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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27. 2018

내 편 하나쯤이란 비겁한 생각

그 하나가 당신이길 바랐었나 봐 

편지 다섯) 폐기되는 마음을 건져 올려 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구원자. 그게 당신 혹은 나이기를 바랍니다. 


사라져가는 어떤 마음들을 모른체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손 내밀어 주고 싶죠. 되도록 있는 힘껏 말입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믿고 싶었던 단 한 사람. 

바로 제겐 당신이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굳이 따지려고 든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죠. 그저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을 땐 꼭 당신을 찾았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와 줄 사람. 무슨 짓을 해도 날 믿어줄 것 같은 사람이라 믿었나 봅니다. 


 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단 한 사람 '내 편'  말이에요.   


당신에게 드러내기 쉽지 않은 것들이 삶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특히 살면서 답답함이나 불편함이 쌓이게 되면요. 애석하게도 당신께 숨기는 것 또한 하나 둘 점점 나타났답니다. 느꼈던 불편한 에피소드를 바로바로 당신과 마주하며 마음이든 시간이든 열어 보일 자신이 이상하게 없었던 것도 같고. 


시간이 흘러서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도 감사하고 또 다행인 건, 스쳐 흘리면서 살짝 공개했을 때, 당신이 알아차려줬던 것 같다는 나만의 착각. 아마 우리가 그 집에서 이사를 가게 된 이유가 어쩌면 내가 말한 것들을 당신의 눈치 빠른 선택 때문이었지도 모를 일입니다. 

  

초등학교 막 들어갔을 때였던 것 같아요. '우리 동네'라는 기억이 시작된 그곳.    

이제서 말하지만 엄마. 전 그때 뭐랄까. 기괴하고도 묘한, 그야말로 이상한 두려움을 난생처음 겪었던 것 같아요. 아. 그렇지만 걱정 마시길. 정말 하찮은 그런 에피소드, 절대 당신이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그런 일(?)은 아니었답니다. 


다만 여자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흔히 겪을 수도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좀 일찍 맛보았다고나 할까요. 

그게 성추행이라는 걸 뒤늦게야 알았죠. 성추행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던가, 여전히 자문했을 때 퀘스천을 날리곤 하지만 아무튼. 느낌을 당한(?) 당사자가 무섭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건 분명 유쾌한 삶의 에피소드는 아닐 테죠. 그저 시간이 흘러 담담히 기억 속에서 무뎌질 뿐. 다만 이렇게 글을 쓰다 갑자기 생각났을 때 여전히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죠. 


마음 언저리에 낀, 불편한 찌꺼기 같은 기억이랄까요. 




완벽한 어둠의 시간도 지나가면 불빛들이 하나 둘 생기더라고요. 그 덕분에 또 지낼수도 있는 걸테죠. 우리들은. 



당신이 퇴근할 때까지 집에서 놀았어야 했나 봅니다. 

친구 따라 나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근데 그 나이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나 있겠어요. 늘 노는 나의 몇 안 되는 친구였고 우리는 늘 그랬듯이 고무줄 하러 나갔던 거죠. 그때 그 오빠가 불렀어요. 엄마와 나를 보면 인사를 주고받던 그 사람이요. 아마 중학생쯤 되었던 것 같아요. 늘 똑같은 교복을 입고 다녔으니까. 


고무줄 할 넓은 곳을 알려줄 테니 따라오라고 하더라고요. 따라갔는데 돔 모양의 약간 천막이 쳐진 공사장 같은 곳이었나. 아무튼 거기에 우리를 불러들였어요. 뭔가 이상했지만 뭐에 홀린 듯 따라갔었죠. 그런 모양의 공간을 본 게 처음이었으니까. 완전 바보였죠.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그땐 근데 뭐 알았나. 어린 나이에 그런 것(?) 까지 일일이 따지고 주의 살피며 살 리가 없잖아요. 아니, 있나... 

  

속살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라고요. 

갑자기 윗옷을 벗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곁엔 2명이었나 3명이었나. 아무튼 친구로 추정되는 인간들도 여럿 있었고. 지 혼자 중얼거리더니 '이게 뭔지 아냐'며 바지도 같이 벗으려고 했던 건 분명히 기억해요. 거의 막판엔 팬티만 입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이 좀 웃기기도 하고 아무튼 이상한 낌새를 그때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아니다 싶었던 거죠. 딴 때 같았음 뻑 하면 우는 제가 이상하게 그땐 울음도 안 나오더라고요. 다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요. 마치 뱃속의 장기들이 뭔가 자기 멋대로 뛰기 시작해서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바운스... (라는 표현이 좀 거창하지만 아무튼 그 정도 스케일로 쿵쾅 질을 했다고나 할까요) 

  

엄마야! 하고 소리 지르면서 마구 달렸던 것 같아요. 뒤도 돌아보지 않았죠 

다행히 친구 집이 근처라 거기에 잠깐 있었잖아요. 핸드폰도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연락이 닿을 턱이 없없지만 다행히 육아에 노련했던 당신은 내 친구와 내가 가는 장소를 꽤 잘 알고 계셨잖아요. 그때 그가 우리를 붙잡으려 쫒아왔었다면 지금 아마 저는 이렇게 글을 쓸 여유(?)와 평범한 삶을 즐기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씁쓸히 잠깐 해 봅니다.   

  

"어디 갔었어. 얼마나 찾았는데"  
"그냥 정아랑 고무줄.." 
"얼마나 찾았는데. 앞으로 엄마 오면 말하고 나가. 알겠지?" 
"응 엄마. 근데 엄마. 그 오빠 옷 안 입고 나랑 인사했어. 저기 신기한데 있어. 커다란 공 모양이야 천장. " 
"뭐?"  
"엄마 그 오빠 좀 이상해. 되게 춥게 옷 다 벗었어. " 

  


뭔가 앞뒤 안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를 했어도 대충 다 알아차리셨던 거겠죠.  

당신이 척하면 차이라는 눈치 백 단이라는 건 점점 커가면서 알게 되었으니까. 그 이후에 그가 엄마와 나를 동네에서 마주했을 때 엄마가 무섭게 노려보면서 그 아줌마와 싸웠던 기억도 나고요. 결국 우리가 이사 갔잖아요. 그 일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난 그와 더 이상 마주할 일이 생기지 않았어요. 일단 차단된 셈이죠.  


그러나 완벽한 차단은 없나 봅니다. 몇 해 지나고 또 이상한 전화를 받았었잖아요. 그땐 저도 중학생이었고 세상을 사람을 꽤 알아가기 시작했던 중2병이 도지려던 찰나였으니, 하 이거 참. 세상에 별 미친놈이 있긴 있구나 싶었다니까요. 제법 깡단이 생긴 거겠죠. 근데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전 바보였어요. 



  

"여보세요?" 
"... 학생 맞죠? 중 1이고.. 아직도 거기 사나 보네" 
"네. 전데요 누구세요?"  
"거기 많이 자랐겠네. 그 나이면. 가슴도 좀 커졌니?"  
".... 네?"  
"아저씨가 말이지."  

  


탁. 하고 끊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왜 울었지.. 왜 울었을까. 그냥 놀랐나 봐요. 그때는. 

  

"엄마..." 
"왜 울어? 왜 그래? 전화 엄마 바꿔봐."  
"끊어졌어." 
"울지 말고, 무슨 전화였어."  
"내 가슴이 커졌냐고 물었어."  
.... 어디서 미친 잡것이 전화질을. 괜찮아. 괜찮아.  



당신은 제 말을 듣고 집 전화번호를 당장 바꾸셨죠. 역시 당신 더워요. 속전속결.  


'맞짱' 뜨는 것보다, '피하는' 게 최선일 때도 있기 마련이죠. 
살다 마주하는 더러움이나 불편한 것들은. 



 


그런데 엄마. 우리 둘이 뭐 언제라고 맨날 좋았던가요. 의지하는 만큼 앙숙일 때도 있었잖아요. 

아마 피크 친 건 제가 살이 심하게 쪄서 스스로 심각한 스트레스였을 때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한 스무 살 이후였던 것 같아요. 엄마는 여전히 엄마의 역할에 충실히 살아오신 탓에 때론 내버려두지 않으셨죠. 다이어트하는 딸에게 먹고 싶지 않은 것들을 계속 강요(?)하셨고, 연애하고 돈 벌고, 공부하고 봉사하고 그런 온갖 핑계로 늦게 들어오면 너무 늦는다고 연락하고 다니라고. 그 모든 게 당시 제겐 자유에 대한 핍박(?)처럼 받아들였던 몸만 컸지 여전히 미숙한 어린애에 불과한 저였기에, 당신에게 참 몹쓸 말들을 우린 여러 번 주고받았었네요. 


당신에겐 그게 사랑이었는데, 내겐 사랑으로 안 느껴졌나 봐.. 



'내 편, 네 편'이라는 틀 속에서 너무 서로 생각한 나머지, 서툴렀던 거겠죠 
엄마에겐 사랑이, 나에겐 자유의 억압과 강요되는 잔소리로. 
 
  

"내가 딸이 있음 뭐해. 네 년이 내 편이 아닌데. 지 힘들 때만 찾고" 
"그만큼 들어줬음 됐잖아. 아직도 안 됐어? 내가 언제까지 엄마 말만 듣고 살아야 되는 건데" 
"기집애. 내가 너 위해서 이런 말 하지 나 위해 해!"  
"내가 엄마처럼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하고 집안일하고 일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어?" 
"다른 집 딸 년들은 살갑던데"  
"그럼 다른 집 딸년이랑 사시든가"  
"사나운 년." 
"하여튼 좀 잘해주려고 해도 잘해줄 수가 없어 짜증 나 진짜. 안 먹어! "  
"줘도 지랄이야."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이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방자했어요.

미안해요. 한때 너무 대들었었죠. 당신도 감정이 있고 생각할 줄 알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부모 이전에 그냥 딱 한 사람에 불과했을 텐데. 누구 편들어 주느라 오히려 본인 불편함도 표현해내지 못하고 참고 또 참고. 그러다가 한 번씩 터지면 그 터지는 것이 과거사부터 나오는지라 1절부터 4절까지 구구절절 읇퍼대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신.. 시간이 지나간 이후에 남은 기억엔 이렇게 미안함만이 대신 자리를 지킵니다. 


너무 더운 요즘이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 선선해지니. 믿고 기다릴 수 밖에요. 기다림의 선물이랄까요. 


당신에게 아픈 말 좀 덜 할걸 그랬어. 


바람이 지나쳤나 봐. 기대하고 의지하는. '편'들어주길 바라는 마음 말이죠.

그러다 보니 '내 편 네 편'이라는 쓸데없는 프레임 설정으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끝이 나는 대화들이 커가면서 자주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편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인정'이겠지.. 이상적인 관계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줄 수 있을 때 사심 없이 주고, 손 내밀어 줄 때 기꺼이 받는.
두 사람 사이의 마음이 연결되면 그게 바로 편 아니겠어요..


  

여전히 제멋대로인 저는 그럼에도 당신이 늘 '내 편'이라는 생각을 무기 삼아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무릇 치이고 깨지다 보면 숨고 싶고 내 편들을 찾아서 기대고 싶어 지잖아요. 물론 진정으로 기대야 하는 대상은 언제나 기승전'나 자신'일 테지만요. 여하튼 세상에 내 편 하나 여전히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때론 힘이 쭉 빠졌어도 괜찮아지곤 한다니까요. 다시 일어나서 막 뛰지는 못할지언정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하거든요. 


내 불편한 이야기들을 오롯이 다 받아준 내 편이었던 당신이, 좀 더 당신의 불편함도 더 표현하며 지냈음 해요. 

당신이 느꼈을 내가 몰랐던, 여전히 모르는 불편한 구석들. 제멋대로 이야기하고 상상하길 좋아하는 당신의 딸은, 여전히 서투르고 미숙해서 당신이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몰라요. 모르지만 걱정을 하죠. 난 당신의 '편'이니까. 그러니 어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언제나 휴대폰을 꺼내서 안부를 묻고 마음을 전하는 일뿐입니다. 최근엔 지방에 내려가 있는 당신에게 뜬금없이 이런 말을 건넸잖아요. 나 좋자고 내 편 해 달라고만 말했었던, 들을 줄 모르는 내가 너무 미안했다고..


단 한명의 구원자조차 없는 여리고 약한 이들이 여전히 있다는 걸 모른체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젠 망설이지도 아끼지도 않고 드러내볼 생각입니다. 
사랑해. 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이 목소리에 담긴 마음을.  



우리 좀 더 '편' 해볼까요.  엄마는 엄마 당신 편, 나는 내 편. 그러다가 둘은 서로의 편을. 

비록 우당탕탕 하는 지금일지언정, 동시대를 두 사람이 함께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은 서로가 서로의 '편'이기도 하다는 걸. 


고마워요. 지금 곁에 살아 있어 줘서. 목소리가 들려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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