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 세포 채집 이후 (~7/14일까지의 기록)
2024년 7월 10일. 3박 4일의 조혈모세포 채집을 위한 입원을 무사히 마쳤다. 다행히 정음은 이틀에 걸친 조혈모 세포 채집기에 적당량의 기준치를 채운 듯, 입원을 늘리지 않고 그대로 퇴원을 마칠 수 있었다. 퇴원 날도 우당탕탕이었다. MRI를 연속으로 이틀에 걸쳐하고 나니 정음 머리에 들어 있는 '션트'가 기준 숫자에서 약간 틀어져 있었다. 외과 의사 컨펌 후에나 퇴원을 할 수 있기에 우선 조급히 예약했던 장애인 콜택시 취소시키고 X레이 찍고 신경외과 들러서 션트 조절하고 다시 콜택시 배차 예약 하고 기다렸다가 정문에서 탑승하기까지.
이 모든 걸 '혼자' 했다. 아니 '해냈다'라는 표현이 적합할까. 서서히 혼자 모든 걸 해결하는 게 익숙해지려 한다. 그래야 하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내가 새삼 신기하고 또 마음이 한결 놓이기도 한다. 암환우가 된 정음이를 지켜나가는 근육이 내게도 생기는 것 같아서. 여전히 눈물은 마를 새 없고 마음에선 피눈물이 나기 일쑤인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정음은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천천히...
퇴원할 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정음이 이제 방학이다. 다음 치료까지 열 안 나게 조심하고 잘 먹고 푹 쉬고 걷는 연습도 하고 보자.'
방학...
정음과 5월부터 지금까지 달려왔다.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 진단을 급하게 받고 수술을 두 차례 받고 병원을 옮겨 전원을 하고 항암치료를 바로 시작하고 조혈모 채집을 하고 양성자 방사능 계획을 잡고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시도 쉬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앞에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모든 변수를 염두에 둔 채로. 주 간병자이자 보호자인 나로서는 매 순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앉아본 적이 없다.....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정음의 기침소리. 정음의 '찡' 하는 짜증 내는 목소리. 정음의 '엄마' 하는 목소리. 정음이가 주사를 맞을 때 찡그리는 얼굴. 너의 신음 소리, 인기척, 모든 몸짓 하나하나.... 그 모든 것에 나는 움찔하고 긴장한다. 웃음이 나지 않지만 웃으려 노력한다. 애써 웃으려 하다가 눈물이 터지기 일쑤다.
쌍둥이는 만났다. 정음은 훈민을 늘 오매불망 기다린다. 훈민은 학교를 전학하고 다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정음이가 암환우가 된 이후 우리 네 가족은 그간의 모든 일상생활 패턴을 완벽히 바꿔야 했다. 그래야 '생존'과 '생활'이 가능하기에. 훈민도 정음도 각자의 위치에서 부모가 모르는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게 새삼 보였다.
변하긴 했지만 우리 가족에겐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일상이다. 정음은 학교에 가지 못하지만 대신 집에서 요양하며 다음 치료를 기다리며 쉬고 있다. 훈민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중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위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모든 걸 '더욱' 바치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아이들은 나의 사랑스러운 고용주였다. 그러다 정음이를 간병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내 남은 인생은 모두 이 아이를 위해 살아내고 있다. 시간 에너지 그리고 존재 자체를. 나의 두 사람에게 헌사하면서도 생각한다. 정음이가 나을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그런 심정으로 살아내는 중이다.
내내 정음을 보다 보니 첫째를 놓치고 지냈고 여전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 마음이 쓰리다. 다만 이렇게 잠시 집에 오래 함께 있을 때 최대한 챙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첫째를 좀 더 각별히 챙기다 보니 나의 일은 두 배 아니 세 배 그 이상이 되어 버렸다. 아이를 오랜만에 관찰하다 보니 첫째가 부쩍 변했고 자랐고 성장해 나간다는 걸 일상 순간순간 관찰하면서 느껴지곤 한다. 도리어 나보다 더 어느새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인 것만 같은 첫째를 보니 이상하게 뭉클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다. 마음의 품이 못난 부모들보다 더 넉넉해진 아이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정음이는 묘하게도 책상을 기웃거린다. 훈민은 넌지시 정음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도란도란 대화를 건넨다. 두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연신 꾹 참으면서 매일 궁리한다. 오늘은 뭘 해 줄까. 토하지 않도록 잘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지켜보면 절로 힘이 난다. 너희들의 존재는 나를 살린다. 너희들의 모습 하나 하나로부터 울고 웃을 수 있다...
다음 주부터 장마철 시작인지 비 소식이 있다. 첫째와 함께 새 학교 적응기에 등하교를 시키고 와서 정음을 돌본다. 좌욕을 시키고 가글을 시키고 기타 수시로 끼니와 간식을 챙기면서. 토하면 토를 치우고 응가를 하면 응가를 치우고 아이 몸과 마음을 일거수일투족 관찰하고 관리하면서. 그런 일상. 그럼에도 병원엔 열이 나지 않는 이상 가지 않는 우리들의 치료 방학기... 그것도 다음 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방학이 지나고 나면 장마철엔 긴긴 양성자 방사능 치료의 시작이다.
비와 함께 시작될 듯한 우리의 다음 치료.
사실 그 치료는 정음과 나뿐 아니라 남은 첫째 아이도 조력하고 있는 것이리라. 엄마 없이. 잘 지내주는 아이.... 곁의 엄마를 걱정해하는 철이 든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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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남겨진 숙제가 많다. 보험회사에 반격(?) 을 가한 이후 다시 재심사에 들어갔다 하니 그 결과가 나오기전후로 추가 대응을 해야 함에 매순간 스트레스가 은연중에 쌓이는 중이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하고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지려는 순간이 잦아졌다. 그 뿐일까. 두 아이 챙기는 건 언제나 엄청난 일들이 작고 크게 많았지만 거동이 쉽지 않은 아파진 아이를 더욱 챙기는 건 그것의 한 다섯배 정도의 가사노동이 소비된다. 청소 빨래 식사 기타 감염 주의 열체크 등등등. 일반적인 살림에서 좀 더 챙겨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겨 버려서 정말이지 더욱 쉴 세는 없고 쉬어서도 안되는 일상을 견디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걸 받아들이며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매 순간.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순간 덕분이리라...
잘 지내자. 우리의 방학.... 잘 지내야 한다. 매 순간. 후회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