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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03. 2018

지금 멋지지 않지만, 또 멋있어지고 싶잖아..

이게 진심인가 봐요. 바보 같은 진짜 마음. 들켜버리고 싶을 만큼  

편지 열아홉) 멋지지 않은데 '멋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진짜 멋져지고 싶잖아....



잘 있었나요. 엄마 2주 정도 편지를 쓰지 못했네요.... 

'어떤 얘기를 처음에 꺼낼까 생각하다가 '아...'라는 탄식부터 나왔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아실까요. 지금 제 마음이 얼마나 당신께 전해질까요. '쓰지 못했네요'라는 한 문장을 쓰자마자 갑자기 마음 한 구석 저 깊은 심연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컥하고 차 오르는 이 몰캉몰캉한 느낌은 도대체 뭔지. 뭐 그리 거창하게 묘사할 만큼, 혹시 제게 무슨 일 생겼냐고요? 그렇게 물어보실 테죠. 분명 날 여전히 걱정하고 있을 당신은 분명 그럴 테죠. 생각해 보면 전 작고 크게 무슨 일이 있을 때 비로소 당신에게 연락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그게 미안해져요. 아무 일 없어도 당신에게 안부 물을 수 있는 건데 말이죠. 모녀는 그런 걸까요. 아니 여전한 유리멘탈인 나만 그런 걸 거야. 그렇죠. 그렇겠죠..


책 많이 팔렸냐고 넌지시 물어보셨죠. 

부끄러운 미소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적당히'라는 말로 얼버무렸네요. 미안해요 엄마. 사실 당신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요. 알고 있어요. 내가 상처받을까 봐. 여전히 책을 쓰고도 이야기를 토로해 내고도. 그 시간들 그 이후의 시간들이 이상하리만큼 걱정된다는 걸. 


날 아는 당신이니까... 내가 어떤 것에 약하고 어떤 것에 슬퍼하는 지를
당신은 유일하게 그 세세함을 아는 사람이니까.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자신의 온갖 직간접적인 사생활과 치부까지도 드러낼 정도로 저돌적이고 신생아적인 마인드로 무장한 채 주야장천 이기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의 결과물이었던 책... 저의 두 번째 에세이 말이죠. 엄마 그거 아세요? 이번 책 작업하면서 정말 아팠어요. 깊숙하게 끄집어내면서까지도 난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여전히 물음표일 때도 많고요. 사실은 말이죠. '내가 뭐라고'라는 자책을 쓰는 내내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열심히 읽어주시는 귀한 분이 계시는데도 말이죠. 정말 못났어요 나.. 이 뭉클한 순간을 잠시 잊고 있었나봐.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고요. 

당신에게 그간의 일들을 잠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그동안 뭐 하느라 조용했었는지. 사실 나름 소란스러운 일상의 진통들을 겪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냥.. 오늘은 원래 쓰려던 서평, 계약한 다른 원고. 다 뒤로 미루고 당신에게 먼저 이렇게 글을 씁니다. 오로지 당신에게 고백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 글은,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 언제나 편지로 당신에게 들려드리고 있는 오늘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은 완벽히 날것의 초고이자 한 끝의 다듬음 조차 없이 그렇게 저의 생마음을 들켜 버리고 마는, 그런 이야기이고 시간입니다. 들켜버리는 시간 말이죠.


당신에게 들키는 게 무섭지만, 한편으론 들켜버리고 싶어서...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니지만 매 순간이 소란스러웠던 그간의 일상은 이랬던 거예요. 

우선 일터. 회사의 조직개편이 이루어지는 전후로 제가 좋아하는 동료들의 조직도 바뀌고 퇴사를 하기도 하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엄마. 나는 정작 가만히 있지만 노출된 분위기나 환경이 휘청거리면 덩달아 같이 휘청거릴 듯한 거. 뭐 그랬어요. 그렇다고 제가 막 휘청거리거나 소위 권고사직을 당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요 엄마. 그냥 그랬다구요. 


 그 와중에 급 태국 출장을 가야 했고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을 준비하느라 나름 긴장감과 스릴 속에 일 욕심이 다분히 넘쳐나는 저로서는 잘 해내고 싶었답니다. 그 마음이 앞서다 보니 고객사 미팅 준비를 하고 육아 병행하면서... 말씀 안 해도 아시겠죠. 네. 스스로 적잖은 스트레스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속으로 끙끙 앓곤 했죠. 결국 미팅은 잘 마치고 돌아왔답니다. 사실 놀라웠던 건요. 제가 하는 업무에서 보통 첫 고객사 미팅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데 이번 미팅은 첫술에 배가 불러서 돌아왔어요. 일이 잘 될 것 같아요. 괜찮고 호의적인 느낌으로 연결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카메라 안에서 이상한 연결점들이 보이는 것 같은 그런 설레임.... 나쁘지 않잖아요.  


저 김칫국 잘 마시잖아요. 상상과 착각이 제 특기잖아요. 

그냥 하루 살이 직장인의 초연한 마음으로 복직하고 일터에서 버텨보고 있는데 그래서일까요. 마음을 비우나 뜨거움은 더 채운 채 그렇게 일을 대하다 보니 제게도 행운이라는 게 찾아오나 봐요. 여하튼 잘 해 보려고요. 당신 딸, 일 잘 하고 있다고... 그냥 그렇다고요. 


그리고 책. 원고 계약을 맺었고 (당신에겐 물론 이야기 안 했고 그러나 언젠가 또 들켜버리겠죠. 출간이 되고 나면) 그 원고 작업을 해야 하는데, 사실 건강이 좀 무너졌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더더욱 읽지도 못했답니다. 빌려놓은 책은 연체로 쭉 밀려 있고 말이죠....


축농증이 심해지다가 그저께 좀 이상해서 다시 병원에 다녀왔어요. 

성대결절이 약간 의심된다고 해요. 어쩐지 그랬다니까요. 목소리가 이상한 게 한 달이 꽤 되었는데도 약을 먹어도 낫지 않은 이유가 있었어요. 이상하게 별로 감흥은 없어요. 다만 면역력이 약해지다 보니 그래서 마음속의 헛소리를 바깥으로 잘 숨기거나 내뱉는 나사도 같이 약해져 버렸나 라고 제멋대로 생각해 버렸답니다.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지는 걸 거야 라는 그런 뭐 또 유리 멘틀 같은 생각 말이죠.. 그래도 걱정 말아요. 어제 북콘서트라는 걸 해냈고요. 말문이 트이니까 목소리가 쉰 목소리로 들리든 말든 이상하든 말든, 또 청명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고 다행히 들어주시는 독자님들의 눈이 선했고 참 좋았어요. 


여기 앉았고, 여기서 나갔던 그 시간들 모두...정말 기적 같았다니까..


정말 좋았어요. 1년 동안 쓰는 누군가의 시간이,
1시간 정도 읽는 누군가의 시간과 맞닿은 벅차오르는 순간 말입니다. 


당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최측근이자 바랐던 신랑의 관심이나 응원을 받지 못했지만요. 

비록 그랬어도. 아니 이젠 바라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다 괜찮았어요. 정말 좋았다니까요. 북콘서트 가는 길이 조금은 알게 모르게 쓸쓸했는데 말이죠. 진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으로 들어간 밤 11시 그 귀가하는 시간까지. 정말 커다란 기적 같은 시간들을 선물 받은 벅차올라서 갑자기 차오르는 기쁨과 슬픔마저 공존했던, 그런 시간이었다니까요.  


그리고 저의 제일 커다란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 버린 나의 아이들이요. 

최근에 호캉스라고들 한다네요. 아이들과 함께 호텔 1박 숙박 잡고 물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고 실컷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맛있는 것 먹고. 그렇게 짧은 여행을 다녀왔어요. 힘들었지만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서 아이들과 그렇게 놀고 나니, 몸은 피곤해도 그들의 웃는 모습에 덩달아 힐링을 했다고나 할까요... 그만큼 아이들에 이제 완벽히 익숙해지고, 고달픈 육아는... 이젠 고달프다는 형용사보단 '당연'하다는 표현을 할 만큼 스스로 엄마로서 잘 적응해 나가고 있고요. 아니 '잘 (well)' 은 여전히 모르겠고 다만 아이들과 저.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때론 아이들이 나보다도 더... 여하튼 너무나도 넘칠 정도의 감사함을 갖고도 모자랄 만큼. 크게 아픈 곳 없이 아이들은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물론 감기는 달고 사는 건 여전하지만 말입니다. 


엄마. 이런 일상을 보내면서도 사실 제 마음이 소란스러웠던 건요. 

이상하죠 엄마.. 제가 이상하게 요즘 들어 부쩍 감정조절을 잘 못해요. 왜 그런지 분명 제 스스로 알 법도 한데 입 밖으론 쉽게 낼 수 없는. 뭐 그런 멜랑꼴리 한 우울감이 잠재해 있다가 현실 세계에서 자주 들키곤 합니다. 


마음에 담아둔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자꾸 새어 나와요. 


벅차오를 정도의 기쁨과 우울감이 같이 믹스되어 찾아오는 순간을 종종 경험하게 돼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마음속에 목소리 가요. 갑자기 밖으로 툭툭 새어 나온다니까요. 가령 이런 거예요. 누군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육아에 일에 더군다나 자아실현을 위해 책을 원고를 글쓰기를 해내기까지. 정말 '멋져요'라고 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뭐라고.. 감사하게도. 근데 엄마 그거 아세요? 그 '멋져요'라는 말을 제 스스로 인정을 못 했나 봐요. 


누군가 '멋져'라고 말해주니, 정말 멋있어지고 싶어 지잖아...
사실 난 정작 지금 하나도 멋지지 않은데 말이죠.  



앞뒤 맥락 없이 날 떨리게 만드는 목소리 때문인 걸까요. 

누군가의 '멋져'라는, 그런 목소리들을 듣게 되면 더더욱. 이토록 모자란 제가 어떤 쓸모가, 누군가의 사랑의 대상이, 여전히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혹은 스스로 우뚝 설 만큼의 자신감, 자존감. 이렇게 가끔 알 수 없이 무너질 때도 다시 정신 차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또 알 수 없는 대답을 스스로 해내게 되곤 해요. 요즘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소란스러웠나 봐 그래서... 쉽게 쓰거나 읽지도 못했었나 봐요. 한 문장도 쓸 수 없고 한 문장도 타인의 이야기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의 깊이였나 봐요. 감정 조절을 하는 끈이 탁 하고 끊어져 버렸었나봐..

 

엄마. 그때 생각나요? 당신 앞에서 실연당한 딸내미의 지지리 궁상각을 연출한 채 엉엉 울어버렸을 때. 

당신이 같이 '그 새끼 천벌 받을 놈일세' 라면서 욕해주셨잖아요. 그때 이상하게 고맙더라고. 심장이 너무 떨릴 정도로 아픈데, 또 당신의 그 목소리가 참 좋더라고. 그러면서도 계속 떨리더라고. 아프고 또 좋기도 해서.. 앞뒤 맥락 없이 떨리는 마음이랄까. 


뭐든 넘칠 정도로 벅찰 정도로 새어나가버리면. 뭐든 과유불급인거죠? 근데 어쩌지. 흐른다니까 나도 모르게...


엄마 제가 요새 그래요. 맥락이라곤, 논리라곤, 현실감각이라곤 점점 사라져 가요 

공모전. 준비해서 그런 걸 거라고 요? 너무 글에 빠져서 넌 지금 제정신 못 차리고 내가 만들어 버린 캐릭터에 아예 빙의돼서 미친 사람처럼 써 내려가서 그런 거라고요? 좋아요. 네 그렇다 쳐요. 근데 엄마. 아뇨. 사실 거짓말. 다 거짓말이에요. 나 정말 현실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냥 그래요. 멋지지 않은 현실을 정말 멋지게 만들어 버리고 싶어 지잖아. 그것도 정말 이기적인 마음으로.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렇다니까요. 


미안해요 알 수 없는 말들 주저리 떠들어 대고 말아서. 

저도 가끔 말로 뱉어 버리고 '내가 왜 이런 말을 짖껄였지'결론은 없지만 엄마. 당신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면서 그간의 일상을 그리고 요즘 자꾸 알 수 없는 흔들림과 현실 감각 제로에 추진력마저도 에너지가 고갈돼서 꾸역꾸역 버텨보고 있어요. 그 와중에도 신기한 건요. 저 여전히 물기 어린 생생함으로 웃으면서 회사 일도, 육아도, 그리고 이곳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이 저녁 오후 8시가 다 되어가는 이 공간에서의 글 쓰는 시간들도..... 


사랑해요. 여전히 사랑한다니까요. 이 시간들을. 이 휘청거리는 순간들을. 
충동적인 감정의 착각이 마치 꿈만 같아도.


저, 그래서 결심했어요. 

좀 더 스스로에게 선하게 솔직하게 버닝 해볼 생각. 아니 작정이에요. 준비하고 있는 공모전이 되었든 육아가 되었든 세 번째 책이 되었든 뭐든지 간에. 엄마. 좀 더 작정하고 미친 듯이 스스로 자책보단 의심보단 미안함보단 이기적이어서 죄스러운 감정보단. 그냥 이 시간을 나 자신을 내 마음을 좀 더 사랑하면서 살아보려고요. 사실 스스로 의심했거든... 내가 그렇게 매력 넘치지도, 멋지지도 않은 그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걸... 뭐 그럴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최소한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나. 꽤 부지런하게, 여전히 꿈꾸면서.. 바보 같아도. 식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든 말든. 타인의 질타나 냉소를 받든 말든.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어떻게 이래요.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사냐고요.
나 꽤 열심히 살잖아... 있는 힘껏. 정말 열심히 살아내고 있잖아.
나 아직 살아있잖아.. 


그니까. 나 좀 이렇게 살아보려고요. 생겨 먹은 이대로. 마음이 생겨버린 이대로...

이 글 쓰면서 문득... 보고 싶은 당신. 그러니 그만큼 엄마 이 소중한 시간. 마음. 스케치해냈던 글감. 상상 속 장면들. 그대로 단단한 현실로 끌어당겨 볼 작정으로, 오늘도. 잘 흘러가 볼 거예요. 


또 편지할게요. 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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