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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11. 2017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보고 싶고 가고 싶단, 그 한 마디로 충분해요

책을 고르는 취향

 나에게 책을 고르는 독특한 취향 중 하나는, 바로 한번 읽은 책들이 출판된 출판사들의 또 다른 책들이다. 독립 혹은 소형 출판사일수록 그 비슷한 장르와 느낌의 여러 시리즈물 같은 책들이 있고, 반면 대형 출판사는 장르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편이다.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는 순전히 전자에 속했다.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나서 '수오서재'를익히 알고 지켜보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박세열, 수오서재, 2017. 07. 31, 408p


어두운 밤의 보랏빛 배경

 여행 수필 내용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어떤 내용과 사진들이 담겨 있을지,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그렇게 써내려 갔을지를 배달된 책을 뜯기 전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 일! 이 책이 날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커버’ 였다. 


 하얀색 안에 보라색이란, 반전! 순간 매혹 당했다......

 

 잠시 오늘은 왠지 모르게 책의 내용보다는 커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은 마음이다.

놀랐으니깐. 아름다웠으니깐. 여느책들과는 달리 띠지가 없다. 엷은 종이보단 좀 더 두껍고 매끈한 하얀색 도화지에 가느다란 파란색 펜으로도시 성곽의 정교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커버페이지를 벗기면 깜짝 놀랄 반전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별들이 그려져 있다. 어두운 밤의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그 아름다운 밤빛에 가려진 채 짙은 보라색 정취를 뿜어대는, 그런 놀라운 장면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처음 빠져 들게 된 순간 이후엔 모든 게 다 호감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도, 그리고 책도 내겐 마찬가지였다. 담담한 필체, 저자의 일주일, 한달 그리고 대략 일년간 떠난 기록이라는 테마를가지고 아시아, 인도, 호주, 북미, 유럽, 마다가스카등. 그곳에서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 마주한순간을 마치 정지시킨 채 저자 특유의 담백한 감성이 묻어있는 문장들. 그저 모두 다 좋았다. 


가고 싶어서 떠난 나의 여행 

 여행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타인들의 여행기나 수필을 읽고 있으면 내 여행에 대한 기록과 그 때 과거의 시간들을잠시 현재로 끌고 와 보곤 한다. 특히 제목에서 한번 사랑에 빠졌던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라는 책은 숨겨진 커버페이지에서 두 번 매료 되었고, 여행 일상 속의 자신을 결국 사랑하고 있는 게 느껴지는 저자의 문장들 덕분일 지도 모르겠다. 


 직장생활 7년차와 결혼 생활 4년차에 접어든 시기의 1월에 나는 2틀 전 귀신에 제대로 씌인 듯 사표 쓸 (아니 씀을 당할?) 각오를 하고 일주일 연차를 내고 홀로 뉴욕 JFK 공항을 향했다. (맙소사-)


 그랬다. 그땐 그저 미국이라는 나라, 특정 도시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리움 때문에...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홀연히 떠나버릴 수 있는 대단한 용기를 냈다.


지금이라면 그럴 수 없겠지. 

 그래서 더욱 그 3년 전의 여행이 내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그리고 최후(가 부디 안되기를 바라지만) 일지 모르는 가장 끌림이 강해서 그렇게 나를 내던질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겨울왕국 같았던 뉴욕과 필라델피아였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도시인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휘몰아 친 눈보라와 눈사태 덕분에 엉겁결에 기적(?) 같이 2일을 더 머무를 수 있었고, 더군다나 타고 간 비행기가 업그레이드 되는 바람에 여행의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높은 건물이 있는 낮선 도시, 그러나 낮설지가 않은 건 기분 탓이었을까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당시의그 여행 덕분에 내게 생긴 선물이 하나. 그건 다름 아닌 ‘글쓰기 시간과 시간에 대한 기록들’이 존재한다.


 A4 용지 약 90 페이지에 이르는 (그것도 글자 포인트 9다. 난 당시 정말 미쳤었던 것 같다) 뉴욕 공항에서부터 시작해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안의 어느 구석진 스타벅스에서까지.


 그때 겪는 작고 큰 에피소드들을 적어 내려갔었으니. 내 생애 최단기간이자 최고의 글쓰기 시간여행이라는 멋진 선물마저도 생겼음이 다시 떠올랐다. 아, 지금 그저 그때를 되새기니 감사한 마음이 넘친다.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다시지난번 같은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의 첫 페이지를 열어 보면 이 문장과 함께 해질녘 커다란 창밖으로 비치는 비행기를 곁에둔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순간의 장면이 사진으로 담겨져 있다.


정말...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 때 처럼..

 

설레고 가슴 떨리는 순간. 어쩌면 그건 여행을 시작해서 겪어 내려가는 그 시간들이 아닌, 떠나기 전의 매번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일 지 모르겠다.


내게 ‘공항가는 길’이 참으로 보고 싶고 가고 싶고
 아직도 마음 아프도록 그리운 것 처럼.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하루 24시간이면 그 시간이 그저 흐르는대로 써 내려갔던 미국에서의 나날들이었다. 딱히 할 일(?) 을마련하지 못한 채 정말 무모하고 무작정 떠나버린 여행이었기에. 그래서 더욱 내 생애 최고의 글 여행(?) 이 되어 준 그 여행은 내겐 상상에서나 그렸었던 것이었다. 그러나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그걸 현재로 끌어당길 수 있었던 건 그 당시의 절실함과 그 절실함을 그리움과 함께 마음에 계속 담고 그리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결국 그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결과들이었으니깐. 

 저자도 그러했을까. 모르겠다. 그치만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홀연히 떠날 준비와 막상 떠나버리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아마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공감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홀가분할 수 없는 현재를 잠시 접어둔 채 떠나는 여행일수록 더더욱. 


 여행이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겪어야 할, 아니 이미 알게모르게 겪고 있는 필수코스일 지 모르겠다. 물론 그 여행이라는게 구지 꼭 세계 각국을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여행은 이미 지금도 시작되어흐르고 있다고 본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향해 가고싶은지’를 찾아내기 위한 일상의 여행들이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의 그 시간과,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나 사이의 시간들 속에 존재한다.


그렇게 각자가 각자의 길을
평행선처럼 걸어가면서도
‘지금 그 순간’이라는 삶을
그냥 흘러가 보고 있다..


 난 오늘이라는 평행선을 여전히 걷고 있다. 그러다가 잠시 구부러짐이 생겨서 새로운 방향으로 길이 틀어졌을 때, 그렇게 되돌아 가다가 만나게 되는 인연이라도 생긴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고 느껴진다. 아. 참 많이도 변했다 나란 여자... 그건 더 이상 아픔이 아닌 기적이 될 수 있다고도 믿기 때문에.


삶을 흘러 가다가 길을 잃는다. 그럴 때 나침반 처럼 정말 어떻게 흘러가야 할 지 가끔 알려줬음 좋겠어..


 오늘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사실은 다를 수 있는 건 오늘을 이렇게 꽤나 잘 흘러가고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놓치고 싶지 않은 그리움이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또 잘 흘러갈 용기가 생긴다. 그리움을 놓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 진다는 마음의 철학을 담은 채.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그럼 떠나요.
지금 바로 망설이지도 말고
주저하지도 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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