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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24. 2018

#61. 새벽에 푸는 잡담

잠이 오지 않는 핑계로 풀어헤쳐버린 지극히 사적인 개인 썰 이야기  

 어쩌자고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나 싶다만. 괜히 속상해져서 잠이 안 왔단 핑계로 어제 새벽 풀어 헤처버린, 별 시답잖은 개인 썰 몇 가지를 고백해 본다. 


1. 일터 

 그와 나는 사내커플이다. 

비범한 듯 보여도 평범한 그런 사내 커플들 중 하나다.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장점 이자 단점은 바로 서로의 '일터'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곳인지를 꽤 잘 안다는 것일 테다. 우린 서로의 업을 존중한다. 꽤 잘 알게 되었으니까. 서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사실 그것들은 총체적으론 연결돼 있다. 말하자면 복잡하나 여하튼 그렇다. 집에선 일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로가 암묵적으로 묻지도 않는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늘 그래 왔다. 어떤 일로 속상했고 어떤 일이 기뻤고 누가 대하기 좋은 동료이고 누가 피하고 싶은 인간인지. 예컨대 동료와 인간은 이렇게 나뉘는 듯싶다. 다가가고 싶거나 혹은 피하고 싶거나.


 그런 그가 작년부터 좀 더 긴밀하게 나의 업의 현장 속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근속 10년 차에 처음이다. 

 아웃룩에서 보게 되는 그의 이름이 새삼 반가운 요즘이다. 한편으론 나만 여기서 고단(?) 하면 이렇게 썰을 풀지 않을 텐데. 끊김 없는 이 사업부의 일을 쳐내느라 부쩍 더 고단해 보이는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하고 있는 걸까. 이 감정도 사랑의 형태라면. 그러니 그 사랑이 존재하는 탓에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요샌 더욱 농도가 진해지곤 한다. 내색 안 하는 과묵한 그지만, 몸 여기저기에 적신호가 나타나는 요즘이다. 부쩍 핸드폰으로도 이메일을 자주 주고받기도 한다. 더군다나 두 돌 된 아기들의 생일날에도 일을 해야 했던 그의 고단함과 씁쓸함과 함께 찾아올 법한 쓸쓸함 마저도. 나는 짐작할 뿐 알 순 없다. 대신 겪어내 줄 수도 없다. 그래서 더 안타까워진다. 


한 마디를 듣고 또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이가 좋다. 그런 사이... 


 업의 현장에서 겪는 그의 고충은 사실 나에게 또한 별반 진배없다만 그이보단 덜 하다는 걸 안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그저 한마디를 건넬 뿐이다. 이 한마디에 표현해 내지 못하는 모든 마음을 담아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요즘이 유일한 것이라는 걸 아니까.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다니자.

 

 아웃룩 속 세계에서 주고받는 이메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일 하는 일머리와, 일 안 하는 잔머리의 구분을. 

 근속 10년에 제법 얻은 소중한 선물은 눈썰미와 불만과 불편함을 10번 참다 1번 진하게 표현해내는 용기. 뭐 이런 것들 어디쯤인걸 지 모르겠다. 자기 그릇 지키려고만 애쓰는 악순환 부류인지. 배워서 자꾸 남 주고 베푸는 선순환 부류인지 메일을 주고받고 회의체를 이끌고 또 참석하며. 기계가 아닌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알 수 있게 되었다.


 선순환을 바라는 후자의 마음으로 출근했었고, 여전히 오늘도 출근을 해냈다.  
 그러나 또한 알게 되었다. 개인이 아무리 이상적인 업의 형태와 선순환을 바란들, 개인이 소속된 집단과, 점점 변하는 일터의 기형적인 모습을 따라가기가 수월찮다는 것을. 그럼에도 제 일 할 건 제때 제대로 해내려 했다. 시간이 지나니 웅크리고만 있었던 신입 때완 달리  이젠 제법 위에서는 '듣기 싫은 보이스'를 내는 편이 되어 버렸다. 이만큼 머리가 커졌나 간덩이가 부었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점점 웃겨지는 것 같아. 쪼잔해지고. 회사가 원래 커지는데 힘들면 다들 이럴까? "
"더 심한데도 많겠지? "
"10년 근속 포상 캔슬. 그까짓 거 안 받음 그만이야. 안 아쉬워.
다만 일머리들 안 챙기고 잔머리들만 챙기는 것 같이 보여서 그게 속상해.." 
"그래. 나도. 당신 10년 열심히 회사 다닌 결과가 고작 회사 힘들다고 줄 거 안 주고. 직급 누락은 기본이고."
"바라지도 않아. 그런 거.. 다만 밑으론 쥐어짜면서 위론 얼마나 투명해? 말해 뭐해. 여기 와서 더 거운 거 본 게 몇 번인데 벌써..."
"그래.."
"맥락 없어. 논리 설득은 더더욱 없고. 은연중에 튀어나오는 욕. 하대. 꼰대질.... 말해 뭐하니."
"... 너무 그러지 마. 다들 알게 모르게 힘들 수도 있으니"
"힘들다고 그렇게 더럽고 치사해져? 아 몰라. 어디 러브콜 안 오나. 느낌이는 없나?"
"풉... 그러게. 그 느낌 이가 안 오네. 좋아하는 거 해. 지금처럼. 그러면 돼..." 
"..... 미안. 괜한 소리 했다. 자요"


 일터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표현만큼 가장 비상식적인 표현은 없을 테다. 

 그만큼 무서운 표현이 어디 있을까. 회사와 일이 가족 같다면.... 24시간 늘 마음에 담고 신경 쓰고 있어야 마땅한 것을. 만약 가족 같다면 개인의 고충도 이해해주고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어디 회사라는 곳이 그런 곳일까? 그건 회사가 아니라 그냥 봉사활동 단체에 기대하는 게 더 빠를 법 싶다. 냉정히 따져서 회사는 개인의 그 어떤 삶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 이젠 안다. 일도 삶도 그냥 내가 하는 거다. 물론 업종에 따라 스타트업이라면 또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일과 개인 삶은 적절히 분리돼야 한다고 보는데. 그런 내가 고루하고 낡은 관습과 악습이 여전히 빼내지 못하는 가시처럼 박힌 이 사업부에서 일을 하다가도 어제 문득 열폭한 탓에 그에게 1절부터 4절까지 읖질러 버렸다. 그러곤 후회했다. 묵묵히 일하는 그를 보면 내가 하찮은 프로불만러가 된 듯해서 고개를 떨군다. 늘 속상한 맘을 털어놓았을 때. 들어준 그에게 여간 미안해져서 나는 내내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2. 책 읽기
 정독이든 속독이든 1월에 읽은 책들이 20권을 넘겼다. 

양으로 승부하는 건 아니다만 하다 보니 이지경? 이 됐다. 


관점과 생각의 스펙트럼이 고루해지지 않고 늘 신선한 기대를 하게 만들어 준다.
 시간도 그냥 소비가 아닌 "스스로 채우는"느낌이다. 



독서를 통해 세상의 여러 가타부타한 이야기들을 읽고 생각해 낼수록. 글을 통해 세상의 불편한 이야기와 마주하면 더욱 고맙다.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움직여내 보는 순간을 경험하면 그게 바로 성장이고 좋은 변화일 테니. 


요즘 최애 시간은, 아이들 잘 재워두고 밤에 읽는 책과의 몇 분들.... 고마운 나만의 시간. 


 2개의 사내/외 독서모임 덕분에 속도와 책 소화 퀄리티마저 생겼다. 

 고마운 이 시간들을 올해 더 악착같이 해내고 싶어 진다. 사실 별 악착같은 마음이 없어도 이젠 자연스러운 일과가 (심지어 안 읽음 불편하게 되어 버린) 됐으니. 감사한 한 달을 12달 꼭 킵 고잉 하기를 바라고 있다. 


3. 글쓰기
 열심히 읽다가 어느새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실 내겐  언제나 글이 책 보다 앞섰다.
마음이 행동을 뛰어넘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이곳저곳 사심 없고 거스름 없이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요즘이 참 기쁘다. 물론 때때로 찾아오는 뽐뿌에 거침 이가 없는 말투와 문장이 고단하고 죄송스럽지만. 알게 뭐야. 일단 기쁜 걸로..! 


4. 나의 아이들 
 산전 후 우울증이 심했다. 캐릭터상 증상의 밀도가 원체 퍽퍽해서 고구마 천 개각 수준이었다.

 쌍둥이라는 다둥이 탓을 참 많이 했었다. 못난 내 처음 1년 반의 육아를 "나"가 아니되 보고서야 여적. 아니 평생 타인들은 모를 테다. 짐작하고 가벼운 위로 혹은 고마운 귀를 빌려줄 뿐. 사실 그게 어딘가. 들어주는 이 딱 1명만 있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을. 


여하튼 그 힘듬이 절어서 아이들을 죽었다 깨나도 완벽히 사랑할 수 없는 엄마일 거란 마음의 각오(?)가 요즘 간혹 무너진다. 엄마에게 사심 없이 달려와서 비비적거리는 살갗. 상상치 못한 재간둥이 미소와 웃음. 더 선명해지는 단어와 목소리. 주고받기 시작한 대화의 첫 시간들. 


그러지 못하겠지만 그럴 수 있을 듯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완벽히 끝까지 너희 둘을 사랑하며, 내 것을 모조리 다 내주고픈. 그런 마음.. 



점점 더 좋아지고 사랑하고 있는 거라 믿고 싶다

 이 생각이 내 행동에 선행하니. 그래서 이 말을 여전히 간직한다. "생각은 모든 것에 선행"한다는 나의 믿음을... 완벽하지 못해도 완벽히 사랑하고 다 줘보기도 하는 괜찮은 엄마가 돼 보고도 싶어 진다.


5. 불면증
 없어진 것 같았지만 이렇게 불쑥 나를 찾아오고 만다. 잠이 오지 않는 증상. 쌔빠지게 고생 이를 덜했나 싶다.

비트코인 채굴로 마음이가 시퍼렁둥이가 돼봐야 정신 차리려나. 웃자고 스스로 던지는 농담마저 의식의 흐름으로 이렇게 문장으로 기록하며 풀어내는 걸 보면. 분명 미친놈의 불면증 시초는 다시 입질이 오는 걸 테다. 내면의 에고 저 먼 어딘가에서 바닥을 긁고 있는 의식의 잡 썰들을 책으로 묶어내면 블랙코미디 뺨따귀 후려칠 판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쓸데없는 생각의 끝은 언제나 '그래 그래도 이 새벽에 일어나 나는 글이라는 걸 쓰고 뭔가 텍스트라는 것을 마구 읽어 냈고 생각이라는 걸 했구나 라는 스스로의 자아도취. 


새벽의 썰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4시에 잠들어서 아이들이 기상하는 5시에 일어나서 유유히 밥솥의 백미 버튼을 누르며 하루를 시작했다. 


살아있으니 뭐든 좋은 일도 다가올 법한 '좋은 하루'를 여전히 바라며..
새벽 지극히 사적인 개인 썰전. 끝.!  


브이질 하며 살아내야지. 브이브이 하다보면 어느새 브이브이 해진다며...듣보잡 셀프신앙각!



#어쩌자고또이러니 #아이자니  #자고인났니  #굿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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