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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13. 2017

16-1. 아픔의 단상

아이가 다쳤다.  

어제 아이가 다쳤다. 

 20개월을 지낸 아직은 '아가'인 나의 쌍둥이 아기 둘. 그 중 2.9kg 로 태어난 튼튼한 형과는 달리 2.3kg 라는 다소 작게 태어난 둘째 둥이녀석이 다쳐버렸다. 


 사건의 장소는 세탁실. 주방과 세탁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걸 즐겨하는 둘째는 어제도 어김없이 문틈 사이로 약지 손가락을 대고 있었엇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잠시 문을 닫으려다가 ‘악’소리에 그제서야 바라본 아이의 눈물 흘리는 시뻘거진 얼굴을 보고 ‘아차 뭐가 잘못 되었구나’ 싶었다.   


 모두가 내 잘못 같았다. 

 아니 잘못이었다. 발견하지 못하고 안전을 생각해서 아이를 돌보지 못한 엄마의 탓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이미 알게 모를 화가 치솟아 있는 상태였고 마음은 불안했으며 그래서 그 모든 좋지 않은 에너지와 감정들의 결과를 내가 아닌 아이가 당했다는 생각에, 나는 더 화가 났고 아팠다.   


9월의 시작이 그럼에도 '액땜'했다고 좋게 생각하고 있는...이 긍정이 일상이 되버린 나를 사랑한다..T-T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뭐가 원인일까를 잠시 곰곰히 생각해 봤다.   



1. 회사?  

 그래. 보통 정규 퇴근 시간인 5시 30분을 아슬아슬하게 눈치 보며 지키면서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가는 나의 일상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제는 퇴근 30분을 남겨둔 채 해외 고객에게 가격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했다. 나의 성격 상 이미 대부분의 자료를 준비해 놓았으나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중요한 회신이었기에) 내일 오전 (그러니깐 지금 이 시간) 에 리뷰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역시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원래 삶이란 것도 생각대로 되는 것이 10개면 1개쯤 되는 그런 것이니깐. 갑자기 지시를 내리는 상사가 얄궂었고 슬펐다. 겉으론 1도의 내색도 하지 않았고 마무리를 잘 지었으나, 6시가 훨씬 넘어서 겨우겨우 어린이집으로 뛰어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이미 뭔가 꼬여버린 감정은 나를 잡아먹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마음은 이미 그때부터 어딘지 모를 화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었을 게다.   


2. 남동생의 독설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 친정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강의는 가지 않아야 했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보다는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해야 하는 게 마땅한 나였다.


 그러나 월요일부터 나는 그 문장에서 잠시동안 벗어났었다. 헤이그라운드에 간 것. 그게 화근이었을 지 모르겠다. 늦은 밤 귀가를 하고 널브러져 있는 집안일을 손 빠르고 깔끔히 착착 마쳤지만 그 대신 나의 체력은 이미 소진되어 있었다. 그렇게 잠깐 누워있는 데 카톡 메시지가 왔다. 남동생 이었다.   


누나는 부산에 있는 내가 걱정도 안 되나. 홍수로 난리였는데  
아..미안해 몰랐어 누나가.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누나가 정말 몰랐네. 미안.... 
나한테 미안할 건 아니고 엄마한테 지랄 피우지좀 마.
그 성격 좀 죽이고 살아.
애는 애엄마가 보는 거지, 할머니가 보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애는 누구나가 엄마가 되면 다 보는거 아냐? 엄살 피우지좀 말고’   


하…이건 무슨 귀신이 신발에 엿 쳐 발라도 시원찮을 개소리인가 싶었다. 

 순간 참고 참고 있었던 어딘가 꼭꼭 숨겨둔 채 잠재워둔 나의 분노가 한 순간에 파도처럼 치미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늘 생각하고 있다 '다이죠부' 정신! 그럼에도 괜찮다고!!

 


속상해서 더 이상 말을 한 마디도 이을 수 없었고, 이제는 눈물도 하도 울어서 메말라 버렸는지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왜 이런 대사를 누나에게 그 늦은 밤 시간에, 생전 안부도 먼저 안 묻는 대단한 녀석이건만, 분명 원인이 있었을 거다.   


역시나 아차 싶었다. 

 친정엄마 였을 거다. 속상하고 서운한 어떤 사건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남동생에게 간접적으로 돌려서 이야기 하셨을 우리 엄마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잇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딱 한마디를 건네고 그 즉시 그냥 잠들어 버렸다.   


쉬어.. 누나가 뭘 잘못 했는 지 모르겠구나..


3. 친정엄마의 냉소와 선입견

 둥이를 봐주기 위해, 정확히는 사실 보고 싶으셨던 마음도 반은 가지고, 화요일인 어제부터 와 준 친정엄마였다. 그런데 월요일의 남동생과의 그런 쏘아붙임을 일방적으로 당한 나였던 지라 엄마를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고, 도대체 동생에게 어떤 말을 하셨길래 갑자기 내가 공격당해야 했는지가 진심 궁금했다.   


 사실 그 궁금증의 시작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나의 주책 없고 어른스럽지 못한 감정은 그대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엄마, 도대체 내가 '또' 뭘 잘못했어요? 어제 내가 생전 안부도 안 묻는 그 녀석에게 뭔 말을 들었는지 알아?’  
그냥 무시해 버려. 고만 좀 해라. 애기 포도 먹이잖아. 조용히 좀 해


 또 덮어두려 하는 그녀였다. 그만 해야 할 건 사실 내가 아니라 엄마랑 남동생이야!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던 나였다. 무시하고 싶었으나 그대로 무시한 채 지나가기엔 억울하기도 했었고.   


 대충 상황은 그랬다. 

 주말에 서울에 친척 결혼식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고, 피로연장에서 정신 없이 흘리고 난리 치는 아기들을 케어하느라 정신 없는 나였었다. 나는 복잡한 생각 따위 할 겨를조차 없이 살고 있는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큰 의미를 두고 하는 말 따위는 거의 없어진 지 오래다. 그저 그 순간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었지. 그러나 나의 어떤 한마디가 엄마를 서운하게 했고 동생을 서운하게 했다고 뒤늦게 들었다.   


엄마 애기들 밥은 잘 멕이고 있어요?  


 이 문장에서 도대체 아직도 이해가 되진 않지만 어느 맥락이 친정식구들을 괴롭힌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사실은 도무지 납득이 쉽게 되질 않는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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