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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29. 2019

나아가. 멈추지 말고

손에 힘. 꽉 쥐고...

형벌 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고통 없이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마흔 살이 훌쩍 넘어 나는 이제 아니라고 대답한다.


- 봉순이 언니 - 




스테로이드를 단기간에 꾸준히 복용한 덕분인지.

성대결절임에도 목소리 상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이란 정말 이기적이고도 간사하여 환경에 적응을 '꽤' 잘하는 동물임엔 분명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기분은 결국 달라진다. 불편했던 목으로 인해 일부러 말을 하고 있지 않았던 침묵 수행의 지난주에 비해, 이번 주는 다시 말봇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아이들과 잠시 떨어져 있던 며칠을 보내고 재회한 이후의, 선택권 없이 터져 버리는 말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우울한 감정과 기쁜 감정은 마치 제 차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그렇게 주기를 반복하고 만다. 요 근래 적잖은 우울함은 아이들과 만난 주말을 기점으로 회복되는 중이다. 물론 회복의 주원인이 아이들이라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어떤 마음의 변화. 환경의 변화.. '그럼에도 다시' 잘 지내보고 싶다는 깊은 내면의 바람... 그것들이 여기까지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초라해 '보여'도, 그럼에도. 나아갈 힘이 남아 있다면, 배는 결국 파도를 등에 진 채 나아갈 수 있다. 



헌데 문득, 갑판이 없는 작은 돛단배 같다는 생각이 스치고 든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나 아이들을 보면서 요 며칠의 시간들을 나도 모르게 복기해내고 있었다. 계속되는 가족 구성원의 해외출장 연장, 상생되지 못하는 대기업의 횡포 속에서 (이는 개인의 차이겠다. 비단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기업 할거 없이 '인성' 의 문제, 사람 대함의 문제 아니던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함에 최선을 다하는..안쓰러운 그.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의 침묵. 그 속의 '우리' 로 묶여 있는 두 사람 그리고 네 사람...  



그로 인해 터져 나오는 알 수 없는 한 개인의 우울함

이로 인해 적잖은 시간 피해를 보고 있는 '도움'으로 가장한 친정부모님의 육아 노동, 그들에 대한 죄스러움, 후 달리는 체력에 드세지는 아들 쌍둥이,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며 더군다나 눈물이 많은 엄마 여자 사람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후회와 반성, 미안함과 아쉬움, 고마움과 떨림.... 그 모든 감정들의 교차점은 언제나 볼을 타고 흐르는, 일 리터만큼의 눈물이다. 그리고 그 눈물과 감정의 절반쯤은 나의 '친애하는 당신'에게 들키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던 모양인지. 나는 결국 말이라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숨기고 싶지 않다는 게 어쩌면 더 적절한 말일지도 모른다. 



- 엄마. 저기... 

- 왜 무슨 일이야 

- 김 서방, 출장이 좀 연장된다네.. 어쩌지. 나도 내일 저녁에... 일이 있는데.

- 뭐 어째. 하루 더 있음 그만이지. 니 일은 뭔데.

- 사실... 강의가 하나 잡혀서. 두 달 전에 잡힌 거라 취소할 수가 없어요..

- 넌 도대체가!



나의 친애하는 엄마는 여전히 속상해한다.

일을 하면서도 온갖 것들을 하려고 하는 딸 덕분에. 이젠 절대 양육 도움을 주지 않으시겠다고 노발대발하셨다. 그러나 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등짝 스매싱을 세차게 맞았던 그 순간에도. 짧은 순간 걸쭉한 욕 한바가지를 먹고 마는 그 시간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나를 향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  젊었을 때 건강 안 챙기면 내 꼴 된다. 

- .. 미안해. 

- 하여튼 넌. 



엄마. 나는... 자꾸 저 멀리 닿고 싶은 곳이 있나 봅니다. 그래서 아직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통장 계좌로 송금을 하며 잔고를 넉넉히 채워 드리는 것. 

오디오북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여전히 숨기는 것, 글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을 모르게 하는 것. 그리고 이젠 눈물보단 웃음으로 씽긋 웃어 보이는 것, 함께 화를 내기보다는 - 왜 이해를 안 해 주냐는 둥의 예전의 내 모습은 저리 집어치우고 - 그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고맙다'는 진심의 말을 건네주는 것. 



이 모든 것들로 인해 하루를 마무리 짓고 나는 다시 아침을 맞이 한다. 

이른 출근으로 일을 다 마친 이후에 조금 일찍 퇴근한 후 아이들의 목욕을 씻겨 놓고 저녁을 같이 챙긴 후 나는 강의를 위해 서울로 직행할 예정이다.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아마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리라. 



가방 안에 읽다 만 '봉순이 언니'가 말해준 대로.

이 모든 시간들은 나로 인해 무언가를 쓰고 말하고 읽게 만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뜨거운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고. 정말이지 '형벌 없는 자'의 글은 진짜 글이 아니라며, '고통 없는 지혜'는 가짜라고. 그러하니 나는 스스로에게만큼은 '진짜'로 살려한다고. 그러다 보니 결국 이 시간을 이렇게 아프고도 뜨겁게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태양은, 뜨고 진다. 어둠은 한껏 어둡다가 다시 밝아진다. 우리는 그렇게 흐르고 또 흐른다... 



거친 파도에 갑판 없는 돛단배만이 떠 있는 현실일지라도.

길었던 밤들은 결국 가시고, 부는 바람을 따라 흐르듯, 파도에 떠맡기듯 그렇게 나아가리라고. 바다를 벗어나고 싶은 그 돛단배의 마음도 이제는 떨쳐내려고 억지로 애쓰지 않은 채. 저 너머에 무엇이 보이든, 어두컴컴한 밤의 아주 희미한 달빛 하나에만 그렇게 기댄 채.  



멈추지 말고. 나아가. 손에 힘 꽉 쥐고. 

그러다 보면, 결국. 바랐던 장면에, 웃고 있을 나, 너,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날 것이다. 그리하여 만난다...



손에 힘 꽉. 쥐어. 그렇게 나아가. 내가 지켜봐줄께. 그리고 지켜줄께. 내가. 



#아침_헛소리_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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