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Oct 28. 2019

그 어떤 길도 길임을, 기억할 것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불필요한 줄 알면서도 떨칠 수가 없었던 그 모든 열등감과 박탈감은 

더 이상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감정이 되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의 삶이 좋다. 


-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 






직/간접적으로 퇴사를 종용하는 숱한 에세이에 지쳐있을 무렵 

그 이후에 '일'에 대한 기본기 라든가 직장 생활 '스케일업' 하는 자기 계발서를 찾으면 찾았지 '퇴사' 이후 떠난 여행이라든가 아무 계획 없이 그저 그만두는 것을 '권하는 느낌' 이 풍기는 책의 제목에는 일체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만. 반대로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는 뭐랄까. 



제목에서 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었지만... 

혹 하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이후, 이토록 솔직 발랄 경쾌한 퇴사 '후' 에세이가 있을까 싶었다. '회사가 싫다는 마음 하나로 기술 하나 없이 퇴사한 백수' 라도 자신을 정의했던 작가의 프리랜서 선언 이후의 고군 분투기 치고는, 역시 테스트만 빼곡한 게 아니라 '웹툰' 이 함께 담겨 있었기에 단행본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분위기'는 제목 다운 경쾌함과 그 안에 읽고 '생각' 했을 때에만 알 수 있는 진정성마저도 느낄 수도 있었... 지만. 그러나... 결국 체질이 아니어도 존버 하며 오늘의 생계를 지키며 출퇴근하는 숱한 직장인들로 하여금 어떤 '참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을 뿐이고.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서 메리, 미래의 창, 2019.03.29. p. 300



자신에게 '멈춤'을 선물할 수 있는 '위인' 이 되기란, 절대 쉽지가 않다. 

하물며 '직장'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는 이들이라면, 쉼을 선물한다는 '겉으로의 이유'가 있다 한들, 퇴사 이후엔 보통 자연스럽게 '이직'이라든지 '공부'라든지 '자영업'이라든지 계속해서 '노동'을 행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담겨 있는 게 사실이기에. 어쩌면 그 연장선에서 이 책도 퇴사 이후 '프리랜서'라고 하는 어쩌면 더 광활하게 거칠고 험난한 길을 용감무쌍하게 들어갔던 저자의 '현실' 적인 이야기들 담겨 있었기에, 조금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직장인 시절의 작가가 느꼈다던 고충을... 이해하고 또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나 또한 그녀가 한때 걸었던 그 길을 아직까지도 걸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것도 12년이나...... 맙소사. 




사실은 매번 이런 식이 었다는 걸. 겉으로는 담담한 척, 잘 지내는 척해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다. 정작 나도 모르게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괜히 소중한 내 사람들에게만 화풀이를 해댔다. 회사에 다닌 시간이 길어질수록 짜증은 늘어 갔고, 뒤이어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도 점점 커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퇴사를 결심한 후에도 결국 나는 이렇게 죄 없는 엄마에게 성을 내고 있었다. 




요즘은.. 가끔 사무직인 내 환경에 감사함을 느낀다. 숱한 그림자 노동이 얼마나 많은 시대인가를 역설적으로 생각하자면.




퇴사 전후로 장기적인 삶의 목표나 현실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 나로서도. 

작가의 현실적인 조언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실제 프리랜서 이후의 삶에 대한 깨알 같은 일터의 고충들, 반대로 빛나는 기회들, 순식간에 불어오는 '초심자의 행운' 들 마저도. 읽는 내내 사실 마냥 흐뭇한 마음으로 읽지 못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여간 제목에서부터 좀 거부감이 느껴져서 그랬을지 모른다. 



'체질' 이어서 다니는 직장인이 사실 어디 있을까 싶다. 

결국 다시 말하자면, 그 '회사 체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식솔들,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키려 살려는 사회적 동물인 '나', 아울러 '개인'으로 살면서도 오롯이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희박한 생계유지를 위해. 그 숱한 일터에서의 지저분하게 남겨지는 감정들을 참고 또 참으며 출근을 일삼는 일개미가 더 많은 현실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러면서도 '개인' 이 '행복'이라는 관점 하에서 나와야 하면 또 나와야 하는 것도 방법인.. 셈이다. 그렇게 과감히 출사표를 던지고 마는 이들의 좀 더 현실적인 목소리가 그나마 책에 잘 담겨 있었기에, 제목이 주는 껄끄러운 거부감을 뒤로한 채 어떤 공감대가 조금 더 만들어진 게 사실이었다. 




돌이켜 보면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것.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멈춰 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히 관찰했어야 했다. 


프리랜서, 백수, 직장인의 신분으로 고루 삼등분되어 있던 나는 그렇게 생전 처음 풀타임 프리랜서의 ㅣ일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일이 풀렸다는 식의 우연한 결말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기까지 결코 짧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내가 뛰어들었던 크고 작은 도전들을 생각하면 이 작은 성취가 그저 우연한 선물이라고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중략)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외국어로 된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종종 후배들을 만나면 기꺼이 밥을 사주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설이 나오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구입해 읽는다. 나는 3년 전 내가 그토록 바라던 회사 밖에서 먹고살 수 있는 인간이 된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로망의 '어깨 뽕'을 가차 없이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결국 빈곤하고 가난해져 봐야 그 험난함도 이해할 수 있기에



삶이란 정말이지 예측 불가하기에. 그래서 더 열려있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소위 '베스트 셀프' 해내기 위한 다섯 가지 요소가 문득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다. 호기심, 열린 마음, 정직함, 의욕, 그리고 집중..... 결국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을 대함에도, 그 환경을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반대로 '나'라는 사람이 변화하여 어떤 '도전'을 행하기까지는. 전략적인 예상 돌파구와 결국 '끊어내고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어떤 대단한...'용기' , 자신을 믿는 담대함마저도 필요하다는 것을.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거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도 지나치게 당황하거나 지레 포기할 필요 없다. 책임감과 인내심을 갖고 버틴다면, 시간은 그 모든 경험에서 의미를 만들어 줄 것이다. (중략) 무작정 뛰쳐나오라는 얘기가 아니다. 회사만 때려치우고 나오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그럴싸한 거짓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알려 주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그 다양한 길들을 두루 살펴본 뒤에 당신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결코 당신 자신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주 가끔이지만, 온라인상으로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물어봐 주는 고마운 지인께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해 주신 목소리가 문득 기억에 난다. 나는 회사를 나오면 조금 더 날개를 달아 더 자유롭게 잘 될 수 있을 것 같은 빛나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 목소리에 감사하면서도 손사래를 쳤다. 아직은..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아서, 멈출 용기도 있지 않은 나는, 다만 욕심쟁이라서 이대로 현존하며 살아보겠다는 말만 했다. 이윽고 그녀가 내게 말해줬었다. 



'그래요, 어떤 길도 길임을...' 



그 마지막 문장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아서, 나는 다이어리에 적어서 가끔 혼자 몰래 훔쳐보곤 한다. 

그리고 읊조린다. 어떤 길도 길임을 꼭 기억하자고. 그래서 지금 걷는 이 길도 한때 내 선택의 후회가 덜 하도록 애쓴 기억, 노력한 흔적과 고마운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싶어서. 아직은 퇴사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프리랜서라든지 퇴사라는 걸 굳이 권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뭐랄까, 체질이 아니어도 그곳에서 '성장' 하려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렇게 어떤 가시적이고 선명한 목표를 가지고 계속해서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을, 나는 더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덮고 난 이후 그 어떤 길도 길임을... 기억하라고 스스로 중얼거렸던 것처럼. 



회사 체질이 아닌 나는, 그럼에도 존버 하며  '나'의 브랜딩과 기술을 쌓아간다.  결국 회사라는 계급장 떼면 다 훈련병이니까..




#다시_말하자면_회사밖은_더_혹독하다는걸_기억해야_하지_않을까...

#그래도_생존전략이_있으면_또_EXIT이_방법이고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의 일은 모른다 해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