가 수밖에 없는 사건(?) 하나 터졌다. 조혈모 채집 첫날, 무사히 겨우 하루를 힘겹게 마치고 정음을 살피던 도중, 저녁 늦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보험회사였다. 요지는 간단했다. 보험금 지급 '거부' 의사를 밝히는 전화였다. 자신도 아이 아빠라면서. 내 사정 알지만 일단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감정' 운운하면서. 의료자문 동의서를 보낼 테니 동의를 해야 지급이 될 여지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식의 '통보'...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급속도로 고강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건 아마 그의 전화 한 통 때문이리라. 모르지 않은 그쪽 업계 악습과 관행과 실제 레퍼런스들을 밤새 살피고 궁리를 한 끝에. 나는 천천히 약간의 '반격'을 시작했다. 보험이란 역시 가입할 땐 쉽게 돈을 빼 가고 정작 필요할 땐 악착같이 주려 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절절히 느끼며. 나는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며 '일' 을 하는 사람들에게. 언젠가 고스란히 자신이 되갚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걸. 어떤 형태로든...



반격을 가볍게(?) 시작했다. 정음이를 옆에서 살피면서 나는 전화로 의견을 보냈다. 납득할 있도록 무엇 때문에 지급 거절을 하는지 사측 입장을 공문 서면으로 등기우편을 것. 의료 자문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지급이 불가하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협박' 성 멘트로 들리며 '자문'이 필요 없는 명징한 진단코드와 상병 명으로 인해 이미 대수술을 받고 후속 치료 중인 아이를 기준으로 무엇이 근거가 되어 지급거절이 되는지 명확히 알려줄 것. 아울러 잘 알아둘 것. 나는 현재 협조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의료 자문할 필요성을 못 느끼며 비협조가 아닌 '보류'라는 것. 또한 추후 금융감독원 보험민원 및 개인 손해사정사 고용 혹은 필요시 최종적으로는 나의 모든 본 보험 관련 대행 권한을 위임한 나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대응 할 의사가 아주 충만하다는 것. 이미 준비는 시작되었다... 여전사가 된 기분이다. 암 병동의 전투사...



몇 통의 전화를 마친 후 나는 정음을 바라보았다. 다시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조혈모 채집을 하면서 꿋꿋하게 4시간가량 연신 피를 뽑아대는 그 시간을 그럼에도 잘 견뎌주면서 다만 '엄마 언제 집에 갈 수 있어'라고 묻는 너를 지켜보면서.....



터져 나오는 눈물은 그쳐야 한다. 지금은 울 시간조차 아깝다......



나는....

정음 간병 하나 만으로도 모자란 에너지를 현재 혼신을 다해 여러 산재한 크고 작은 생활적 '숙제' 들을 모두 관리하고 조율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이번 '보험' 사건이 시작되면서 사실은 고강도 스트레스의 시작으로 어떤 정신으로 지금 버티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정음이 엄마라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네 시간 동안 피를 빼고 있음에도 힘든 내색 별로 안 해주고 씩씩하게 견뎌주는 너를 지켜보면서. 하루에도 번씩 속이 새까맣게 타면서 애간장을 끓이며 내내 터져 나오는 생활전선의 참담한 숙제들을 조용히 치열하게 극복하려 애쓰며.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아마 내일도 나는 신께 청하고 내게 자문할 것이다. 

암 병동의 아테나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나' 이길 바라는. 내 인생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를 위해. 



이젠 그 누구도. 

이겐 그 무엇도.

나의 정음이로부터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것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지킬 것이다... 



내일 퇴원 무사히 하고.... 넥스트로 무탈히 넘어갈 수 있기를. 

보이지 않는 '넥스트'라 할지라도. 둘이 함께라면 무엇이든..... 다 괜찮다. 

너만 곁에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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