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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10. 2019

#9. 다 좋은 게 아니야

도쿄 타워

사랑이라는 건 빠진다고 다 좋은 게 아니야


- 도쿄 타워 -







(#혜연의 서재)



메시지는 별 게 아니었다.


- 별 일 없죠. 걱정돼서 그냥.



별 것 아닌 문장이 별 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평소엔 전혀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특별한 문장으로 바뀌는 것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이야기, 시시콜콜한 안부, 그것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성조를 가진다.



좋아하게 되었다. 정태민을.

그렇다고 생각한 도중에 받게 된 메시지를 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로선 이제 이 감정을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떤 특별한 것이 돌연 나를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그라는 사람이 나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라는 사람에게. 나도 포기하고 싶은 어떤 괴물 같은 모습이 살아있는 나라는 사람에게 말이다. 이 사실은 혼자 길을 걷다가도 문득  가슴을 뭉클하게 하여,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 싶게 만들 것이다.



거부할 수 없어서. 되려 생각이 나서.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에 그저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다.






(#드림타워 7층 오픈 회의실)


두 번째 북클럽 모임이 끝나가려 하고 있을 때였다.

미혼자 80% 에 육박하는 그 회사의 모임에서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를 초이스 했다는 건 정태민의 사사로운 호기심이었다는 걸 예상했음에도,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가 궁금했던 나는 그날따라 유독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 이건 사실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것 같아요

- 아뇨. 예상할 수는 있죠. 요새 하도 졸혼이니 휴혼이니 이혼이니 하는 세상이니까

- 어쨌든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는 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 유통기한이 있는 걸 알면서도 약속하는 게 결혼 아닌가. 일종의 책임이잖아요.

-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가 현실적이면서도 공감 못할 문화적 배경이라 좀 이질감이 느껴졌어요

- 이런 거 읽으면 솔직히 그때 감수성은 충만해지겠지만.. 현실적으론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중간에 이러쿵저러쿵하는 대사를 끊고 말을 건넨 건 정태민 쪽이었다.



- 시삽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수의 기혼자에 속하시니

-....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이해되시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 아...

- 위반이에요. 남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그저 예상하면서 이야기하는 것. 결혼도 그 범위 중 하나겠고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아이 있는 기혼과 그렇지 않은 기혼은 또 다른 세계죠. 결국 경험 아닐까요. 경험이 쌓여서 그저 삶이 완성되는 과정. 결혼도 그 과정 중에 하나겠고 주인공이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것처럼 육아의 세계도 그중에 하나일 테고요.. 정답은 없죠. 그러니 누구 하나 돌 던질 자격도 없다는 말입니다



나비가 꽃을 찾아가게 되는 것에 아무도 반박할 자격은 없다. 그 시간은 나비와 꽃의 몫이다.




탄성이 일어났고 무언가로부터의 승리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가르치는 존재, 우러러보는 대상, 감히 범접하기 쉽지 않은 포스를 풍기는 사람인 냥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 거품은 그녀로 인해 순식간에 깨졌다.



이수연이었다.



- 기혼이든 미혼이든 남의 사생활에 함부로 침범하는 건 아니지 않나

- 수연. 네가 어떻게 여기.

- 이럴 거 같아서 왔죠. 연락도 안 받으니까.

-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함구할 말도 없었고 두 사람이 있는 곳에 내가 끼어야 할 자격도 없었기에 그대로 일어서려 할 때였다. 정태민이 나를 불렀다.



- 혜연 주간님. 바래다 드릴게요. 너무 늦었습니다.

- 오빠! 정말 뭐 하자는 거야

-.... 두 분 대화 나누세요. 제 삼자는 이만.

- 혜연 씨



그가 뒤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졌음에도 그대로 6층 사무실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성급히 도망치는 나를 발견했을 때, 왠지 모를 부자연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 지하 주차장)


차 키 버튼을 누르자 맥스크루즈에 불빛이 비췄다. 그때였다.


- 혜연 씨

-.... 뭐예요. 여기 왜 있어요

- 여기 있을 것 같아서요..

-.... 수연 씨는

-.... 신경 쓸 필요 없어요

-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 않나요. 그리고 도대체 정말 왜 이러세요.

-....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그대로 보낼 수 없었어요 오늘은

-...

- 제 생일입니다 오늘.

- 아...



생각해 보니 2차 교정 전후로 유진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특별히 오늘은 케이크를 사 가지고 직접 교정본을 인쇄해서 그가 있는 7층 사무실로 올라가 보는 게 낫지 않겠냐던, 그 유치해 빠진 말을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었는데. 그제야 짐작이 되었다.



-.... 미안... 해요

- 괜찮습니다. 그깟 생일이 뭐라고요. 아무튼.

-... 왜 오셨어요. 따라 오시면 안 되는 것을..

- 혜연 씨... 생일이라는 게 말입니다

-...

- 별 게 아니었는데 문득 오늘 아침에 생각이 났습니다. 매 년 단 하루들은 말이죠. 단 하루에 그치지 않아요. 지나가면 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 시상이 떠오르고 글을 쓰다가 오늘은 도무지 혜연 씨랑.. 차 한잔이라도 진득하게 같이 마시고 싶단 생각이 앞섰어요. 마침 북클럽이 있는 요일인 데다가 무엇보다도....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어떤 것들이 살면서 생기진 않습니까.

- 작가 맞으시네요. 너무 감상에 젖어... 계세요



애써 회피할 하는 말에 그 어떤 대꾸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기세로 나를 쏘아보듯 정면으로 직시하는 그였다.



- 차 한잔 하시죠.

-.... 어디서요. 왜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 보고 싶으니까



그 말이 왜 그리 서글프게 들려왔을까. 되려 누군가에게 들었을 때 정작 아주 오래전부터 입 밖으로 꺼내고 싶었던 나의 말을 대신해 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렇게 애달프게 들려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 미쳤네요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이 모양이네요. 이 나이에....

-......

- 추하죠?

-... 네




아니요 라는 답을 하지 못했다. 네라고 하지 않으면 더 침범당할 것 같은 일상이었기에.

가만히 있어도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일상이라는 걸 그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떨렸던 마음이 전해질까 싶어서 사소한 걱정을 늘어놓으며 세심한 고민을 할 만큼 일상이 가볍진 않았지만 그만큼의 무게감을 더 앉고 싶지 않은 현실적인 마음이 먼저 앞서기 일쑤라는 것도 모른체할 수는 없었다



- 미안합니다.

-... 미안하면 가 주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또렷하게 쳐다보는 그에게서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무의식적으로 그를 쳐다보았을 때 정태민은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서로와의 시간에 목이 마르던 차라는 것을

주고받는 눈빛에서 이미 들켜 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달리 어쩔 방법도 없었다. 그저 두 눈이 마주하며 스쳐 지나는 찰나를 만끽하는 것. 그것뿐이 달리 방법이 없었다.



두 사 능력 밖의 일이었다.

어느 한쪽의 객기 어린 용기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쉽게 들키지도 않을 마음이었다. 말을 먼저 뗀 건 내 쪽이었다.



- 참 어쩔 수 없는 사람입니다.

-.... 혜연 씨

- 그래요. 호감 있어요. 마음도 있고.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

- 우리가 뭘 할 수 있죠.

-.... 그건 나도 몰라요

- 모르든 알든, 중요한 건 오늘만 살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

- 애초에 스릴에는 관심이 없어요. 나 그런 뻣뻣한 사람이에요. '여자'로 보지 말아요. 다쳐요. 서로...

-... 알고 있군요. 제가 혜연씨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

- 모르면 바보죠. 그렇게 대 놓고 단서 흘리는 데 바보 아니고서야 모를 리 있어요

-.... 바보 여서 싫어요?

- 내가 바보가 되는 거 같아서 좋지도 않아요

- 혜연 씨....




어쩌면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모른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가 멈칫할 무렵 말을 건넸다.



-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그대로 아웃이에요.

-... 미안합니다.

-...그 말이 딱 맞았아...

- ...네?

- 빠진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구..

- ....

- 사랑이라고 한들 다 좋은게 아니라는 말이예요.



먼저 다가간 쪽은 나였다. 술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어느새 그대로 홍조가 된 뺨에 손을 대고 말아 버렸다. 지나칠 수 없는 피부색에 나도 모르게 손을 대었을 때 식어질 것 같아서. 그대로 나의 손 위로 그의 손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외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바로 외도를 하는 당사자일 것이다.

백 퍼센트 완벽하게 즐기지도 못하면서도 그렇다고 백 퍼센트 떳떳하지도 못한 사람. 그러면서 상대를 향한 마음이 백 퍼센트에 가까울 정도로 기울어졌다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 피해자는 완벽히 당사자가 되고 만다는 걸 어느 가십 거리 가득한 잡지 기사에서 읽고선 콧방귀를 뀌었었는데 그 당사자가 내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리고 그가 다가오는 그 순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일상이 침범당하는 순간이었다.



겨울에게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꿈은, 봄이 오지 않고서야 꿈에 그친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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