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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08. 2019

새벽의 방문자들

아직 남아있는, 여전히 남아있을 이야기 

속으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응. 이거 네 이야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 새벽의 방문자들, 작가 노트 중 -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독서 모임을 하러 가는 토요일 오전 아침, 지하철과 버스를 오고 가며 단박에 읽어 내린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잠깐 긴 한숨을 내쉬어 보았다. '현남 오빠에게' 나 '그녀 이름은'.  아니 그 이전에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이야기들이 비주류에서 조금씩 주류로 느껴지는 (여전히 멀었지만) 이 시대에 어쩌면 이런 단편들이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다만 뭐랄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사실 이런 이야기가 앞으론 나오지 않았으면 했다. 왜냐하면 이건 우리들의 '현재'를 대변하고 그 '현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을 인지 시켜 주기에. 



새벽의 방문자들, 장류진, 하유지, 정지향, 박민정, 김현, 김현진, 다산책방, 2019.07.05. p.284






허구를 비틀어 진실과 대면하고자 하는 6개의 서사는, 차가운 슬픔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여자'의 이야기는 허구라는 서사로 어떤 숨기지 못한 채 적절한 표현도 쉽지 않은 어떤 '현실' 들을 대변한다. '눈먼 섹스'를 하기 위해 성매매가 이뤄지는 오피스텔을 찾는 이들의 얼굴을 캡처하는 여자. 그녀는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남자 친구와의 결혼보다는 그의 조금은 상기된 듯 즐겁게 말하는 '성매매' 현장의 묘사들을 들을수록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에 둘러싸여 결국 연인과 이별을 고한다. 



'뭐든 아는 체하며 설명하기 좋아하던 정은 성매매의 수위나 방식에 대해, 물다 밤이니 대딸방이니 풀살롱이니 미러룸이니 하는 이름도 다양한 업소들에 대해 왠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정의 회사 선배는 점심시간에도 성매매를 한다고 했다. 점심에는 요금이 싸서 '해피아워'라고 불리는데 그 선배가 해피아워를 다녀오는 데는 왕복 30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5년 사귄 연인과의 섹스는 관계 유지 그 이상의 것이 아닌 기쁨으로 다가오지 못한 채

되려 회사에서의 성추행 현장 속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한 고민 상담을 토로하다 되려 연인에게 '고작 그따위 일에 회사 그만둘 생각을 해'라는 적반하장의 모습에서 혹독하게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여자. 



'내 기분이야 어떻든 전혀 상관없지. 남자들은 정말 왜 그러는지 몰라.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돌라니 돌아야지. 오늘은 특히 그래야 해. 아주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까. (중략)


이 그럭저럭의 섹스 말고는 나는 평생 겪지 못하는 걸까? 더 농밀한 세계로 진입할 수는 없는 걸까? 그가 바라는 건실한 반반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아 참, 이럴 때 보조를 맞춰야지. 나는 반사 신경처럼 한껏 거짓말을 치기 시작했다 '



록그룹의 팬으로 그들을 쫓아다니며 성적 파트너가 된 여성들을 지칭하는 데서 유래한 말 '그루피'는 어쩌면 문화적 현상을 일컫는 용어라기보다 성적 대상이 된 재편물을 일컫는 용어에 가깝다고 하는데, 엉겁결에 (라는 단어가 적절한진 모르겠으나) 관계를 맺게 되는 (그럴 수밖에 없는 기이한) 현상들까지.




'그와의 만남은 늘 비슷하게 이어졌다. P는 여전히 내 연락에는 잘 답하지 않았고, 내킬 때 문득 전화를 걸어왔다. 연락이 잘 안 될수록 그에게 신경이 쏠렸던 나는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먼 길을 달려갔다. 가끔 섹스를 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의 소파에서 함께 영화를 볼 때가 있었다. 하지만 P는 이내 주요한 미팅이 있다, 하는 핑계를 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격체 라기보다 그저 섹슈얼리티를 자극하는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고 마는 

'여자' 들이 '현실'을 대면하면서 복잡하면서도 단순할 수 있는 '팩트'를 적절한 이야기로 둔갑시켜 어떤 '진실' 들과 대면하게 만드는 이 책이 사실 나는 좀 불편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인정' 하고 살아야 하는가 싶어서. 다만 침묵을 사양하고 삼킬 수밖에 없는 말과 기억들이 여러 형태로 비틀어져 다시 쓰였음에, 이런 이야기들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현실을 곧게 디딜 수 있는 힘... 을 길러야 할 것만 같다. 누구든. 젠더 불문이지만 특히 '여자' 들에게는. 더더욱.




'사랑'과 '몸'의 상관관계에 대해 묘하게 깊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몸의 서사가 사랑의 서사, 그 두 개는 일정하게 비례관계라고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사랑'의 부재에서도 몸은 얼마든지 섞일 수 있는 환경, 조건, 혹은 어떤 필수 불가결한.... 원초적인 본능. 그 어디쯤... 의 경계.. 몸이 먼저 반응하여 사랑이 탄생되기도 하고, 반대로 마음이 먼저 앞서 사랑과 몸이 동시에 다가오기도 하는. 이도 저도 아닌 채 몸도 사랑도 결국 시간과 맞물려 퇴색함에 이르지만, 여전히 어떤 '본능적' 움직임이 살아 있지만 그 관계 안에서도 어떤 '마음'과 '사랑'을 바라는 어리석게'보이는' 여자의 목소리... (아. 이래서 서평은 아무나 쓰면 안 되나 보다. 글이... 생각 끝에 언제나 산으로 간다. 생각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이야기 속 그녀들을 유심히 관찰한 이후에 

어떤 깊은 한숨과 동시에 그럼에도 이제는 '침묵'을 깨고 금기를 드러내 계속해서 '이야기' 하려는 이런 이들의 존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어떤 안도의 한숨 또한 내쉬어 본다.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에 한 문장을 조심스레 더해 본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다만 그 이야기를 이젠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 이제는 없기에...' '



굳건히 홀로 설 수 있는 힘... 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요즘 시대의 '우리'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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