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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23. 2018

금요일 오후

남은 금요일의 오후 휴가를 3시간 앞두고..

금요일 연차, 좋네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태우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평일 하루, 휴가를 냈다. 

 편집자인 그녀가 말한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향한 뜨거운 시간을 바랐던 걸까. 실컷 책을 보기도,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기도, 산책을 하기도, 스케치만 해 둔 글감을 기어코 책상에 앉아 엉덩이 붙이고 마음껏 써 보기도. 그렇게 읽고 쓰는 데 모든 시간을 사용하고 싶었던 욕심이 컸던 탓이었다. 주말엔 쉽게 할 수 없는, 평일 낮엔 더더욱 연속적인 시간을 내기 힘든. 뭐 그런 바라는 것들을 향한 갈증이 있던 걸지 모르겠다. 


오전 8시 
 아침은 여전히 춥지만 -3월에 눈이 내릴 정도라면- 오후가 꽤 포근하단 기상예보를 제법 강하게 믿어 
보기로 했다. 유모차로 아이 아빠에게 등원을 맡기고 난 후 폭탄 투하 일보 직전의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머릿속으로 청소의 순서와 움직여야 하는 동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전 10시 
 예상했던 청소를 마치자마자 대충 씻은 후 바로 대문 밖을 나섰다. 이 때도 머리는 가야 하는 곳들을 
말해주듯 내 몸을 이끈다. 다행히도 마트와 도서관이 붙어 있기에 별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거라 예상하며 자리를 박찼다. 

이런. 맙소사. 휴관일 
 늘 들르는 지역 도서관이 하필 휴관일이라는 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낑낑대며 무겁게 짊어지고 온 책 4권을 반납하고 어떻게 해서든 빌리고 싶었던 책들을 집에 가져가서 읽고야 말겠다는 마음은 점점 커졌다. 무인 자동반납기로 다행히 자동 반납을 한 후 '오늘 꼭 읽을 거야 그럴 수 있어'라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우선 근처 마트로 직행하여 장을 봤다. 



어, 애호박 세일. 뭐지 시금치도. 헛. 딸기랑 요구르트도 사 야게다. 흠.. 이 시간에 오면 원래 이런 거?


빌릴 책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텅 빈 냉장고를 생각하며 온갖 잡다한 생각을 하다니. 쌍둥이 엄마의 멀티태스킹은 일상의 이런 곳에서 빛나는(?) 탓에. 이젠 익숙하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가면서도 동시에 언행일치가 되는 순간들. 


2만 원 이상이면 배달 가능하세요 
(하아 구제 받았...다) 고맙습니다. 배달해 주세요. 


다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감사하게도 사는 지역에 도서관이 두 개나 있던 터라, 늘 가던 큰 곳은 휴관일이었기에 작은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생각했던 책들이 모두 '비 치중'이기를. '대출 중'이면 뭔가 더없이 허탈할 듯싶어서. 


(러키) 4권 대출해 주세요. 
카드 주시고, 이 위에다 책 올려 주세요. 아 비밀번호 눌러 주시고요. 
네... 아 혹시 몇 권 더 빌릴 수 있어요? 
2권 더 가능해요 
(!) 잠시만요 


책을 빌리다 보면 늘 딴마음이 따라온다. 

빌리려던 책을 도서관 서가에서 찾으면서도, 주변 이웃 책들도 같이 기웃거리다 보면 새롭게 읽고 싶은 것들이 눈에 띈다. 오늘도 그랬다. 다행히 더 대출할 수 있단 말에 냉큼 집어 들고 다시 카운터로 직행



이것도 같이 빌릴게요 
네. 


오후 12시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동시에 핸드폰의 블루투스와 카카오 미니를 연결시켜서 음악을 틀고 있었다. 때마침 울리는 종. 몇 시간 전 배달시킨 마트의 찬거리들까지 도착.

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들 하원까지는 약 4시간. 이 4시간 동안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점심을 간단히 챙기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오후가 다 되어 유모차를 끌고 어린이집으로 가고 있을 게다. 생각했던 영화도, 보고 싶었던 새로 시작한 그 드라마도. 비록 보진 못할지언정. 머릿속에서 이미 담아두고 있으니 그것도 언젠가 보겠지. 다만 못 빌릴 뻔했던 책을 빌린 게 어디냐며. 그것도 빛나는 2권의 생각지도 못했던 책 마저 빌려 버린 이 감사한 행운을. 

아니. 어쩌면 감사한 건

 비록 하루 24시간을 완벽히 내 시간으로 만들 순 없더라도. 


금요일의 오후가, 정해진 세상의 궤도에 맞춰 따라가지 않아서. 
대신 나의 속도와 방향으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시간을 흐르고 있기에. 



괜히 감사해진다. 그냥 그런 것 같아서.. 그렇다고 믿고 있어서. 


거실에 흐르는 노래 가사가 유난히 마음을 뛰게 만든다. 


"잊혀가는 내 가슴속 기억의 난. 지금은 먼지와 같겠지만. 묻어두기엔. 지워버리기엔.


 곧 나올 새 책의 기부 펀딩을 위해. 몇 달 남지 않은 소설 공모전을 위해. 덜컥 출간을 약속한 탓에 새롭게 써 내려야 하는 탓에 다분히 이성적이어야 할 그 새로운 원고를 위해. 다가오는 아니 이미 다가온 봄에는, 어떤 글들을 써 보일까를 생각하는, 이 시간이. 금요일의 연차가. 흘러가는 이 오후가. 감사한 만큼 미안하기도 한 건 왜일까. 그만큼 자유로운 생각에 외압도 억압도 없어서. 이 시간을 오래오래... 아니 어쩌면 짧아서 더 소중한. 

그래서 더 고귀한 '모든 이들의 금요일 오후' 다. 
 누군가는 학교에서 수업을, 누군가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누군가는 친구들과 놀이를,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은 후 잠깐의 독서 혹은 휴식을 취할. 누군가는 여전히 서서 밥도 채 먹지 못한 채 일을 할. 누군가는 차를 운전하고 있을. 누군가는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할. 누군가는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있을. 누군가는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신문뭉치를 짊어지고 고물상으로 향할. 누군가는 철저한 혼자의 시간에 즐겁거나 외롭기도 할. 그리고 누군가는...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할. 

 그런 우리들의 오후가. 부디 덜 쓸쓸하고 외롭기를. 고요하되 편안하기를

여전히 머릿속에서 여러 장면들과 생각이 끊기지 않는, 금요일 오후가 흐르고 있다.

  



초판을 다음 주에 찍습니다.:) 그리고 4월 초에 전국 서점에서 뵙게 될 듯합니다. 
출간 전후로 기부 펀딩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사실 오늘 연차를 내고 책 소개 글을 쓰려했는데, 본의 아니게 일상 글을 써 버리고 말았네요.
그래도 참 고마운 오후입니다. 3월과 4월은 매 순간이 뭉클한 감사의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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