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미움들
그러니까 나의 부재를 가장 슬퍼하고 나를 가장 기억하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사랑을 정확하게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
이런 것도 사랑이라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나만이 나를 사랑했을 뿐
- 사랑하는 미움들 -
사랑스러웠다.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작가의 잔잔한 삶 속 외로움이라든가 마주하는 고통의 순간들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던 건, 창작과 사람 관계 속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무언의 그 '느낌'을 얼핏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익숙한 듯 한편으론 익숙하지 않은 독특한 감성은 문장 안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데 뭐랄까... 동시대를 같은 젠더로 살아가고 있었기에 한 편의 노래 가사 읽는 듯한 시적인 느낌으로 '팩폭'을 전달받은 기분, 그래서 더 좋았고도 마음이 애잔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미움들, 김사월, 놀, 2019.11.13.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는 사람은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것들을 내면에서 잘 소화시켜내야 한다.
그래야 덜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어딘지 모르게 '욕망'이라든지 '혐오'라든지 '탈코르셋'과 같은 단어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작가의 일상과 삶을 다루는 것들에 대한 태도들을 이 얇은 단행본으로 엿보는 시간 속에서 어딘지 모를 슬픈 사랑스러움(?) 이 전달되었다.
가끔 욕망이라는 허울 좋은 탈을 쓴 혐오를 받고 싶어 한다. 세상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을 환영하고 내가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탐욕할 때가 있다. 욕망 받지 못하면 쓸모가 없어진다고 세뇌되어 왔다. 오늘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한 물건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살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못 느끼는 때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한순간 물건이 되는 것쯤이야 뭐 어때.
왜인지 슬픈 기분이 드는 건 거울 속의 내가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꾸며도 나는 예쁘지 않다. 마음이 죽어가는 것 같았다.
이제는 꾸밈 노동(?)을 즐기는 편에 속하는 나로서는
'꾸미지 않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잠시 '한때' 굉장한 고민을 했던 '나'와 잠시 재회하고 말았다. 겉을 꾸미는 데 지긋지긋했던 시절, 그러나 한편으론 완벽히 버리고 싶지도 않은 또 다른 이면의 자아와 마주하고서는 그것이 사회적 동물로 어찌할 수 없이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숙명이던가 싶어서, 한편으로는 작가의 고민 저 너머의 이중성이나 감정들마저도 이상하게 공감 가더라.
나는 '지금' 꾸미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은 안 꾸몄지만 언젠가 내가 원하면 겉모습을 꾸미는 데 기꺼이 돈과 노력을 바칠 것이며 그때는 지금보다 매력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은, 결국 그 사람이 좋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사람 대함이 유약해서... 결국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을 끊을 수 없는 인간은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 작가님은 분명 '사랑스러운' 분일 거다. '당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마음 한편에 묻어 두고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엔 분명 그 각자의 형태 속에서 고스란히 간직된 '사랑' 이 기억돼있을 테니까...
우리는 어디서 다시 만나고 사랑하고 창작을 하게 될까
그 사람 영원히 내 인생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처음 알았던 나이를 나는 넘고 그 사람은 더 무섭고 높은 나이를 넘는다. 우리는 이어지지 않음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삶의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자극에 무뎌지도록 훈련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날 사랑하지만 당신은 언젠가 떠날 거야.
책을 덮고 편지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를 발견했다.
파스텔톤의 무지개가 연하게 그려져 있는 편지지였다. 막연히 샀지만 한편으론 쓰고 싶은 대상 몇몇이 떠올랐기에. 그러나 아직도 그 편지지는 뜯기지 않은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쉬이 앞서지 않은 건, 머리와 마음이 아직 생각 정리가 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이 정리되지 못하는 부유하는 마음 그대로 전하고픈데 막상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옅은 자체 검열을 잠시 해 보다가도.
결국 12월이 지나가기 전에 그 편지지를 뜯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미움'을 마음에 품은 채로, 그렇게 한 문장을 시작하게 되는 날이 곧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