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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31. 2018

널 언제나 지켜보고 있어.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란 아마 이런 것들일까요 엄마..

편지 여덟) 그래요. 최소한 내가 구원을 바랐을 때 당신은 날 지켜보고 있었죠.


엄마. 아까 오후에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뭘 찾으려고 서랍을 열었는데, 당신이 준 편지를 발견했어요. 

 아마 2주 전쯤 쌍둥이들의 두 돌 기념 편지였던 것 같아요. 왜 집에다가 보관을 안 하고 회사에 가지고 다니냐고요? 네. 사실 당신의 편지는 이것 말고도 꽤 있답니다. 회사의 개인 캐비닛 두 번째 서랍을 열어보면 말이죠. 


 오늘 같은 날 때문에 보관해 뒀나 봐요. 

 회사에서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힘이 쫙 빠지는 순간에 읽어보려고. 그리고 힘 내 보려고 무의식 중에 하나 둘 당신이 준 편지를 가지고 와 버렸나 봐요. 편지를 다시 읽으면요. 여전히 처음 읽었던 느낌이 살아 있어요. 그 느낌이 그냥 참 좋아요. 여전히 말이죠. 때론, 아니 자주 눈물이 나기도 하고요. 아마 열 번이면 아홉 번은 당신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저는 눈물을 흘리곤 해요. 분명 그리 슬픈 이야기가 아닌 일상의 메시지와 응원의 마음이 담담하게 적혀 내린 문장들인데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어요.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단 생각에. 그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 느껴져서..


 짓밟히고 더럽혀진 잠시 동안의 부정적인 마음의 오물들은 바로 당신의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장의 A4 용지 덕분에 씻겨져 내려가곤 해요. 누가 보면 담담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제게는 또 대단한 사랑을 이미 충분히 받고 있단 느낌이어서... 아마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이런 건 아마 저만 알 테죠. 사람이란 무릇 자신의 세계 안에서 경험하고 체득한 것들을 바탕으로 사랑이든 진심이든 각자 제각각 해석해 낼 테니까요. 내가 그랬고 당신이 그랬듯이. 


오늘 발견한 그 편지의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써져 있었어요. 


"내 딸, 기억해라. 널 언제나 지켜보고 있는 엄마가 있다."


엄마. 사실 '죽음'이란 키워드가 제 머릿속에 아주 선명히 박히기 시작한 무렵의 기억이 떠올라서. 

 오늘은 아무래도 이 편지를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 날이요. 엄마가 운동장으로 혼자 그냥 잠깐 바람 쐬고 오겠다고 나가려는 저를 결국 따라왔던 2년 전 여름밤. 당신은 짐작하셨던 걸까요. 24시간을 뜬 눈으로 지내야 하는 생활의 연속과 그 쌍둥이 육아생활이 참 고돼서. 더군다나 바보 같이 철저하게 혼자라는 생각과 더불어 끊이지 않은 터널을 걷고 있다는 우울감의 극치, 자존감의 상실, 그런 모든 부정적인 어리석은 악감정이 삐뚤어진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욱하는 심정에 사실 반 미쳐서 나갔었다는 사실을.. 


그래요. 엄마. 당신도 설마 설마 하셨겠지만 저도 정말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사람이 반 미치다 보니 그렇게도 되더라고요. 차도에 무심결에 뛰어 들려했었던 제 등짝을 사정없이 때리며 절 꼬집어 준 당신은 절 보고 울고 있었더랬죠. 저도 덩달아 울었더랬고. 바보 같은 두 여자는 그렇게 해프닝 아닌 해프닝을 경험해냈죠. 그게 벌써 이년 전의 일이라니. 엄마. 믿어지지 않지만 이게 감사한 현실이네요. 이렇게 버젓이 살아서 그때를 우습게 생각해 내고, 아이들은 자랐고, 상상 외로 나는 지금 정말 잘 살고 있고. 네 정말 잘 살고 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채 뭐 그리 사는 게 힘들었다고... 그렇죠 엄마. 다 지나간 일인데 말이죠. 그땐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래도 엄마. 그땐 그랬었나 봐요. 살다 보면 늪에 빠진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요. 

 세상에 버림받고 배신당해서 외로움에 치를 떨며 늪의 바닥까지 가라앉는 시간. 엄마도 있었겠죠. 아니 당신은 저보다 더 숱하면 숱했겠죠. 말씀 안 해 주셔서 그렇지. 제법 알 나이가 되었나 봐요. 엄마. 제가 그때 그랬나 봐요. 내게 남은 건 죽음밖에 없다는 생각이 밀려오는 순간이요. 그날이 그랬고, 그래서 평생 없었던 일처럼 묻어두고 싶었는데. 이 년이 지나서 엄마의 편지 마지막 구절을 보자마자 갑자기 사무실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육아 같이 해내는 (여전히 지금도 그러하나) 그 지옥 같은 천국의 시간이 생각나다가 그 날 그 시간을 결국 파헤치고 말게 되네요. 어리석게도...


왜 잊었을까요. 당신이 있다는 걸 왜 잊었을까요..기억했다면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어리석은 생각 안 했을텐데.


당신이 날 지켜보고 있다는 그 고운 마음. 왜 그걸 가끔 잊고 살까요. 바보 같게도. 


엄마. 저는 그때 사실 정말 죽을 결심을 잠깐 했었나 봐요. 솔직히 아니라고 말 못 하겠어요. 

왜 사람들에겐 때론 묻으려 해도 묻히지 않는 상처가 있기도 하잖아요. 묻고 싶은 상처일수록 어느 순간 생살을 에는 아픔으로 올라오고야 마는 것 같은 느낌일테고요. 그날, 차도에 뛰어 들려다가 당신에게 저지당했을 때 내가 느껴야 했던 그 뜨거운 아픔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심장을 움켜잡고 흔드는 듯 가슴이 옥죄어와요..  


그래도 꽤 잘 견뎌냈죠 엄마. 그 이후에 정신을 좀 차린 듯도 싶어요. 한참을 두 여자가 미친 사람들처럼 서로 붙잡고 울고 불고 하다가 둘이 손 잡고 집으로 들어오던 날. 겨우 잠든 아이들 옆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아빠의 피곤이 쌓여있는 까무잡잡한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본 순간. 정말 후회하고 또 후회했어요. 두 분에게 못할 짓 한 거 같아서. 정말 못할 짓 많이 하는 평생 죽어서 다 못 갚을 죄만 저지른 큰딸인 것 같아서.. 


그렇지만 반대로 그 사건(?) 이후 전 흔들림 없이 단단해지고도 싶어 졌나 봐요.

그런 내 무의식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아이들과 묵묵한 신랑을, 내 삶의 고된 짐덩어리로만 보지 않고 최대한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려 더 많이 애썼던 것 같아요. 


날 바라 보는 모든 친정 식구들의 눈빛에 먹먹함이 담겨 있는 걸 알아챘으니까요... 


그때 울면서 내뱉은 감정들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당신 가슴에 칼날이 되어 꽂혔을지. 

 그래도 어쩌면 당신은 그때 그런 순간들조차도 나를 외면하지 않고 지켜봐 주었죠. 당신뿐 아니라 아빠도 그러셨을 테죠. 다만 표현하지 않으셨을 뿐.. 


사는 건 정말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사실 가득해요. 

 그렇지만 그래서 또 삶인 거겠죠 엄마. 때론 힘들었지만 때론 또 행복했었던 그 순간들이 같이 찾아오니까. 다만 그 행복이 좀 멀어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드디어 찾아왔을 때 그 기쁨이 두 배 아니 열 배 이상의 것이 되는 것도... 


그 때 까진 모르는 것 같아요. 세상에 또 꽤 손을 내밀면 내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아파봐야 아는 것 처럼. 


엄마. 전 요새 그때에 비함 열 배 아니 백 배 이상은 기쁜 삶을 꾸려 나가고 있어요. 

 최소한 오늘, 회사 사무실에서 당신의 편지를 보고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오는 저를 발견했으니. 나를 지켜봐 주는 이가 버젓이 살아 있다는 오늘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리고 반대로 얼마나 미안한지도... 그러니 그 보답으로 당신 앞에서 이젠 울 자격조차 없는 딸이기에 대신 전 당신을 볼 때마다 웃어주고 싶어요. 요즘 저 꽤 많이 부드러워졌고, 또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도 좀 생긴 것 같지 않아요 엄마? 난 그런 거 같은데... 그렇지만 웃으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일고 있는 죄책감과 미안함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그 날 내가 누군가의 구원을 바랐을 때. 그러나 행동은 정 반대의 극도로 치달려갔을 때 

 그때 엄마가 날 지켜봐 주었고 지켜 내었고, 그래서 시간이 다시 흘러 이렇게까지 되기까지. 어찌 보면 모두 당신 덕분이에요. 엄마... 그 날 정말 고마웠어요. 


당신이 날 지켜봐 주었던 것 처럼, 나도 누군가를 지켜내고 또 지켜봐주고 싶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


만약 지금 누군가 내게 소원이 있냐고 물어본다면요. 

 

당신과 내가 동시대에 '살아있는' 지금 이 시간들이 계속해서 조금 더 오래가길.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조금 더 오래가길 바랄 뿐입니다.


지켜보고 싶어요. 나 또한 당신을.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당신의 그 진정성 깊은 담담한 순도 100퍼센트의 사랑에 얼마나 버금갈 진 모르겠지만. 저도 감히 이 곳에서 당신에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나도 내가 모르는 엄마의 오늘, 그 순간을 지켜보고 싶고. 여전히 그립게 지켜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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