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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05. 2018

뜨거워도 결국 식어요. 그게 사랑인 거죠.

그래도 고백하며 살고 싶나 봐요. '보고 싶어, 사랑해'라고... 여전히

편지 아홉) 그럼에도 고백하며 살고 싶나 봐요. 결국 남는 건 '사랑' 이라며.



엄마. 오늘은 당신이 여전히 가끔 궁금해하셔서 '왜'를 묻곤 하는 그이와의 사랑을 이야기해 볼까 해요.

 딸이 어떤 남자를 만나서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는지. 뭐 그런 다 지나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나누며 이별을 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여태껏 살아오면서 사실 당신과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눈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하물며 결혼하기 전까지도 말이죠. 형식적인 상견례를 치르고 그 와중에 당신과 좀 더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했더라면..이라는 약간의 늦은 후회를 남겨 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이상하게도 당신에겐 제 사랑을 숨길 때가 많았더라고요. 너무 서운해하진 마시길요. 오히려 당신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사랑의 대상, 이유, 당시의 마음과 같은 것들을 굳이 표현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요. 다만 사랑에 빠진 저 혼자만의 일기에 그 시간들을 적어 내리며, 기록으로 훗날을 기억하려 했을 뿐..


사랑에 빠지면 설명할 이유가 없어져요.
애쓰지 않아도 어느새 마음이 앞서 나가버리니까...  


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그게 뭐가 됐든 여전히 두근거리며 진한 그리움이 남아 있어요.

 엄마. 이건 당신에 비해 아직 제가 심리적으로 젊단 증거 혹은 아직 덜 무뎌졌단 반증일지도 모르겠어요. 당신 '사랑'을 물어볼 때, 그런 거 잊은 지 오래라 하며 웃고 넘기는 당신이었으니 말이죠.

누군가와의 지나간 사랑, 그리고 현재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땐 이상하게 어딘지 모를 그리움과 애석함도 함께 묻어 나오는 요즘입니다. 뚜렷한 문장으로 형용할 순 없을 테지만, 결혼 이후의 사랑을 다시 재해석(?) 하며 살아도 보니, 저도 역시 나이를 먹어간다는 반증일까요.


생화가 왜 예쁘냐면요 결국 시들고 지니까... 그래도 생화가 조화보단 예쁘잖아요. 그러니 생화처럼 사는 것, 의미 있죠.


엄마에게 아빠라는 생화어떤 식으로 시들고 또 다시 재탄생되었을까요.

 이 질문에는 사실 '사랑은 변한다'라는 전제가 있네요. 제가, 지금의 그이와 만나는 그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둘 사이는 꽤 변한 것들이 많으니까요. 엄마도 이런 과정(?)을 겪으셨겠죠? 아빠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로 살 맞대며 살아가는 그 과정들이 늘 행복하고 기뻐서 날뛰는 연속은 분명 아니었을 테죠. 어느새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뜨거움은 사그라들듯 뜨뜻미지근하여지고, 때론 식어 빠져서 냉기가 돌며,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먹고사는 데 바빠서 혹은 가족들 챙기며 살다 보니 어느새 와버린 이 시간들... 그것도 사랑의 형태로 유지된 면이라면 또 다른 사랑의 한 부분이겠죠? 그렇죠 엄마...


그와 나의 사랑도 변해가나 봐요. 뜨거웠던 건 결국 식어가죠.
그립다는 설렘보다는 익숙한 편안함이 좀 더 커져가는 요즘이에요.


그와 둘만 남고 둘만 보였던 때, 결혼을 결심했던 것 같아요.

 사실 특별한 이유를 굳이 꼽을 수가 없어요. 다만 '누군가 필요했던 그 타이밍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였던 셈이죠. 당신이 그랬듯이.... 그와 그녀. 특별한 우리 두 사람이라는 상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지워지는 순간을 저도 경험해 냈더랬죠.


그와 주고받고 싶은 건 다름 아닌 '보고 싶다'는 한 마디..
분리된 다른 세계에서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느낌 말이에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이와 만나면서 이성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끌리는 마법 덕분에 결혼한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제 인생의 크나큰 비극(?) 이 될 때도 종종 있었더랬죠. 가령 여전히 고백을 주고받기를 바라며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어도 이상하게 그럴만한 마과 여유(?)가 우리 둘 사이에선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아요. 서바이벌이라는 생존이 사랑이라는 가치보다 좀 더 앞서서 그런가 봐요. 엄마가 그랬듯이. 물론 생존의 깊이와 치열함은 예전의 당신과 아빠가 겪어내셨을 것보단 덜하겠지만요.


성적으로 그에게 끌리지 않은 요즘이어서 오히려 그것이 때론 뚜렷한 강점이 되기도 하는 요즘이에요.

 그에겐 좀 미안하고 저로선 애석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엄마. 아시다시피 다둥이 육아라는 게 두 배 행복한 건 말 뿐이며, 그 고충과 남다른 현실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절대 모를 테죠. 곁의 그이는 다행히 동년배 남자 중에선 육아를 '같이 하는' 편에 속하는 상위 클래스에 속하는 좋은 아빠인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아들 둘이 자랄수록 점점 더 힘에 부치는 저에 비하면, 아이들에게 화 한번 안 내는 그를 보고 있으면 경외심마저 느껴지는 요즘이예요. 다만 이런 커다란 장점에도 불구하고 남녀 간의 '사랑'을 논할 땐, 아니 사랑에 빠진 누군가들을 바라보게 되면 이상하게 마음이 애잔해지고 애석해지는 건 여전하네요. 곁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이를 넌지시 멀리서 바라보는 제 마음도 뜨거웠던 사랑은 어느새 저 멀리, 설렘이라는 것도 일찌감치 달아나 버린 것 같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너무 바보 같죠 엄마..


우린 서로 반지를 끼는 편이 아니지만. 그런 도구로 신뢰를 증명해 내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부부가 어느새 되었나봐요.


지금은 편하고 익숙하고 좋아요. 예전에 비해서.

 밥벌이하고 살기 힘든데 집이라는 안식처까지 무너지면 마음 붙일 데가 없어지고 급기야 몸과 영혼이 급속도로 황폐해지기 마련이잖아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결혼하고 안타까운 몇 개의 사건들을 경험해 내다보니 어느새 급속도로 사랑이라는 뜨거움이 식어지고 그와 싸움이 불거지게 되며 엄마와 아빠까지 달려오셔야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당시의 저는요. 그랬나 봐요.

나보다 상처가 덜 하며 멀쩡해 보이는 그를 보면 외로워지고 괴로워졌어요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괴로움의 동등한 아픔을 겪은 사람이, 그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질투 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나의 상처를 버젓이 다 보여주며 그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바닥까지 드러나는 치부 보였을 때 이 사람이 내 곁에 끝까지 남아 있을까 싶은 바보 같은 생각에 저는 그를, 그리고 나 자신을 끝내 괴롭혀 냈었죠. 날이 선 말을 주고받는 동안엔 감각이 어느새 무뎌지지만, 화해하고 난 뒤에도 그이에게 했던 말이 남긴 상처 때문에 나 자신이 쓰라렸어요. 이혼 얘기를 먼저 꺼낸 것도. 어쩌면 그런 연장선의 극한 감정에서 치닫게 된 것들이었나 봐요 엄마. 당신도 그랬을까요. 엄마도 아빠에게 저도 모르게 뱉은 그 독이 묻은 말에서 나온 치명적인 독이 엄마 자신의 상처 위에 번져나가는 것을 아파했던 것처럼..  


엄마. 그래도 우린 이렇게 잘 지내 오고 있죠.

당신과 나의 사랑은 어쩌면 지금 이런 걸까요. 타오르던 사랑이 식고, 또한 불처럼 번지는 미움도 그렇게 사그라지는 과정을 반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럼에도 좀 더 애쓰고 싶어서 제자리로 결국 돌아오게 되는 것 말이에요. 그러다 보면 변함없이 내 곁의 자리에 제 할 일을 하며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상대가 눈에 들어오기 하는 것처럼. 엄마에겐 아빠가, 나에게는 그가. 어느새 서로가 서로를 부르면 언제 그랬듯이 불렀을 때 상대를 쳐다보게 되는 것 말이예요.


어느새 사로잡았던 서로의 미움은 가시고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밀려오는 것.
두 사람의 특별한 시간에 같은 터널을 지나가며 생기는 또 다른 사랑..  


엄마와 아빠가, 나와 그가 개과천선하며 달라져서가 아니라, 두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오늘은 문득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져요. 같이 살며 먹고 자고 뒹굴고 부대끼지 않았더라면 절대 서로에 대해 지금처럼 많이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아니 아직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생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젠 인정하게 되며, 다만 서로 걱정하는 부분은 애써 잔소리를 해 가며 같이 늙어가는 것... 어쩌면 이게 결혼을 한 이후의 두 사람의 사랑이 흘러가는 과정 중 하나이겠죠. 그렇죠 엄마.


서로가 서로를 보듬아 끌어안아줄 수 있는 상대가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고마운 현실이겠죠 엄마..


 지난주 어김없이 그이와 쌍둥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계기로 갔을 때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사뭇 달라지셔서 놀랐어요. 어느새 아버지가 당신에게 다가와 선뜻 집안일의 도움을 건네고 계시고, 적극으로 손주들과 힘껏 놀아 주려 애쓰시는 모습이 이상하게 짠해서 눈물이 날 뻔할 정도였으니. 아버지도 어느새 변하신 걸까요. 아니면 늙어갈수록 사람이란 변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게 또 다른 아버지가 갖고 있는, 미처 미리 보여주지 못한 그의 진짜 모습들인 걸까요. 뭐가 됐든 그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부쩍 앙상해진 몸을 바라보다가 눈물이 나서 화장실로 들어가서 잠시 세수를 하고 나왔네요.


"아빠가 좀 변한 거 같아... 무슨 일 있었어요?"
"뭔 일은. 내가 아픈 게 심하다 하니까 도와주는 거지. 아빠도 아픈데. 돈 버느라 고생인데. 속상해"
"내가 지난번에 말한 거 때문에 그러신가... "
"망할 년. 그니까 아빠한테 잘해. 나중에 후회 말고"
"응... 미안해. 내가 원체 망할 년이라..(씨익) "


날이 되게 추운 요즘이지만 어제는 이상하게 춥단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당신 두 사람이 나란히 서 계시는 모습이 이상하게 따뜻해서... 고마워서 그랬나 봐요.  


뜨거워도 결국 식는 것. 그게 사랑일 텐데요.
 다시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 또한 사랑이었어요.


그이에 대한 사랑도 예전만큼 뜨겁지 않아요 엄마. 그렇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거죠. 그렇죠?

누가 그렇다고 부디 말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다들 그런다고. 그럼 가끔 외로움에 사무칠 때 덜 외로워질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는 저이기도 하고요. 아프다 하면 걱정을 하고, 오늘은 어떤 점심을 먹었는지 평소의 반찬과 일터의 안부를 묻곤 하니 말이죠. 우리 두 사람 사이엔 이제 '보고 싶다'는 고백은 거의 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어도. 이것도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면 말이죠.. 엄마


전 여전히 사랑하며 살고 싶은가 봐요. 차마 말로 그에게 선뜻 내뱉지 못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담아내어 어떤 궁극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제가 이 말을 누구에게도 아름답게 건넬 수 있는 여전히 뜨겁게 달가워질 수 있는 여자이고 사람이라는 것을.


탁 트여 있는 공간에 단 둘이 남겨졌을 때 그 청량감과 그리움을...여전히 마음에 지니고 있어요.


사랑해. 보고 싶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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