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Jan 17. 2018

내 편 하나쯤이란 비겁한 생각

비겁해도 바랐나 봐요. 당신이 세상에 유일한 내 편이기를..  

편지 다섯)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오만했어요.. 


엄마.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당신 같았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굳이 따지려고 든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제겐 없었죠. 다만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나는 무슨 일 있을 땐 꼭 당신을 찾았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와 줄 사람. 무슨 짓을 해도 날 믿어줄 것 같은 사람.
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단 한 사람 '내 편'  말이에요.  


엄마. 한 해 두 해 나이라는 것을 먹어갈수록, 엄마에게 말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해요. 

 특히 살면서 답답함이나 불편함이 쌓이는 걸 맛보게 되면요. 그럴 때마다 애석하게도 난 당신께 숨기는 것도 하나 둘 점점 생겼어요. 내가 느꼈던 불편한 얘기를 바로바로 정면으로 마주하며 당신에게 표현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서야 말할 수 있는 것들이요. 그때 당시의 그 감정들을 바로 엄마에게 토로하기엔 왠지 미안했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감사하고 또 다행인 건, 스쳐 흘리면서 살짝 공개했을 때, 엄마는 알아차리셨던 것 같아요. 이사를 가게 된 이유가 어쩌면 내가 말한 것들을 엄마가 알아차리셨기 때문이었을까요? 


초등학교 막 들어갔을 때였던 것 같아요. 우리 동네라는 기억이 시작된 그곳.   

 이제서 말하지만 엄마. 그때 처음으로 '이상한 무서움'을 겪었던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돌이켜 생각하면 큰 일은 아니었으니까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일은 아니었답니다. 다만 여자로 살아가면서 흔히 있는 일을 좀 일찍 맛보았다고나 할까요. 그게 성추행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죠. 성추행의 범위(?) 가 여전히 의문이지만 아무튼. 여성이라는 젠더로 태어나 무섭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건 분명 유쾌한 삶의 에피소드는 아니죠. 그저 시간이 흘러 담담히 기억 속에서 잊힐 뿐. 다만 이렇게 글을 쓰다가 갑자기 생각났을 때 여전히 기억하는 걸 보면, 마음 언저리 깊은 곳에 남아있는 불편한 찌꺼기 같은 것이랄까요. 


혼자가 되면 되게 편할 줄 알았는데, 막상 당신과 떨어져 지내면서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사람은 겪어야 아나봐요.


 당신이 퇴근할 때까지 집에서 놀았어야 했어요. 

 친구 따라 나가지 말았어야 했나 봐요. 근데 그 나이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나 있겠어요. 늘 노는 여자 친구였고 우리가 늘 그랬듯 고무줄 할 줄 알고 나갔을 뿐이죠. 옆집 할머니에게 우리 집 키를 맡겼던 것 같아요. 그렇게 따라나섰고 고무줄 할 곳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때 그 오빠가 불렀어요. 엄마와 나를 보면 인사를 주고받던 그 사람이요. 그가 그땐 아마 중학생쯤 되었던 것 같아요. 내 기억엔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던 사람이었으니까 아마 그게 교복이었겠죠. 근데 당신 없이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이었죠. 고무줄 할 넓은 곳을 알려줄 테니 따라오라고. 따라갔는데 돔 모양의 약간 천막이 쳐진 공사장 같은 곳이었나. 아무튼 거기에 우리를 불러들였어요. 뭔가 이상했는데 전 따라 들어갔어요. 신기했거든요. 그런 모양의 공간을 본 게 처음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바보였던 것 같아요. 


 들어갔는데 그 오빠가 잠시 없어지던가 싶더니 친구와 제 앞에 다시 마주한 그는 갑자기 상반신이 나체인 채로 우리를 보고 있었어요. 2명이었나 3명이었나. 아무튼 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여럿 있었고. 뭔가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때 아무튼 '이게 뭔지 아냐' 라며 바지도 같이 벗으려고 했던 건 분명히 기억해요. 거의 막판엔 팬티만 입고 있었으니까. 이상했죠. 옷왜 갑자기 저렇게 옷을 벚어젖히는 걸까. 그 모습이 좀 웃기기도 하고 아무튼 이상한 낌새를 그때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아니다 싶었던 거죠. 딴 때 같았음 뻑 하면 우는 제가 이상하게 그땐 울음도 안 나오더라고요. 다만 심장이 뭔가 무섭게 뛰었던 것 같아요. 


 친구와 제가 당황해서 그곳을 빠져나오려 했었고요. 엄청 크게 엄마야! 하고 소리 지르면서 마구 달렸던 것 같아요. 뒤도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렇게 헉헉 대고 모르는 길을 막 달려 나가면서 다행히 친구가 길을 알고 자기 집을 찾아갔었죠. 그렇게 친구 집에서 잠시 있었고 엄마가 찾아와서 난 집에 돌아갔었죠. 핸드폰도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연락이 닿을 턱이 없없지만 다행히 엄마는 내 친구와 내가 가는 장소를 꽤 잘 알고 계셨던 거겠죠. 얼마나 다행이에요 엄마. 아마 어쩌면 그때 그가 우리를 붙잡으려 쫒아왔었다면 지금 아마 저는 이렇게 글을 쓸 여유(?)와 평범한 삶을 즐기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아요. 씁쓸해지죠. 


"어디 갔었어. 얼마나 찾았는데" 
"그냥 정아랑 고무줄.."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데. 앞으로 엄마 오면 말하고 나가. 알겠지?"
"응 엄마. 근데 엄마. 그 오빠 옷 안 입고 나랑 인사했어. 저기 신기한데 있어. 커다란 공 모양이야 천장. "
"뭐?" 
"엄마 그 오빠 좀 이상해. 되게 춥게 옷 다 벗었어. "


 뭔가 앞뒤 안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를 했어도 대충 다 알아차리셨던 거겠죠. 

 당신이 척하면 착이라는 눈치 백 단이라는 건 점점 커가면서 알게 되었으니까. 그 이후에 그가 엄마와 나를 동네에서 마주했을 때 엄마가 무섭게 노려보면서 그의 엄마와 싸웠던 기억도 나고요. 결국 우리는 이사를 갔고요. 그 일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난 그와 더 이상 마주할 일이 생기지 않았어요. 차단된 셈이죠. 


중학생 때는 또 이상한 전화를 받았었잖아요. 그건 정말 선명히 기억해요. 

 세상에 별 미친놈이 정말 다 있구나 싶었다니까요. 왜 바로 끊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런 이상한 소리를 듣고도 지금 생각하면 내 성격(?) 상 시원하게 '니건 대단하냐 미친놈아' 라며 욕 한 바가지 걸쭉하게 퍼부어 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채 그저 울먹이며 엄마를 또 찾았던 게 영 아쉬워요. 이제는 제법 커서 욕도 찰지고 걸쭉하게 잘 받아쳐낼 줄 아는 여자로.. 스스로 방어하고 제 목소리도 조금은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데 말이죠. 그렇죠 엄마..


"여보세요?"
"... 학생 맞죠? 중 1이고.. 아직도 거기 사나 보네"
"네. 전데요 누구세요?" 
"거기 많이 자랐겠네. 그 나이면. 가슴도 좀 커졌니?" 
"네?" 
"아저씨가 말이지." 


탁 하고 끊었어요. 엄마는 제 말을 듣고 집 전화번호를 당장 바꾸셨죠. 역시 엄마 더워요. 속전속결. 

어쩌면 내 편인 엄마와, 그런 엄마에 의지했던 저, 우리 두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세상을 살다가 때로 마주하는 더러움과 불편함을 '피하는'것뿐이었을지도 모를 테죠. 


"엄마..."
"왜 울어? 왜 그래? 전화 엄마 바꿔봐." 
"끊어졌어."
"울지 말고, 무슨 전화였어." 
"내 가슴이 커졌냐고 물었어." 
.... 어디서 미친 잡것이 전화질을 했구나. 괜찮아. 괜찮아. 


불편함에 같이 편 들어준 당신이 고마웠지만, 그 '내 편' 자체가 언젠가부터 불편할 때도 결국 다가오더라고요. 

 내 편이 생겼다는 든든함은 역시 이런 다크 한 치부 같은 것들을 삶을 살며 공유하는 사이 속에서 더 끈끈한 무언가가 생기는 걸 테죠. 제가 그랬듯. 당신이 그랬듯이. 


 그런데 엄마. 우리 둘이 뭐 언제라고 맨날 좋았겠어요. 늘 그랬듯 앙숙일 때도 있었죠. 아마 피크 친 건 제가 살이 심하게 쪄서 스스로 심각한 스트레스였을 때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한 스무 살 이후였던 것 같아요. 엄마는 여전히 엄마의 역할에 충실히 살아오신 탓에 때론 내버려두지 않으셨죠. 다이어트하는 딸에게 먹고 싶지 않은 것들을 계속 강요하셨고, 연애하고 돈 벌고, 공부하고 봉사하고 그런 온갖 핑계로 늦게 들어오면 너무 늦는다고 연락하고 다니라고. 그 모든 게 당시 제겐 자유에 대한 핍박(?)처럼 어리게 받아들여서 당신에게 많은 상처되는 말을 주고받았죠. 엄마는 가족을 위한 사랑이라 여겼던 것들이 제게는 사랑이라 느껴지지 않았나 봐요. 물론 지금에서야 그때 내 말과 행동들에 깊이도 없었고, 반대로 당신도 점점 독립적인 '나'가 되려 세상과 부딪히려는 딸을 대함에 여러모로 서툴렀던 거죠. 


'내 편, 네 편'이라는 틀 속에서 너무 서로 생각한 나머지, 서툴렀던 거겠죠 
엄마에겐 사랑이, 나에겐 자유의 억압과 강요되는 잔소리로.


"내가 딸이 있음 뭐해. 네 년이 내 편이 아닌데"
"그만큼 들어줬음 됐잖아. 아직도 안 됐어? 내가 언제까지 엄마 말만 듣고 살아야 되는 건데"
"기지배야 내가 너 위해서 이런 말하지 나 위해 해" 
"내가 엄마처럼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하고 집안일하고 일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어?"
"다른 집 딸 년들은 사근사근 한데" 
"그럼 다른 집 딸년이랑 사시든가" 
"사나운 년."
"하여튼 좀 잘해주려고 해도 잘해줄 수가 없어 짜증 나 진짜. 안 먹어! " 
"줘두 지랄이야."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이라는 생각 자체가 어쩌면 오만방자했던 것 같아요. 

 엄마도 감정이 있고 생각할 줄 알고, 엄마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에 불과했을 텐데 말이죠. 식구들 챙기느라 본인 감정 감추고 살고 누구 편들어 주느라 오히려 본인 불편함도 표현해내지 못하고 참고 또 참고. 그러다가 한 번씩 터지면 그 터지는 것이 과거사부터 나오는지라 1절부터 4절까지 구구절절 읇퍼대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신.. 이제야 좀 이해할 것도 같아요. 정말 저는 이제야 말이죠.. 항상 이해가 되는 건 왜 시간이 지난 이후일까요. 이전에 알았더라면 아픈 말을 좀 덜 했을 텐데.


당신이 내게 '엄마' 태어났으니깐 내 비위에 맞춰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 주세요 라는 비겁하고 못되고 나약하고 치졸한 생각이 제 마음속 깊숙한 곳에 은연중에 뿌리밖혔었나봐요. 엄마가 바라 마지않고 내게도 로망인 다정한 모녀 관계는 어쩌면 그 '내 편 네 편'이라는 쓸데없는 프레임으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끝이 나는 대화들이 있었던걸 보면 말이죠. 그러니 이상적인 모녀관계는 어쩌며 각자의 세계를 인정하되 다만 곁에서 지켜봐 줄 줄 아는 것. 손 내밀 때 받아주고, 줄 수 있을 때 사심 없이 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두 사람 사이 연결될 때 진짜 내 편이 탄생되는 거겠죠. 


내게도 손 내밀어 주면 좋을텐데.... 늘 잡아주기만 했잖아. 좀 더 내밀어봐요. 이젠 그 손 잡아줄 단단함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자기중심적인 일방통행으로 '내 편'을 만들다가,
편들어 주는 사람이 상처받게 되기도 한다는 것.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그래도 엄마. 애석하게도 저는 여전히 제멋대로 당신이 늘 '내 편'이라는 무기를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어요.

 사람이란 무릇 치이고 깨지다 보면 숨고 싶고 내 편들을 찾아서 기대고 싶어 지잖아요. 물론 진정으로 기대야 하는 대상은 언제나 기승전'나 자신'일 테지만요. 여하튼 세상에 내 편 하나 여전히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때론 힘이 쭉 빠졌어도 괜찮아지곤 해요. 다시 일어나서 막 뛰지는 못할지언정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하거든요. 


안아줄 수 있는 거리에 있을 때 있는 힘껏 사랑하며 지내요. 엄마. 사람들은 그래야 하잖아..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내 불편한 이야기들을 오롯이 다 받아준 내 편이었던 당신이, 좀 더 당신의 불편함도 더 표현하며 지냈음 해요.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이 느꼈을 내가 모를 불편함들. 제멋대로 이야기하고 상상하길 좋아하는 당신의 딸은, 여전히 나약하고 여려서. 말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모르잖아요. 모르니깐 다만 어김없이 한쪽에선 엄마가 안쓰럽고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부풀어 올라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게 될 테니까. 그러고선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게 될 테니까요.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내가 힘들어서 SOS 쳤을 때만 당신을 찾고 그러지 않을 땐 세차게 내빼버렸던 내가 미안했다고. 


이제는 차마 당신에게 사랑한다고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다정하게 이 말 한마디는 건네주고 싶으니까. 미안했다고...


엄마가 이젠 엄마 당신의 편이기를 바라요. 그리고 나도 좀 더 내 편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 둘은 서로의 편이 여전히 되어 주기를. 우당탕탕 했어도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처럼.. 

작가의 이전글 삶의 가이드라인을 잃었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