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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03. 2018

'나의 아저씨'를 당신께 고백했던 날

난 그 사람이 필요했어요.

편지 여섯) 그가 필요했던 만큼, 나도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었기를. 여전히 그러하기를.


가라앉는다 해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면 그게 사랑 아닐까. 결국 뜰 지도 모를 일이고. 둘 이니까. 둘 이라서.. 놓지만 않는다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사람.


나를 나약하게 하다가도 일순간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내는. 기대했다가도 기대하지 않게 만드는 사람.

사라지고 나서야 찾아오는 뒤늦은 상실과 고통을 겪어 봤다면. 부재중에 깨닫는 존재의 소중함. 우리는 그런 대상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엄마..


주저하고 망설이다 놓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이상한 이유같지만요. 뚝뚝하면서도 깍듯한 존댓말을 언제나 사용했던 사람이었어요. 그의 굵지 않은 낮은 톤의 목소리에 이상하게 끌렸습니다. 한편으론 음성 곳곳에서 쓸쓸함을 느끼기도 했고요. 사랑은 언젠가 식는다는 걸 아는 사람같았습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대상과는 결혼하지 않는 거라고 믿어서인지, 그의 초연한 태도(?) 에 끌렸나 봅니다. 그와는 '결혼제도'에 들어가서도 괜찮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와 어떤 믿음이 생겼습니다.  더 기대며 지낼 수 있을것도 같았고... 사실 그게 가장 커다란 이유였죠.


"한동안 안 보니까 어땠어요?"
"안 좋았어요..."
"나도 안 좋았어요..."
"....."
"왜 나한테 프러포즈 '같은 건' 안 해요?"
"결혼 같은 거. 안 해도 상관없어요. 늦었고.. 혜원 씨에게 미안하고. 그냥..."
".... 그냥?"
"계속 볼 수만 있었으면 좋겠네요. 지금처럼."
"... 웃기시네요."
"그러게요. 웃기네요."


 

벗어나고 싶은 '현재'에서 새로울 것 같은 '미래'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당신들의 티격태격하는 그 흔한 부부싸움을 한때 자주 봤을 그 무렵, 결혼 따위 애초에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죠. 당신께 미안하게도.. 그럼에도 사랑에 늘 빠져 있었던 저였던 것 같고요. 한동안 아주 진하고 오 이별의 성장통을 치뤄내면서 동시에 사회, 조직, 일, 회사, 뭐 이런 세계로 발걸음을 옮길 무렵이었습니다.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일터의 홍일점 신입사원이 깡이라도 좋아야 할텐데 그러지도 못했던 저였죠. 출퇴근 4시간을 견뎌가며 지치고 불안한 하루들을 그저 쳐내듯 지냈던것 같아요. 편안함 혹은 여유? 이런 단어들은 애초에 나완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일상의 연속인 듯 했.

나만 그런 건 아니었을텐데.

그땐 내가 아픈 게 전부라 믿었었네요. 이기적이죠.


수면 위가 도대체 보이지가 않는 것 같은 막막함 있잖아요 엄마. 제가 그때 마음이 '단디'하지 못했나봐..


사실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지금의 그이에게로.  

할 수만 있다면 리셋해서 새 삶을 살고도 싶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고작 스물일곱의 나는 그때 그랬습니다. 소위 만남의 데이트라는 걸 숫자로 카운팅 하자니 세 달 정도 했으려나. 결혼을 하기까지도 생각해보니 5개월 정도였을까요. 그렇지만 5년은 걸린 듯한 느낌이었.. 사랑이란 아픈 것과 기쁜 것을 동시에 가져오던 그 짧은 시간들은 말입니다.


내 곁에 있어줄 것 같은 유일한 사람 같았거든요. 따지고 보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타인에게서 어떤 유일함이나 영원함을 바라는 건
'나'의 욕심 일텐데 말이죠.

그래도 걱정 말아요. 도망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사랑이라고 믿은 순간의 어떤 강한 끌림과 감정 덕분에 결혼제도에 들어가게 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됬으니 말이죠. 삶은 경험의 연속이고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도 알게 됬으니. 이젠 그런 제 선택들에 후회 하지 않기로.....합니다. (라는 약간의 거짓말 :))


마냥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게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 느낌을 한동안 욕망했었어요.

날 선 감정과 풀리지 않은 분노로 가득하기만 했던 스물여섯 일곱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을 더 이상 이성적으로 받아낼 자신이 없기도 했고요. 사실 어디든 날 모르는 누군가에게 기대고만 싶었을 때 그가 눈앞에 나타난 거예요. 세상을 겪다 보면 정말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인데 다행인지 불행(?) 인지 그는 제게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치만 한편으론 참 미안하기도 했어요.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사실 죄악 같았거든요.. 겉으로 표현해 내기 못했지만 안정적이고 성숙한 마음의 제가 아닌데. 그럼에도 참 좋아해 준 그가 고마웠고 그래서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날 '필요' 한 사람이라고. 내가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걸 반대로 느끼게 해 주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고마운"존재였어요. 정말 진심으로 고마운...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다가가고 싶어지기도 하죠. 그러다가 풍덩. 그 사람의 세계에 빠져들어요. 사랑의 시작인거죠.



사람들은 '남' 이야기를 알게 모르게 잘 떠들어대는 것 같아요. 시끄럽게도.

그렇지만 그런 '나'들이 '남'의 진짜 속을 알 턱이나 있겠어요. 제대로 알려하지 않죠. 그럴 필요가 애당초 없으니까요. 다만 보이는 단편을 멋대로 해석하긴 쉬운 것 같아요. 자신들의 제멋대로. 물론 저도 그렇게 멋대로

구석이 여전하지만요.. (그럴수록 겸허해기도 하고요)


큰 결격 사유(?)가 없었던 신체 건강한 미혼 남녀였던 우리 두 사람은 사내 커플이었고 마음을 주고 받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짧은 연애 끝에 결혼을 발표했고, 헌데 그 이후가 회사에선 더 큰일이었달까요. 차장과 사원, 불륜 혹은 임신? 뭐 이런 온갖 잡다한 단어들이 오고가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기도 했었답니다. 그렇게 시답잖고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웃을 수 있는 누가 있는 반면, 결코 웃을 수 없는 이도 있는 법인데요. 엄마 저는 아쉽게도 후자였어요. 여전히 상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해지지 않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혼자가 되면 늘 울기도 했었네요. 그 덕분에.


그땐 당신도 내 곁에 없었는데..... 정말 혼자였었네요. 결혼하고 더 가끔은..


  




나의 아저씨를 당신에게 고백했던 날. 덕분에 세상의 욕이란 욕은 질펀하게 다 전수받은 것 같아요. 신랑을 만나는 도중에도 왜 난 당신에게도, 아빠에게도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당신은 '들키기 전에 먼저 말하지 않았다'는 것에 더 분노하셨었죠.


말하지 않은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 그건 어떤 차이일까요.


거짓말을 하려던 건 아니습니다.

다만 '나 이런 사람과 만나고 있어요. 엄마. 나 이 사람이 좋아지려고 해요.'라는 말이 쉽게 안 나왔을 뿐. 그러던 제 마음에 '공개 선언'을 해야 한다는 다부진 용기를 일깨워 준건 다름 아닌 그날이었어요. 엄마. 그날이요. 기억하세요? 아빠와의 진한 사투가 오고던, 어쩌면 그 하룻밤이 아니었다면요. 저는 연애만 하고 자연스레 헤어졌을까요.


수차례 맞은 뺨과 얼굴 곳곳보다도. 등짝에 시퍼렇게 든 멍보다도. 공개 선언을 했을 때 당신에게 들어야 했던 찰지고 걸쭉한 욕 한 바가지가 이상하게 더 슬프면서도 속상했었답니다. 당신은 이해해줄 줄 알았거든. 당신 한 사람만큼은... 같은 부위를 맞고 또 맞으면 정말 아프거든요. 여전히 가끔 결혼제도 속 생활에 넌덜머리가 나든가 지쳤을 신혼 초 무렵엔 그런 어리석은 핑계와 생각을 하면서 살기도 했었네요. 모지리같이.

  

"그 새끼가 너 건드렸어? 너네 사고 쳤어?"
"그런 거 아냐 엄마.. 나 그 정도 머린 있어. 자꾸 이상하게만 받아들이지 마요."
"아니긴 뭐가 아냐. 바른대로 말해. 숨기는 거 빨리 말해!. "
"그런 거 없대두.. 그냥 보통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예요. 잘해줘 나한테...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미친년."
"....미안해. 근데.... 엄마 아빠보다 더... 믿을 만.. 해. 미안해..."
"........정신 빠진 년. 뭐가 어쩌고 어째? 그 새끼가 결혼했었는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아니 알게 뭐야!
"진정좀 해. 제발.... 그 사람은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했었어. 결혼. 근데...내가 하고 싶어...해보고 싶어"
"제대로 미쳤네. 너 나 보고도 몰라? 6살 차이 나는 아빠랑도 여태껏 티격태격이야. 결혼이 마냥 좋을 것 같지? 나이 많아서 기댈 수 있을거 같고 널 평생 보듬아 줄줄 알지? 천만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천치 같은 년.. 결혼이 장난이야? 나이랑 상관 없어. 어른이어도 애 같은 인간들 많고, 겉으로 잘해줘도 미친 구석 한두개 달고 사는 게 인간이야. 이 헛똑똑아. 내 말 도대체 어디로 새겨듣고 다닌거야?"
"엄만... 가끔 그런 거친 말들에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기나 해?"
"....안 거칠고 베겨? 내가 보살이냐? 너. 지금 아빠랑 틀어지고 몇 대 쥐어 맞았다고 시위하는 거야? 아빠가 그 날 이후 얼마나 후회하는 줄 알기나 해? 넌 잘한 것만 있는 줄 알아!  꼬박꼬박 지 하고싶은 말만 하고. 지가 다 잘난 줄 알고. 못돼 처먹은 년.
"..........(나도 제대로 못되 쳐먹고 싶어. 그럼 상처도 덜 받잖아. 이렇게 울지도 않잖아. 진짜 못되면.)  
"그만울어! 뭐 잘했다고 울어! 그 소심한 양반이 몇 날 며칠 부두에서 잠도 못 자고 집에도 딸년 눈치 봐가며 못 들어오고 못 씻고 일만 하고. 니 년이 어떻게 나랑 아빠한테 그래!"
".....그렇게 힘들게 일만 하시라고 등떠민 적.... 나 없어...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말이야 막걸리야! 이 천하의 모자란 년"
"..... 아무튼 할 거야. 결혼. 그 사람이랑. 허락해 줘요..."
"안 하면! 그래도 할 거야? "
"... 할 건 해야지."
"망할 년, 염병할 년, 쌍놈의 계집애, 네가 어떻게 나랑 아빠한테 그래! 네가 어떻게! 나가 뒤져! 썩을 년!"

  

현실 도피를 택한 미련 맞은 딸이었겠죠

큰 문제(?) 없이 평범했던 딸을 꼬드겨 결혼이라는 함정으로 이끈 나이 많은 아저씨. 딱 그 정도의 스펙이 당신이 본 신랑의 첫 모습이었을 테니까요. 그이가 인사를 하러 왔을 때, 그저 자기 탓에 딸이 이 지경(?) 이 되었다며 자책하는 듯 침묵했던 아빠. 쏘아보듯 노려보다 호구조사 마치고도 막판에 스스로 화에 못 이겨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잖아요.


당신은 이미 알았던 걸까요. 우당탕탕 거리며 힘들게 삐걱 거릴 걸. 미리 예견이라도 했던 걸까요. 당신은 얼마나 내가 미웠을까요. 나 그때 참 미웠죠 엄마. 좀 더 미움 세차게 받으면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했을까. 결혼을. 그렇지만, 그럼에도 했었을 것 같아요. 그만큼...이었어요. 생각해보니.


나, 그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여전히 필요해요.
이것도 사랑이잖아요. 아니던가요.  


안개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흐리다가도 선명하게 마음을 파고들 때. 사랑이 시작될 때.







되돌아갈 수 있는 길과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이 있는 것 같아요. 

 결혼이라는 말을 꺼내게 된 순간부터 이상하게 말은 참 무서운 힘이 있는 듯 속전속결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엄마. 꽤 재빨리 해낸 걸 보면 말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신에 그렇게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신혼집을 마련했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뚜렷한 확신은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 이후의 어떤 삶에 대한 확신. 그러니 마음에서부터 생각이 생기고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루어지잖아요. 엄마. 생각은 행동에 늘 선행하니까요. 전 그걸 믿거든요. 그리고..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요.



되돌아갈 수 없는 길보다 되돌아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혜안을. 앞으론 좀 더 길러내 보고도 싶습니다.

결혼을 하고, 때론 당신과 싸웠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고, 실제로 돌아갈 뻔도 했지만.. 살아내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네요. 이젠 당신에게도 아빠에게도 그리고 '나의 그' 와 새롭게 주어진 나의 두 사람. 쌍둥이들까지..... 내 곁의 이 존재들이 참 버겁고 힘들기만 했는대. 어느새 그 버거움이 감사함으로만 느껴지는 요즘이라서 정말..정말로 다행입니다. 아마도 이 '다행스러움'은 제 마음이 변함으로 인한 선물이겠죠. 당신들은 그 자리 거기에 그대로 있었을 뿐일텐데.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래도 그 상처들 덕분에 새로운 길을 기대하며 움직여져요. 사람이 그렇게 변하기도 하나 봅니다.

 


길을 가다 주변의 작은 기쁨들을 매만지며 돌이켜 볼 수 있는 여유. 이제야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엄마가 된 나는 더더욱..



어제보다 오늘이 더 기쁘기를. 그 오늘들이 더 많아 지기를.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아픔도 사랑도 멀리 있지만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된다잖아요. 진부하지만 그것이 바로 시간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어요. 사라지는 먼지처럼 상처는 조금씩 가벼워지는 날도 오고요. 그렇게 생을 흘러다가 보면 다시 기쁘고 좋은 날도 오는 것처럼. 리들은 그래서 인내하며 또 오늘들을 흘러가다 보면 기쁨을 누리기도 하겠죠. 엄마. 저는 그 '인내'란 말이 예전엔 싫었는데 언젠가부터 참 좋아졌어요.


인내란 "좋은 일이 생길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란 말을 여전히 사랑하는 저인가 봅니다. 그 말의 참된 의미를 알려준 당신, 그리고 '나의 아저씨'에게. 오늘 이 말을 대신 전해 봅니다.


(사랑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용서해. (용서해 줘서) 고마워.
(결국 다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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