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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8. 2019

내일의 일은 모른다 해도

우리만 아는 농담 

애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랑이 허락되는 동안 사랑하는 것뿐이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 우리만 아는 농담 - 





살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연약한 면, 다치기 쉬운 면을 발견한다.  

타인에 의해 들춰지는 약점과 단점, 혹은 스스로 알아채고 마는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은 실로 쓰라리고 아프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그 아픔쯤은 그럼에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혹자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픔이 없어지진 않는다. 생겼던 일이, 있었던 일이, 마주했던 사건 사고들이 없던 게 되지 않는 것처럼. 없던 것 '처럼' 연기할 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처라든지 아픔과 같은 것들은 그저 아물어갈 뿐. 그렇게 선명한 아픔이 흐릿해져 갈 뿐이리라. 생각이 이토록 꼬리를 물어 다시금 '아픔' 들이 나를 찾아올 무렵, 원래 읽으려던 다른 책들 사이에 이 책을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농담' 하나 쉬이 건넬 수 없던 여유의 '나'는 그렇게 펼쳐 읽기 시작하며 이내 한 권을 뚝딱 내려 읽기 시작했다. 



우리만 아는 농담, 김태연, 놀, 2019.10.16. p. 280



쉬웠고, 또 쉬운 일상의 이야기들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상의 크고 작음이 담겨 있는 시간. 

보라보라 섬이라고 하는 누군가들에게는 지상 최고의 낙원이자 가고 싶은 여행지 중 하나인 그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라면 어떠할까. 입장과 시선의 차이는 우리로 하여금 실로 같은 것을 보고 경험해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리라. 그 환상적인 바다와 노을 지는 하늘의 풍경을 매일 마주하면서도 어떤 지루함, 고통과 고민을 앉고 살면서도 반대로 소박한 행복과 사랑을 지키려는, 저자의 일상과 생각을 얕게나마 엿보면서 그 시간의 '저자'가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 삶을 대하는 어떤 태도의 사람인지를 잠시 동안 짐작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저절로 갖고 말게 된다. 




나는 지금도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일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거나, 그저 지루함을 버텨내는 일이거나,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일이어도 괜찮다. 상대에 따라 전부이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 운이 좋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낼 수도 있는 일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의 일들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가 조금씩 성장해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 




겉보기에 편안해 보여도 입장과 시선의 차이에 따라 결국 해석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누군가의 삶을 말할 수 없는 거다.




좋은 책은 이처럼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여백들이 담겨있는 책.. 같다. 

그래서였을까, 고마웠고... 스스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무 쓸모 하다' 라거나 '형편없는 말 센스를 가졌다' 라거나 '왜 내 주변엔...'이라거나 '왜 나한테만....'이라는 달갑지 않은 감정들이 나를 찾아오고 있었던 시기였으니. 그래도 읽는 시간 동안만큼은 편안했고 평화로웠다. 그러한들 이 시한부 같은 혼자만의 읽거나 쓰는 여유의 시간은 금세 사라질지언정,  저자가 늘 입에 붙이고 사는 이 문장을 나는 기억하며 씩 웃을 듯싶다. '내일의 일은 잘 모르겠다'라고. 




사랑을 할 때 하는 약속들은 헤어지기 전까지만 유효하다고 했다. 사랑을 해보고 잃어보고 잊어본 사람이라면 '영원히 사랑해'라는 말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아주고 싶은 사람을,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다. 여기서 진짜 어른들의 동화가 시작된다. 비극일지 희극 일지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애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랑이 허락되는 동안 사랑하는 것뿐이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사는 자세가, 의미부여가 비슷한 사람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이기에.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고 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정말 그러하다. 소비할수록 결핍을 느끼고 말며, 어떤 자본 혹은 자산을 대상으로 늘 열심히 달려야만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느 순간 그 움직임 안에 담긴 '의미'는 사라지고 행위만 남아버리게 되기 십상 일지 모르니. 보라보라 섬에서의 안빈낙도 속에서도 고양이 '쥬드'를 향한 마음이나, 피자를 만드는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한국에서의 가족들을 맞이하는 가족으로서의 저자, 그 모든 역할들 속에서도 작가는 뭐랄까, 최소한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지키려는 어떤 '의미' 만큼은 잃어버리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였을까. 느리듯 단순하고 별거 아닌 문장들이... 다 대단하고 튼튼하게만 느껴지더라. 내게는..  




나도 쥬드가 말을 할 수 없어서 안심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걸까. 상처 주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슬프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노력은 필수다. 나의 재능 없음에 대해 전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그냥 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간다. 




사소한 일은 사소하게 넘겨 버리는 연습을. 

지나간 인연을 혼자 그리워하며 혼자만 그리워한다는 감정, 혹은 상처를 주고받은 관계를 내내 곱씹고 마는 감정 덕분에 '억울' 함이라는 것과 마주하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내면의 철들지 못한 '나'라고 할지라도, 먼 훗날 그 인연과 다시 조우하게 되었을 때 '우리만 아는 농담'을 기억하는 편에서 설 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관계들을 지키는 아름다운 예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삶에서 껍데기의 화려함이 아닌 '의미' 나 '가치'를 더 중시하려 노력하는 '나'에게 너그러운 자애를 전할 수 있는 그릇의 '어른'으로 조금씩 '나아지면' 그만일 것이라고. 가벼운 책 한 권에 무거운 생각들을 잠시 담아내어 그렇게 조금씩 털어내는... 시간을 가져본다. 




기대를 저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그랬는데.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행복해지는 일보다 행복해 보이는 일을 선택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런 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니어야 할 텐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라는 경쾌한 마음의 소유자를 잠시간 그리면서

다가오는 겨울엔,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기쁜 농담 섞인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나' 이 기를... 바랐.. 다. 



이런 석양을 보게 된다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나'와 잠시 마주해봤다. 읽는 내내... 편안함과 그리움과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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