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Jan 29. 2018

더 예민하게 살아 보려고요.

나의 예민함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이 당신이기를...

편지 일곱) 우리의 예민함이 좀 더 드러나길 바라요. 그래서 덜 불행하고 더 행복하다면..



엄마. 오늘은 당신이 듣기에 좀 예민하고 불편한 얘기를 잠시 꺼내볼까 해요. 

 당신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꺼내기엔 차마 눈물이 먼저 나와서 결국 아무 말 못 한 채 그대로 얼음이 되어 버리는 못난 저라서 말이죠. 


결혼을 막상 거행하고 나니 당신이 진하게 퍼부어주셨던 저주가 일상 곳곳에서 터져 나왔어요.

 소위 '땅을 치고 후회하는' 제 모습이 있을 줄이야. 그전까지는 정말 몰랐으니까요. 그렇게 변할 수 있으리라곤.. 이래저래 순탄치 못한 사건들을 1년이 채 되지도 않아서 겪어야 했던 탓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나 봐요. 예상치 못한 유산의 연속, 시부모님과의 잦은 대화 트러블, 돈 문제. 가부장적인 가치관에서 오고 가는 가치관의 충돌에 따른 갈등과 불화. 우울증상으로 동반된 말이 칼이 되어 비수를 꽂는 순간들, 그 날카로운 대화들 속에 못 견디며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튕겨져 나오기 일쑤였던 그와 나.. 내가 죽어도, 땅을 치고 피눈물 흘릴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착각이었죠. 


 그 감정들이 완벽히 치유되지 않고 계속 희미하게 쌓아지다 보니 어느새 선물 같은 축복 둥이들을 낳았음에도 저는 불행했어요. 1년 정도는 특히 안 자고 울어대는 아가들 탓을 해가며, 산후우울증이 남다르게 극도로 거센 탓에 밀도 있는 어둠이(?) 생활 곳곳에서 드러났죠. 주말마다 친정으로 아이 보러 찾아오는 그와 싸우기 일쑤고 급기야 그 감정싸움이 친정 식구들에게까지 전염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더랬죠. 


언제 밝아지나 싶을 정도로..어둡기만 했었더랬죠 그때는.



아이만 잘 키울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을 법한 당시의 그와 그의 식구들. 그 '남들'이 참 밉더라고요. 

엄마도 그랬을까요. 아빠도 아빠의 식구들도. 엄마에겐 그저 다른 성씨의 그 '남들'이 엄마도 참 미웠던 적이 많았을까요. 난 그래도 한 사람 덕에 이 악물고 버텼던 것 같아요. 반대하는 결혼 한 딸년의 최후가 오로지 눈물바다일 수만은 없었으니까. 그러니 내겐 오직 단 한 사람. 당신에게 보란 듯이 잘 살아내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딸년이 병신짓 할 기세로 울고 불고 힘들어할 때 같이 울어주는 한 사람을 위해.. 



나 대신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제 오만한 착각이었어요.
정작 같이 울어주는 건 그가 아닌 엄마라는 여자, 당신 한 사람 말이에요..



 반대로 엄마는 엄마 대신 울어줄 한 사람이 있긴 했을까요. 문득 그 생각을 하면 내가 또 얼마나 어리고 또 어리석었던가 싶은 게, 마음이 이상하게 쿡쿡 쑤셔 옵니다. 


당신이 왜 결혼을 반대했었나 그제야 정신 차리고 똑바로 현실을 바라보게 된 거죠. 

'스스로 돈 벌어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면 여자 혼자 살아도 괜찮다'라고 당신이 흘려서 이야기하셨던 그 말을, 저는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당신도 이미 한 차례 겪어낸 그 길을, 또한 여전히 한 가정의 아내로 지내면서 겪어야 했을 자식에게도 숨겨야 하는 남모를 고충들을 알고, 그 길을 비슷하게 걸어가려 하는 것 같았던 큰 딸을 말리고 또 말리고 싶으셨겠죠. 사랑이 모든 걸 이기게 해 줄 거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나 봐요. 그땐 다만 들리지 않았어요. 


하얀 결혼식 드레스 입고 혼자 노래 부르던 당돌한 신부는 금세 없어졌나봐요 엄마...미안했어요.


내 딸만큼은 나처럼 가시밭길을 걷지 않기를.. 제발 그러기를.  
엄마의 그 목소리는 내게 묻힌 채, 어리석게도 제 목소리에만 귀 기울였죠. 



사실 따지고 보면 신랑이 그리 잘못한 것도 없었죠. 

다만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가정에서 자라난 것이 안타까움이라면 그랬던 거겠죠? 엄마의 남편, 나의 아빠처럼요. 전통 남성 캐릭터를 원치 않게 몸에 지니고 살게 된, 그냥 스치면 여기저기 만날 법한 그런 대한민국 남자상 말이에요. 평범하나 자기 부모와 자기 형제 식구들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고, 이미 잡아 놓은 물고기인 아내에겐 둔하고 때론 무뚝뚝한. 그러니 예민한 저로서는 가끔 상극이었다고나 할까요. 마치 예민했던 엄마와 아빠가 때로 지긋지긋하게 상극이었던 것처럼요. 


그래도 지금이나 그때나 나의 그는 선한 사람인 것은 분명해요. 어떤 기준에서는요. 

이것이 극단적인 비유기는 해도요. 우리 주변에는 이런 개 같은 남자들도 꽤 있으니까요. 바람피우는 게 암묵적으로 당연하듯 할 거 다 해놓고 정작 아내에겐 이혼을 요구하는 남자, 아내를 때리고도 버젓이 회사에 나가서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며 험담을 해대기 일쑤인 직장 남자들, 무능력의 극치에 생계와 아이들은 배우자에게 내동댕이치며 술이 일상이고 때론 욕이 일상어인 폭력 계층에 자리하는 정말 뼛속까지 쓰레기 냄새가 날 법한 나쁜 남자 사람 동물 말이에요. 그러니 내가 같이 살기로 결심한 나의 남편인 그는 이런 극단적인 캐릭터들과는 선명히 대비되니까 당연히 제가 참고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빠랑 우리 시부모님께서 제게 해 주셨던 말처럼요. 


"남자랑 너무 싸우지 말고, 적당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살면 너만 손해야." 


엄마. 근데 저는 이 말이 여전히 슬프고, 또 참 불편합니다. 

아빠는 결국 남자라 그랬던 걸까요. 김서방을 이해해주라는 말씀. 전 그 말이 되게 싫었어요. 또한 일상 곳곳에 이렇게 자격지심이 아니고서야 타인의 사정에 함부로 조언을 끼얹었다가 말이 칼이 되는 경우들 말이에요. 


이상하죠. 왜 하필 요즘 들어 더더욱 제겐 이런 것들 더 많아지는 건지. 무슨 오지랖에 또 별 시답잖은 사명감일지도 모르겠지만, 엄마. 저는 이제 나름 아들 둘의 엄마라는 타이틀 가지 붙게 되고 보니, 예민한 건 어쩔 수 없이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더군다나 남들이 정한 설득되지 못한 기준들과,
문제의식 없이 그냥 묻어가는 이상한 세상의 룰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묻혀서 잘못이 자연스러워지는 그런 것들 말이에요.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꽤 순탄하게 유순한 가정생활을 원만히 꾸려 나가고 또 부모님들과도 잘 지내는 이 와중에도 말입니다. 사실 중학생 무렵이었나... 교복 입고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를 가만 듣고 있었을 때부터, 이상하게 불편한 상황들과 말들은 여전히 마음에 들어 있었거든요. 언젠가 때가 되면 한 번은 얘기해 보고 싶었어요. 그게 지금이 이런 식으로 될 줄이야. 다만 늦든 이르든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말해놓고도 써 놓고도 불편한 건 여전하지만 말이에요. 


은 게 좋은 거라는 할머니나 아빠의 식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사실 사춘기 때 더 이해 안 되는 건 바로 엄마, 당신이기도 했어요. 그들의 그 분위기 잘 맞추어 멋진 제사상을 언제나 그렇듯이 잘 만들어 내고,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과 훈육 담당에 부업으로 살림에 보탬이 되기까지. 무슨 엄마 몸이 10개도 아닌데도 잘만 해내셨죠. 건강이 여의치 않았던 그 순간에도 왜 망자들을 위한 제사를 고수해야 했는지. 여전히 화가 날 때가 참 많습니다. 더군다나 '자기 부모님' 제사상 차려주는데 미안함 아니 위로의 혹은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 줄 모르는 아빠가 참 미웠어요. 그가 아주 가끔 1년에 한 번 정도 나오는 걸쭉한 폭언과 무심한 행동들, 타인들은 잘만 위하면서 엄마를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는 절대 하실 줄 모르는 그 차가운 딱딱함. 그런 것들을 견디며 그럼에도 살아내는 엄마 당신의 모습이 이상하게 슬퍼지고 화가 나는 건 당연했고요. 당신이 순종적인 여자가 아니라는 건 알아요.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얘기하며 바득바득 대드는 예민한 엄마이자 며느리도 바로 당신이었으니까. 내가 봤으니까요. 친할머니와 아빠와 세차게 싸우시던 몇 번의 말다툼을 기억한답니다. 당신 말이 다 옳았어도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그 시대에 그들에겐 아빠에겐 엄마가 다 잘못한 것들로 결론지어졌죠.  다시 부메랑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는 탓에 엄마는 어느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엄마 스스로 변하게 되니 말다툼도 많이 줄어들었죠. 전 오히려 그게 답답하고 또 안타까웠어요. 


엄마 이외의 사람들에겐 평화였겠지만 엄마에겐 진짜 평화가 아니었을 테죠.
엄마의 예민함이 계속 기세 등등하기를 바랐던 건 나 하나뿐이었을까요.. 


혼자 그 많은 무거움과 두려움을 짊어지고 가는 것 같아서 그게 보는 내내 아슬아슬했어요..내 눈엔 그랬나봐요.


여자가 사랑받는 세상? 그런 건 애초에 없어요 엄마.

사랑받고 살아라 라고 제게 그러셨죠. 엄마. 결혼하고 난 후 힘들어할 때 당신이 제게 그러셨죠.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그러니 사랑받고 살고 현명하게 처신 잘 하라고. 근데 엄마. 애초에 여자가 사랑받는 게 아니라 그냥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존중하고 예민한 존재니까 더 각별하게 소중하고 특별하게 대해줘야 하는 거예요. 더군다나 여자가 사랑을 받는다뇨? 반대로 남자가 사랑받고 살아라 라는 표현을 우리가 쓰던가요? 이런 소소한 것들마저 예민하게 제가 굴고 있는 셈일 테지만, 요즘은 더 예민해지네요 엄마.  


무디고 어리숙한 여자에겐 아름다울 미(美)까지 붙여 '백치미'라부르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뭐 이런 시시콜콜한 쓸데없는 사회의 빌어먹을 젠더 구조의 형평성 문제니 뭐니를 따지고 드는 엄마의 딸인 저 같은 여자는 이 사회에서 환영받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엄마. 

계속해서 예민한 귀와 눈을, 말할 수 있는 입을 갖길 두려워하고 싶지 않아요.
무섭지만요. 조금씩 제 방식대로 살아내 보고 싶어 져요. 



까칠한 저는 최근에 아빠에게 쓴소리를 또 해내고 마는 예민함을 드러냈었죠.

남 칭찬은 해도 엄마 칭찬은 안 하며, 남의 집 와이프 건강 걱정은 해도 엄마의 허리 디스크 수술과 각종 종합병원 약을 달고 사는 그 건강을 위로하며 묻지 않는 그 실속 없는 행동들에 일침을 가하는 나쁜 딸년이 되고 말았죠. 있을 때 잘 하시라고. 자식들은 결혼하고 다 크고 지 새끼들 챙기면 절대 부모들에게 얻으려 하면 했지 뭔가 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좀 감정 섞여서 거칠게 말씀드린 탓에 뒤늦게 분당 집으로 올라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엄마 저는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도 사실은 혼자서 그 예민함의 뒤탈을 모조리 감내해 내고 있네요. 


친근하게 듣고 넘기면 될 일을 문제 제기하는 예민함. 남들은 다 쓰는 말들 마저도, 때론 식구끼리 쓰는 말 까지도 불편해하는 예민함. 엄마. 저의 이런 예민함은 결국 나를, 그리고 당신을 좀 덜 불행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믿고 있어요. 제 터무니없는 근거 없는 믿음이어도 상관없어요. 표현함으로 인해서, 조금은 듣는 이들도 알게 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어요..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지만 말이에요. 


불꽃도 결국 타버리고 말 테지만.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이왕 끝으로 가는 길, 활짝 아름답게 불 타 오르는거죠 뭐...!


단적으로 아빠의 기분과 큰 의미 없는 말과 행동에 따라 엄마가 무너지는 걸 곁에서 본 저로서는 더더욱. 

그렇게 조금씩 표현해 내니 어느새 그의 본심을 적잖이 알아가게 되는 순간들도 올 때마다 이상한 뿌듯함과 묘한 슬픔을 같이 느낍니다. 단적으로 오늘 톡으로 아빠가 제게 이런 말을 건네주셨으니 말이에요. 


"아빠의 모자람이 너를 아프게 했구나. 미안하다.. 앞으론 엄마에게 좀 더 살갑게 대하도록 노력 하마 "


엄마. 그래서 저는 이젠 좀 더 진하게 가능하다면 계속해서 읽고 쓰고 말해볼까 해요. 

물론 예전처럼 믿고 끝도 없이 부당하고 불편함에 입 다 물고 있다가 10번 참고 1번은 직설적인 화부터 내고 보는 저돌함만 있는 게 아니라요. 읽고 쓰다 보니 타인을 인정하게 되며 다름을 체득하게 되며. 그러니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좀 더 당당하게, 대전 부모님과 식구들에게도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될 것 같아요. 비록 당신 식구 중에 제일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해도. 귀한 아들인 것처럼 나도 귀한 딸이라고. 사위 대접 귀하게 받는 것처럼 반대로 나도 귀한 대접받아 마땅한 새 식구라는 사실을. 더군다나 그런 것 다 몰라도 딱 하나. 나와 함께 사는 그이가 좀 더 선명하게 이 사실을 깨달아 주기를 바라며 나름 주입식 교육(?) 중이랍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여자이고 생명이고 존재라는 점을.
타인에겐 문제가 아니어도 내가 부당하다 느낀다면 결국 예민하게 굴 것이라는 걸.
남들이 화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화를 내는 게 이상한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예민한 사람이 되기를 머뭇거리지 않고 싶어요. 

저의 아이들도 부디 세상을 살아가며 그랬으면 좋겠고요. 엄마. 사실 예민하게 따지고 드는 엄마 큰 딸 같은 사람들은 엄마 말대로 정말 피곤한 종족인 건 분명하겠죠. 그러나 다들 그냥 넘어가는 것을 누구 하나 안 따지고 들면요. 정말 세상이 이상해 질 것 같아요. 아니 최소한 사람들이 "어쭈 고집 봐라. 기가 세네. 나 대네.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네." 라면서 친하던 사람들도 쉽게 멀어지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엄마. 내가 나를 낮추는 일에 앞장서고 싶지는 않아요. 

특히 여자가 여성을 낮추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운 유교사상이 여전한 우리나라에서는요. 제가 타고 자란 나라를 바꿀 수는 없을 테니, 다만 제가 바뀌는 수밖에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한 감각을 갖게 된 건 어찌 보면 엄마의 영향이 적지 않아요. 그래서 고맙지만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엄마. 저는 후천적으로 길러진 제 이 성정을 계속 사랑하며 한번 살아내 볼까 해요. 부디 이 예민함을 고집하는 고집이,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의 제 삶에서 플러스가 되는 요인이기를 바라는 오늘입니다. 


"너도 니 실속 챙기면서 살아. 이 예민한 것아."
"응 엄마."
"날 춥다. 발 따뜻이 하고 다니고.." 
"고마워. 미안해 아침에 헛소리 좀 해서..." 
"됐다. 감기 조심해."


물론 엄마. 그럼에도 결론은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민해진다 한들 오늘 당신과 주고받은 이 짧은 톡 대화가 결국엔 삶의 결론이라는 것을요.


 결국 예민함 전후엔 그 끝엔 '사랑'만 남아 있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61. 새벽에 푸는 잡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