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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22. 2024

나들이

이동약자가 된 너에게... 

소아암 환우가 되어 버린 정음은 두 차례의 개두술 이후 현재 거동이 쉽지 않은 일시적 장애인이 된 상태이다. 뇌를 여는 개두술은 여타 장기를 여는 수술보다 더 위험하고 치명적인 여러 부작용과 후유증을 감내해야 한다는 걸 아이를 통해 뼈저리게 체감하게 된다. 개두술 이후 왼쪽 다리와 팔에 편마비가 와서 초반엔 아예 움직이지 못한 채 병원 침대 생활만 했다. 물론 아주 조금씩 호전을 보여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후속 치료를 하면서 휠체어 생활은 당분간 지속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했다. 일시적 장애 판정을 받은 정음의 포지션은 사회적으로 '이동약자' 로도 구분된다. 그리고 나는 그의 주간병인이자 보호자로서 새로운 세계와 맞닿는 중이다. 사회적 약자, 교통 약자, 이동약자의 24시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아주 조금은. 그러니까 정말이지 아주 조금은 '안다'라고 이제 막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아니. 물론 안다고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음이 본인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병원과 집만 오고 가는 정음은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함께 놀 친구는 쌍둥이 형제뿐이기에. 의젓하고 철이 일찍 든 쌍둥이 형제... 첫째도 친구들과 한참 놀 시기이지만 정음을 위해 하교 후 바로 집으로 와서 학원 가기 전까지 정음과 함께 한다.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 함께 TV를 보는 수준이지만 그 시간은 정음에게 유일하게 기쁘고 즐겁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나는 늘 궁리하고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건강하고 기쁜 시간을 선물해 줄 수 있을까. '기쁘다'라는 형용사를 정음의 세계 안에 들여놓기에는 이제 너무나도 현실적 제약이 많아진 상태이지만. 



궁리 끝에 짧은 나들이를 행하기로 결심했다. 지난주 지정의 선생님의 말씀대로 방사능 치료 들어가기 전 상태가 조금 좋았을 때 잠깐의 외출은 허한다 하셨으니. 근교까지도 무리이고 차로 15분 내로 갈 수 있는 좋은 공간을 물색하다가 자연스럽게 대형 카페를 검색했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좌절을 느껴야 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고 아이들 동반해서 갈 수 있는 근처 대형 카페가 거의 없었기에. 모두 '비장애인' 위주이고 '노키즈' 만을 '고객'으로 정의하는 듯한 공간이 대부분이었음을.... 




그래도 우리는 갔지. '빛' 을 보고 있던 네 뒷모습을 볼 때 마다 언제나 심장은 철렁거린다.....




이동약자가 된, 감염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암환우가 된, 정음이 갈 공간은 이제 병원과 집 이외에는 그 어디에도 환대해 주는 곳이 없는 것만 같아서 사실 아주 많이 검색하면서 화가 났었다. 그럼에도 내내 손가락은 포기하지 않고 검색 끝에 한 곳을 발견해 냈다. 비록 2층은 노키즈였지만 1층 공간은 좌석 간격이 넓고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휠체어도 통과할 수 있는 편한 입구가 존재하는 곳. 물론 그럼에도 그곳엔 '장애인 화장실'은 설치되지 않았지만. 하긴. 장애인 화장실까지 바라는 건 아마 대한민국 대형 카페 안에서 무리겠지. ROI 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반대로 '이동약자'가 된 나와 정음 입장에서는 그 어떤 공간도 결국 이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친절은 여전히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쓸쓸한 잔상을 남길뿐. 



아무튼. 우리는 떠났다. 우리의 나들이는 시작되었고 무사히 도착하고 도착해서도 조금 우당탕탕 했지만 두 남아의 비위를 잘 맞춰가면서 나들이를 즐겼다. 좌석 간격이 최대로 떨어진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는  오전 시간대에 출발했기에 다행히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올해 첫 팥빙수, 네가 좋아하는 마카롱. 청량한 라무네. 소시지베이컨빵. 암환우인 정음은 사실 가려야 하는 음식이 참 많다. 모든 카페 내 음식은 사실 정음에게 거의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네게 건네고 싶었던 내 절절한 마음은.... 아마도 아주 예전으로..... 네가 건강했을 때로. 식욕이 왕성했을 때로. 생생한 두 다리로 이곳저곳 뛰어다녔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이끈 욕망일테다..




결국 네가 고르고 내가 다 먹었던. 네 덕분에 호강했어....






언제나 쌍둥이 형제의 양육은 사실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몇 십배에 해당하는 생활 난이도를 현실적으로 체검하는 중이다... 거동마저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매번 소변과 대변, 그뿐 아니라 감염과 준별균식 식사 히크만 방수시켜서 샤워시키고 설득해서 매번 구내염 방지를 위한 3종의 가글을 수십 번도 더 시켜야 하며 병원 외래를 다니고 기타 등등 등등.... 그야말로 일시적 장애인이 된 둘째 아이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은 첫째 아이를 챙기는 일..... 



글쎄. 이 현실을 어떤 단어 어떤 문장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언어의 장벽을 느낀다. 언어로도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이 감정과 이 현실을... 나는 활자로 풀어내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어도 도저히 적합한 단어와 문장을 찾지 못하게 되고 만다... 다만 말 줄임표 안에 고스란히 마음을 담아서 하루에도 수십 번 찾아오는 좌절과 슬픔, 환멸과 지리멸렬한 생의 지독한 이 시절들을 애써 꾸역꾸역 휘발시켜 낼 뿐이다. 



..........................



그리고 말미에 찾아오는 기쁨의 존재들. 나를 살아내게 하는 유일한 원천.....

매 순간이 도전이고 기적이며 용기가 되어 버린 우리 두 사람. 정음과 나. 그리고 매번 병원행이어서 외할머니 손을 받아 잘 자라주고 있는 기특한 첫째까지. 





남들에게 쉬운 몇 시간의 카페 나들이가, 이제 우리들에겐 절대 쉽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모든 평범함은 평범하지 않은 도전의 순간으로 바뀌었다. 편히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상. 두 다리로 가고 싶은 곳을 걸어가는 산책시간. 먹고도 토하지 않고 잘 소화해 내는 시간. 히크만 카테터 없이도 편히 꼭 껴앉을 수 있는 평평한 가슴. 사람 북적이는 곳에서도 마스크를 끼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는 순간..... 정음에게는 그 모든 것이 '꿈'이고 '비범' 하게 되어 버린 지금이지만. 그런 아이를 내내 돌보고 간병하고 지켜내며 나 또한 '쉼' 이날 것은커녕 울지만 않으면 다행이며 집 안에서도 10분을 편히 앉아있지 못한 채 손에 물 마를 날 없고  눈에도 물 마를 날 없는 더 세차게 부지런해야 생존할 수 있는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이지만.



완벽히 맞닿은 이 시절의 비극을, 비극이 아니라 그저 통과하는 성장기라고 애써 생각하면서 견디는 중이다. 이동약자가 된 너의 짧은 나들이를 앞으로도 멈춤 없이 되도록 선물할 것이라는 묘한 결심을 해보면서. 우리는 우리 나름의 '평범함'을 다시 만들어내면 그만일 것이라고. '평범'의 정의를 우리 나름대로 다시 해석해 내면 그만일 것이라고.



정말이지 이 사나운 생의 혹독한 시절... 나는 입술을 더 깨문다. 

애를 쓰고 견딘다..... 견디다 자꾸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매일매일 애를 쓴다. 

애를 써서 네가 좋아질 수 있다면. 우리가 우리로 다시 기쁜 희극을 맞이할 수 있다면 


...................



말 줄임표 안에 많은 감정을 묻어낸다.

오늘도 너희들과 하루를 시작한다..... 

살아낸다. 살아내고 싶다. 잘 지키고 싶다.... 너희들도. 그리고. 



매번 무너지고 일어나고 붕괴돼도 일어나려는 나도...



매 순간이 고마운......... 나의 두 사람........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용서해........ 용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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