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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05. 2019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품는, 또 다른 사랑

사랑하는 미움들

그러니까 나의 부재를 가장 슬퍼하고 나를 가장 기억하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사랑을 정확하게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 

이런 것도 사랑이라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나만이 나를 사랑했을 뿐 


- 사랑하는 미움들 - 








사랑스러웠다.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작가의 잔잔한 삶 속 외로움이라든가 마주하는 고통의 순간들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던 건, 창작과 사람 관계 속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무언의 그 '느낌'을 얼핏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익숙한 듯 한편으론 익숙하지 않은 독특한 감성은 문장 안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데 뭐랄까... 동시대를 같은 젠더로 살아가고 있었기에 한 편의 노래 가사 읽는 듯한 시적인 느낌으로 '팩폭'을 전달받은 기분, 그래서 더 좋았고도 마음이 애잔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미움들, 김사월, 놀, 2019.11.13.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는 사람은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것들을 내면에서 잘 소화시켜내야 한다. 

그래야 덜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어딘지 모르게 '욕망'이라든지 '혐오'라든지 '탈코르셋'과 같은 단어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작가의 일상과 삶을 다루는 것들에 대한 태도들을 이 얇은 단행본으로 엿보는 시간 속에서 어딘지 모를 슬픈 사랑스러움(?) 이 전달되었다. 




가끔 욕망이라는 허울 좋은 탈을 쓴 혐오를 받고 싶어 한다. 세상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을 환영하고 내가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탐욕할 때가 있다. 욕망 받지 못하면 쓸모가 없어진다고 세뇌되어 왔다. 오늘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한 물건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살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못 느끼는 때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한순간 물건이 되는 것쯤이야 뭐 어때. 



왜인지 슬픈 기분이 드는 건 거울 속의 내가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꾸며도 나는 예쁘지 않다. 마음이 죽어가는 것 같았다. 




꾸미지 않은 순정의 형태 자체로도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 걸까.





이제는 꾸밈 노동(?)을 즐기는 편에 속하는 나로서는 

'꾸미지 않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잠시 '한때' 굉장한 고민을 했던 '나'와 잠시 재회하고 말았다. 겉을 꾸미는 데 지긋지긋했던 시절, 그러나 한편으론 완벽히 버리고 싶지도 않은 또 다른 이면의 자아와 마주하고서는 그것이 사회적 동물로 어찌할 수 없이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숙명이던가 싶어서, 한편으로는 작가의 고민 저 너머의 이중성이나 감정들마저도 이상하게 공감 가더라. 




나는 '지금' 꾸미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은 안 꾸몄지만 언젠가 내가 원하면 겉모습을 꾸미는 데 기꺼이 돈과 노력을 바칠 것이며 그때는 지금보다 매력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은, 결국 그 사람이 좋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사람 대함이 유약해서... 결국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을 끊을 수 없는 인간은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 작가님은 분명 '사랑스러운' 분일 거다. '당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마음 한편에 묻어 두고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엔 분명 그 각자의 형태 속에서 고스란히 간직된 '사랑' 이 기억돼있을 테니까... 




우리는 어디서 다시 만나고 사랑하고 창작을 하게 될까 


그 사람 영원히 내 인생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처음 알았던 나이를 나는 넘고 그 사람은 더 무섭고 높은 나이를 넘는다. 우리는 이어지지 않음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삶의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자극에 무뎌지도록 훈련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날 사랑하지만 당신은 언젠가 떠날 거야. 



눈이 언제 가는 녹는 것처럼...




책을 덮고 편지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를 발견했다. 

파스텔톤의 무지개가 연하게 그려져 있는 편지지였다. 막연히 샀지만 한편으론 쓰고 싶은 대상 몇몇이 떠올랐기에. 그러나 아직도 그 편지지는 뜯기지 않은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쉬이 앞서지 않은 건, 머리와 마음이 아직 생각 정리가 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이 정리되지 못하는 부유하는 마음 그대로 전하고픈데 막상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옅은 자체 검열을 잠시 해 보다가도. 



결국 12월이 지나가기 전에 그 편지지를 뜯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미움'을 마음에 품은 채로, 그렇게 한 문장을 시작하게 되는 날이 곧 오기를... 



책이 날카로운 느낌? 이면서도 사랑스러운 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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