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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03. 2019

한 달의 한 번, 너와 만나는 시간

네, 저 생리하는데요. 

너는 피 흘리는 네 몸을 자랑스러워해야 해. 그건 아주 대단하고 멋진 일이거든. 

그러나 매달 피 흘리는 일이 힘들고 귀찮다면 넌 얼마든지 생리를 그만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어. 

네 몸은 네 것이니까. 


- 네, 저 생리하는데요. - 






누가 그랬더라. 여자의 몸은 피의 연대기라고.

브런치에 '친애하는 당신에게'를 연재하는 동안 '생리'에 대한 단상을 적은 기억이 스치듯 생각났다. 글을 쓰는 마음은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반대로 나와 엇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의 마음을, 텍스트로 고스란히 전달받았을 때의 뭐랄까, 반가움, 애틋함. 뭐 그런 감정들이 이 노랗고 얇은 책을 한 장 두 장 넘겨가면서 나를 찾아오고야 만다. 이것이 동병상련이던가. 



네, 저 생리하는데요?, 오윤주, 다산책방, 2019.08.20. p. 300 



아주 특별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여성 젠더로 태어난 인간은 '피'를 흘린다

바로 '생리'. 한데 이 말을 쓰는 것조차 살면서 적지 않은 불편함 혹은 '거리낌'이라는 감정을 느꼈다면, 여전히 이 생리 혹은 월경 혹은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마법 뭐 이런 시원찮은 단어들을 사용했으리라. 사회가 여성에게 주는 어떤 프레임이 고스란히 무의식적으로 '박혀 있는 일상'을 살아내느라 어쩔 수 없음을. 안다. 



생리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해 그날이나 마법 따위의 다양한 대체 용어들이 생겨난 것을 보면 생리를 생리라고 호명할 힘을 되찾는 것 역시 중요한 논의 중 하나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순간.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월경 증후군' 은 나를 적잖게 괴롭힌다. 

일단 식욕 혹은 성욕이 평소 대비 2.5배 정도는 상승하는 듯싶다. 식욕이 넘치니 일단 평소 대비 뭔가 자꾸 먹게 된다. 먹고 싶으니까. 그렇게 본능에 충실한 인간 동물이 되고 마는 나와 마주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성욕은 또 어떤가... 하아... 묵비권을 행사하련다. (젠장) 그리고 감정이 극도로 치닫게 되는 시기도 바로 이 시기다. 나의 배우자에게 이젠 미리미리 경고(?)와 엄포를 놓곤 한다. '나 이 주에 생리하니까 조심해야 해.'라며. 



대다수 여성이 가장 예민하고 우울해지는 시기는 생리할 때가 아니라 생리 전, 배란기 때다. 월경 전에는 호르몬 변화와 함께 감정 변화 역시 극심해지기 때문이다. 우울감이나 충동이 밀려오고 감정 제어가 잘되지 않는다. 이러한 증상들을 PMS (월경 전 증후군)라고 말하지만 개인마다 경험은 천차만별이므로 절대 한 가지 증상으로 일괄할 수는 없다. 




예전엔 여자로 태어난 몸이 별로였는데 요즘은.... 사랑... 스럽다. (많이 변했다. 바라보는 관점, 생각, 모든 것이 다)



예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 

다달이 일주일 동안 피를 흘리는 동물로 태어난 이상. 아니 세상에 예민하지 않은 게 조금은 이상할 정도. 월경 기간에 평소보다 예민해지는 것은 어쩌면 상선약수, 너무나도 당연한 순리 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때, 나는 그 순리에 반하려 했다. 생리를 안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았다. 방법이 있긴 있었다만 친정 모친과 잠시 나눈 대화를 통해 단박에 '아웃' 당했다.



출산을 해야 했기에. 그건 내게 의무이자 태어나서 주어진 책임이라고도 했었다. 

그런 엄마가 그땐 미웠지만 이제는...... 이해하고 감사해보기도 한다. 그때 월경 중단 선언을 지키기 위해 '실행'이라는 걸 해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테니까. 어쨌든 그만큼 곤혹스러운 일인 거라는 뜻이다. '생리'라는 것이...!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는 거다. 아주 세심하게. 광고도 정말이지 생각해보면 억지스럽기 짝이 없는 것들 투성이다. 나 원 참.. 이제는 그저 웃고 넘길 뿐이지만 :) 




생리하는 날은 몸이 가볍지도 않고 까르르 웃을 기분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생리하는 기간에 굳이 흰옷을 입는 여성은 없다. 그러나 생리대 광고는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거짓된 이미지를 확산한다. 그리고 은연중에 여자들에게 강요한다. 너희는 생리하더라도 이렇게 흰옷을 입고 가벼운 몸으로 밖에 나설 수 있어야 해.라고. 



빨간 것은 어쩔 수 없이 빨간 것... ;)



불편하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생각해보면 그저 받아들이는 '태도' 차이일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월경하는 여성들에게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세상이라고 바라보면, 정말이지 한도 끝도 없다. 그리고 개인은 웬만해선 시스템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럼 어쩌라고? 괜찮다. 우리에겐 '마음의 힘' 정신 승리라는 게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 있다. 순응하고 받아들이지만, 필요할 땐 단호한 목소리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후세대들에게, 작고 사소한 불편함들에 대해서, 하나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들이라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상황들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월경하는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잣대를 깨부숴야 한다. 절대 피가 새서는 안 된다고 여자아이를 교육할 것이 아니라, 피가 좀 샜다고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을 교육해야 한다.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도록. 




이제는 아들 둘의 엄마가 되어 버린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들 엄마야말로 '페미니즘' 의식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조금 더 양성 모두 해피한 세상이 도래할 것 같아서. 무슨 오지랖에 이런 마음이 자라나는지 모르겠다만, 이제 막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의 원초적인 질문들 중 '성' 관련된 질문들을 간혹 접하게 되면 더더욱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를 잡는다. 그럴 때 양육자의 발언 하나, 행동 하나, 그 태도와 관점이 바로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주입될 수 있다는 '무서우면서도 위대한' 힘을 간과하지 않으려 한다. 그럴수록 스스로 되뇌곤 한다. 직업에 젠더 차이를 두지 않을 것을. (여검사, 여선생 등등) 생리든 몽정이든 젠더 구분되어 태어난 이상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순리라는 것을. 개개 인성이 타고난 차별성들에 대한 것을 '존중' 해야 한다는 것, 결국 젠더를 넘어서 '인권'의 중요함에 대해서. (너무 생각이 많나? 그래도 뭐. 나쁘지 않다. 생각 없이 사는 것보다야.) 



이 피는 여성의 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흐르는 멋진 피야. 

이 피가 너를 만들고 네가 이 세상에 나오도록 했어. 

너는 이 피를 수치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면 안 돼. 

가끔 이렇게 피가 샐 때도 있지만 괜찮아. 

흘린 피는 닦으면 되고 피 얼룩은 세탁하면 돼. 

별거 아니야.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평범한 몸의 운동이야.  



몸의 주인이 '나' 이 기를. 

아니, 나아가서 몸과 마음의 주인이 '나' 로서 보다 튼튼하게, 건강하게, 되도록 '사랑'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생리, 너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시간, 다행히(?) 아직 몇 주 더 남은 이 가벼운 시간들을 나는 매번 소중하게 아낌없이 자유롭게 사용하겠노라고, 오늘 새삼스레 선언해본다.



순리를 거스르기보다 순응하며 다만 '발전하고 '성숙' 하려는 태도가, 더 근사하다. 나는 여전히 근사하게 흐르고 싶...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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