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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27. 2024

지지 않을 거야...

중심정맥관 시술을 한 정음의 오른쪽 가슴에는 히크만 카테터가 달려 있다. 그래서 마음껏 안아주지 못한다. 사실 안기를 바라는 건 사치다. 만지는 것조차 늘 조심스럽고 방수테이프를 붙여 조심스럽게 방수를 시키고 샤워를 시키는 것도 여전히 손이 후들후들하다. 간단한 물 샤워 후 포비드 요오드 스틱으로 말끔히 소독을 하고 다시 테가덤이나 메딕스로 소독을 시키는 시간도 마찬가지. 언제나 정음의 가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쌍둥이 형제인 훈민을 씻길 때도 괜스레 정음 생각 때문에 나는 자꾸만 눈에 힘을 들이고 만다. 울지 않으려고. 티 내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정말 악착같이... 



뇌종양 환우 커뮤니티에 속상한 소식들을 접할 때면 눈을 질끈 감는다. 같은 진단 같은 병명을 가진 환우들의 좋은 소식들은 희망과도 같지만 반대로 순식간에 무너지게 만드는 절망적인 현실 소식도 종종 들린다. 무슨 바람에서인지 오랜만에 들른 카페의 글 몇 개는 주말 아침부터 마음을 쿵쾅거리고 계속 울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재발과 전이가 무엇보다도 뇌종양 환우에게는 치명적이고 좌절하게 만드는 이벤트인데. 그리하여 먼 하늘로 소풍을 떠난 다른 환우들의 소식을 들었던 나는 애써 아침부터 쿵쾅거리는 심장과 뜨거워진 눈시울,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다스리면서 나는 내내 중얼거린다. 



지지 않을 거야...

지지 않을 거야... 




종양에 지지 않고 싶다.... 질 수 없다. '절대'라는 부사를 넣어서 '질 리 없다'라고 확답하듯 용기 내어 말하고 싶지만 정말 솔직하게 나는. 무섭다.... 그냥 무섭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질 리 없어!라고 호언장담 하고 싶다. 그렇지만 반대로 나날이 말라가는 정음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미어지며 좌절감을 느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정음이는 게임을 하면서 다시 일상의 '평범' 함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훈민을 통해 친구들을 전화로 접하면서 같이 게임에 동참하고 다른 9세 아이들처럼 주말에 게임을 하려고 기를 쓰는 아이. 두 사람이 책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풍경. 잠시간 예전의 '평범함'을 되찾는 것 같은 기시감... 


매 순간 너를 생각해... 왜 진작 애지중지하지 못했을까... 



나는 방심할 수 없다. 정음의 뇌간에 유착된 종양이 지금 어떤 크기로 있는지. 어떤 부위에도 그놈이 언제 어떻게 이동할지 모르기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할 예정으로 이제 우리는 무더운 여름... 장마의 시작과 끝 그리고 여름 내내 새벽같이 양성자 센터로 출퇴근하면서 치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당장 내일모레부터 곤히 잠든 정음이를 깨워야 해서 속이 타고 미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면서.



진작에 왜 애지중지하지 못했을까. 정음이가 원하는 것과 듣고 싶은 말은 정말 큰 것이 아니었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 편의점에서의 간식. 게임머니.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넌 혼자가 아니라는 용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사랑받고 있다는 행복감....



나는 바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매일 다짐하면서 매일 매 순간 정음이를 더욱 애지중지하려 애쓴다. 훈민도 마찬가지. 아이들에게 진작에 더 많이 말해주지 못한 말들. 더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 일상에서 다분히 더욱 실천하고 움직이려 애쓰는 요즘. 



잘 먹어줘서 고마워. 

엄마의 소중한 아들.

사랑해 고마워... 



사진을 찍으려 할 때 다정한 너는 내게 손을 흔들어 준다... 너무 다정하고 친절한 나의 선생님.... 정음. 




이런 말들을 좀 더 많이 해 주었더라면. 좀 더 아껴주었더라면. 좀 더 애지중지했더라면. 좀 더 세심하게 관찰했더라면. 그 망할 놈의 종양이 우리 정음이에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어째서 우리 정음이 일까. 어째서 그놈은 우리 아이에게 붙었을까. 



지지 않을 거야...



매일매일 속으로 외친다. 차오르는 눈물을 연신 흘리다 그치다 반복하면서 외치고 또 외친다. 정음아 우리는 지지 않을 거야. 지지 않고 있어. 잘하고 있어... 곧 시작하는 양성자 치료도. 후에 오는 항암과 조혈모세포이식까지도. 쭉쭉..... 우리는 잘할 거야. 



나는 여전히 나를 용서할 수 없지만....지지 않을 것이다. 그 종양.  퍼지지 않게. 다시 생기지 않게 

지킬 것이다. 꼭 지켜야 한다....꼭 지켜야 한다. 이 말을 중얼거리다 말미에 이 생각으로 늘 마무리를 짓게 되고 만다. 



사실은. 정음이가 날 지켜주는 것 같다. 

내가 널 지키는 게 아니라 네가 지키는 같아... 

정음아..........지지 말자. 기특하고 씩씩하고 용기 있는 너는. 



절대 지지 않을 거야. 

이겨줘... 지지 않아 줘... 넌 이길 수 있어. 우리는 할 수 있어. 

지지 않을 거야... 우리 정음이는 지지 않을 것이다.... 



날 지켜 주는 두 사람.... 내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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