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Dec 15. 2019

싸울 수 있다면, 소신껏 제대로

한자와 나오키 

옳은 건 옳다고 말하는 것. 세상의 상식과 조직의 상식을 일치시키는 것. 그것뿐이야. 

한눈팔지 않고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는 것. 

지금의 조직은 이런 당연한 일조차 할 수 없어. 그래서 안 되는 거야. 


- 한자와 나오키,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 





대사 하나하나가 뼈를 때리는 '팩폭'이라 

감히 서평을 제대로 써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렇게 손을 놀리고 있는 시간이면 어딘지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캐릭터 평가를 할 수조차 없는 소설들을 대할 때면 '감히' 그럴 수 있을까 싶어서. 다만 그저 몇 페이지가 넘기기가 어렵도록 책갈피를 해 내거나 필사하고픈 구절들을 적어 내리고 말뿐. '한자와 나오키'의 전작들에 대한 소개 정도와 유명세만 익히 알고 있다가 앞 시리즈를 건너뛰고 최신작을 잃어 내리면서 조금은 아쉬웠다. 전 작품들 속의 '한자와'와 그 주변 인물들의 주옥같은 명대사를 놓친 것 같아서. 잃어야 할 책들은 그렇게 쌓이고 또 쌓일 뿐이다. 



한자와 나오키 3, 이케이도 준, 인플루엔셜,  2019.11.30.




회사라는 조직 내 생활을 꽤 길게 연명(?)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이 소설책 하나가 뭐라고 나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모리야마'라는 젊고 유능한, 무엇보다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지키려는 어떤 '당돌한' 발언들 앞에서 (뭐 하나 틀린 말은 없었을 뿐이고) 희열을 느꼈으며 반대로 자기 '라인'과 '밥그릇' 챙기기 일쑤인 '모로타' 차장의 대사 또한 열폭하게 만드는 한숨이 절로 나는 대사들을 읽고 있다가 내가 속한 조직 내의 몇 캐릭터들이 생각이 났었다. 역시 소설이지만 소설은 또 그냥 소설만으로 그치는 건 아니지 싶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대사들, 어디에나 있는 조직 인간들의 자화상들은 이렇게 책 속 인물들로 재탄생되곤 한다. 




거품 시대에 은행에 들어와 별다른 능력도 없는데 차장이잖습니까? 그릇이 작다고나 할까요?


비판하면 할수록 마음속에서 삐져나오는 것은 씁쓸한 소외감이었다. 지금까지 상사 복이 없었던 만큼 월급쟁이로서 운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힘들게 입사한 회사지만 여기가 자신이 있을 곳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모리야마가 경험한 취업 빙하기, 즉 취업난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고, 올해인 2004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략)  살을 깎아내는 고통을 견디며 구직 활동을 통과해 회사에 들어와 보니 그곳에는 놀라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별다른 능력도 없는 주제에,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구인난 속에서 마구잡이로 대량 채용된 위기감 없는 사람들이 중간관리자가 되어 활개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거품 시대에 입사한 사람들이다. 



조직생활은 해 봐야 안다.... 해 본 자들은 알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을.



불황이 아닌 시대가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취업'이나 '구직난'이라는 단어는 매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취업을 행했던 근 십여 년 전에도 취업난은 불황이라 심했다 했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취업 준비생들의 3종 세트라든지 88만 원 세대라든지, 공무원 시험의 경쟁 합격률은 바늘구멍이라는 언론 기사들 등등, 비단 소설 속의 '잃어버린 세대 - 로스 제네라는 일본식의 표현 - '의 억울함과 분노감은 묘하게 문장 안에서 살아난다. 




모리야마에게 그들은 호경기였다는 이유만으로 대량 채용된 덕분에, 아무런 능력도 없이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가는 짐 덩어리일 뿐이다. 


대량 채용 덕분에 머릿수만 많은 거품 세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소수 정예의 잃어버린 세대가 혹사당하고 학대받고 있다. 


자네들이 거품 세대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그들이 지긋지긋해서 견딜 수 없어. 하지만 단카이 세대라고 해서 모두 믿을 수 없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아. 반대로 취업 빙하기에 입사한 직원이라고 해서 모두 우수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고. 결곡 세대론이란 건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뜻이야. 위쪽이 나쁘다고 화를 내봐야 자기 자신만 비참해질 따름이니까. 




하물며 그런 취업난을 뚫고 들어온 회사에서의 생활은 가관일 정도로(?) 우스꽝스럽고 형편없이 무능한 선배들(?) 탓에 더할 나위 없는 실망감을 앉고 마는 모리야마와 그를 지켜보는 한자 와가 처한 상황들. 회사와 또 다른 회사들의 첨예한 비즈니스 관계들... 이상하게 소설인데 어딘지 소설 같지 않은 탓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싶다. 현재의 '내 조직' 이 생각 나서였을까...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만 일하게 되지. 자신만을 위해 일을 하면 소극적이고 비굴해지며, 자기 사정에 따라 추악하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어. 그런 자들이 늘어나면 조직은 당연히 썩을 수밖에 없고, 조직이 썩으면 세상도 썩을 수밖에 없고.


끼리끼리의 친목질을 통해 자기 식구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종종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지. 그런 녀석이 회사를 섞게 만드는 거야. 



어느 조직이나 '사일로'가 있기 마련... 이겠다. 스스로 반성할 뿐, 스스로를 알려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을 테니...




이해관계로 섞인 관계들은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한 밥그릇을 신경 써야 한다. 

비록 소설이 그려낸 사업적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도쿄 스파이럴'이라는 성장하는 젊은 기업이 처한 상황들을 가만 읽어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모르게 애석하게도 현재의 내 조직을 떠올리고 만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핑계(?)로 사업의 모태를 상쇄시키려는 애꿎은 선택, 그로 인한 막무가내식 신생 기업으로의 투자, 철저한 전략 하나 없는 것 같았던 그 선택들과 그로 인한 내부 직원들의 쌓여 가는 불만들, 끝내 별다른 성과(?) 없이 불투명한 재정 관리와 형편없는 인사 논리.... 등등등. 씁쓸한 한숨만이 나오는 조직 생활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답답함은 쌓여갈 뿐이다. 




돈이 있는 것? 상장한 것? 아니면 대형 클라이언트가 많다는 것? 물론 그런 것도 강점이고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경쟁력의 원천은 그런 게 아니라 최첨단 웹 기술이야. 그 기술이 있기 때문에 다른 검색 사이트보다 큰 이익률을 유지해왔어. 즉, 이 웹 기술에 필적할 만한 경쟁력이 없으면 다른 사업에 고개를 들이밀어봐야 돈만 털릴 거야. 그런 건 우리 특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성공의 냄새를 잘 맡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업계로 진출해서 성공할 만큼 세상은 만만치 않아. 사업을 확대하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잘 모르는 업계에 고개를 들이미는 게 아니라 본업을 특화하는 거야. 그것 말고 살아남을 길은 없어. 




그럼에도 주인공은 말한다. '싸우라고' 

그 명쾌한 대사 안에서 어떤 답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 한 법이 어떤 면에서는 성립될 수 있는 건, 그런 식으로든 누군가들과 스스로의 소신껏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기력과 에너지, 끈기와 열정이 여전히 소수의 마음속에서 살아있는 한, 그 소수들이 아주 느리지만 괜찮은 환경, 좋은 문화, 나아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어떤 믿음 때문이겠다. 




모리야마, 싸워. 나도 싸울 테니. 

그런 식으로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한,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하니까. 

그렇게 믿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한편으론 싸우는 것에 어떤 '한계'를 느끼고 마는 요즘은 관점을 달리해보기도 한다. 

자신이라는 개인을 위해 싸우는 것과 다수를 위해 싸우는 것. 그 두 개 사이의 경계를 오고 가면서 절충안을 찾고 적정선의 타협이라는 것을 행해야 '생존'이라는 것에 큰 무리수(?) 없는 위협을 느끼기도 하기에. 조직생활이라는 것은 그 두 경계 사이를 부드럽게 잘 조율해야만 비로소 조금은 더 오래가는 것도 같아서. 


가끔 많은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모두를 위하는 일과 개인을 위하는 일, 무엇이 더... 의미 있는 걸까 싶어서...




정답은 없겠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앞선다

나만 잘 살자고 하는 일 치고는 끝이 좋은 일은 없고, 반대로 모두를 위한 싸움을 잘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한 건 더더욱 아니라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바로 '회사' 인간으로 살아가는 생활인 듯도 싶다... (가끔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마지막 문장에서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라고 한 것을 보면, 정말이지 끝나는 건 없는 걸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서리기도 한다. 결국 조직을 떠나서 완벽히 홀로 자생하는 것 또한 '사회적 인간'의 역할로 생존을 병행하는 삶이라면 결국 조직 안이든 밖에서든 '새로운 전쟁' 은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만을. 



소설 안에서 찾고, 다시 질문의 끝에서 나는 책을 찾는다. 

그렇게 반복되는 것 밖에 아직은 답을 찾지 못하겠다.. 



좋은 책은 어떤 이유에서든 계속 책을 다시 찾게 만든다. 새가 하늘을 나는 데 큰 이유가 없듯이.. 자연스럽게.


매거진의 이전글 11월의 책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