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는 건 괜찮다...가끔은.
진정한 고통은 이런 것이었어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
누구도 날 사랑해 주지 않을 거란 절망감.
가난이나 그런 것은 이미 제게는 아무런 고통도 아니었습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그를 사랑한다 믿었고 또 사랑받고 있다고도 믿었다.
믿음은 곧장 결혼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누구 하나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그를 사랑하는 내 자신또한,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마음에 흔들림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했던, 어린 마음의 선택이었다. 그와 함께 지내면 많이 웃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시절... 그 시간이 흘렀고 안 싸울 것 같던 우리는 이젠 종종 다투는 부부가 되기도 한다.
가끔 결혼생활을 유지하다 보면 그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못난 순간이 찾아온다. 가령 그와 심하게 다투고 못내 서운해서 울어버리고 마는 순간이 잦아질수록, 의도치 않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으며 좌지우지 되기도 하는 그 숭고하다던 양육의 시간이 개인에게만큼은 때론 날카로운 선명함으로 다가올수록..
결혼하지 않은 미혼 혹은 아이 없는 기혼생활이 유지되었다면 어땠을까를
오랜만에 절절히 생각해봤다. 어제.. 그리고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손에선 고무장갑을 빼고선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세차게 울어대는 둘째 아이를 붙잡고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눈물이 터져 버렸다. 설거지 개수대 위의 수도꼭지에서는 틀어놓은 물이 줄줄이 그대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눈물이 뜨거운 것이란 사실을 오랜만에 알았다.
아주 오랜만에 - 라기에는 그가 보기엔 자주 일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 세차게 흘린 눈물이어서. 그렇게 느껴지나 싶다.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고 믿고 살았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았던걸까. 최근 들어 누군가의 성장을 도모(?) 하며 응원마저 해주는 그런...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내심 스스로는 뻔뻔스럽다는 감정을 지울 수 없었기에 묘한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도대체 사람은 왜 생산적이고 쓸모 있어야 하는 걸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넌덜머리가 나서 그랬나 싶다. 사람이 살면서 도망치고 싶단 생각 혹은 잠깐 모든 걸 하지 말아 버릴까도... 싶은 생각 하면서 지내는 게 어디 나뿐 만은 아니겠지만, 결혼 제도에 입성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잦게 느껴지는 이런 묘한 감정은.... 꽤 생산적인(?) 글을 써내면서도 완벽히 지울 수는 없는 요즘이어서. 계약한 원고의 목차와 초고를 쓰려 노트북 앞에 앉지만 이내 어떤 가소로운 뻔뻔함이 느껴져서 진도는 쉽게 나가지 않는다. 요 몇 달... 지연된 지가 도대체 몇 달이던가.
어쩌면 스스로 속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괜찮은 상태라고, 현업에도 큰 트러블(?) 없이 잘 헤쳐나가고 있으며, 누군가에겐 취미 삼아 쓰는 글쓰기도 - 내겐 취미가 아닌 고군분투의 현장이나 - 서책과 같은 출간물 형태의 결과물로 이어지니 아마 보기 좋아 보였을 거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보기 좋았으니까.. 잘 산다고 생각하며 자뻑에 취해 살아오곤 했으니까.
그 와중에도 역시 마음 챙김은 아직 한창 역부족인 것 같다는 생각은 이럴 때 든다.
한껏 흔들어진 사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탄산 줄기... 같은 눈물이 결국 뿜어져 나올 때. 오랜만에 실컷 울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주말 새 그이와의 사소한 말다툼 이후의 냉기는 여전히 집안 구석구석 부유하고 있었고, 아이의 심한 투정은 결국 도화선이 되었주었다. 해보면 알겠지만 정말이지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 깔끔하지 않으면 안되는 캐릭터라 더 그런가 싶지만- 요 근래 바닥이기 일쑤인 고갈되는 체력은 언제나 별책부록...
거기에 어떤 억울함과 자괴감마저도 들었던 어제의 소식은 눈물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가고 싶었던 팀에서도 결국 '남자' 직원이 필요했던 걸까 싶은, 결국 인사 발령은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를 인정하고 살아야 먹히는 대한민국 상장 기업의 대부분 남초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행위들은...뭐 이런 생각이 돌고 돌다 엄한 곳에서 터져 나온 것일테다.
엄마가 울 때 최대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아이들일까 아니면 쏟아내는 화를 받아 내는 상대방일까. 아니면.... 울음을 그치고 멍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당사자일까. 아마 정답은 없겠지만 모두 다 피해를 입는 건 사실이다. 모두 다...말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미 연출된 장면을 NG 컷 내고 다시 찍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삶일테니까. 그래서 삶은 드라마보다 더 짜릿.... 하다. 그럴 수 있다. 각본 각색 시나리오화 되지 않은, 그저 끊김 없는 시간을 살아내야 하니까..
엄마가 울면 그냥 그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곤 했었다.
어디 가지도 않고 그냥 그 옆에 있어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동생은 그런 엄마가 무섭다고 못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일쑤였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어쩌면 엄마에겐 그때의 어린 내가 더 눈물샘 자극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이제야 느낀다. 첫째 아이가.. 우는 둘째 붙잡고 같이 우는 내 곁에 다가와서 그냥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엄마 '소리 했을 때. 내 눈물이 더 자극되었던 것처럼...
아이와 눈을 마주 하고 이내 흐르던 눈물을 닦았다.
다시 하던 설거지를 하며 눈물을 애써 멈춰 냈다.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너무 울면 스스로 얼마나 망가지고 마는지를 이제는 아는 나라서. 프레디 머큐리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고...
현실이 때론 쇼 처럼 느껴지면, 어느새 눈물이 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친다. 그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괜찮다. 괜찮을 거다. 가끔 우는 건 정말이지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