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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7. 2019

잘 자려한다는 건, 지켜내려 하는 것.

여성 수면 사용 설명서 

수많은 감정을 착착 정리해 주는 구세주가 바로 수면입니다. 


- 여성 수면 사용 설명서 - 





저녁 10시. 

퇴근 이후 쌍둥이들의 먹놀잠 육아를 마치고 난 평일의 육아 퇴근시간은 대부분 이 시간대다. 빨랫감이 쌓여 있다면 집안일이 시작되는 시간, 반대로 쌓여있지 않은 날엔 그대로 식탁 테이블 라이터로 변신, 혹은 아이들과 같이 잠에 들고나면 그다음 날로 넘어가는 시간들, 양육자로 살면서 통과해야 하는 현재의 일상 속, 나의 '수면' 시간은 대중이 없고 규칙적이지도 않다. '수면'의 중요성에 대해서, 필요성과 부재 시에 얼마나 인간이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나는 알고 있지만, 아는 것과 막상 실행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인 거다. 



여성 수면 사용 설명서, 도모노 나오, 현대 지성, 2019.10.25. p.224



수면에 관련된 다른 책들도 익히 읽었던 터라 이미 '잠'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 책에서 조금 더 친절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시간'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이상적인 수면 시간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습니다.




다행이었다... 사실 거의 몇 년째 연속적으로 6시간 이상 충분히 수면을 취한 적이 평균적으로 손꼽기에. 

평일은 저녁 12시부터 새벽 기상으로 5시 전후로 잠에서 깬다. 그나마 주말이면 아침 6시 혹은 7시에 기상, 아침 집안일을 클리어해 내다보면 어느새 오전 시간 뚝딱. 오후를 지나서 저녁 육아를 마치고 나서도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서야 지치듯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지 않고서야 이상하게도 잠에 쉽게 들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물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는 '핑계'를 대자면.... 결국 수면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나' 때문이리라) 스트레스 때문이라곤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두 무의식 속 나에게는 여전히 '잠 시간을 줄여서 해내고 싶은 것들' 이 있기 때문이겠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것 또한 본인의 기분 탓이 아닙니다. 스트레스와 수면은 실제로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푹 자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스트레스를 줄이고 스트레스에 잘 대쳐 하며 생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피로와 나른함은 심신의 컨디션이 나빠졌다는 신호입니다. 몸과 마음이 이제 곧 한계야, 이쯤에서 한번 푹 쉬자고 미리 경고음을 울리는 셈이죠. 



감성의 영역이 이성의 영역보다 우월한 나는... 역시 푹 깊게, 오래 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예전엔 더 그랬다..




잠만 잘 자도 수면 미용 효과는 톡톡히 치른다고 한다. 

충분히 공감된다. 하다못해 야근을 하거나 야식을 먹고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잠들지 못하는 일상 패턴을 유지하게 되면 식습관도 망치기 십상, 피부도 안 좋아지고 살이 찌기 쉬운 체질로 변하고 마는 것도 과학적으로 숱한 건강서들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양질의 수면, 적당한 시간 확보'이니까. 




잠이 부족하면 식욕이 25% 증가한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식욕을 돋우는 그렐린이 증가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은 감소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뇌 부위의 활동이 둔해집니다. 그러면 의지와 의욕이 사라지고 자기 비하에 빠지고 감정이 조절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등 마음의 여러 가지 기능이 저하됩니다. 




푹 자야 하는 이유. 아름다울 수 있는 권리와 의무.



아이들이 그나마 손이 조금 덜 가는 나이로 변하면서 (최소한 쌍둥이들이 서로 놀기 시작했던 작년부터) 나는 늘 아이들의 씻김 이후에 반신욕을 행한다. 그마저도 30분 내에 후다닥 마치는 게 전부인 고양이 반신욕(?) 같은 느낌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하루의 엔딩곡(?) 같은 느낌으로 따뜻한 물에 맨몸을 집어넣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시간이 된 것만 같아서, 그렇게 피로는 풀리고 작은 위로를 스스로 건네곤 한다. 







목욕하는 시간은 움직이느라 긴장한 머리와 몸을 부드럽게 풀어 주고 딱딱해진 마음을 달래 주는 소중하고도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잘 잠들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더라도. 

그래도 한 가지 고마운 변화는 있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자각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 '나'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려는 어떤 시도들을 행한다는 것을.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반신욕 이후에 풋 크림을 바르고 보드라운 수면 양말을 신는 것. 아이들이 잠들고 집안일을 정리하고 읽다만 책을 읽거나 쓰다 만 글을 다 쓰고 난 이후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 말을 건네주는 것. '오늘도 수고했다. 잘.. 살았다.'라는 목소리를.



잘 자려한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삶을 잘 지켜내려 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일지 모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이 돼보고 싶은 요즘, 여전히 잠 못 드는 밤과 잠들지 '않는' 의지의 밤이 있을지언정, 잠시 혼자 중얼거려 본다. 오늘도 잘, 잠들어보자고. 또한 잠들 수 있는 따뜻한 침구, 집, 수면양말, 파자마, 쌔근거리며 뒤척이는 곁의 소중한 나의 아이들... 다른 거 모르겠고 아이들이 잘 자 주는 지금에 무척이나 감사함을 느끼며, 나는 새삼 깨닫는다. 지금의 내 곁에 현존하는 모든 것들에 '감사' 하는 마음으로 잠을 청해야 한다고. 이 마음가짐, 태도만으로도... 잘 살고 있으니 잘 잠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무언의 기대와 함께. 



품 안의 자식이 곁에서 잠드는 걸 볼 수 있는 요즘에 감사함만을 기억하며...



#오늘은_좀_오래_잘 수_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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