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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5. 2019

서로를 끝까지 알아보는 것

주저함은 없기를.

그렇게 언젠가 다시 함께 벚꽃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도, 그도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초속 5센티미터 -  





아이들이 일찍 잠에 들었다.

놀이터에서 몇 시간을 뛰어다니며 흙장난으로 마무리를 짓고 나니 아무리 아기들 체력이 에너자이저라 한들 피곤하셨을 테다. 귀가 후 간식을 먹이고 잠시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아차 싶었다. 조용한 거실이 어쩐지 이상했었다. 배를 대충 채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아이들은 소파에 나란히 곯아떨어져 있었다. 말을 건 건 내 쪽이었다.



- 간식 말고 밥 먹일걸 그랬어. 씻지도 못했는데.. 흙장난했는데.  

- 됐어. 하루쯤은 괜찮아.

- 목욕부터 바로 시킬걸 그랬어. 나 이렇게 생각이 짧아 요새..

- 이제 책 읽어. 시간 났잖아.

-... 안 읽혀. 이럴 땐 꼭 이런다니까. 하여튼 난..  



나는 그에게 예측 가능하지 않았던 여자였었다.

그래서 그가 내게 끌렸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결혼 이후에 약간 아슬아슬한 시간을 통과해 나가다가도, 우리 둘의 불안을 막아주려는 듯 선물 같은 아이 둘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리고 역시나 새로운 시간을 지내며 온갖 위태로움 들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그랬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정말이지 이런 대화를 일상적으로 아주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기까지. 꽤 많은 시간들이 걸렸다고 생각하다가도 문득, 힘겹게 지나간 시간들에 약간의 아쉬움이 생긴다. 어리석게도. 그때 내가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만 않았더라면, 그때 그가 나를 두고 돌아서지만 않았더라면.. 뭐 그런 다 지나간 쓸모없는 생각들.



나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밀린 드라마나 보자 싶어 TV 리모컨을 쥐려 할 때였다.

아이를 눕혀 놓고 난 이후 함께 자나 싶어서 일부러 들어가지 않았었는데, 그이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곤 소파 옆에 나란히 앉는가 싶더니 갑자기 무릎에 머리를 대었다. 그 순간 나는.. 사실 조금 이상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부끄러웠고 이상하게 수줍었다... 처음 그를 만났던, 다 지나간 나의 20대 무렵이 떠올라서, 그 시간의 내가 그리워서.. 잠깐 애를 먹어야 했다. 감정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갑작스레 나를 덮친다.



- 다리 저려?

- 뭐 몇 분 누워 있었다고. 괜찮아.

- 무거워?

- 아니. 무슨 일 있어?

- 그냥. 리모컨 줘봐

- 이 양반 하여튼. 머리 치워 줄래

- 실망이야

- 나도 실망이야



요즘 부쩍 '실망이야'라는 말을 달고 사는 첫째 아이의 뾰로통한 삐침 대사를 우리 두 사람은 장난스레 받아쳐내고 있었다. 이렇게.. 나도 그도 이젠 아무 망설임 없이 거리낌 없이 서로를 편하게 대한다. 물론 투닥거릴 때도 여전히 잦지만, 이런 저런 감정들이 있다는 것은 결국 아직 우린 서로에게 지루한 대상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이것 또한 '사랑'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될 때쯤,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다른 부부들은 어떨까 라며, 쓸데없는 호기심은 엉뚱하게 마음속에서 튀어나왔다가 그렇게 사그라진다.






이제 난 제법, 그에게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 준다는 것. 이것은 상대의 불안을 막아주겠다는 뜻이겠다만 반대로 그 불안을 막기 위해 내 마음속 결핍이 생겨 버리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을 택해야 옳은 걸까. 가끔 여전히 길을 헤맨다.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 앞에서... 그 선택들이 나라는 개인에겐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선택이라 할지언정..



서로를 끝까지 알아보는 것. 알아보려 하는 것.

불편함이나 결핍이라는 감정들이 관계를 맺어나가며 피어오른다 할지언정, 중요하고도 사소한 숱한 일상 속 약속들을 끊임없이 지켜내려 하는 것.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내가 선택한 '너'를 끝까지 알아보려 애쓰는 것. 물론 언젠가는 뜨거웠던 사랑은 가시고 동료애만 남은 쿨한 관계로 보일지라도, 사실은 여전히 알아보려 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건 사랑한다는 증거.. 아니 아직 사랑한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끝까지. 알아봐주는 것... '너' 라는 존재를. 그리고 그 너를 바라보는 '나' 의 존재를. 서로 할퀴는 순간이 온다 한들 결국 인정해 주고 보듬아 주는 것... 어렵지만, 느리지만, 그렇게 같이 가 보는 것. 결혼이란 그런 것 같다만, 일단 좀 더 살아보는 걸로 어설픈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





누군가 부부는 시간이 지나면 '의리'로 산다고 했지만

그런 단어로 우스갯소리 마냥 비꼰다한들, 차라리 나는 그 의리라는 단어 대신 차라리 아무 명사도 붙여버리지 않는 것을 택해보고 싶다 . 왜냐하면 결혼이란 정말 그런 것들로... 정말이지 그런 사소한 약속들과 의지와 끈기로, 결핍 조차도 희생할 줄 아는 그런 대단한 마음들로 움직이기 때문에. 의리라는 단순 명료한 단어로 치부되기엔 어딘지 그 치열하게 유지하며 애쓰는 시간들에게 너무 미안하니까.



했던 말을 몇 번이고 계속하는 일이 반복되는 게 '결혼'이라면

우리 두 사람은 그 수줍었던 시간을 거쳐 결혼을 했고 이젠 어떤 고루함과 편함만 남았을지언정 가끔 이렇게 서로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댈 줄 아는 마음이 여전하다면.. 어쩌면 아마도 앞으로 그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하게 될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속 이야기 (혹은 잔소리)가 도돌이표처럼 가온다해도, 우린 서로 지루한 표정만은 짓지 않기를. 꽤 괜찮은 관계로 아이들과 함께 각자 새로운 모습의 서로를 경험하며 시간을 채워나가보기를 바란다.



3월이 다가오려 한다. 늘 그랬듯 밤공기의 벚꽃이 보고싶어질테다.

올해 봄엔 저녁시간의 벚꽃을 볼 여유가 있을까. 나도 그도 망설임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생각만이라도 주저함은 없기를...그래야 사랑할 있을 테니까.





#아무말을_이렇게_또_불면증이라는_핑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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