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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8. 2018

내 꿈은 당신보다 먼저 죽는 거예요  

그 정도의 마음으로 산다는걸, 감히 여기서 말합니다. 

편지 스물 하나) 이 정도의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여전히.. 


엄마. 어제는 비가 참 많이 왔죠. 좀 더 많이 오기를 바랐는데, 바람과 달리 알아서 적당히 내리더군요. 

비 오는 날이 어렸을 적엔 정말 싫었어요. 시장 보러 당신 손 잡고 쭐래쭐래 따라갈 때면 이상하게 운동화 속으로 자꾸 물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럼 발이 축축해지기 시작하고. 그 느낌이 그냥 싫었어요. 조금이라도 들어와서 젖어들기 시작하는 그 찜찜한 느낌... 그래서 내리는 비를 만끽할 겨를 조차,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을 못했던 거지. 


근데 있죠. 이젠 그런 것 보다 그냥 내리는 비 자체가 좋아지더라고요. 어느새 그렇게 변한 거예요. 

숫자적으로 어른이라는 나이로 차오를수록.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숫자와 주름, 연륜과 동시에 겉멋과 허세, 강인함을 가장한 나약함, 아쉬움과 그리움도 같이 늘어나는 걸지 모르겠어요. 언젠가부터 비 오는 날이 그렇게 좋아지더라고요.. 비랑 그런 마음이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별 상관없긴 하네. 근데 그냥... 아마 그건 제가 약간의 겉멋과 약간의 허세와 약간의 정신병자스러운 사랑을 시작하던 스물한 살 여름. 맞아요 엄마. 어쩌면 그때부터 좋아졌나 봐. 나도 모르게. 가랑비에 어느새 축축해진 신발처럼. 그때 좋아했던 그 첫사랑이 비 오는 날을 좋아했거든요. 아직도 첫사랑 타령이냐고요? 아뇨. 타령이라기 보단.. 타령일지도 모르겠네. 그치만 엄마. 이런 마음과 기억, 아직 간직하고 있다는 게 어찌 보면 어른의 당신 입장에선 우습게 보이겠지만. 네 되게 유치하고 우습겠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그래도 엄마..  


다 씻겨 내려가는 꺠끗한 느낌이면서도 동시에, 시간이 정지되는 느낌이어서. 그래서 좋은가봐. 붙잡고 싶은 시간엔 더더욱.


원래 사랑이 다 유치하고 우습고 어리석은 거 아니겠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그가 좋아하는 비 오는 날을, 나도 좋아하기 시작한 건. 



비가 내리고 덥고 습해지는 시간도 노떙큐인데, 어제는 당신 마음에조차 비가 세차게 퍼부었네요. 

나 때문에... 여전히 나 때문에 당신은 울고 만다는 걸 곁에서 지켜보니 또 깨닫게 되더라고요. 정말 미안하거나 정말 답답해지면 입을 꾹 다물게 되는구나 라고. 이제는 그 어떤 말도, 사연도, 사건도. 함부로 당신 앞에선 입 밖으로 내뱉기가 쉽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다 컸다는, 더군다나 이젠 어엿한 애엄마가 되어서조차 당신 눈에 눈물 빼게 만드는 나를 탓하며. 내가 아직 덜 되고 덜 자란 모지리라 그래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엄마. 이번 생에 이렇게 태어나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걱정 많이 했었어요? 내가 정말 치매라도 걸린 줄 알았었다면서요. 


너 어떻게 되면, 나 니 애들 안 키워!  
엄마.. 에이 왜 또 그러셔. 나 건강해. 멀쩡하다니까. 오버하시긴.. 
안 건강해 보이니까 그렇지! 툭하면 집에 와서 코피 흘리고 어지럽다 하고. 기억도 못하고 불면증에. 멍하고! 
아냐. 원래 애 키우면 다 그렇다며. 내가 날라리라... 육아 스킬도 부족하잖아.
다 필요 없고. 다 때려 쳐. 너. 그냥 평범히 살아.  뭐가 우선순위야 도대체 무슨 생각 하면서 사는 거야!
..... 그러게 나 요새 아무 생각 없이 사네. 
정신 좀 똑바로 좀 차려 제발 좀...왜 그래 정말. 나 심장 터져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진정해 엄마. 미안해 미안. 그래 내가 다 미안. 아이고 우리 한여사 속상하셨구나.
이 년아 네가 내 입장 되봐. 다 큰 딸년 여전히 이렇게.... 내가 너 때문에 여전히 울어! 
엄마.... 
네가 내가 돼보라고. 애미 죽는 꼴 볼 거야 진짜! 



한 달째 육아 도우면서 허둥대는 날 지켜보며. 정말 심각하게 괜한 생각 하셨다면서요. 그 와중에 어젠 잃어버린 핸드폰 찾는다고 갑자기 나가버리고 전화는 받지 않고. 나 정말 못된 딸년이네. 그렇죠. 둥이들이 그 와중에 '할머니 울어?' 이 소리 한방에 훅 가셨다면서요. 눈물이 주르륵. 알아요. 그 마음. 나도 그랬으니까 아이들이 곁에 와서 '엄마 울어' 할 때 그 목소리. 그 하얗고 작은 손바닥으로 내 머리카락을 만질 때의 그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동시에 기쁨과 동시에 미안함.....


그 또렷하고 작은 눈망울의 쌍둥이들의 눈을 쳐다보고 있으면..엄마. 나 요새 정말 많이 울어...왜이러지....... 미쳤나봐 



이해해요.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엄마가 그랬다면 나 같았음 더 했겠지. 

당신이 얼마나 날 걱정하는지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걱정해주는 행동이 요새는 엄마. 너무 아파요.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끔 치밀어 올라요. 또다시... 말이죠. 당신 딸이 욕심과 에고가 넘쳐흐르면서 아직 감당도 못하는 세계에 들어와서 엄마 역할을 해내고 있는데. 여전히 그게 쉽지 않은 거야. 그래서 엄마. 당신이 바라는 그 어른스럽고 사회적으로 딱 적당하고 모든 이들이 원하는 그 모범적인 기준에 맞추기가 왜 이렇게 요즘 어려울까요. 



나. 그렇게 모범적이지 않아요. 도덕적이지도 않고.
그래서 당신의 걱정이 앞서 전해지는 행동들, 여전히 가끔 숨 막혀져서. 미안해요..



걱정마요. 엄마. 나 머리. 아직 멍청이 안됐어요. 아니. 미안. 거짓말했다. 

가끔 어떻게 돼버린 거 같은 순간이 좀 찾아오는 요즘이지만.. 원래 다둥이 육아에 밥벌이. 그 와중에 그 빌어먹을 꿈까지 어찌 됐든 무슨 오기에 또 이뤄내 보려고도 하니까.. 그래서 당신 말대로 '정신 똑바로 못 차려서' 자꾸 허둥대고 삐끗하고 서툴러지고 가끔 기억도 정말 흐릿해지고. 반 멍청이 다 돼서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 때론 막 언행도 불사해가며 살아가는 이 와중이라. 그래서 그런 거라고. 나만 그런 게 아닐 테니까.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병처럼 생각할 것 없어요. 


비도 곧 그치잖아요 내리고 나면. 그냥 그런거라니까. 그냥 지나가다 만나는 비 같은 시간일거야. 요즘의 시간도..



그렇지만 엄마. 사실 나도 이게 병인가 싶을 만큼 섬찟할 때가 요새 좀 생기네요. 

일종의 신경증이랄까. 그래서일 거라고. 자꾸 심장이 나도 모르게 두근대거나 금방 피로감이 쌓인다거나 갑자기 기분이 내가 종잡지 못할 만큼 극에서 극으로 달릴 때면.. 솔직히 좀 내가 스스로 무서워지기도 했지.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아니 오히려 더 밝게 잘 웃고 지내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나도 사람인데. 그러니 당신 성화 반 내 걱정 반, 종합검진에 신경정신과 특수부위 쪽 촬영도 같이 신청했으니까. 그러니 너무 걱정 말라고.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별 거 아니라니까. 별 거 아니야. 정말.



말주변 없어서 미안해요. 대신 엄마. 당신에게 차마 하지 못한 이 말을 어제는 문득 건네고 싶었다니까. 

그렇지만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하고 나면 당신이 분명 어이없이 웃으며 기어코 화 내실 테니까. 주변 사람은커녕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년이라고 또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아서. 그렇지만 엄마. 저는 여전히 마음에 담고 삽니다. 당신이 결국 날 걱정해 주는, 이 세계에서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나의 신변에 무슨 사건이 생길 때마다 유일하게 찾아와 준, 사실 찾아와 주지 못한 '그 순간'에도 난 당신을 소리 없이 찾았으니까요... 그랬으니까.. 사실 엄마 내 꿈은요. 요즘 내 꿈, 더 선명해지는 꿈은요. 사실 유명 전업 작가도, 퍼펙트한 슈퍼맘도, 그럴싸하게 행복을 주장하는 삶도 아니에요. 


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일찍 죽는 거. 그게 요즘 내 꿈이야.
내가 사랑하는 당신보다 더 먼저. 



참 어리석고 나약하고 여린 마음이겠죠. 

그렇지만 반대로 저로서는 최선의 마음이고 단단한 마음이고 절실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물리적으로 생각해봐요. 엄마. 이건 쉽지 않아요. 쉽지 않으니 꿈인 걸 테죠.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더군다나 약도 더 많이 드시는 당신보다 내가 더 먼저 죽을 리가 없잖아. 설령 그런다 해도... 걱정.이라는 걸. 눈을 감기 전에 나는 할 테지. 남겨진 당신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그들.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 


미안. 쓸데없는 생각. 아니 그렇지만 이 정도 크기의 사랑. 네. 이것도 사랑이라면 제 사랑의 표현은 오늘 이렇습니다. 당신보다 더 일찍 죽고 싶어요. 왜냐고? 나... 반대로 당신이 없어지는 상상을 해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미칠 것 같거든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아. 다 흔들릴 것 같아. 그만큼일까. 당신과 여전히 일상 속에서 투닥이며 싸우고 그렇게 지내는데도 사실은 당신과 연결되지 못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차오르는 슬픔이 날 삼켜 버려요. 그래서일거야. 이 마음은.


당신이 계속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그건 반대로 
이번 내 생에 당신의 부재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고 싶은 얼굴이. 당신이. 보이면. 그게 성공한 삶이지. 안그래요. 그러니 있어야해. 살아있어야 해요. 


어이가 없죠. 네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요. 불가능한 걸 꿈꾸는 저는 여전히도 어이없이 살아요. 

그러니 생겨먹은 게 이래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걸 같다가 '꿈'이라고 정해 버린 걸 테지. 그렇지만 엄마. 이 또 다른 삐뚤어진 사랑의 형태를 당신에게 정제해서 간결하고도 담백하게 당신에게 전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여기서나마 토해내 봅니다. 당신의 그 모든 걱정과 요즘의 슬픔과 차고 넘쳐흘러 버려서 어긋나게 화를 주고받는 우리들. 그렇지만 그것도 한순간이란 것도 압니다. 그래서 전화했잖아요.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엄마'하고 불렀잖아요. 그거 알아? 아까 전화했을 때 얼마나 뭉클하던지. 이상하게 눈물이 날 뻔했다니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저앉아 버릴 뻔했다니까.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슬픔 조차 하나의 마음으로 느낀대요. 
정말 그래요...? 그래요. 그렇다고 믿고 싶어요 


엄마. 사랑은 말이죠. 상대적인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고요. 

가족이라는 때론 떨어지고 싶지 않은 감사하고 행운스런 존재임과 동시에, 또 때론 버려버리고 싶은 존재들이 되기도 하는. 그 울타리 안에서조차 우리는 고독을 느끼니까요. 당신이 가끔 울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요즘처럼. 그리고 혼자 원고를 쓰거나 이 편지글을 쓰고 있는 시간엔 더더욱 차오를 듯한 두근거림과 동시에 아파오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은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네. 그런 게 대부분일 테죠. 그리고 또 하나. 엄마. 그에 버금가는 게 바로 연애하는 남녀라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연애하는 남녀 아니 사랑에 빠진 누구라면 다 그런 거겠죠. 그렇다면 엄마. 전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요. 맞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 스스로 빠지나 봐. 내 이야기에, 내 삶에, 당신의 독설과 동시에 당신의 그 따뜻해서 미안한 걱정,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틀어준 음악. 그 음악과 그 시간들과....


우리는 대개 자기밖에 몰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일이 거의 없는데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라면. 네 엄마. 저는 그래서 글을 계속 쓸 생각이에요. 쓰는 행위로 일단 살아있음을 느끼는 저는. 오늘도 이렇게 당신에게 쓰면서 고백해 봅니다. 


당신보다 더 일찍 죽기를 바라는 나약한 마음으로. 이렇게 잘 살아 있어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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