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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0. 2018

그녀가 사랑을 '기억' 했다면, 그래도 죽었을까  

잊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아. 아니 절대 기억해야 할 것 같아. 사랑을.

편지 스물)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다는 걸 기억했다면, 그래도 죽음을 택했을까요..


엄마. 오늘 날씨, 속된 말로 끝장나는군요. 너무 맑아서 잠깐 흐려지게 만들고 싶을 샘이 솟을 만큼.

미세 먼지 하나 없는 너무나 맑아서 청명하기만 한, 어린아이 같은 그런 날씨. 그런 5월의 시작입니다. 그렇지만 엄마. 5월이면 유독 저는요.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어요. 요동을 쳐 댑니다. 요즘. 특히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그런 온갖 감정선을 다 부여잡은 채  살아가고 있지만 다시 그 '한순간 미칠 것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요즘이어서 스스로 굉장히 절제해 내고 있어요. 그래 보이지 않는다고요? 표현하는 나라서? 아뇨. 절제해요. 검열하고. 더욱. 마음 조절이 쉽지 않아서 반대로 검열해요. 이렇게 마음이 제멋대로 요동칠 정도로 울렁거려지는 건, 어쩌면 이런 핑계를 댑니다. 우울증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것도 이맘때였고. 무엇보다 최근에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잠깐 제멋대로 상상을 해봤기 때문일 거라고..


우연한 아니 어쩌면 운명 같은 이를 알게 됐어요.

특별한 건 없지만 제게는 이상하게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몇 가지 팩트와 또 몇 가지 제멋대로 상상을 해 버려서였을지 모르겠어요. 출판사에서 받은 원고료를 최근에 일시 후원했답니다. 그 대상이 된 가족 이야기를 당신에게 잠시 해볼까 합니다. 세 쌍둥이 아빠의 집이에요. 가난하냐고요? 솔직히 잘 몰라요. 다만 세 쌍둥이 육아비만 생각해도,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키우는 다둥이 아빠라는 점. 그런 그와 세 명의 아이들의 상황이 여기저기 광고로 꽤 노출되는 걸로 봐서는 그렇게 넉넉하진 않은 듯 싶어요.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라요 엄마.  


제 마음이 요동친 건 그 아이 셋의 죽어버린 '엄마' 때문이었어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아니 어쩌면 잘 모르기도 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산후우울증으로 자살을 결심해서 아파트 옥상으로 정말 뭐에 씌어서 올라갔던 그 날. 그 날 말입니다. 당신은 아셨을까요. 아니 몰랐을 거야. 제대로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 심정을 그 마음을 그 날의 그 순간을.


바싹 말라가는거예요. 내 자신 스스로가. 보이지도 않았고. 내 존재가...


그랬어요. 그랬다니까. 그만큼 나약했고 그만큼 다 잊고 뭐에 씌었었나 봐요

그래서 더 그 죽어버린 세 쌍둥이 '엄마'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요. 아니 미안. 거짓말했어요. 내가 뭐라고. 그녀의 그 순간을, 마음을. 잘 알지 못할 텐데. 나는 그녀가 아니니까. 다만 비슷한 마음을. 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의 조금은 같이 겪어냈을 거라고 감히 예상해 봅니다. 그랬어요. 산후우울증으로 세 쌍둥이의 엄마는 결국 죽고, 아빠만 남아서 홀로 어린아이 셋을 돌보는 그 가족의 삶. 알게 되자마자 바로 원고료를 일시 후원했으니까 말이죠. 내가 할 수 있는 게 언제나 이런 것뿐이잖아요. 언제나 이 정도뿐이죠.


죽음을 막을 수도, 반대로 온갖 사랑을 퍼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죠.
나는 엄밀히 타인이고 그들의 사람이 아니니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그때 무슨 마음으로 옥상으로 올라갔을까. 사실 무서워서 그 생각 자주 하지 않아요. 에세이 써 내려갔을 때 잠깐.... 아주 깊게 다시 그 과거로 들어갔다 나왔었죠. 힘들었는데. 여전히 과거에 불과한 시간입니다만. 그래도 그 시절을 그때를 기억해 낸다는 것이, 여전히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이런 것을. 그는 아내가 죽었다고 합니다. 세 아이들에겐 기억이 생길 때쯤 엄마는 죠. 남겨진 그 사람에게 이제는 곁에 없는 아내, 엄마의 부재. 감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 처절한 아픔과 그럼에도 생을 살아내야 하는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남겨진 이들도 분명 괴롭고 슬프겠지만요. 저는 그전에 죽음을 결심했던
그녀의 상황. 그 마음에 더 서글퍼집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정말 모르겠지만...


솔직해져 볼까요. 엄마. 그 남편은 아마 아내의 부재를 슬퍼할 겨를, 없을 거예요.

육아와 생계로 아빠는 아마 세 아이를 돌보며 그의 감정을 돌보기나 할 여유가 있을까요. 그녀가 왜 죽었는지. 왜 산후우울증을 얻었는지. 돌이킬 수는 없었는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아마 그런 생각. 잘 못하고 할 여지 조차 없을 것 같아요. 현실이 그렇잖아요. 살아내는 것만 해도 벅찰테니까. 당신과 나. 우리도 그랬잖아요. 모녀가 단 둘이서 1시간도 채 못 자며 울고 불고 화내고 지지고 볶아댔던 그 짧지만 영원 같았던 1년의 시간들. 둘이서 나누어도 힘들었잖아. 고통스러웠잖아. 못 자서. 고돼서. 감정도 무너지고 불안하고 불안정한 마음이었으니까. 당신은 그럼에도 손주들 이쁘고 자신의 의무라 생각했고 책임감이 무척 강한. 역시 당신은 나의 강한 엄마였지만. 엄마. 사실 저는 엄마 자격 상실인, 아니 엄마로서 도망치고만 싶었던, 그런 나약한 인간는걸요. 요즘도 가끔. 아주 가끔은.....


 다들 그 아빠와 남겨진 세 아이들을 걱정하는데 말이죠. 전 세상에 없는 그녀의 삶이. 이상하게 서글퍼집니다.

죽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은 거죠... 제가 뭐라고 말입니다. 감히 상상해 봤어요. 죽기 전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는 그랬거든요.


죽으려고 결심했을 때 어리석지만 그저 딱 하나였어. 도망치고 싶었거든.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거야. 이래 사나 저래 죽으나 비슷했던 거지.


세상의 기준이. 윤리가. 도덕이. 사회의 잣대가 때로 누군가에겐 참 잔인하지 않던가요.

세상에 누구 한 명, 아이 가진 여자에게. 그것도 세 명 씩이나. 낳기 전후로 힘들 것 같으면, 스스로 버티지 못할 만큼 위험할 것 같다면. 낳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이. 그녀에게 있었을까요? 보통은 말이죠. 임신을 한 여자에게 아 낳는 건 당연하게 보잖아요. 어떤 상황이건. 임산부 이전에 그 안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맞아요 생명. 저도 생명은 소중하고 인권은 더더욱 소중하다고 보는 편이라. 근데 엄마.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도저히 낳을 수 없는데. 그러기 싫은대. 버틸 수 없을 것 같은데. 그걸 알면서도 그래야 평범한 선택이라 당연시 되는 것.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일단 낳고. 낳아보고 시작하는. 그러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아니 시작이 어쨌든. 그 과정이 너무 호되서, 결국 죽음을 선택할 만한 경지까지 이르렀다면.... 누구 한 명 그 '엄마의 마음'을 돌이켜 봐 준 이가 있었을까요.


보통은 생생한 장미를 좋아하지 시든 장미를 예뻐하던가요. 그래서 엄마. 때론 시들어가는 것에 눈길이 가. 나, 그래져버렸어.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니고서야 나 이외는 모두 타인에 불과하니. 그 마음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더군다나 엄마. 그녀는 말이죠.. 그냥 이거 하나가 좀 애석하고 서글프며 또한 너무 무례하나, 궁금합니다. 그녀는 '사랑'을 기억했을까 라는 질문 말이에요.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사랑. 하고 있다고.
그렇게 '오늘'과 '내일'이 나아질 거라고. 그녀에게 말해준 사람 있었을까요.


었을까? 부디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국 죽음과 닿았지만.... 아니 어쩌면 있었다 한들 돌이킬 수 있었을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든 아니 흐를 여유 조차 없이 삭막해져서 다 깨부서질 듯한 마음의 사람에게. 그럼에도 '사랑'을 기억했다면. 사랑받고 또 사랑했다는 기억이 대상이 마음이. 그녀의 마디막에 존재했다면 말입니다.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죽을힘으로 살라고? 그건 누군가에게 개소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툭 치면 탁 하고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누군가들에게는. 그럼에도요. 그래도 사랑이 있었다면. 과연 죽었을까 하는 마음...생각해봤습니다.


제가 그때 뛰어들지 않았던 건요. 당신도, 남편도, 아이들 때문도 아닌, 나 때문이었어요

되게 이기적이죠. 그래요. 저 되게 이기적이고 못됐잖아요. 남겨질 당신들께 유쓰고. 마지막으로 나름의 회고록 비슷한, 제가 저에게 편지를 쓰려했다니까요. 그 와중에 그 정신에. 종이랑 펜은 들고 갔다니까. 생각해 보니 그렇네. 엄마. 글이 나를 살렸네... 그렇지? 그러니까 써야만 산다니까 나는... 그렇다니까.


그 편지.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딱 한 문장 적혀 있을 뿐인 내게 보내는 편지.

'하고 싶었던 게 많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그 한 문장 쓰면서 순간 미쳐버렸다니까. 정신 차렸다니까요. 그렇게 오열했다니까.. 사랑하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나를...스스로에게 유서를 쓰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정말 마음이 미칠 듯한 거예요. 내가 뭐 하는 거지 라며 정신 차리기 시작했던 거겠지.


기억했던 거야.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나 자신을.
기억하니까 지금 이렇게 난, 여전히 살아있는 걸지도 몰라.


글 쓰면서 사는 거. 아이들보다 내게 때로 집중하는 것. 당신이 제게 온갖 질타를 쏟아부어도 괜찮아요.

그녀도 스스로 온갖 자학과 학대를 남모르게 퍼부어 댔을지도 몰라요. 바닥인 자존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현실. 넉넉지 못한 생계.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다 무시해도 자기 스스로 사랑하고 사랑했었던,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기억해도 너무 무거워서 가벼워지고 싶었던걸까... 아프면 엉엉 울기도 하다가 치유되곤 한다 해도. 그녀는 지쳐 울지도 못해서 결국 그랬던 걸까. 모르겠지만. 내가 알턱이 없지만. 감히 알 수 없고 알 자격은 더더욱 없지만.


참 아름다웠던 한 때의 '자기 자신'을 여전히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럼 좀 덜 불행하고 덜 아플텐데....그럴까..


사랑한 게 전부였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다시 살아낼 용기도 주어지나요? 

엄마. 예전엔 '예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만, 요즘은 모르겠습니다. 예스라고 이제는, 서스름없이 말하지 못합니다. 살면서 시나리오가 주어지지 않잖아요.


흘러가는 시간과 흐르는 마음에 예측되고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맞춰서 살아가지 않을 테니까.


아무튼 그랬어요.

히 무례하고 주제넘게 말이 좀 많았네요. 다만 그녀의 삶과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마음을 잠시 생각하다보니, 여기서 이렇게 당신에게 고백해 보게도 됩니다. 엄마. 당신 딸도. 나도 그때 그랬었다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 나...정말 많이 외로웠다고. 아무도 없었다고. 처절하게 고통스러워서 도저히 내일을 기대할 수도, 당장 오늘 어찌할 수 없는 경지에 남몰래 이르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만큼의 크기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그래서 나 같았을 그때의 너저분했던 그 마음을, 누군가가 또 어딘가에서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부디 그들의 곁에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제발 존재해주기를 감히 바랍니다. 아니 그들 스스로 '사랑'을 기억할 용기가 조금이라도 샘솟아 주기를. 감히도 바라면서 이 글을 써 봅니다.


결국에 사랑 아니겠어요. 돈을 버는 이유도, 가족을 책임지는 이유도.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이유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든 자신 스스로든, 사랑하고 또 사랑받기 위해. 버림받기 싫고 상처받기 싫고 다만 사랑으로 가득 기쁘게 살다가 죽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너무 로맨스트 혹은 그저 젊은 치기에 한때의 심한 감성팔이라고요? 네. 뭐 그렇게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만 엄마.


미치게 사랑하고 죽자 싶은 거죠. 아낌없이 사랑하고 부족함 없이 사랑하면,
후회도 미련도 덜할지 모르잖아. 죽음 앞에서...


그러니 이런 마음의 저로서는 여전히 앞으로도 '사랑'과 '죽음'을 두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이 와중에' 글을 쓰며 사는 저를 가끔 질타하는 당신과, 식어지는 마음의 간극처럼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진 나의 그이와, 여전히 가끔 도망치고 싶지만 그럼에도 떨어질 수 없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생각하며 말이죠. 또한 지금 이 순간,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기에.
살아있는 지금이 있기 이전, 그때 제  마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보내야 할 시간도 모자르다는 거.....이제는 기억합니다. 아니 기억할 겁니다. 되도록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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