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편지 쓰는 시간
나의 일기장 안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 밤 편지 -
당신의 좋은 꿈이길 저도 바랍니다.
...라고 편지 말미에 적어 내면서 잠시 듣던 음악의 플레이리스트 속 가사를 쳐다보았다. 신기하게도 '밤 편지'였다. 밤에 편지를 쓰고 있던 나는 싱긋 한번 웃었다. 신기한 타이밍이라며 제멋대로 끼워 맞추기 식 합리화를 한다면서도, 내내 나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첫 번째 팬레터를 신청해 준 그녀의 모습을.
나는 무슨 바람에 무턱대고 팬레터를 써보기로 한 걸까.
사실 살면서 내게도 '팬' 이 생기길 바랐었다. 어이없지만, 외로웠을 때, 도움을 청하고 싶을 때, 주변에 딱히 아무도 없을 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차라리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랐을 때... 어쩌면 팬과 같은 존재가 한두 명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이런 내게도 팬이 생길 수 있을까. 팬과 벗의 차이는 뭘까. 팬은... 내가 모르는 사람. 벗은 내가 아는 사람. 그러나 그 팬이 곧 벗으로 연결되는 게 아닐까. 관계란 그렇게 서로의 시간이 중첩되며 커져가는 건 아닐까 하는... 어딘지 쓸데없어 보이지만 사실 나로선 대단히 쓸모 있는 그런 생각들이 한껏 마음에서 도사리고 있을 즈음,
누군가에게 팬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딱 그 정도의 '드림'을 선물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정성껏 고른 책과 함께... 마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실로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작고 여리고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위로, 다정한 안부가 되어줄 순 있지 않을까 싶었다. 소박하게 그렇게. 누군가에게 짧고도 낯선 연결이겠지만 나는 '편지와 책'으로 그렇게 낯선 이들과의 연결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나의 팬심을 받아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조심스레 알리자마자 선뜻 신청해 주신 분과 그렇게 연결이 되었고, 나는 지금 그녀를 위해 책을 고심하다 드디어 골랐고,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꿈을 꾸려하는 그녀에게, 당신의 마음속 상상과 용기를, 그럼에도 꺼내어 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그에게, 그녀에게, 수취인이 있는 편지와 수취인 불명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편지들까지.
그렇게 써 내려가 볼 작정이다. 웬일인지 편지를 쓰는 시간은 그야말로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나 다름없었던 나는, 다시 편지로 누군가와 사랑이라도 빠질 작정인 걸까 라는 의문을 스스로 품어보지만, 아니. 이유야 어쨌든, 편지를 쓰고 있는 짧고도 긴 그 시간 동안 나는 '사랑'에 빠져버린다. 단어와 문장에, 그 상대방에게, 마음에게, 이야기에게. 그 시간은 표현하기 쉽지 않지만
정말이지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약간의 애틋함을 더하여, 그렇게 누군가의 팬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어쩌면 이것도 욕심이라면. 이런 욕심, 한 번쯤은 품고 살아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나는 좀 더 작정하고 편지를 써 보기로 결심했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 시간, 그리고 음악이 재생되는 순간
'당신'을 향한 손편지를 적어보는 나는, 그런 나와도 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럼으로써 편지를 쓰는 이 시간들은 요즘 삶의 '행운' 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한 시간... 편지를 쓸 수 있는 손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고마워하며 잠깐 손가락을 쳐다보다가 다시 펜을 들어 본다..
책과 편지가 당신에게 가 닿는 순간, 부디 소박한 기쁨이 더하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