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Sep 07. 2017

15. 자존감을 생각하다

미용실의 중심에서 자존감을 떠올리다?!

큰 맘 단디 먹고 저녁 시간을 냈다. 

 아기들을 잠시 봐주시러 지방에서 올라오신 시부모님 덕분에 자유의 시간을 오랜만에 하사 받은 나는, 어제 큰 맘먹고 미용실을 찾아갔다. 1인 미용실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딱 봐도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른 체구의 강단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염색하러 왔어요 머리 색깔이 듬성듬성 제각각 놀아서.. 보기 좋지가 않네요”


 그녀는 딱 보자마자 나의 모발 상태에 대해 꽤나 차근차근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지만 강압적이지는 않은 부드러운 톤이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복장을 보니 은행원 같은데 머리 색깔을 보니 또 아닌 것 같고.”
“아 네… 하하. 복장이 정장이라 그렇게 보이죠. 해외 마케팅 쪽 일 하고 있어요”


“어머 외국어 능통한 손님이셨구나”
“하하 능통은 아니지만 의사 표현할 수 있어서 불편하진 않은 수준이에요”
“영어 잘하시겠네. 그레잇”


 뭔가 까 보면 양파같이 나올 법한 그녀였다. 

 더불어 작은 체구의 미용실 언니(?) 포스가 사뭇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알게 된 미용실 사장님은 평범한 분은 분명 아니었다. 남편은 연하의 파일럿. 유야 교육과 출신에 50대, 장성한 아들 2명이 버젓이 있는 워킹맘이고 지금은 미용 관련 대학원 공부까지 병행하면서 미국에서 사업할 준비를 꾸준히 하고 계신, 내 눈에는 꽤나 고급 클래스(?) 에속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사실 미소 띤 첫인상과 목소리에서 묻어 나오는 차분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그녀의 성격은, 대화를 지속하면서 ‘아 역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한 서비스업에서의 고객만족 과일에 대한 정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자존감이 있어 보였다. 

 아니 분명 있을 것이다. 중간 염색을 마치고 잠시 대기를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남편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있자면 더더욱 그랬다. 자녀를 다 키워 놓은 부부의 여유도 한층 묻어나고. 솔직히 부러웠다. 그래서 대뜸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정말 다 일궈 놓으셨는데요. 에너지 넘치시고 부럽습니다. 가끔 놀러 오고 싶어 지네요”
"노노 무슨 소리. 내 눈엔 손님이 더 멋져요. 딱 봐도 누가 갓난쟁이 아들 둘 낳은 엄마로 보겠어.
 그 여린 체구에 애들 보며 일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내가 해봐서 알아요. 충분해 지금도....”
“아니에요 전 아직도 멀었어요 하하하.”
“자존감 좀 가져도 될 것 같은데 충분히 예쁜데 뭘”


 아… 뭔가 뭉클했다. 

 어제는 비가 꽤 멋지게 내리는 수요일이었고, 밤에 그 시간에 외출을 하여 미용실에 앉아 있는다는 건 내게는 꽤 많은 노력과 협조가 필요해서 쉽게 누릴 수 없는 자유였기에. 그래서였을까. 정말 울컥했었다. 자존감을 가져도 좋다는 그녀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비슷한 어감이나 엄밀히 다른, 마치 쌍둥이 같은 느낌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바보 같은 자신감 맛있었고, 자존감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 1년은 자존감이 바닥에 쳐서 일상을 겨우 쳐내며 살 정도로 허우적대기 일쑤였으니깐. 자신감은 나를 돋보여 주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인위적인 도구 같은 느낌이라면 자존감은 내면의 진정한 용기와 사랑에서 나오는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친구 같은 느낌이다. 흔히 자신감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훨씬 더 내면의 행복과 사랑 충만한 삶을 산다고들 한다.


옳고 그른 것은 없겠다만, 쓸데없는 꼬장꼬장 삐뚤어진 자신감 보단, 여유있고 편안한 자존감을 택하자.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자존감이 높아지는지. 

 자존감이 낮다는 것과 높다는 건어 떤 형태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지. 100명이면 100명이다 다른 색깔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을 테니깐. 그것을 표출하는 형태도, 삶에서 녹아나는 자세도 분명 다를 테니깐. 


 하나 분명한 건 자존심과 자존감은
삶에서 때때로 섞여서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의 삶을 자연스레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미용실 원장님의 50 넘은 나이에서 묻어 나오는 삶의 연륜, 물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다지만 최소한 그냥 먹지는 않으리라. 귀를 더 열어두고 상대를 배려하며 우아하고 기품 넘치는 기질이 쌓이게 되면 흔히 ‘나이 잘 먹었다’는 존경도 받게 될 테니깐. 


 타인의 존경심을 받는 사람은 분명 자존감도 놓을 것이다. 

 자신의 좋고 싫은 모든 스스로의 내면을 충분히 보듬아 줄 수 있는 사람일 테니깐. 나를 믿어주는 용기에서 나오는 게 바로 자존감일 테니깐 말이다. 


 문득 자존감이라는 말에 그때의 사건이 생각났다.

 회사에서 도둑년으로 낙인찍히고 누명을 쓴 덕분에 좋아하던 부서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그때. 나를 상담해 주던 그 회사 임원 분은 내게 말했었다.


‘헤븐은 다 퍼펙트한데 자존감이 너무 낮아. 충분히 있어도 될 실력인데… 안 그래?’


 듣고만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때도 눈에선 알 수 없는 억울함과 미묘한 감정이 뒤섞여서 눈물만 흘린 채 침묵했었다.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침묵이었으니깐. 나는 침묵했고 상대는 여러 사람에게 떠들어 댔었으니깐. 

여담이나 결국 그 상대는 얼마 안돼 또 불미스러운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퇴사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를 상담해준 내게 자존감이 없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해 준 그 임원도 좋지 않은 사건의 주인공이 됨은 마찬가지였고. 내 누명은 그들에 비하면 껌딱지 정도의 귀여운 수준이었을지도..


 난 나를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마음은 지금도 크게 변하진 않지만 가끔은 모르겠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종이 한 장 차이 같이 느껴지니깐. 객기 부리는 패기는 자신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객기의 사랑, 자존감. 


스스로 나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자존감의 시작이다.

 

 뭐가 됐든 스스로 알고 있는 본인의 장점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건 자존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만 하나 더 새롭게 알게 된 건 그런 내가 알고 있는 매일의 나는 변한다는 사실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자존감 있어 라고 당당히 외치다가도 자존감이 내려갈 수도 있고. 매일 자신감과 자존감에 넘쳐서 24시간 365일이 행복할 수는 없을 테니깐. 그래 뭐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주 극소수일지 모를 일이고.


 여하튼, 내가 만난 미용실 사장님의 삶은 최소한 나라는 타인의 눈에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현재의 본업을 대하는 소신과 그 소신을 지켜 나가는 신념, 최소한 구닥다리 인테리어가 맘에 안 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사실 인테리어와 인건비 값 줄여서 최상의 미용도구와 약제들, 그리고 경제적인 가격을 손님에게 내놓고 싶다는 훌륭하고 기특한 생각의 사업자의 마인드가 뚜렷했으니깐 말이다.


 또한 아들 둘을 키우면서 숱하게 겪어냈을 육아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조언도 넌지시 건네주는 센스 장착한 워킹맘 선배의 자신감. 무엇보다 그 모든 그녀의 삶을 스스로 긍정하며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오픈할 줄 아는 자존감. 그건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일 테다. 


 자존감은 타인이 코칭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존감이 높고 낮다는 판단도 사실은 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믿어주는 용기와 진정한 사랑. 그걸 때때로 삶에서 시기적절하게 만들어 내고 또 사용해 낼 줄 아는 힘일지 모른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힘 말이다. 


작든 크든 소중하고 사랑해야 하는 내 자신이다. Small 이든 Big 이든 Myself 가 가진 Potential 을 믿자 아아아-


 어제의 독서 리뷰에서 힘을 좀 빼라고 글을 썼지만, (힘 빼기의 기술*) 오늘은 그 자존감이 좀 더 아름답고 우아하게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부디 발산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오늘의 자존감에는 조금 더 힘이 들어가 있기를 바라기도 하는 지금 이 순간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좋고 싫고 힘들고 외롭고 또 사랑한다는데.
그 감정들이 어디 가겠나.


 오늘 있는 힘껏 우리 마음의 감정들을 사랑하고 보듬아 주기를.

그리고 그것들이 오늘 흐르는 삶에서 부디 좋은 경험들과, 뜻밖의 행운, 그리고 기적까지도 끌어당겨 주기를 기대하는 오늘이다. 


미용실 대표님 덕분에 머리 색깔 화사하게 나왔어요 (너무 화사해서 탈인...ㅎ) 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14. 고백 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