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Jul 19. 2024

긴장 속에서

양성자 마스크 제작 날...

간병의 민낯 중 하나는 다름 아닌 '긴장'이다. 환우들의 투병하는 시간은 더하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만큼 그들을 곁에서 지키는 가족 간병인이 되고 난 이후 나는 정말이지 절절하게 알아가고 있다. 엄청난 극도의 긴장을 매번 견뎌야 한다는 것을. 물론 긴장하지 않고 유유히 대담하게 대처하는 분들이 더 많으실 테다. 그렇지만 최소한 나라는 여자는. 정말이지 이놈의 '긴장'을 매번 달고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갑작스레 악성뇌종양 판정을 받고 소아암 환자가 급작스레 되어버린 둘째. 아이와 함께 몇 달을 내내 시간에 휩쓸려가면서 온갖 새로움들과 조우하는 이 시절. 마치 '아홉수'라는 걸 제대로 엄청나게 겪어 나가고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엄청난 극도의 긴장을 느끼고 말았다. 새벽부터 그랬다. 사실 새벽 5시가 넘어서 바로 '장애인 콜택시'를 잡았다. 국내의 사회복지 서비스 중 이동약자 서비스의 일환이 바로 그 콜택시다. 휠체어가 바로 탑승이 가능한 약간의 특수한 택시. 정음은 개두술 이후 편마비가 왔고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하며 여전히 거동이 불편한 채 내내 생활하고 있기에. 일시적 장애판정을 받았고 그것들을 각 지자체 시스템에 등록하고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기까지. 말하고 나면 별 거 아닌 것들이지만 사실 모든 것들은 말이 쉽지 하나하나 준비와 관리 그리고 몇 가지 불편함들을 감내해야 한다.



이동약자 서비스는 말이 좋지 사실 내내 예측이 쉽지 않은 '대기'를 해야 한다. 그야말로 기다림의 연속이다. 오늘은 오전 일찍 외래가 있었고 늦어도 7시 30분까지는 병원에 도착해야 했다. 설마 했지만 새벽 5시에 예약을 했음에도 결국 택시는 시간을 기다려 8시가 훨씬 넘어서 탈 수 있었고 병원에는 9시에 도착했다..... 이 택시를 기다리는 새벽 5시부터 도착해서 정음이를 태우고 가는 9시까지. 나는 정말이지 속을 있는 데로 끓였다.... 저절로 눈물이 날 정도로. 뭐 이것 정도로 우나 싶겠지만............... 나는 그랬다. 이상하게 눈물이 엄청나게 났다..... 사회적 약자로서 느끼는 묘한 불편함들을 일상 곳곳에서 엄청나게 체감하고 있다.... 정음이 덕분에.... 나는 더욱 사회의 그늘진 면모들과 많이 조우하고 있다..


1번째에서 내내 대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4시간이라니.... 부지런해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글로 담담(?) 하게 쓰고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몇 시간이 흘러서 시간을 복기하면서 되돌아보니 역시 초보이고 무경험자라서 느끼는 긴장이라는 걸 알게 된다. 늦게 도착했지만 피검사 이후 다시 외래 시간을 최대한 미루면서 동시에 겹쳐서 잡힌 양성자 센터로 정음과 향했다. 간호사께 이러저러 사정을 얘기했지만 결국 'time to market' 해야 한다는 결론. 결국 다시 혈액종양과 외래 장소로 와서 내내 병원 앱의 피검사 결과가 뜨기를 기다릴 뿐.



다행히 양성자를 남겨두고 30분 정도 일찍 외래를 급히 보고 수치 주사를 맞고 급히 양성자 센터로 도착. 시간에 맞춰서 바로 정음은 '마스트 설계' 제작을 했다. 대기하는 동안 정음의 친구가 되어 준 핸드폰에 새삼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못난 나보다 핸드폰 속 세상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만 같아서..




마스크 제작 및 등판 석고(?) 틀을 뜨는 과정 내내 정음의 탈의된 상반신을 보니 새삼 또 눈물이 솟구쳐서 한참을 참아야 했다. 점점 앙상해지는 정음이는.... 여전히 극소량을 먹고 그 마저도 토하는 날이 지속되고 있다. 다행히 대토(?)는 아니지만 정음이를 먹이는 순간은 매번 긴장이다.



아이의 앙상해진 몸을 지켜보며. 그의 몸에 선들이 그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마스크를 제작하기 위해 정음이의 얼굴에 틀형을 넣었을 때. 그 나이에도 불만 힘듦 한번 내색 없이 조용히 그 과정을 견디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연신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상하게 또 어깨가 움찔거렸다. 너무 미안해서. 할 수 있는 게 바라보고 곁에 있는 것뿐이라서. 아이가 너무 많이 커 버린 것 같아서....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이겨내고 있어서...



너의 마른 몸과. 너의 어른스러운 차분함은...나를 자꾸 울게 만든다...



정음이가 시키는 대로 너무 잘해 주어서 의외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서 마스트 제작 및 모의 테스트는 끝났다. 모의 테스트라고 말할 것도 없이 예상외로 조금 싱겁게(?) 끝나서 이게 제대로 받은 게 맞나 싶은 의심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다시 서울시 이동약자 서비스 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차를 배차시켰다. 대기 6번째... 기다리는  동안 문득 아차 하는 생각. 가글 약 타는 걸 깜빡; 이 정신머리를 탓하면서 급히 외래 장소로 달려가서 약 처방전을 받았지만 결국 배차 기사님께 연락이 오고 쿨하게 약국 가는 건 포기; 일단 귀가하기로 결정....



매 순간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 초보 티가 여전히 나는 걸 숨길 수 없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모를 지경의 매일을 견디며 지내는 중이다. 그런 나는 사실 최근에 '골절'이 되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오른손 중지 손가락이 어느 날 좀 아파서 보니 왼쪽과 비교 대비 퉁퉁 부어 있었다. 친정어머니께 잠시 아이들을 맡기고 급히 정형외과로 갔더니 이미 금이 가고 골절이 좀 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다행히도 손을 써도 큰 무리(?)는 없으니 쓰라는 의사의 쿨한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손가락엔 원래 괴상한 고정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과감히 간병살림할 땐 빼고 지낸다. 그래야 일을 할 수 있다. 손이 삐뚤어진 든 말든 일단 아이들을 위해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의외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또 긴장한다. 내가 다치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 다쳤나 싶다..



긴장은 사실 여기서 끊이지 않는다. 긴장과 동시에 불안을 야기하는 건 결국 '가족의 아픔'이다. 사실 친정어머니도 계속 설득 끝에 정음이가 다니는 3차 병원의 신경외과와 신경과에 모두 외래 예약을 잡아 드렸다. 정음이 덕분에 뇌종양 혹은 뇌 관련 공부와 각종 관련 수기 경험들을 하도 접하다 보니 친정어머니의 증상도 이상하게 의심이 되어서. 여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아서 계속 설득 끝에 미루고 계셨던 뇌 MRI 결과를 가지고 다시 한번 해당 병원에 가 보실 것을 내내 권했었다...



어머니의 외래 예약이 잡히고 나는 사실 더욱 긴장과 불안함 속에 살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아프다...... 이 시절은 정말이지 신이 내게 주신 엄청난 인생의 숙제를 통과하고 있는 기분이다. 매일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정음이의 현 치료들을 무사히 마치고 재활도 잘 되어서 부디 오래 내 곁에서 내내 나와 함께 할 수 있기를... 또한 친정어머니도 부디 아무 일 없다는 확인을 받을 수 있기를.



나의 긴장들은...

나의 눈물들은..

나의 슬픔들은..



모두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는 '실제'로 인한 긴장과 불안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들일 테다. 그것을 피할 수가 없다. 피하고 싶어도 세상에는 피해 지지 않는 원치 않은 인생의 이벤트들이 분명 있고 나는 내 인생에서 아주 큰 이벤트와 만났고 그것을 정면돌파해내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부디 무탈하기를 소원한다. 정말이지 나의 긴장과 불안은 그 둘만 무사하다면 모두 깔끔하게 상쇄되는 것이리라.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기에........ 다만 나는 그들 곁에서 계속 그들을 지켜내면서 웃으려 애를 쓸 뿐이다.



내내 긴장과 불안과 싸우며 매일 조용하게 우는 하루들의 연속 속에서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은 이럴 때이다. 나의 두 사람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겨내야 한다고. 웃어야 한다고. 울지 않아야 한다고. 별 일 아니라고. 모두 별 일 아니라고.....


나의 두 사람.....


익살스럽고 개구쟁이가 다 되었지만 내심 철이 다 든 첫째와 언제나 나보다 더 어른 같은 배려와 친절함을 지닌 사랑스러운 둘째..... 그리고 이들을 지키는 또 다른 엄마인 친정어머니.... 내 긴장은 내내 이들로 인해 사실 사라지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도 알고 있지만. 반대로 이들 덕분에 내 긴장은 없어지기도 한다.



인생은 원래 모순덩어리라고 했던가.

긴장의 연속 속에서 그 긴장을 녹여주는 존재를 기억하려 한다.



다 잘 될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울지 않을 거야

언젠가 더 많이 웃게 될 거야



정음이를 좌욕시키고 비틀거리는 몸을 한 손으로 부축이면서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중심정맥관을 한 너의 몸을 지키는 오늘도.... 언제나 외우는 주문은...... 계속된다. 



다음 주 외래와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밤 11시의 양성자 전뇌전척수 치료.... 잘 시작하기를...

정음아.... 매일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용서해.......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06화 치료 방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