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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09. 2017

사랑의 기초

되도록 오래오래 있는 힘껏 사랑하고 싶다

사랑의 두 시선  

 서로 국적도 문화도 심지어는 가진 성(性) 또한 다른 두 명의 작가가 각자의 시선에서 사랑을 쓴다. 사랑의 기초는 2권이 마치 한 세트인 양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처럼) 사랑을 하고 있는 연인들의 시선과, 결혼을 한 한 남자의 시선으로 그렇게 사랑을 써 나가고 있다.


사랑의 기초 세트, 정이현/알랭드보통, 문학동네, 2013. 9.24, 420p


오늘 이 문장 

 소설 속 내용보단, 그저 작가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겨져 당시 읽어 내렸던 일기장에도 고스란히 적혀 있는 문구다.

하여, 내가 사랑에 대해 조금쯤 더 알게 되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한,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랑은 오로지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 깊이 사랑할 것이다.


사랑. 알 수 없어요. 쉽지 않아요 

  누군가 내게 ‘사랑이 뭐야’라고 뜬금없이 물어본다면 아마 몇 초간의 정적이 이어지리라. 풀 고 싶어도 쉽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미스터리 로맨스 판타지 심리 호러 스릴러, 그 모든 문학 장르를 한꺼번에 담은 듯한 '사랑'에는 정답이 없기에 말이다.


사랑의 기초문법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 

 아마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릿한 속도로 생각을 곱씹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들추게 될 즈음의 당신은 어쩌면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지 모르겠다.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한 채 말이다. 지금 당신의 그 위치에 따라서 기혼인지 미혼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 최소한 사랑의 시선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각양 각색의 사랑을 우리의 일상 안에서 서로의 일상영역을 침범하며 시작된다.


어린왕자도 그랬잖아. 나도 마찬가지였어. 사랑이 3시에 온다면 난 아마 2시부터 이미 사랑에 빠져 있을 지 모른다고.....
'그 사람의 일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
그건 내가 항상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상대의 일상이 궁금해 지기 시작하면 호기심이 생긴다.

 그랬다. 내가 항상 사랑을 한다고 미친년처럼 웃다 울다를 반복해나가는 시간을 가만히 떠올려 보자면, 그때 나는 일상을 침범하고 싶다고 욕망했었다. 상대에 대한 적당한 호기심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게 점점 커지면 그건 관심이 되고 관심은 급기야 사랑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상처는 찾아오고 그 서사들의 반복 속에 다시 사랑은 새로운 사랑을 향한다. 그리고 반복 또 반복.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세상에 사랑의 기초가 정말 존재한다면, 부디 그 사랑의 기초 문법좀 누가 가르쳐 줬음 좋겠다. 기본을 알아야 활용을 할 터인데, 그놈의 사랑이란게 기본을 알기 전에 활용부터 하고 싶도록 만들어지는 애절함과 그리움, 간절함과 설레임부터 생기니 말이다.


간절함이 지나치다 보면 사랑이 족쇄가 되기도 하지. 그래선 안되는 걸 아는데도 말이야. 자유로워야 해 그럴수록 더더욱...


 어쨌든 말이다. 공통인 것은 사랑은 인간이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이자, 최선의 삶의 목표가 되야 한다는 진리다. 공감하실 지 모르겠다. 그치만 사랑의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생물이든 아니든간에, 사랑을 느껴본. 그것도 꽤나 뜨겁게 느껴본 사람들은 아마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다치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사랑 하고 싶은 건, 그가 그녀가 내가 당신이 우리들이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잊었으나 몸과 마음이 기억하기에 그 사랑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말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오는 에너지야 말로 온 우주를 통틀어서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멋진 파장일 테니깐.     


 결혼을 하기 전후의 사랑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본다. 

이미 결혼을 했고, 결혼 생활도 이젠 꽤 연차가 차고 있을 6년차의 나는 연인들의 사랑이 과연 어땠는지, 사실 머리론 기억나지 않는다. 마음이 가끔 기억할 뿐.  연애를 많이 해 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게 해 본 편도 아니었다. 상대방의 캐릭터가 무궁무진하게 극한으로 다양한 건 아니었지만 제각기 가진 성격과 가치관은 천차 만별이었으니깐. 꽤나 여러 종류의 남자를 만나봤음에도 사실은 가끔 후회 되는 건 ‘좀 더 사랑의 스펙트럼을 넓혀 볼걸’이라는 알량한 욕심.     

 연인들의 사랑엔 언제나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한다. 너무 보고 싶어서 그리움에 사무치니깐! (그정도 클라스는 기본템 아닌가 쳇) 진짜 사랑한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싶다. 없는 시간도 만들어 내는, 핑계대지 않고 변명하지도 않는 그저 자유롭고 또 자연스러워서 서로가 서로를 끌게 되는 그런 만남, 그런 사랑 말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도 새벽에 달려갈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가 넘치는 것. 요즘은 글쎄, 사랑에도 가성비를 따진다고 하는 시대이니 씁쓸하나 그런 열정이 얼마나 요즘 인스턴트처럼 바뀌는 사랑을 즐기는 연인들 사이에 남아있을 진 모르겠다만. 그럼에도 사랑을 꽤나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현재진행중인 연인들의 사랑은 도저히 식을 줄 모른다. 

 

 사랑을 대함에 있어 그 대상 여부를 불문하고 지금도 무언가를 향한 나의 사랑은 그 뜨거움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지금 내 곁의 그이를 비롯하여 아이들, 내 일, 취미생활, 관심사, 가족들, 바라는 꿈 등등 여러 사랑의 대상들을 향하는 이 내 뜨거워서 주체할 줄 모르는 마음은 어쩌면 내가 아직 미숙한 젊음 탓에, (철 없음을 미화해 본다) 혹은 에너지가 남아서, 아니 어쩌면 그저 이놈의 성격 탓일지 모르겠다.     


사랑이 비즈니스라면, 그건 비극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은 과거의 그것보다 훨씬 과감하고 꽤나 뜨겁게 나보다 더 상대를 사랑할 것만 같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래야 돼지 않는가. 최소한 사랑을 대하는 예우에 기브앤테이크를 바라는 건 비즈니스지, 사랑의 영역이 아닐 테니깐 말이다. 비즈니스로 들어서는 순간, 사랑은 비극을 맛볼 지도 모를 테니깐. 사랑은 그 쓴맛과 달콤함이 동시에 공존하며, 아파서 비린 마음과 동시에 너무 달콤해서 계속 찾게 되는 마약 같은 것일 테니깐 말이다. 허나 요즘 느끼는 바, 점점 사랑은 비즈니스화 된다. 특히 결혼과 이혼이 성행해 가는 요즘은 더더욱 말이다.     


부부의 사랑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으며 꽤 결혼생활을 유지한 지 이제 두 자리 숫자를 향해 달려 나가는 우리 부부 사이에 사랑이란 어쩌면 ‘용기’의 다른 말일 지 모른다.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용기 말이다. 이 사람이면 내가 좀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내 미숙한 사랑의 결심에 대한 지극한 착각임을 결혼함과 동시에 현실에서의 사랑을 유지하면서 온 몸과 시간으로 절절히 느꼈으니.   


 오히려 길지 않은 연애 기간에 꽤나 깍듯한 거리가 있었던 그와 나 사이는, 결혼을 함으로 인해 한 이불을 덮어 자는 사이로 변함과 동시에 모든 다름들을 경험하고 그 시간들을 인내하며 그렇게 유지하다 결국 받아들이는 인고의 시간들을 겪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니 보내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다정다감 스펙터클 용감무쌍하게도. 아마 대부분의 부부들이라면 어떤 느낌일 지 구지 말하지 않아도 아실 수 있으리라.  


문득, 옛 그 남자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우리가 헤어졌음에도 난, 이렇게 잘 살고 있어. 너보다 더 잘난 남자 만나서 꽤 잘..!'


6년 지나보니 좀 알것도 같다.

 결혼을 한 부부의 사랑은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을 가장한 냉정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흐른 채 그렇게 시간을 흘러 가 보는 것일지 모르겠다. 물론 냉정함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 냉정함이 점점 딱딱해질 무렵에 부부는 ‘아이’라는 최소한의 결혼을 유지시켜주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안전장치?를 만나게 되니깐 말이다.  


나의 사랑들이 지금 애미 글 잘 쓰라고 잘 자주고 계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해피엔딩 뒤의 리얼리티라고 해두자. 결혼은 어쩌면 작가의 말을 빌려 평생 계약 제도의 모순일 거라고. 심장을 부여잡는 남녀 사이의 돌발 스킨십은 이미 녹슬 대로 녹슬어 가는 두 부부의, 만약 노년을 향해 달려가는 중장년층의 부부라면 더더욱 찾기 쉽지 않을 테니깐 말이다.     


 끝없는 외로움을 덜어줄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외로움은 결혼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난 6년차에 접어 들어 더 알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지금은 더욱 사랑에 대한 시선이 바뀌어만 간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어야 한다. 진실되게 옆 사람과의 행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누구에게? 내 가족들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릇된 보여줌이 아닌 진정한 보여줌. 그것을 위해 상대를 바꾸어 보여 줌의 용기는 이제 더 이상 판도라의 상자 안에만 있지 않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맛봐야 하는 삶의 여러 이면 중에는 되도록 쓴 맛 보다는 달콤한 삶을 경험 시켜 주고 싶은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일 테니깐. 그리하여 가급적 그 달콤한 우리 아이들의 삶을 위해, 대신 엄마 아빠라는 어른들은 고달픈 삶을 맞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절한 감정에 솔직해지자   

 여튼 다른건 다 모르겠고, 그저 지금 당신이 사랑하고 싶다면 그 마음에 솔직했음 좋겠다. 진짜 훌륭한 사랑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과감히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을 벗어날 줄 아는 용기. 누군가는 손가락질 하더라도 그게 사랑이라는 확신이 뚜렷하다면 보편적인 윤리감각조차 거스를 수 있는 사랑 말이다.


안나 카레리나까진 아니더라도 사랑한다 말한다는건 솔직함과 자유로움이 함께였음 좋겠어  

 세상이 비이성적인 사랑이라고 비하한 들 어쩌겠는가. 예컨대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사랑할 수 있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으며 남자도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 좀 더 과감해 져 보면 말이다. 그와 그녀, 우리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이미 유부녀가 젊은 사내를 사랑할 수 있으며 아재들이 여자아이돌을 그리워할 수 있다. 그 대상에 초점을 둔 게 아닌 그 사람에 초점을 둔 사랑이라면 그건 절대 금기시될 수도 비이성적인 행위도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그저 사랑의 민낯 일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만의 세계관에서 사랑을 꿰찬 사람들은 결국에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랑을 어떤 형태로든 경험하게 되니, 그건 마치 경제적 안정과 사랑 없는 결혼에 출사표를 던진 안나 카레리나나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이 잘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더 이상 그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좀 더 과감해 지고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사랑을 자극하는 동시에 절망하게 만드는 상대일지라도
그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 좀 더 뜨거워지기를.  


 사랑이 그랬음 좋겠다. 자유롭고 뜨겁고 과감하고 솔직하게. 왜? 사랑은 그래야 하니깐. 그것이야 말로 최소한 사랑을 하는 사람에 대한 예우일테니깐.     


 대상이, 상대가 무엇이, 누가 되었든, 지금 사랑에 빠진. 그래서 그 사랑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당신은 위대하다. 그리고 또 용감하다. 그러니 그 위대함을 일깨워서 좀 더 과감해지시기를 바란다. 그럼 그 사랑의 대상도 당신을 향해 결국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니.


 나도 내게 감히 고백해 본다.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향한 이 기특한 마음이 꽤 잘 움직이고 있다고 말이다. 이 마음이 아직 순수하고 고귀하며 꽤 당차고 또 매력 넘친다고. 그러니 결국 해낼 거라고 말이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오늘도 바란다. 되도록 오래오래, 부디 있는 힘껏 사랑하는 '오늘'들을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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