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Sep 28. 2018

친애하는 당신에게

마지막 편지 

편지 열넷)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 바로 당신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요. 바로 '엄마' 라는 존재가 있다는 거예요.. 

 

마지막 편지는 목소리로도 남겨 봅니다. 





열네 번째, 어느새 마지막 편지에 도착했습니다. 

엄마.. 일주일에 한 통씩. 마음을 털어놓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편지를 쓰게 된 결정적 계기를 잠깐 생각해 보니 '그 날'이 떠오릅니다. 짐승처럼 당신을 붙잡고 울부짖었던 날들 말입니다. 서로가 수술대에 오르기 전, 늘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우리 둘은 함께 였었잖아요. 그런 관계였어요. 정말 필요할 때 언제나 곁에 있어준 존재.. 그래서였을까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당신에게 몇 가지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엄마'라는 시간을 같이 통과했었네요. 

임신과 출산 그리고 다둥이 신생아 육아는 저로서는 솔직히 짐승 세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과장 조금 더 보태서 말이죠. 누구를 키우기에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어요. 뜻밖에 불어닥친 선물들이 사실 부담이었고, 그래서 육아라는 걸 즐겁고도 유연하게 흘러가기엔 마음은 나약했고 모든 게 서툴렀죠. 오로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 시간을 견뎌야 내가 보고 싶은 내일이 있을 것만 같은, 그저 일단 살아내야 한다는 본능 혹은 어떤 날 선 직감에 의존해서 버텨냈던 것 같습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생 최대의 위기도 있었고.. 그렇지만 그것도 결국 지나갔네요. 


지나고 보니 어느새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된 시간들도 생겼으니.. 고마워요. 한없이..



돌이켜 그때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지했고 이기적이었는지. 

이성 따위 잃어버리며 사치스러운 감상에 젖어서 쓸데없는 헛생각도 자주 했었었네요. 시간이 지나 이렇게도 '잘' 살아지는데 말입니다. 네. 엄마. 저는 이제 정말이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마음이 소란스럽고 외로움에 떨다가 두려움마저 마음에 자리하면 여전히 눈물을 흘립니다. 네. 사실 엄마. 전 여전히 울보예요. 당신과 함께 살았던 친정 집에서 27년을 살면서 울었던 시간보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7년을 살며 울었던 시간이 사실 더 많았습니다. 지하실에 들어가서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도 많았었네요..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을 날부터 당신의 뇌도 엄격하게 스스로를 통제해냈을까요. 

저는 요즘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가 오면 안절부절못하다가도 '지금 곧 가겠다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고. 곧 간다고. ' 그리고 어느새 연차를 내고 달려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던 걸 뿌리쳐내고요. 당신이 내게 달려와줬을 때처럼.. 그렇게 닮아가고 있습니다. 역할극에 저당 잡히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신기합니다. 사실 그런 생각조차 이젠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고 받아들여집니다. 내 삶의 반 이상은 다른 이를 위해 살아도. 이젠 슬프지가 않습니다. 어떤 날은 자신도 있어요. 제 마음에도 단단한 뭔가가 생기나 봅니다. '엄마'로서의 단단한 어떤 마음이 말이죠...





우리가 주고받았던 사랑의 형태는 '걱정'이었어요. 

그러니 기를 쓰고 서로가 가장 아픈 곳을 찌르며 끈질긴 서운함과 애석함을 나누었겠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아프게 마음을 표현해야 했을까 싶어요.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용서하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결국 당신을 사랑한다고. 



이 말이면 충분할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요. 언젠가 이별을 한대요. 

서로에게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 작별을 고해야만 한다면요. 사실 여전히 그런 날을 상상이라도 하게 되면 심장 한편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두근거림이 있지만... 


그럼에도 바랍니다. 당신에게 내가. 나에게 당신이. 

한때 누군가는 '나'라는 존재를 하염없이 사랑하고 품었기를. 반대로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했기를. 그래서 결국 서로가 끝까지 서로를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어느새 저는 이런 마음으로'오늘'이라는 시간을 흘러가 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품는 일, 누군가들의 '엄마'로 살아갈 수 있는 이번 생이 이제는 눈물이 절로 흐를 만큼 감사하다고. 잘 해내 보고 싶다고.. 그리고 나에게 '엄마'로 존재했던 그녀가. 당신이.. 나로 인해 좀 더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서로가 사랑하다가 언젠가 이별해도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기를... 말입니다. 



손을. 내밀어. 줄께요. 좀 더 자주. 가까이. 곁에서.. 눈에 보일때. 목소리가 귀에 들릴때 .이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일주일에 한 통. 친애하는 당신에게 

이 편지를 써 내려갈 수 있어서, 저는 많이 설렜습니다. 아프게 통과해왔던 과거의 시간과, 조금씩 상처는 아물며 흘러가 보고 있는 현재, 그리고 여전히 꿈꾸는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 이 시간들이 감사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 기억들도 먼지처럼 흩어져서 사라져 버릴지라도. 써 내려가면서 두 손으로 훔쳐낸 눈물을 후회하지 않아요. 다만 고마움을 간직하며 편지의 마지막에서야 그동안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이 말을, 당신에게 건넵니다. 


다음 생엔 내 딸로 태어나줘요. 꼭.. 



참 어쩔 수 없는 사람. 

피할 수 없는 사람.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 

이름이 들리면 괜히 눈물 나는 사람. 

이젠 좀 더 많이 안아주고 싶은 사람.

못 다한 이야기는 이제 목소리로 들려 주고 싶은 사람. 



친애하는 나의 당신. 

이젠 더 늦기 전에. 편지가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이젠 망설이지 않고 자주 마음을... 들켜볼 생각입니다. 더 늦기 전에...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동안 '친애하는 당신에게'를 지나치지 않고 읽어 주신 분들, 그리고 댓글로 마음을 남겨 주신 분들, 정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별 재미없고 보잘것없는 작은 이야기에 같이 공감을 주신 분들 덕분에 연재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 특히 'sarah' 님. 당신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정작, 이 편지들을. 저희 엄마는 못 보실 것 같습니다. 글 (까지) 쓴다고 고군분투하며 사는 서투른 딸의 삶을 여전히 걱정하시며 사느라 이젠 온 몸 여기저기 고장 나지 않은 곳이 없어서... 뭔가를 읽기에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하시거든요. 언젠가 '당신'만을 위한 책을 만들고 싶어서 이 편지를 시작했다는 건. 여전히 '비밀' 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알 것도 같습니다. 언제나 알고도 모른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자식새끼 위하는 부모의 커다란 마음을, 저는 넘지 못하니 말이죠. 

이 매거진 글을 쓰는 두 달 동안 저는 아주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로 연결된 모든 인연들께 감사하며, 오늘을 잘 흘러가 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또 다른 '친애하는 당신'께서도.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다면 있는 힘껏, 망설이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마음을 보여주시고 건네주시길.. 감히 바랍니다. 

우리는 그래야 하니까요. 더 늦기 전에.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유한하니까요. 
이 마음과 닿은 여러분이, 이 순간. 기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타고난 거짓말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