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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21. 2018

두 사람만의 메타포

일상의 근사함은 언제나 이런 순간이었다. 

- 여보. 그거. 저기, 저거 
- 응. 

대명사가 지칭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고맙거나 소중한 어떤 것들은 생활을 유지하다 어느새 잊고 살 때가 많다.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하게 생각하고 마는 착각도 여전하고. 인간의 망각은 쓸데없이 머릿속에서 그 생활의 소중함을 잘도 지워내버린다. 정작 기억해야 하는 소중한 어떤 것들을.. 그러니 아쉽다. 이 모자람이 언제나. 그래도 괜찮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지 어느새 - 라지만 어쩌면 아직일지도 모를 - 칠 년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마음이 엉켰을 때 스스로 궁상이 각 연출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요즘 일상 패턴은 단출해서 되려 고마울 때가 많다. 마음의 잡음과 소란을 그나마 잠재우는 건 이런 단조로움의 연속이 도움이 꽤 되니까. 

새벽 기상 - 10년째. 덕분에 이제 일찍 안 일어나면 이상할 정도 - 아이들 아침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며  등원 준비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집중과 몰입'이다. 오늘도 우리 둘을 도와준 핑크퐁 공룡 동화와 지니키즈 공룡 애니메이션에 은총을! 티라노사우루스와 그의 대적인 스피노 사우루스, 에드몬토니아와 프테라노돈은 요즘 최고의 육아 메이트, 나의 구원자들이시다. 아, 헬로카봇과 또봇도. 칭얼대지 않고 무사 등원해 주는 날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오전 8시. 등원 후 그이의 차를 타고 출근을 시작한 차 안에서 먼저 말을 섞어 내는 나를 발견한다. 

- 오늘도 많아?
- 응. 똑같쥬라기 
- 그렇쥬...라기 (풉) 


많다는 의미나 (회의를 말한다.) '쥬' 를 말미에 붙이는 것과 같은  -쥬라기라는 단어나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 덕분에 말 끝에 '쥬'를 붙인 지 꽤 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생활속 언어를 잠시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떤 편안함이나 안도감, 위태한 불안함이나 아슬아슬한 줄타기, 뭐 그런 것들..


- 다음 주네. 내가 친히 편지를 써 주겠어.
- '친히'는 됐고. 내키지 않는 거 이제 시키지 않아. 정말 괜찮아. 아가들이랑 촛불 불면 그걸로 됐어. 
- 괜찮지가 않았으니까 하는 소리야. 갈구지나 마시라, 애미야 
- 애미 아니고 '여보'. 그리고 나 이름 있어요. 이름 불러 주는 걸 좋아해. 아. 주. 
- 하여튼 만만한 적 없어. 예나 지금이나. 철부지 아가씨야 
- 만만하지 않아서 좋아했으면서. 그리고 아가씨 아니고 이젠 아줌마... 에잇. 빌어먹을. 
- 그래. 아줌마. 오늘 그 스타일 좀 괜찮네. 
-
 괜찮은 게 아니라 예쁘면 예쁘다고 말하는 거야. 자 다시. 장면 전환, 줌인, CUT 대사!

- 하여튼 특이해. 



일상 속 앞뒤 맥락이 생략된 채 주고받는 어설픈 단문의 의미조차도 이젠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메타포에 누군가 끼어들 틈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을 때. 가끔 난 이런 순간들이 벅차오를 정도로 기쁘다. 두 사람의 시간은 그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둘만의 것이니까. 

아이들과 다시 마주하는 시간, 이 시간이 낮이었는데 어느새 밤으로 변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이렇게 새삼 깨닫는다. 벌써 겨울이라니..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지만 또 한편으론 이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쉬운 순간은 종종 나를 덮친다. 

- 엄마, 배고파
- 알쥬. 엄마야가 맘마 차려요.
- 엄마. 나 맘마떡
- (헉....지금...떡국은 새로 해야 하는데) 으..응? 
- 맘마떡 맘마떡 


내 무의식은 이제 나의 의식을 가끔 뛰어넘는다. 
망설임은 없다. 다둥이 육아 겸업 3년 차. 이 정도면 노련해졌다는 증거겠다.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머리만 질끈 묶고 어느새 손은 김치냉장고 두 번째 칸에서 썰어놓은 아기 떡국떡 한 소분이 들어있는 봉지를 꺼내며 동시에 냉장고로 다른 한 손을 뻗어 만들어 둔 육수 국물이 들어있는 물병을 집고, 냄비에 붓기 시작한다. 

- 당연하쥬. 맘마떡! 기다려줘서 고마워! (떡...을 씻자 어서 빨리 망설일 시간은 없....) 
- 엄마. 티라노 놀이. 놀이이~
- 엄마. 맘마떡. 배고파. 
- 여보!  나 맘마떡. 둥이들. 옷. 가방. 뒷정리.  
- 응!
- 응! 
- 우리 쭈쭈뽀뽀 사우루스들 이리 오세요  
- 아빠 티라노 놀이. 놀이이~ 


손발이 맞는다는 걸 이럴 때를 두고 쓰는 말일테다.. 






두 사람의 메타포는 이제 일상 속 네 사람의 메타포로 자주 변해가는 중일지 모른다. 
어쩌면 둘 보다 넷이 더 많을 때가 점점 잦아지고, 또 둘보다는 혼자의 외침도 여전하다는 순간과 마주하면 다시 또 그로 인해 외로워지겠지만. 설령 그러할지언정 이젠 이 모든 생활의 언어들은 그 자체의 기쁨과 아픔을 떠안고 다만 흘러가 보는 중이겠다. 


깃털같이 사라지기 쉬운 우리들의 언어를, 기억하고자 해. 오래오래.... 망각이 나를 덮치기 전까지. 



- 아프지 말고... 


이 말을 목소리로 건네보고 싶어서 결국 참지 못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가닿을 수 있을까 싶지만 그저 줄 수 있는 온 마음으로 잠시 건네 보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요즘의 유일한 최선이다. 사려 깊은 그의 언어가 오늘의 나를 달아오르게 만든다는 걸 아마 그는 선뜻 대놓고 조신하게 참다가 결국 터뜨려지듯 드러내지 않고서야 모를테지만. 그와 엇나가는 시간이 다시금 설령 찾아올지언정. 그저 좀 더 괜찮은 나 자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누군가와의 메타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건 오늘의 나를 좀 더 성장시키게 만드는 옅고도 진한 끈 같은 것이니까.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해. 그래야 내가 안 아플 테니까.. 
혼자든 둘이든. 넷이든 또다시 혼자의 순간이든. 누군가 이 마음을 간직하는 만큼, 당신에게도 가 닿기를 바라는, 어느새 이면서 동시에 아직일지 모를, 11월의 쌀쌀한 오후가 이만큼 지나가고 있다.. 



#오후_낙서같은_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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