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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19. 2019

당신만 변함없다면

마음속에서 천 가지 질문이 솟아올랐지만

단 하나도 입에 올리지 못하였다...            


-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새벽 2시가 막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든 이른 저녁 덕분일 것이다. 심각할 정도로 이른 하루를 시작해 버린 나는, 이내 한 명의 부재를 발견했다. 그이가 없었다. 뜬 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무렵 부재의 적막은 깨졌다. 



세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급기야 목울대를 치밀고 신음이 밀려오려고 할 때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거실로 뛰쳐나왔다. 그렇게 소파에 털썩 앉은 지 1초도 되지 않아 나는 북받치는 눈물을 주저 없이 흘렸다. 줄줄. 식탁 위에 있던 아기 손수건을 오른손에 쥐고 입을 틀어막았다. 신음소리가 복도를 건너 안방까지 스며들지 않도록.






연이은 일터 내의 감정 노동과, 배우자의 비상식적인 업무 강도, 의도하지 않은 상황들의 연속.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주원인은 되지 않았다. 다만 북받쳐 터지듯 같이 떠밀려 오는 것들의 원인 중 하나 들일뿐. 눈물의 주 요인을 알고 있었다. 바로 '괴물이 되어 버린 나'와 마주한 몇 시간 때문이었다. 



처음..이었다. 아이가 그리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세차게 잡은 적은.

둘쨰둥이의 과격한 행동이 요 근래 심해진 탓에, 큰 소리를 내 보아도, 달래 보아도 달라지는 게 없는 연속이었다. 감정이 격해지면 이성은 무너지고 만다. 부정과 파괴감은 물에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이다. 속도감은 생기나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한 감정은 결국 '저격' 상대를 찾는다. 나는 그렇게 서서히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안의 잔혹한 악마가... 눈을 떴다. 



- 엄마 아파. 



그제야 정신이 들어 손목을 놔주었다. 멍까지는 아니었겠지 만 얼마나 아팠을지는... 아이의 찡그린 얼굴과 동시에 수돗물 틀어놓듯이 흐르는 눈물과 상기된 빨간 볼을 보자마자 급기야 이성이 돌아왔다. 빨갛게 부어 오른 손목은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이... 울었다. 아이를 안고 울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첫째 둥이는 내 곁에 와서 한 마디를 거든다. 늘 그러하듯 훈민이의 목소리는 나를 더 울리게 만든다. 



- 엄마 울지 마. 화내지 마. 엄마...


첫째 아이는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심지어는 그 나이에 이런 배려와 그런 사려 깊은 대사가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미안해서 마음이 아프고, 둘째 아이는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사실 말을 '안' 듣는 게 그 나이에는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거센 훈육과 급기야 괴물이 되고 만 이후엔 죄스러움에 마음은 저리듯 아파온다. 



꽃을 꽃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제서야 꽃 주변의 것들을 볼 줄 알게 되는 것 같아..





아침 6시가 되어 그이가 눈을 떴다. 

 '갑' 고객사님의 소환과 회의와 잦은 숙제들이 많은 탓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그의 상황을 모르지 않는 바, 일찍 일어났다는 것은 일찍 출근을 해야 하고 그것은 아이들의 등원을 조금은 더 일찍 시켜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설상가상, 나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칼퇴근을 한 탓에 마감기한이 촉박한 현업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들을 일부러 깨워내 꾸역꾸역 밥을 먹이게 하고 등원을 무사히 해 냈다. 



회사에 도착하여 일을 다 마칠 무렵. 

'안녕'을 말하는 듯한 귀여운 곰돌이 모양의 이모티콘을 말없이 툭 건네주는 친구의 안부 톡에... 급기야 꾹 참고 있었던 눈물이 다시 흘러나오려는 듯 이미 눈동자 안엔 물이 가득 고여 있다. 가끔은 큰 눈이 저주스럽다. 너무 커서 물도 그렇게 많이 고이나 싶다.



어두워 보이는 길에도, 위에서 누군가 빛을 보내주는 것 같았다. 사진 한 장을 보는 순간.... 그랬다. 그랬었다. 



모든 삶의 장면들엔 '처음' 이 있다. 

그 처음이 한 때 견딜 수 없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라고 생각될지언정, 시간이 흐르면 또 좋든 나쁘든 싫었든 좋았든 기뻤든 슬펐든, 그 모든 시간들은 아득하게 느껴진다. 안다. 시간이라는 선물이 그래서 얼마나 대단하고 고마운 것인지를... 한데 나는 알면서도. 그 시간이 때론 야속하다. 원치 않은 시간들과 마주하면 할수록. 마음 챙김이 쉽지 않아 버리고 말 때. 그래서 여전히 나의 의지처는 '눈물'이다. 지독한 습관이 되어 버렸다. 마음을 챙기고 나를 보살피는 이기적인 습관... 




이 말이 왜 떠올랐을까. 아주 예전에, 언제 였는지 기억도 나진 않지만 아마 이혼 서류를 작성하면서 길길이 날뛰던 몇 년 전의 어느 순간일지 모르겠다. 추운 감정에 온기가 생길 무렵, 그이가 건네 준 그 한마디. 아마 이 말 하나 믿고 여태껏 흘러온 건 아닐까 싶다. 

 


빨갛게 충혈된 눈은 화장실 거울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말을 건다. 마치 삶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지금 막 수정된 시나리오 대본을 가진 사람처럼. 훌륭한 대사 하나를 기어코 내뱉으며 오후를 시작하려 한다.  



넌 좋은 사람...괴물이 아닌 괜찮은 사람.

그리하여 사랑이 변함 없다면. 

괜찮다. 당신만 변함 없다면. 



오후 12시 20분. 

눈물이 그쳤다. 흐르는 시간을 다시 자각하고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나는 곧 안부를 물을 것이다. 아이들의 안부를, 그리고... 그의 안부를. 변함없을 우리들의 오늘을 향한 안부를. 





당신만 변함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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